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문학/홍루몽

병적인 미녀 임대옥(林黛玉)은 어떻게 가보옥(賈寶玉)의 사랑을 받았는가?

중은우시 2010. 8. 26. 23:16

글: 홍촉(洪燭)

 

만일 임대옥이 어려서 나두화상(癩頭和尙)의 권고를 따라 일찌감치 출가했더라면, 나중에 요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병도 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홍루몽>>에는 병서시(病西施)같이 감성이 풍부하고 우수에 젖어있으며 울기 좋아하고 화내기 좋아하는 임매매(林妹妹)는 없었을 것이며, 묘옥(妙玉, 홍루몽에 나오는 여승)은 두 명이 되었을 것이다.

 

묘옥에게서는 대옥의 가능성이 내비친다. 만일 대옥이 삭발하여 비구니가 되었다면, 묘옥처럼 고요한 마음(心如止水)을 지닐 수 있었을까? 그저 대옥은 고요한 마음을 가지지 못했고, 보가가(寶哥哥, 가보옥)의 그림자에 의하여 더 많은 파장이 일어났다. 아름다운 상상으로 충만한 거울은 현실의 무거운 타격을 받아, 꿈은 사라지고, 마음도 부서졌다.

 

그녀는 너무나 아리따운 거울이었다. 마음 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을 줄 몰랐고, 너무 무거운 압력은 견디지를 못했다. 그저 스스로 자기 몸을 가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까지 돌봐줄 수는 없었다. 더더구나 삼교구류를 따르거나, 잔혹한 세상과 서로 속고 속이는 중생의 모습에 따를 수는 없었다. 그것은 골치거리를 찾고, 자극을 받는 것이 아닌가? 임대옥의 그 불면 깨어질 것같은 유리같은 마음은 지나친 자극은 버틸 수가 없었다.

 

바람에도 견디기 힘들정도로 약한 임대옥은 어느 정도 병적인 미녀이다. 우울함도 그녀의 병이고, 속이 좁은 것도 그녀의 병이고, 걱정이 많고 의심이 많은 것도 그녀의 병이며, 화를 잘내고, 화가 나면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날카로운 말을 하는 것도 그녀의 병이다. 그녀의 몸에는 이렇게 많은 자잘한 문제들이 있었다. 그래도 쉽지 않은 점이라면, 그녀는 병적익 것을 일종의 아름다움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일종의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일종의 개성의 아름다움으로. 이들 작은 문제점들은 그녀에게서는 귀여움이 되고 음미할만한 것이 된다.

 

보가가는 임매매를 유독 사랑했다. 이는 그녀의 개성에 반한 것이다. 그는 그녀의 몸에 있던 작은 문제점들도 사랑했을까? 어떤 때는 사람으로 하여금 참지 못하게 하고, 어떤 때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독되게 하기도 했다. 보가가와 임매매는 연애를 하면서, 정말 중독성이 강했다. 상하요동을 버텨야만 했다. 아리땁기 그지없는 임매매를 보면, 한번 찡그리고 한번 웃는 것이 얼마나 강한 힘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순식간에 천당까지 올라가다가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너를 따라 웃게 만들고, 따라 울게 만들고, 따라 화내게 만든다, 동쪽에 해가 뜨면 서쪽에 비가 내리고, 정이 없다고 말하지만 정이 있다.

 

임대옥은 자기를 사랑하느라 괴로워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아마도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을까? 너의 마음이 어지러울 때, 그녀의 마음도 어지럽다.

 

