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민국 초기)

이언청(李彦靑): 뇌물총통 조곤(曹錕)의 단수(斷袖)

중은우시 2010. 6. 22. 18:09

글: 김만루(金滿樓)

 

민국시대의 많은 연의소설에서, '뇌물총통' 조곤은 재물을 탐하고 호색했다고 기록한다. 더더욱 사람들이 싫어한 점은 그가 '단수(斷袖, 동성애)의 기질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 상대는 바로 당시 총통부의 총아 이언청(李彦靑)이었다.

 

이언청은 원래 목욕탕의 직원이었다. 조곤이 청나라말기에 동북에 주둔하고 있을 때, 관외는 날씨가 추우므로, 자주 목욕탕을 가곤 했으며, 거기서 이언청과 알게 된다. 이언청은 당시 나이가 어렸지만,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았다. 당시 조곤은제삼진통제(第三鎭統制)였으므로, 그에게 잘보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언청은 당시 목욕탕에서 등을 밀고, 발안마를 해주는 일을 했다. 조곤이 오면 그는 바로 조곤에게 바짝 달라붙어서, 등도 밀어주고, 발도 안마해주었다. 조곤은 그가 등을 밀고 발안마를 해주면 아주 편안해 했다.

 

조곤은 이언청이 아주 잘생기고, 기민한 것을 보고 그를 아예 자신의 곁에 두고 일을 시켰다. 조곤이 직노예순열사(直魯豫巡閱使)가 된 후에 이언청은 순열서의 군수처 처장이 된다. 조곤이 총통이 된 후에는 이언청의 지위는 수직상승하여, 한때 권력이 대단했고, 총통부내의 귀인이 된다.

 

이언청이 성공한 후, 경성의 사대부들도 속속 그에게 아부를 했다. 예를 들어, 교통총장, 외교총장, 재정총장등이 모두 그와 의형제를 맺고, 그를 "육야(六爺)"라고 부르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언청은 기고만장하여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언청이 비록 처장의 지위에 올랐지만, 조삼야(曹三爺, 조곤)는 목욕할 때면 여전히 그를 불렀다. "이언청이 등을 밀어주지 않으면 시원하지가 않다." 당시에 떠돌아다니던 우스개에 따르면, 이언청이 고관들과 마작을 하고 있었는데, 총통부에서 전화가 온다: "총통께서 이미 목욕수건을 집으셨으니, 육야(이언청)께서 빨리 오시기 바랍니다." 이언청은 그 말을 듣고, 즉시 손에 들었던 마작패를 놓고 떠났다고 한다.

 

사실 이언청도 약간의 집안배경은 있는 사람이다. 그의 부친은 원래 장지담(張志潭, 내무총장을 지낸 인물)의 집에서 주방장을 지냈다. 나중에 뇌물을 받은 등의 문제로 장지담에게 쫓겨난다. 다행히 이언청이 이미 조곤의 심복이 되었기 때문에 이언청의 부친은 아들 때문에 그도 기가 살게 된다. 그가 다시 장지담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 장대부인은 그를 괄목상대하여 그를 서재로 모시고, 먹을 거리를 내주었다. 그때 장지담이 바깥에서 돌아오고,옛날의 주방장이 지금은 손님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는 크게 화를 낸다. 이언청의 부친은 무참하게 쫓겨난다.

 

이언청이 그 말을 듣고 대노한다. 원백(遠伯, 장지담의 자) 이 어린 놈이 어르신의 어르신의 체면을 봐주지 않다니. 어르신이 반드시 손을 봐주겠다. 이 일을 재정총장 왕극민이 듣는다. 왕극민은 장지담과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를 조정하려고 시도한다. 그 때가 마침 이언청 부친의 생일이어서, 이언청의 집에서 손님들을 초대했다. 왕극민 총장은 장지담을 강제로 끌고간다. 그러나, 장지담은 도착한 후에 생일축하인사를 하지도 않고, 그냥 경극을 보러 가버리고 만다. 이언청은 더욱 화가 났다. 장지담이 고의로 그를 멸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왕극민에게 화를 푼다. 왕극민은 일이 잘못 틀어지자, 이언청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자신의 애첩 소아봉(小阿鳳)으로 하여금 술도 권하게 하고 하여, 겨우 '육야'의 화를 풀게 한다. 이리하여 왕극민의 재정총장직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조곤은 이언청을 아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멍청하지는 않았다. 이언청이 바깥에서 잘나가고 있었지만, 집안에서는 조곤이 그를 여전히 일꾼정도로 취급했다. 당시에 정극(程克)이라는 정객이 있었는데, 한번은 내무총장의 자리를 노리고, 이언청을 만나 결의형제를 맺고 그에게 갖은 아부를 다하며, 내각에서 총장자리 하나를 얻으려 한다. 나중에 이언청이 기회를 보아 조곤에게 "정모가 재주가 있으니 크게 쓸만합니다. 그가 삼야를 모시고 싶어하는데, 내무총장을 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한다. 조곤은 옆으로 누워서 담배를 피우다가 그 말을 듣고는 담뱃대를 땅바닥에 집어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혼을 내준다: "네가 뭐라고, 총장을 네가 감히 추천할 수 있는 거냐?" 이언청은 조삼야가 화를 내는 것을 보고는 그저 용서만 빌 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이언청은 사람됨이 아주 기민했다. 조곤이 좋아하는 것을 잘 알아서, 조곤이 하루라도 그가 없이는 지낼 수 없도록 했다. 이언청은 이를 바탕으로 위세를 부렸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곤은 모르는 것이 많았다. 조곤은 사람됨이 활달하고 통이 컸다. 재물은 초개와같이 여겼다. 그의 개인재산은 모두 그의 넷째동생인 당시 직예성장 조예(曹銳)가 모은 것이다. 조곤은 처음에 아들이 없었다. 그리하여 조예의 아들을 친자식처럼 길렀다. 나중에 조곤의 첩이 아들을 낳았다. 당시 조곤은 돈이 필요하면 조예에게 달라고 했고, 얼마를 줄지는 조예가 정했다.

