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화/중국의 사상

지배당하는 인생이여, 안녕!

중은우시 2010. 9. 14. 20:01

글: 단사병(單士兵)

 

"가을이 깊었다. 왕은 시를 쓴다(秋天深了, 王在寫詩)"

 

해자(海子)의 이 유명한 싯귀를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에 불문에 귀의한 북대재자(北大才子) 유지우(柳智宇)때문이다. 그는 해자처럼 고독한 '왕'임에 틀림없다. 전액장학금을 받고 MIT에 유학갈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고찰 용천사로 수행얼 떠났다. 이는 세속의 기준으로 보면 반역이고 충격이다.

 

사람의 공공의지중의 정치, 경제, 문화등등의 가치를 가지고, 유지우의 인생선택을 해석하려고 하고 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찾는 것은 그저 촛불이 산벽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좁고 어두운 길뿐일지도 모른다. 그저 재자 자신의 내심에 얼음과 눈처럼 투철하게 자신의 가장 좋은 인생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혼자서 걸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세상을 걸어가는 너무나 많은 인생은 사실 사람들이 흘러가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일 뿐이다. 물욕이 넘치는 길이다. 고요히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자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의 인생은 사실 그저 길을 잃고 사방을 헤매는 것이다. 시종 잘 알지 못한다. 자신이 도대체 왜 사는지를. 혹은 생활을 왜하는지를.

 

유지우는 최소한 자신이 지배당하는 인생은 면했다. 이것은 부러워할 일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의 인생 도화원이 선방의 깊은 곳일 수는 없다. 마음이 가장 자유로운 곳이 바로 우리 인생의 도화원인 것이다.

 

불현듯 얼마전에 인기를 끌었던 인도영화가 생각난다. 영화의 이름은 중국어로 번역되면서 아주 속되게 바뀌었다: "세 바보의 볼리우드 소동(Three Idiots)." 그래도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많은 중국인들의 마음을 울렸다. 세속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현실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영화에 나오는 아미르한이 주연을 한 인물은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바보'라는 딱지를 붙일만하다. 그러나, 그는 마음의 자유를 추구하는 인생의 여행을 하고, 결국 자아가치를 실현한다.

 

지배받는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독특한 인생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여러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산문저작인 <<월든(Walden)>>은 저명한 미국산문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작품이다. 바로 1845년 7월 4일 미국이 독립한 그 날에 월든 호수가의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 소로는 사회의 모든 속박을 끊고, 마음은 소박함과 자유를 얻는다. 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위대한 사상가가 남긴 말을 음미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만일 내가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자신의 오전과 오후를 사회에 팔아버렸다면, 나는 감히 단정할 수 있다. 생활은 지낼 가치가 없었을 것이라고."

 

그렇다. 시대의 발전은 오늘날 절대다수의 중국인으로 하여금 더 이상 여화의 소설 <<활착(活着)>>의 복귀처럼 "살기 위해서 산다'가 아니다. 문제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정말로 꿈속의 '가치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의 발전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사실 계속하여 사람을 해방시키는 과정이다. 서방의 르네상스, 중국의 5.4신문화운동, 다시 현대 전화기중국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어떤 특정사회체제의 시각으로 개체의 가치를 바라보는 것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개인적일수록 사회적이다. 민족적일수록 세계적인 것처럼. 다원화사회의 가치판단은 결국 동굴의 사회신분을 벗어나야 한다. 더 이상 간단한 단일의 평가기준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유지우에 있어서, 개인의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는 길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MIT를 들어가서 모든 사람이 주목하는 수학자가 되는 것일 필요는 없다. 그는 지배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내심이 요구하는 존엄을 보유할 권리가 있다. 최후로 개인가치를 만들어내면, 아마도 이 사회의 거대한 자산이 될 것이다.

 

불문에 들어간 유지우는 고독하다. 이 고독은 유지우 본인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전체 사회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이 사회의 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어떤 세속의 힘에 쫓겨서, 무거운 마음을 안고 사람들이 흘러가는데로 집단적으로 매어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욕과 권력으로 향하는 길을 빠르게 걸어가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깨끗한 하늘을 바라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있는' 생활을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사회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초조해하고,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벨이 말한 것처름 '생활은 진실속에 있다"고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사람이다. 그 다음에 국민이다." 소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성숙한 현대사회는 반드시 더 많은 자아가 이끄는 가치실현을 해야 하지, 망연히 다른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가서는 안된다. 이는 확실히 사회의 더 많은 분야에 더 많은 민주와 개방의 조절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지배받는 인생을 벗어날수록, 우리의 사회와 정치는 더욱 다원화되고 성숙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