몸은 약하고 병이 많았던 임대옥은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약을 많이 먹었다. 그녀의 운명은 약의 쓴 맛으로 가득하다. 보가가를 만나서 비로소 그녀의 마음은 단 맛을 느낀다. 사람도 즐겁게 바뀌었다. 아쉽게도 달콤한 것은 너무 적었고, 너무 짧았다. 나중에는 더 많은 고통이 있고, 더 큰 고통이 있다. 임대옥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어쨌든 씁쓸한 운명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결국 비극이 되었다. 그녀는 동시에 비극마저도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만들었다. 일종의 사람들을 울게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가련한 임대옥은 확실히 이미 죽었다. 그러나, <<홍루몽>>을 뒤적여보면, 그녀는 살아있는 것같다. 그녀와 그녀의 아직 치료하지 못한 병은 함께 살아있다. 나는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의 병을 보고 있는 것인가? 그녀가 아름다운 만큼, 그녀의 병도 아름답다. 병적인 아름다움은 심지어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잊기 힘들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한 조각이 부족하면 그것을 채우기는 어렵다. 임대옥의 성격은 결함이 있다. 정신과의사를 만나보아야 할 것인가? 사실 독자들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녀의 민감하고, 의심많고, 오만하고, 청고한 성격은 그녀의 뼛속의 자비감(自卑感)에서 유래하는 것을. 모친을 일찍 여의고, 부친과 사멸하고 집을 떠난데서 오는 불안감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임대옥이 가씨집안에 들어온 것은 설보채(薛寶釵)가 가씨집안에 들어올 때처럼 당당하게 들어오지 못했다. 유씨할머니가 대관원에 들어올 때처럼 충실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무시할까봐 무서웠다. 그녀의 마음은 고슴도치처럼 웅크려져 있었다.

 

임대옥은 가시를 품은 꽃이다. 그녀는 설보채에 대하여 질투를 느낀다: "생각지도 못하게 설보채라는 여자가 돌연 나타났다. 나이는 비록 그다지 많지 않지만, 품성이 단정하고 용모가 풍만하고 아름답다. 사람들은 대옥이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설보채는 행동도 활달하고 본분에 맞게 행동하고 시의적절하게 한다. 임대옥처럼 고독하고 오만하며, 다른 사람들을 먼지처럼 여기지 않는다. 그리하여 대옥보다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훨씬 많이 얻는다. 그리하여 시녀들은 설보채와 노는 것을 종하앴다. 그리하여 대옥의 마음 속은 더욱 우울하고 괴로웠다. 설보채는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특히 임대옥이 가보옥과 설보채가 약간만 가까이 지내는 것을 보면 내심의 질투가 불타올랐다. 말을 할 때 짓는 웃음도 냉소가 되고, 말을 할 때도 칼날을 품고 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임대옥은 입에 칼을 품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이 아가씨가 한마디 말을 하면, 칼날보다도 날카롭다." "그녀의 입은 미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좋아할 수도 없다."

 

제8회 <<비통령금영미노의, 탐보채대옥반함산>>을 보면 임대옥이 보옥과 보채가 의기투합하여 말하는 것을 보고는 자견의 분부에 따라 손난로를 가져다주는 설안을 책망한다. 웃으면서, "네가 그의 말이라면 듣는구나. 내가 평소에 너에게 말하면 귓전으로 흘려듣더니, 어째서 그가 얘기하니 너는 바로 따르느냐. 성지를 받을 때보다 빠르네." 가보옥은 이 말을 듣고 임대옥이 일부러 그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라고 느껴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냥 허허 웃을 뿐이었다. 설보채는 임대옥이 원래 그런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았다.

 

지연재는 임대옥이 이 차가운 말에 아주 평을 잘 붙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를 품고 있다. 미우면서도 귀엽다." 지연재는 아주 좋은 뜻으로 대옥의 질투심을 바라본다. 질투심은 임대옥에게서 귀여운 점이다. 가보옥이 보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는 임매매라는 이 꽃을 사랑했을 뿐아니라, 꽃의 가시까지 좋아했다. 왜냐하면 이들 가시가 바로 다른 꽃과 구별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설보채를 옹용부귀의 모란이라고 한다면, 임대옥은 함진대수의 장미이다. 가시도 장미의 아름다움의 일부분이다. 가시를 품은 꽃은 사람을 찌를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잊기 어렵다.

 

나는 임대옥을 대관원 에서 '괴미미녀(怪味美女, 괴이한 맛의 미녀)'라고 부르고 싶다. 가보옥이 임대옥을 사랑하는 것은 그녀의 몸에서 나는 괴이한 맛때문이 아닐까? 시고, 달고, 쓰고, 맵고, 짠...임대옥의 성격에는 이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가보옥의 앞에서, 임대옥은 감출 것이 없었다. 이런 각종 맛을 모조리 보여주었다. 각박한 말로 보옥을 찔러도, 보옥은 원망하거나 화내지 않았고, 아주 즐겼다. 약간 아프기도 하고, 약간 간지럽기도 하고, 약간은 뻣뻣하게 만들기도 했다..임대옥은 이렇게 가보옥으로 하여금 아프면서도 즐겁고, 잊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