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재봉(文裁縫)
자금성은 황제가 권력을 행사하는 곳이다. 절대로 황제를 가두는 새장은 아니다. 천하에서 가장 권세가 있는 사람이므로 황제는 어떤 일이든 할 수가 있다. 황제의 권력을 나타내는 것에는궁성의 출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데서도 찾을 수 있다. 황제가 잠시 궁정을 떠나는 이유는 바로 민간으로 가서 백성들이 황제의 권위를 얼마나 인정하는지 보려는 경우도 있다. 황제가 민간으로 가서 자신의 위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누가 황제를 대신하여 자금성의 위엄을 지키는가?
황제는 천자(天子)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세상에 살고, 권력의 정점에 서 있다. '일람중산소(一覽衆山小, 한번 둘러보니 모든 산이 작다)'는 통쾌함을 느끼는 동시에 '고처불승한(高處不勝寒, 높은 곳은 춥기 마련이다)'이라는 적막함도 느낀다. 그래서 어떤 때는 황제도 장시 장엄하고 엄숙한 자금성을 벗어나서, 민간의 가볍고 자유로운 공기를 만끽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황제가 수도를 떠나서 순유를 나가면, 군국대사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오랫동안의 실천을 통하여, 황제가 정상적으로 직무를 행사할 수 없을 때에는, 상응한 응급체제를 마련했다. 바로 감국제도이다. 황제가 순유를 나갈 때, 자신의 황위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까 우려할 필요가 없다.
감국제도의 연원은 서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주나라가 은나라를 대체한 후, 주무왕이 왕실의 측근을 파견하여 각지에 주둔하게 하였다. 그리고 천자를 대리하여 직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그후, 감군제도는 계속 완비되고 개선된다. 그리하여 비교적 성숙한 매커니즘으로 발전한다. 감국은 대체로 3가지 형식이 있다: 첫째는 조정의 대리원수이다. 황제가 궐위되었을 때, 임시로 한 중요한 인물을 선출하여 황제의 직권을 행사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임시 정부수뇌이다. 즉, 황제와 조정이 직책을 이행할 수 없을 때, 다른 중요한 인물이 임시정부를 조직하여, 수뇌가 되고, 직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셋째는 조정의 상무부원수이다. 즉, 태자가 황제를 보좌하여 정무에 참여할 때의 행정칭호이다. 이 감국의 세가지 형식중에서, 앞의 두 가지는 긴급상황에 대응하는 일종의 임시조치이다. 마지막은 정권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하여, 황제가 황궁을 떠나서 출행하는 기간동안, 태자 혹은 태손에게 명하여 직권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명나라때, <<명사>>, <<명실록>>에 따르면, 모두 4명의 감국이 있다. 각각 명성조 주체의 태자로 나중에 명인종이 되는 주고치; 명인종 주고치의 태자로, 나중에 명선종이 되는 주첨기; 명영종 주기진의 동생으로 나중에 명대종이 되는 경태제 주기옥; 명세종 가정제 주후총의 태자로, 장경태자 주재학.
기록에 따르면, 황제가 출행할 때, 황제를 대신하여 경성에서 황제를 대신하는 태자, 태손은 황제의 직권을 행사하고, 일정한 직책을 맡는다. 먼저, 국면의 안정을 보증한다. 고대인들은 '나라에 하루라도 임금이 없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천하에 반드시 황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이건, 누군가가 나서서 국면을 유지해야한다는 말이다. 이 사람이 황제이어도 되고, 다른 사람이어도 된다. 황태자, 황태손이면 가장 적절한 후보이다. 일단 국내에 황제가 없을 때 폭란이 일어나면, 제도에 따라 감국을 맡는 태자, 태손은 바로 보고서를 황제에게 보내는 동시에, 군대를 움직여 범인을 체포하고 죽일 수 있다; 만일 변방에 급한 일이 생기거나, 이민족의 침입으로 국가안전이 위험하면, 감국인 태자, 태손은 한편으로 황제에게 보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군대를 움직여 적을 막을 수 있다. 둘째, 감국은 예제를 엄격히 지켜야 한다. 감국의 권력이 황권을 넘어서는 안된다. 즉, 황태자, 황태손이 비록 감국의 권력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행사권력은 일정한 범위내가 되어야 한다. 절대로 황권을 침해하거나 위협해서는 안된다. 예를 드렁, 각종 명절을 맞이하였거나 황제의 조서를 받을 때는 무릎을 꿇고 대례를 해야 한다; 황태자, 황태손이 조정에서 신하들을 맞이할 때는 어좌의 위치가 황제처럼 한가운데 두어서는 안된다; 군국최고기관에 관련된 대사는 황제에게 보고하여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이를 보면, 황태자, 황태손이 감국을 하는 것은 황제가 권한의 일부를 넘겨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나라때는 황제가 재위중에 태자를 두지 않았다. 그래서 황제가 출행할 때 감국제도가 없었다. 그러나 청나라에는 독특한 제도가 있었다. 일단, 황제가 출행하면 모든 정무나 상소는 행재(行在)로 보내어 황제가 모두 결정한다. 경성에 있을 때와 구별하기 위하여 황제를 따르는 정부각부문은 새로 "행재(行在)"라는 두 글자를 덧붙인 인장을 새기는데, 이를 '행인(行印)'이라 부른다. 그렇게 하여 평소에 쓰는 인장과 구분한다. 이들 부서가 공문서를 발송할 때는 행재인을 찍는다. 이전 왕조의 감국제도에 비하여, 청나라때의 방식은 대권을 절대로 놓지 않는 것이었고, 청나라때 황제의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어 봉건전제제도의 최고봉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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