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계흥(劉繼興)
구준
고대황제중 재미있고 총명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중에는 발명가도 있다. 조광윤은 '장시모'를 발명했다.
오사모(烏紗帽)는 원래 민간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일반적인 모자였다. 관료들이 머리에 오사모를 쓰기 시작한 것은 동진(東晋)때부터이다. 그러나, 오사모가 '관복'의 정식구성부분이 된 것은 수(隋)나라때부터이고, 당나라때 흥성했다. 오대(五代)때의 마호(馬縞)가 쓴 <<중화고금주. 오사모>>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 무덕9년 십일월 당태종이 조서를 내려서 말하기를, "오늘 이후, 천자는 오사모를 쓴다. 백관들과 선비 백성들도 모두 같이 하라." <<당서. 여복제>>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오사모는 조회때나 연회때 주인과 손님이 입는 것이다." 즉, 오사모는 관리들이 조회에 참석하거나 연회에 주인이나 손님으로 참석할 때 쓰는 것이다. 평상시에 집에서는 쓰지 않는다.
송(宋)나라때가 되어서 이 관모에는 자신의 특수한 표지가 달리게 된다. 모자의 뒤에 두 개의 편평하고 긴 날개를 붙이는 것이다. 움직일 때는 흔들려서 아주 우스운 모양이다. 이렇게 이상한 모양의 모자의 학명은 전각박두(展角幞頭), "평각박두(平角幞頭)이고, 속칭 '장시모(長翅帽)'이다. 발명자는 바로 송나라의 개국황제 조광윤이다.
조광윤이 왜 이렇게 기괴한 모자를 발명했을까? 원래, 조광윤이 등극한 후, 옛날에 같이 천하를 돌아다니든 동료들에 대하여 마음을 놓지 못했다. 특히 문무신들이 조정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귀를 붙이고 조정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들이 서로 말을 많이 하다보면 함께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아침조회에 나갔다. 정무에 열심이었던 조광윤은 장중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대신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모범을 보여, 조정에 장엄하고, 엄숙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순식간에 그가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 몇몇 대신들이 마음대로 아래에서 머리를 맡대고 얘기를 하며, 조정에서의 최소한의 법도조차 지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조광윤은 마음 속으로 영 불쾌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법도를 지키지 않은 관리들을 질책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계속 보고를 들었다.
실효와 함축을 중시하는 것은 조광윤의 일관된 모습이었다. 퇴조후에, 그는 금방 방법을 생각해낸다. 너희들이 머리를 맞대고 얘기하는 것을 즐기지 않느냐. 내가 그것을 못하게 만들겠다. 그리하여 그는 관리들의 오사모 뒤에 길다란 날개를 달도록 명했다. 장시(長翅)는 쇳조각, 대나무로 만들었다. 모자의 양쪽에 쇠로된 날개가 각각 1척가량(나중에 갈수록 길어졌다) 나오게 달았다. 이 모자는 조회때나 정식활동때 써야 했지만, 평소에는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시모를 쓰면 길거리에서 걷기도 힘들고, 관리들은 그저 얼굴을 마주하고 말할 수 있었다. 옆으로 앉아서 얘기하기는 아주 불편했다. 이때부터 대신들은 조회에 나가면, 옆으로 줄을 서서 같이 얘기를 나누기가 어려워졌다. 여기에 황상이 이렇게 한 것이 대신들이 사사로이 얘기를 나누는 것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으므로, 아무도 함부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조정의 기풍이 일신된다.
송나라관리들이 장시모를 쓰는 것과 관련하여 고대 문인들의 필기에는 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루는 재상인 구준(寇準)이 미복으로 민정을 시찰하러 나갔다. 그는 청의를 입고, 작은 모자를 썼으며, 서생차림을 했다. 수도인 동경(하남성 개봉시)를 다녔다. 그런데 한 노인과 얘기를 나누는데, 노인이 구준에게 아주 공손했고, 무릎을 꿇고 맞이했다. 너무나 공경하는 태도였다. 구준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말했다: "저는 일개 서생인데, 그냥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그러나 노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상공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시는 것입니까? 당신은 조정의 고관이 아닙니까?" 구준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노인과 전혀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해서 나를 조정의 고관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노인은 말했다: "상공은 금방 좁은 골목을 지나오면서, 몸을 돌려서 좌우를 살펴보지 않았습니까. 마치 무슨 물건이 모자에 닿을까봐 걱정하는 것처럼. 만일 평소에 장시모를 쓰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런 습관적인 동작이 나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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