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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궈메이 황광위 사건

궈메이(國美)의 경영권다툼

by 중은우시 2010. 7. 5.

글: 굴려려(屈麗麗)

 

"우리가 결국 영웅이 될지, 열사가 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황광위(黃光裕)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궈메이의 권력구조를 고심하여 마련했던 황광위도 분명히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의 노력이 현재 감옥에 갇혀 있는 그로 하여금 그룹회사지배권을 장악하는데 한 가닥 광명을 비춰주게 될 줄은.

 

베인 캐피탈이 3명의 비상임이사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천샤오(陳曉)등 경영진의 '탈황광위'전략이 갈수록 분명해지는 마당에, 황광위가 궈메이의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갈수록 문제되고 있다.

 

상업전쟁의 재미는 그것이 오리무중이라는데 있다. 2010년 6월 28일, 궈메이전기는 공고를 통하여 이렇게 말했다: "본 그룹은 이미 위기를 벗어났다. 동사회는 본회사 주석 겸 총재 천샤오 선생이 총재직을 사임하는데, 동의하고 접수했다. 다만, 여전히 본회사 주석 겸 집행동사의 직위는 유지한다. 이와 동시에 본회사 집행동사겸 집행부총재인 왕쥔저우(王俊洲) 선생이 본회사 총재가 된다."

 

이전에 왕쥔저우는 황광위의 궈메이 대리인으로 취급되어졌으므로, 황광위사건이 발발한 후, 천샤오가 내놓은 경영진주식보유전략으로 황광위시대에 '주식에 대하여는 언급하기 꺼렸던' 왕쥔저우가 졸지에 2000만주를 가진 새로운 직업경영진이 되었다. 그 사이의 미묘한 변화는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황광위사건이 상소심의 핵심단계에 있는 상황하에서 천샤오는 침묵을 깨고 이렇게 말했다: "탈황광위화는 궈메이전기가 위기를 벗어나려면 반드시 선택해야하는 길이다." 그리고, "황총재의 개인이익과 회사이익중에서 반드시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이 말이 떨어지자, 궈메이의 미래전략은 거의 방향을 잡은 것처럼 보인다. 지분이 희석되는 것은 거의 황광위의 머리위에 걸린 피할 수 없는 다모클레스의 검과 같다. 그러나 이 말의 배후에 숨은 뜻은 제3자들로서 서로 달리 이해될 수밖에 없다. 특히 '탈황광위'의 배경, 노선과 진실한 목표는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인사들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창업주주 겸 대주주로서 이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만일 개인기업이 공중기업이 된다면 회사구조와 자본은 어떻게 건립해야할 것인가? 지분은 회사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요소인가?

 

사람들은 '탈황광위'의 배경에 대하여 여러가지 의문을 표시한다.

 

먼저 6월 28일의 궈메이공고는 "집단이 이미 위기를 벗어났다"고 단언했다. 이미 위기를 넘겼다면, '탈황광위'가 왜 다시 일정표에 오른단 말인가? 당초에 황광위사건으로 위기국면이 조성되었고, 그것을 벗어났다면, 어떻게 회사이익과 대주주이익간의 충돌이 나타날 수 있을까?

 

이들 문제에 대하여, 예전 궈메이전기의 최고두뇌이자, 궈메이전기의사결정위원회 발전전략연구실, 경영관리연구실 및 총재비서실등을 운영한 바 있는 후강(胡剛)은 객관적으로 분석했다: "비록 사건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일찌감치 벗어났지만, 회사의 운영측면에서, 예를 들어 정부관계, 공급상관계, 투자자관계, 브랜드와 명성, 인력자원등이 모두 낙후되고 장기간 끌게 되는 영향을 입었다. 특히 궈메이의 미래와 관련되는 인재모집에 있어서, 회피할 수 없는 곤경에 처했다. 어쨌든 급여대우가 별로 차이가 없다면, 범죄의 혼탁한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재미있는 추측은 황광위 본인과 천샤오가 의견일치를 보았다는 것이다. "탈황광위화'의 언론을 통하여 궈메이의 대외적 이미지를 새로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광위를 여러해동안 따른 사람은 분명히 말한다: "황광위의 개성으로 보아서, 지배권과 경제이익의 선택측면에서, 지배권을 확실히 장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전형적인 방증은 2009년 궈메이가 베인캐피탈을 도입하여 캐시플로우위기를 벗어날 때, 황광위는 구금된 상태임에도,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지분이 희석되는 리스크를 방지하고, 34%의 대주주로서의 황금최저선을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그룹의 지배권측면에서, 황광위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민감하게 생각했다." 후강의 말이다.

