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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홍루몽

<<홍루몽>>의 작자는 '조설근'이 아니다.

by 중은우시 2010. 2. 2.

글: 황수우(黃守愚)

 

<<홍루몽(紅樓夢)>>의 진정한 작자가 누구인가? 이제 고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홍루몽>>의 제1회에는 이런 말이 있다: "조설근(曹雪芹)이 일찌기 도홍헌(悼紅軒)에서 십년동안 피열(披閱)하면서, 5번 덧붙이고 빼며(增刪), 목록을 편찬하고, 장회(章回)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 '조설근'은 그저 <<홍루몽>의 제1회에 나오는 허구의 인명이다. 즉, 소설가가 하는 말일 뿐이다. 이 말이 은유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도대체 <<홍루몽>>의 창작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이제는 알아볼 방법이 없다. 정위원(程偉元)이 <<홍루몽>>을 출판하면서, 정갑본(程甲本). 정을본(程乙本)의 서문에 이렇게 밝혔다: "홍로몽의 본명은 석두기(石頭記)이다. 작자가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전해지는 바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의 손에 쓰여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오직 소설안에서는 설근 조선생이 여러번 첨삭한 바 있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출판상인 정위원도 조설근이 작자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주족 시인인 돈성(敦誠), 돈민(敦敏) 형제의 시문을 보면 그들의 친구인 "조설근(曹雪芹)"이 나온다. 그런데, 이 조설근이 바로 홍루몽 제1회에 나오는 그 조설근인가? 필연적인 인과관계는 보이지 않는다. 확인할 방법이 없다. 또한, 돈성, 돈민 형제는 한번도 그들의 친구 조설근이 석두기이든 홍루몽이든 어떤 소설을 썼다고 적은 적이 없다. 몇몇 친구들이 함께하면서 교분이 이렇게 밀접하다면, 왜 이 조설근이 홍루몽이라는 소설을 썼다는 것을 몰랐을까?

 

건륭때 명의(明義)는 <<녹연쇄창집<제홍루몽>(綠煙鎖窓集<題紅樓夢>)>>이라는 절구 제목 아래에 소서(小序)를 남겼다: "조자설근(曹子雪芹)은 그가 쓴 홍루몽이라는 책에 나오는데, 풍월번화의 번성함을 썼다. 아마도(蓋) 그의 조상이 강녕직부였던 것같다. 그가 말하는 소위 대관원(大觀園)은 아마도 지금의 수원(隨園) 옛부지(故地)인 것같다. 아쉽게도 그 책이 전해지지 않아서 세상에 아는 사람이 적다. 나는 그 초본을 보았을 뿐이다." 이를 보면 명의는 조설근이 누구인지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아마도'라는 말로써 조설근의 출신이 아마 강녕직조의 사람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렇다면 명의의 말을 증거로 믿을 수 있는가? 명의가 말한 홍루몽이 지금 우리가 읽는 홍루몽이라고 할 수 있는가? 명의와 원목(袁牧)의 <<수원시화(隨園詩話)>>의 기재는 아주 유사하다. 우리는 똑같은 의문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청나라 건륭때의 사람인 영충(永忠)은 <<인목향득관홍루몽소설조설근>>에서 "전신문필족천추(傳神文筆足千秋), 불시정인불누류(不是情人不淚流), 가한동시불상식(可恨同時不相識), 기회엄권곡조후(幾回掩卷哭曹侯)"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 시를 조설근이 홍루몽을 썼다는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도 억측이다. 이 시에는 명확히 "안타깝게도 동시대에 살면서 서로 알지 못했다(可恨同時不相識)고 하지 않은가? 이를 보면 그는 조설근과 서로 모르는 사이이고, 그저 항간에 떠도는 말을 들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나라때 유서(裕瑞)는 <<조창한필(棗窓閑筆)>>에서 이렇게 썼다: "듣기로 옛날에 <<풍월보감>>이라는 책이 하나 있었는데, 다른 이름으로 <<석두기>>라고 한다. 누가 쓴 것인지는 모른다. 조설근이 이를 얻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쓴 내용이, 자신의 집안에서 일어난 일과 약간 비슷했다. 그리하여 이를 활용하여, 이 책을 다섯번 수정했고, 갈수록 뛰어나졌다...." 그리고 또한, "설근이라는 두 글자는 생각하기로 그의 자(字)나 호(號)이다. 이름은 알 수가 없다. 조씨성의 한군팔기사람인데, 어느 기(旗)에 속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말도 썼다: "소문에 듣기로 '보옥(寶玉)'이라는 자는 그의 숙부뻘의 어떤 사람을 가리키지 자신을 쓴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를 보면 그는 특별히 이것들이 모두 '들은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항간의 소문이라는 것이지, 홍루몽의 작자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조설근이 이를 얻었다'는 것도 믿을만한 것이 아니다.

 

서기1921년, 호적(胡適) 선생이 <<홍루몽고증>>을 발표한다. 청나라때 문헌과 억척에 나오는 '대개" '아마도"의 조설근 가족을 고증하는 기초하에 '조설근'이 홍루몽의 작자로 확정시키고, 정설이 된다. 호적 선생은 실증주의자이다. 모든 것은 증거를 믿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는 증거를 중시하지 않았는가? 가족의 족보기록에 신빙성이 있는가? 청나라 사람들의 필기, 시문에 신빙성이 있는가? 정말 웃기는 일은 소위 조씨족보에 아예 '조설근'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정말 모르겠다. 한푼의 증거이면 한푼의 말을 하는 호적 선생이 왜 이런 식으로 사료고증을 했는지. 호적 선생은 이에 대한 고증문제에 있어서, 증거의 합법성을 고려하지 않았고, 전혀 합법성이 없는 필기와 전설을 가지고 견강부회적으로 짜맞추었다. 이는 고증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차라리 무당이 헛소리하는 것과 같다.

 

기녀가 자신은 고관대작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이는 그저 '소설가의 말'일 뿐이다. 낭만주의 시가와 같이 이를 진실로 믿을 수는 없다. 전설에 따르면 강녕직조의 조씨후인들이 정말로 조씨후인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족보에 한 마디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족보에 '조설근'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그렇다면 기녀가 자신이 전 국가지도자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엄격하게 말해서, 설사 '조설근'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소설 <<홍루몽>>을 썼다는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설사 "조설근"이라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가 바로 강녕직조 조씨의 후손이라는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설사 조설근이 홍루몽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홍루몽이 이 홍루몽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지 않는다.

 

현재까지, 모든 증거는 믿을만한 것이 없다. 직접 증거가 아니다. 모든 증거는 조설근이 강녕직조 조씨의 후예라는 것을 증명해주지 못하고, 조설근(그런 사람이 있든 없든)이 홍루몽의 작자라는 것을 증명해주지 못한다.

 

필자가 보기에, 조설근이 도대체 누구인가를 절명하거나 혹은 누가 홍루몽의 작자인지를 증명하려면, 반드시 합법적인 증거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현재까지 홍루몽 전80회이든 후40회이든, 모두 진정한 작자가 누구인지를 고증해낼 수가 없다. 홍루몽의 진정한 작자가 누구인지를 고증할 수 없는 바에야 아예 '무명씨"라고 적는 것이 타당하다. 이것이 엄격한 학문적인 태도이다.

 

조설근을 치켜세우는 사람들, '홍학'을 '조학'으로 바꾼 사람들은 역사의 죄인이고, 학술의 삐에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