 

이언청은 이 기회를 틈타서 조곤에게 말한다: "삼야는 총통의 귀한 자리에 있지만, 재정권한은 사야(四爺)의 손에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하물며 소공자(아들)이 나중에 글도 읽고 사업도 발전시켜야 하는데, 모두 돈이 필요합니다. 삼야께서야 형제간의 정이 있으시겠지만, 나중에 소공자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조곤은 그의 말을 듣고는 이치에 맞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점차 재산관리권한을 조예에게서 이언청으로 옮긴다.

 

조곤이 뇌물에 성공하여 총통이 된 후, 조예는 천진에서 북경으로 축하하러 온다. 이언청은 조예의 식사를 준비해두지 않는다. 그리하여 조예는 굶게 된다. 할 수 없이 시종을 시켜 바깥에서 만두를 사오게 하여 허기를 면한다. 조예를 화를 벌컥내며 천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직계 장군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이 삼야를 총통으로 모셔올렸지만, 나중에 분명히 어지럽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후 1년간 조예는 북경을 찾지 않고, 조곤도 조예를 부르지 않는다.

 

조곤이 총통을 할 때, 손홍이(孫洪伊)가 내각총리를 지냈다. 한번은 내각회의를 하는데, 총통부에서 돌연 전화가 왔다: "이육야가 와서 참석할 것이다. 삼야(조곤)께서 그를 통하여 내각에 말을 전달하겠다고 하셨다." 내각구성원들은 깜짝 놀란다. 이언청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내각회의에 참가한단 말인가? 이것은 국사를 애들 장난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마침 손홍이가 정계의 노련한 여우였다. 그는 이언청이 오자 내각회의를 비정식 간담회로 바꾸어버린다. 그렇게 하여 법도를 망치지 않았다. 또 한번은 손홍이가 총통부에 조곤을 만나러 갔는데, 이언청이 그를 데리고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공께서 삼야를 접견할 때, 정치는 얘기하지 말기 바랍니다. 최근 들어 삼야의 심사가 좋지 않으니, 그가 화낼 일은 말씀하시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손홍이는 놀라서 말했다: "내가 정치를 얘기하지 않으면, 뭘 얘기하란 말인가?"

 

제2차봉직대전때, 풍옥상의 부대가 돌연 반기를 들고 북경으로 왔다. 당시는 아직 하늘이 밝아오지 않았을 때인데, 어떤 사람이 이언청의 집에 전화를 걸어서 보고했다. 그의 집 시종은 짐자다가 옷을 걸치고 일어나서, 전화통을 집었다. 그리고는 화를 벌컥 냈다: "지금이 몇시냐. 곤히 잠자는데 방해하는 거냐?" "십만대군의 화급한 일이 있어서 육야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시종은 "육야께서 잠드신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죽을 일이라고 하더라도 날이 밝은 후에 다시 얘기해라" 그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런데, 몇 분후에 풍옥상의 국민군이 도착했고, 이언청을 끌고 갔다. 약간 심문을 한 후에 교외로 데려가서 총살형에 처했다. 이언청이 피살된 후, 그의 집에서 수십만을 몰수했다는 소문이 있다. 어떤 소문에 따르면 수백만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모른다.

 

정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언청은 조곤을 여러해동안 따른 심복이고, 당시 총통부 수지처 처장 겸 북경관전국 독판을 지내면서 조곤의 재산을 관리했다. 1924년 가을, 풍옥상이 북경정변을 일으킨 후 체포되어, 경사경비총사령관 녹종린의 명령하에 천교에서 총살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몰수한 돈이 45만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