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알지(閼氏): 흉노족 황후의 어원

중은우시 2010. 5. 21. 12:29

: 허휘(許暉)

 

"연지()" "연지(燕脂)"라고도 쓴다. 오대(五代) 마호(馬縞) <<중화고금주(中華古今注)>>라는 책에는 기원과 명명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연지는 개략 ()임금때부터 시작하는데, 홍람(紅藍) 꽃즙(花汁) 응고시켜 연지를 만든다. ()나라에서 나므로, '연지'라고 불렀으며, 도화장(桃花粧) 사용한다" 원래 은나라의 주왕때 이미 '연지'라는 화장품이 존재했던 것이다. 아마도 최초의 사용자는 주왕의 애인인 달기가 아니었을까? 원래 연지는 연나라에서 나기 때문에, '연지'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때의 '연지' 단지 도화장에 쓰였다. 왜냐하면 '홍람' 꽃즙으로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연지와 비교하자면,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고 있다.

 

"홍람" 붉은 색과 파란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풀의 이름이다. 풀은 국화과에 속하는 1년생 초본식물이다. 높이는 3,4척정도이고, 여름에 홍황색의 꽃을 피운다. 잎은 파랐다. 그리하여 '홍람'이라고 불렀다. '연지(燕支)'라고도 부른다.

 

동진(東晋) 사학자인 습착치(習鑿齒) 박학다식했는데, <<여연왕서(與燕王書)>>에서 그는 연왕과 식물에 대하여 논한다:
산아래에는 홍람이 있는데, 그대는 아는가 모르는가? 북방사람들은 꽃을 따서 비단을 염색한다. 그리고 꽃봉우리중 선명한 것을 골라서 연지(烟支) 만든다. 부인들이 이것으로 얼굴에 바른다.....흉노는 처를 알지(閼氏)라고 하는데, 지금의 발음으로 하면 연지(烟支)이다."

 

습착치의 서신은 아주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흉노의 수령은 선우(單于)라고 하고, 황후는 알지(閼氏)라고 한다. '알지'라고 하는가? 습착치는 서신에서 아주 분명하게 해석했다. "알지" 발음은 Yan zhi이고, "연지(燕支)", "연지(燕脂)", "연지(烟支)" "언지(焉支)" 같은 발음이라는 것이다. 습착치가 말하는 '산아래' 바로 언지산(焉支山) 가리킨다. 지금의 감숙성 산단현 동남쪽에 있다. 산에서는 '홍람' 많이 났다. 그리하여 이곳의 풍속은 부녀들이 홍람의 꽃즙을 내어 화장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흉노족이 황후를 '알지'라고 부른 것은 바로 아름다운 안료에 비유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알지'라는 명칭이 붙은 유래이다. 이를 보면, 유목민족은 한족보다 낭만적이었다. 한족들은 그저 황후라고 부를 줄밖에 모르는데, 유목민족들은 아름다운 꽃으로 황후를 불렀다. 한무제 원수이년(기원전121), 흉노는 한나라의 명장 곽거병에게 패배하여, 기련산(祁連山) 언기산을 잃는다. 이때 불렀다는 비가(悲歌) 유명하다.

 

"망아기련산(亡我祁連山)

사아육축불번식(使我六蓄不蕃息)

실아언지산(失我焉支山)

사아부녀무안색(使我婦女無顔色)"

 

우리의 기련산을 잃어버리니

우리의 가축들이 번식할 곳이 없어지고,

우리의 언지산을 잃어버리니,

우리의 여자들이 화장할 수가 없어졌네.

 

노래에 나오는 기련산은 바로 목장이 있던 곳이다. 기련산을 잃게 되니, 가축을 이상 방목할 곳이 없어지게 것이다. 언지산은 홍람이 많이 나는 곳이다. 언지산을 잃게 되니, 부녀들이 화장을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위의 가사협(賈思) <<제민요술(濟民要術)>>에는 연지를 채취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먼저 알칼리성용액에 꽃잎을 담그고, 힘을 주어 빻고, 천에 넣고 짜서 꽃즙을 낸다. 다시 초석류에서 채취한 산성용액으로 중화시고 반복하여 젓는다. 거기에 황색소가 모조리 사라지면 색깔이 순수해지고, 아주 선명한 붉은 색소가 남는다. 이것을 작은 덩어리로 만들면 면지가 된다. 이것을 도화장의 화장을 있다.

 

현재의 연지는 이미 전문업종이 되었다. 그리고 이상 홍람화에서 채취하지 않는다. 연지충(脂蟲)에서 채취한다. 연지충은 멕시코와 중앙아프리카에서 나는 일종의 곤충이다. 성충이 되면 체내에 많은 양홍산을 포함하여 이상적인 천연원료가 된다. 이는 식품, 화장품 약품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