 

당시 궈메이가 BVI에 등록한 지주회사를 통하여, 홍콩에 우회상장할 때, 비록 궈메이의 고위층이라고 하더라도 개입한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황광위가 보기에, 오너는 오너이고, 직업경영진은 직업경영진이다. 그 중간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 궈메이가 상장한 이후에도, 경영진은 식후의 얘기자리에서나 정식 혹은 비정식 경로를 통하여 황광위에게 여러차례 경영진의 지분참여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황광위는 700만위안의 함구비(경력과 공헌에 따라 나누어 줌)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후 경영진은 지분에 대하여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2005년을 전후하여, 후강은 당시 회사재무주총경리인 저우야페이(周亞飛)와 함께 황광위부부의 지시에 따라 '취현계획(聚賢計劃)'이라는 전략을 세웠다. 이 계획에 따르면, 황광위는 매년 일정 수량의 주식을 내놓고, 한 가격지수를 두어, 2급시장에서 매각하고 얻은 이유을 공헌에 따라 회사고위층에 분배하여, 고위층에 대한 장려효과를 누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비록 여러가지 원인으로, 이 계획은 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황광위의 지배권측면에서의 생각은 그대로 드러난다. "황광위가 보기에, 지분의 가치는 경제수익과 투표권이다. 황광위시대에 황광위가 대주주이고, 절대적인 지배권을 장악해야 한다. 경영진은 지분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경제수익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투표권측면에서는 여지와 영향력을 줄 수가 없다. 그래서 여러해동안 황광위의 스타일은 일을 잘하면 급여는 더 줄 수 있고, 상응한 경제수익은 얻게 해주지만, 투표권과 지배력을 대표하는 지분은 어림없다는 것이었다." 후강의 말이다.

 

지배권다툼에서, 황광위는 자본의 다음 수를 남겨두었는지? 그리고 왕쥔저우를 대표로 하는 황광위가 고심하여 만들어놓은 경영진이 지배권다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주의할 점이라면, 2004년 궈메이전기가 BVI의 offshore회사 Ocean Town을 통하여 국내자산을 지배하고, 홍콩에 우회상장을 실현하는 동시에, 궈메이전기를 영미법하의 상장회사가 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회사권력운용의 가장 민감한 기관설계와 의사절차는 회사정관에서 규정하게 되고, 법률의 구속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것이다. 회사이사회와 이사의 직권은 주로 회사정관에 자세히 규정한다. 법률은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조작의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었다." 홍콩회사법에 익숙한 변호사 John의 말이다.

 

"홍콩회사법은 이사회중심주의를 강하게 드러낸다. 효율원칙을 강조한다. 회사정관에서 어떤 이사가 반드시 지정한 지분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는 외에,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지분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이사는 회사의 피고용인이다."

 

이사와 이사회를 감독해야한다는 것에는 각국 회사법의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다. 중국대륙 <<회사법>>의 감사회 설계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홍콩회사는 전문적인 감독기구가 없다. 주주총회가 직업회계사를 통하여 이사 혹은 회사재무에 대하여 감독한다. 비록 경영비용은 절감하고, 경영효율은 증가시킬 수 있지만, '적시에 감독할 수는 없고, 이사가 권한을 남용하는 것을 확실히 방지하기 힘들다.'

 

"이것은 현재 주주권리만 가진 황광위의 약점이다." John의 평가이다. "만일 황광위부부가 동사회의 설정에 사전에 깊이 고려하지 않았다면, 현재 단순히 주주총회의 동사회에 대한 견제를 통해서 이기려고 한다면,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문제에 대하여, 황광위부부는 궈메이전기가 상장한 초기에, 깊이 고려해보았던가? 황광위는 해외유학배경이 있는 장차오양(張朝陽)이 '창업주주의 특별권리조항'(이조항에 근거하여 창업주주의 지분은 아무리 희석되더라도, 즉 설사 1%까지 희석되더라도, 그는 여전히 동사회에서 다수자리를 지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외국어에 유창하고, 홍콩의 자본가들의 사교권을 드나들던 두줸(杜娟, 황광위의 처)는 이것을 알았을까?

 

"당시 회사집행동사를 맡고 있던 두줸은 회사경영진과의 관계를 잘 처리했다. 기본적으로 회사의 경영업무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주로 대외적인 재무와 자본운영만 했다"

 

"단지, 회사상장초기에 이 방면의 전략은 확실히 소홀했던 것같다. 나중에 회사가 화평기금과 골드만삭스자본을 끌어들이면서, 후자의 종용에 따라, 비로소 일부 기존주주의 이익을 보장하는 조항을 두게 된다." 당시 궈메이 상장과 투자를 책임진 핵심인물인 가오웨이(가명)의 말이다.

 

상업기밀보호의 차원에서, 가오웨이는 구체적인 조항내용까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상술한 보호조항은 장차오양처럼 미래 지배권다툼을 확실히 막아줄 수 있는 방어벽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어서 황광위 부부에게 남겨진 것은 왕쥔저우를 대표로 하는 당시 권력구조에서의 숨은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왕쥔저우는 궈메이전기의 총재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왕쥔저우의 '탈황광위'혹은 '친황광위'의 선택은 마치 골드바흐의 추측과 같다.

