글: 황파(黃波)
"가붕(駕崩)"은 전문용어로, 제왕의 죽음을 가리킨다. 어떤 일이든 제왕에 관련되면 달라진다. 보통사람이 죽는 것은 그냥 사망이지만, 황제는 다르다. 황제가 병이 들어 죽을 때까지 여러가지 오묘한 일들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가붕학"이라는 하나의 학문분야를 삼을만 하다. 아쉽게도 사람들은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것같다. 이에 필자는 글을 하나 써서 포전인옥(抛塼引玉)하고자 한다.
"가붕학"의 가장 큰 의의는 바로 "비(秘)"에 있다.
사서를 읽어보면, 자주 "비불발상(秘不發喪, 사망사실을 비밀로 감추고 장례를 치르지 않다)"의 장면이 나온다. 진시황이 순유하다가 도중에 병이 나서, 사구평대에서 죽었다. 당시 수행하던 사람은 승상 이사, 시황제의 어린아들 호해, 환관 조고등이 있었다. <<사서>>에 따르면, "승상 이사는 황상이 바깥에서 붕어하면 여러 공자 및 천하에 변고가 있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비밀로 감추고,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乃秘之, 不發喪)". "오로지 아들 호해, 조고 및 황제를 모시던 환관등 5,6명만이 황상이 죽은 것을 알았다" 소위 '여러 공자 및 천하에 변고가 있을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은 결국 황위계승자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조고가 호해의 스승을 지낸 바 있어 두 사람의 관계는 밀접했다. 자연히 조고는 호해가 후계자가 되기를 바랐다. 이해관계를 따져본 후에, 이사와 조고는 성지를 위조하고, 호해를 황제의 보좌에 올리기로 한다. 진왕조를 타도한 유방도 사후에 '비'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가 장락궁에서 붕어했다. 사일간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四日不發喪)". 원인은 유방의 처인 여후가 이 기회에 몰래 유방과 함께 거병했던 장수들을 주살하기 위해서였다.
왜 이렇게 많은 "비불발상"이 나타났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것은 밀실정치의 산물이다. "비물발상"만이 어둠 속에서 조작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노병사는 원래 자연법칙이다. 보통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밀실정치의 조건하에서는 우리가 놀랍게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제왕의 병과 사망에 관한 소식은 아주 희귀하고 아주 효용있는 정보이다. 누가 먼저 이 정보를 장악하느냐에 따라 그는 권력투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결국 쫓겨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죽을지도 모른다. 호해의 경우, 먼저 부친이 죽은 소식을 알았으므로, 그는 몇가지 조치를 통하여, 성공적으로 황제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형인 부소는 원래 진시황이 마음에 둔 후계자이지만, 변방에 나가 있던 관계로 이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결국 멍청하게 죽고 마는 것이다.
밀실정치에 익숙한 사람들은 제왕의 병과 사망을 드러낼 수 없는 최대의 기밀로 취급한다. 그리하여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이 소식을 봉쇄하고자 한다. 그것이 최대의 임무가 되는 것이다. 동남아의 한 나라에서는 통치자의 '가붕'의 확실한 날자를 20년후에 선언하며 고치게 된다. 원래 그가 죽은 날이 바로 '국경일'이었던 것이었다. 상부인사들은 사람들이 국경일의 기쁜 날에 이렇게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일치하여 죽은 날을 하루 연기하여 발표하기로 결정한다. 다른 사람들이 진상을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은 여러가지 조치를 해두었다. 수십년후에야 비로소 이 일은 공표되고, 그 당시 사람들은 신하들이 큰 공을 세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
지나치게 신비하기 때문에, 어떤 때에는 밀실정치를 하던 통치자의 병과 죽은이 국제적인 분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원래 사람이 며칠동안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혹시 그가 죽지는 않았는지 추측하는 법이다. 이렇게 하여 유언비어가 돌게 되고, 일반사람들은 불가사의하다고 느끼게 된다. 병에 관하여 숨기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죽었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날자를 숨기게 되면, 후세인들은 자신을 제사지낼 정확한 날자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해야하는가> 밀실정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논리가 있고, 그들만의 재미가 있다. 그들은 항상 보통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웃기는 일을 아주 장엄하게 행하곤 한다.
"가붕학"의 두번째 의의는 죽은 사람을 가지고 산 사람을 겁주는 것이다.
제왕이 '가붕'하면, 유조(遺詔)가 반포된다. 중국역사상 제왕의 유조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그가 선정한 후계자를 천하에 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하의 백성들에게 그가 선정한 후계자를 두말없이 받아들이라고 훈계하는 것이다. 이처럼 유조는 거의 비슷비슷하다. 특히 새로 보좌에 앉게 되는 새주인에게 있어서, 이것은 보배와 같다. 먼저, 세습으로 승계하는 제왕은 권력의 합법성이 모두 여기에서 온다. 만일 본인의 이름이 유조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황제의 보좌에 앉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합법적'인 것이 아니다. 둘째, 이를 통하여 천하의 백성들을 겁줄 수 있다. 본인이 바로 노황제가 고르고 고른 후계자이다. 그러니, 너희는 나의 말을 고분고분 따라야 한다.
이목을 잃고, 그저 무지몽매하던 백성들은 이런 유조에 겁을 먹고 따른다. 그러나, 풍자적인 것은 겁을 먹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일반평민백성이 아니라, 유조를 가지고 사람을 겁주는 새주인과 혈연관계에 있는 자들이며, 마찬가지로 밀실정치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가장 유력한 무기는 바로 사람을 놀라게 만든 그 유조가 위조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중국역사에서는 이러한 일이 여러번 벌어졌다. 갑은 을이 유조를 무시한다고 성토하고, 을은 갑에 유조를 위조했다고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런 선전전은 명의상으로는 모두 천하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는 백성들이 알 방법이 없다. 그들이 죽어라 싸운다고 하여 백성들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밀실정치는 시종일관 밀실내에 있는 사람들만 관련된다. 밀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것이 바로 "가붕학"의 정수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조상을 욕할 필요가 없다. 밀실정치는 고대에 거의 관례화되었었다. 현대정치의 발원지인 영국에서 내각은 정부의 핵심이다. 그런데, 내각(cabinet)의 영문명칭은 원래 의미가 '밀실(密室)' 혹은 '밀의실(密議室)'이라는 뜻이다. 즉, 국왕이 가장 가까운 측근을 불러서 국사를 논의하던 곳이다. 이는 여전히 밀실정치이다.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영국내각은 더 이상 국왕개인에게 속하지 않고, 의회에 책임지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정식으로 밀실정치와 고별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가붕학'의 종말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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