 

왕쥔저우를 잘 아는 사람에 따르면, 그는 삼국시대의 위연(魏延)과 유사하다고 한다. 전쟁터에서의 싸움에 능하고, 정치적인 책략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람들은 위연이 정말로 촉에 역심을 가진 것인지에 대하여 설이 분분하다. 심지어 어떤 역사가는 당시 제갈량이 위연의 '명수잔도, 암도진창'의 계책을 들었더라면, 삼국이 진으로 통일되는 국면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까지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왕쥔저우의 내심의 선택은 미묘하여 파악하기 힘들다. 2001년 궈메이에 들어온 왕쥔저우는 궈메이의 급속한 성장에 많은 공로를 세웠다. 그리고 탁월한 전공으로 황광위로부터 거의 수직상승으로 발탁되었다. 먼저 업무센터총경리, 화남구총경리, 전략합작센터총경리가 된 후, 2006년 11월에는 그룹집행부총재가 되었다. 그는 명실상부한 업무의 일인자였다.

 

"이 과정에서 건립된 감정과 은정은 사물의 반대면으로 가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바로 왕쥔저우가 직업경영진의 '이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현재 이미 지분을 가지고 주주가 되었으므로, 회사이익과 대주주이익이 충돌될 때, 당연히 회사이익을 우선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뭐든지 가능할 수 있는 국면이 형성되었다. 결과로 예측가능한 것은 아래의 3가지이다.

 

첫째, 왕쥔저우가 자신의 직업경영진의 이상에 충실하여, 회사를 크고 강하게 만들고, 정리상 옛주인 황광위를 돌보아줄 것이고, 법률상 천샤오에 잘 협조할 것이다. 둘째, 왕쥔저우가 진정으로 충성하는 것은 그의 옛주인 황광위이고, 표면적으로는 천샤오에 협조하지만, 배후에서는 암중으로 조치를 취하여 황광위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셋째, 천샤오의 '통일전선'의 책략하에, 천샤오에 귀의하고, 자신의 포부를 잘 펼칠 것이다. 직접적으로 옛주인을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고, 옛주인에게 밉보일 이유도 없다.

 

진실한 증거는 왕쥔저우의 배후에 황광위가 그의 권력구조를 잘 배치해 놓았다는 것이다.

 

후강에 따르면, 황광위는 청나라때의 군기처의 의사와 결책을 따라 궈메이집단의 '결책위원회'를 설계했다. 결책위원회 구성원중에는 마찬가지로 '7대신'이 있다. 그중에는 왕쥔저우, 웨이츄리(魏秋立), 저우야페이등이 있다.

 

"궈메이의 각종 중요의사결정은 기본적으로 결책위원회에서 나온다. 황광위의 80%의 권력은 모두 결책위원회에 넘겼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7대신'은 궈메이전기의 핵심경영진이다. 황광위사건이 발발한 후 지금까지, 7대신은 하나도 궈메이를 떠나지 않았다. 이는 궈메이 권력구조의 안정성을 보여준다. '7대신'이 서로 협력하는 한,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뚫고 들어오기는 어렵다. 게다가 궈메이 내부에, 십여만의 직원 중에서 수천명이 황광위로부터 직접 발탁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뚫기 힘든 기반이 될 것이다."

 

이뿐아니라, 왕쥔저우 본인을 보더라도, 일선에서 전투를 벌이는데 능했던 그는 궈메이의 상하에 그가 발탁한 사람들이 많다. "사실상, 천샤오가 2006년에 혼자서 궈메이에 들어온 후, 궈메이는 이미 급속발전단계를 끝냈다. 모든 핵심 직위는 이미 기본적으로 배치가 끝난 상태이다. 천샤오 이전에, 왕쥔저우는 사실상 궈메이 업무에서의 제1책임자였다. 천샤오가 총재의 대권을 장악했지만, 경영측면에서의 실질적인 통제력은 여전히 왕쥔저우가 장악하고 있었다."

 

장웨이가 보기에, 이번에 총재를 교체한 것은 천샤오가 총재라는 허명을 벗어버린 것뿐이다. 왕쥔저우는 원래부터 경영실적의 중책을 맡고 있었고, 이번에 명칭을 바꾸었다는 것만으로 도마위에 오르는 고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탈황광위와 친황광위의 여러가지 추측가운데, 기존의 권력구조가 지분을 제외한 지배력쟁탈의 가장 영향력있는 요소가 되었다. 여기에 기하여, "천샤오에게 지배권의 야심이 있다면, 그는 최소한 5년 내지 10년의 시간을 들여서 이 기존의 구조를 잠식해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창업자가 남겨놓은 영향력을 철저히 제거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후강은 이렇게 생각한다: "일단, 궈메이가 탈황광위에 성공한다면, 기업창업가들은 더욱 경계심을 갖게 될 것이다. 심지어 권력독단의 극단으로 갈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중국의 회사지배구조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궈메이의 현재 조치가 가지는 심층적인 의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