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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공통)

유럽의 지리적 대발견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것"에 불과하다

by 중은우시 2009. 12. 5.

글: 유앙(劉仰)

 

몇년전 영국인 멘지스가 한가지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정화(鄭和)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고, 가장 앞서서 세계일주항행을 실현했다고 보았다. 각 나라의 매체는 멘지스의 견해에 대하여 평론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는 말을 했다. 확실히 이런 관점은 수백년간 성행한 견해에 어긋난다. 수백년동안, 유럽중심론의 영향하에, 세계각지의 모든 교과서, 역사서, 백과전서, 대소사전은 모두 입을 모아서 이렇게 말했다. 컬럼버스가 미주대륙을 발견했고, 유럽인들이 최초로 세계일주항해를 성공했고, 이를 통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등등. 그러므로, 대대로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여온 사람에 있어서, 정화가 컬럼버스를 대체하는 것은 확실히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을 만들어내고, 오랫동안 역사의 비밀을 숨겨온 사람에 있어서, 그들의 심정은 아마도 "놀라다"는 것만으로는 형용하기 부족할 것이다.

 

유강(劉鋼) 선생은 수집을 좋아한다. 고지도(古地圖)는 그가 수집하는 대상중 하나이다. 몇년전에, 멘지스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을 때, 유강 선생은 자신이 수집한 고지도 하나를 공개했다. 이 <<천하전여총도(天下全輿總圖)>>는 청나라때 그려졌는데, 명나라때의 <<천하제번식공도(天下諸番識貢圖)>>라는 고지도를 베껴서 그린 것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표기된 글에 따르면, 이 명나라때의 고지도는 1418년에 그려졌는데, 바로 정화가 여러번 항해하던 연대이다. 비록 지금 우리는 명나라때 그 구지도의 진품을 구경할 수는 없지만, 청나라때 모방제작한 지도에는 명확하게 표명하고 있다. 1418년에 컬럼버스, 바스코 다가마, 마젤란의 전에 중국인들은 이미 미주대륙, 남극과 지구의 대체적인 전모를 파악하고 있었다.

 

유강 선생이 수집한 이 고지도가 공개된 후, 멘지스의 관점과 마찬가지로, 많은 공격을 받는다. 특히 학술계로부터. 국내외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이 지도의 진실성을 의심한다. 그리하여 공동으로 역사고과서를 뒤집으려는 학술반란을 '진압'하였다. 유강선생은 전혀 기죽지 않고, 8,9년의 노력을 거쳐 전문가들이 제기한 의문에 자신의 답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스스로 장기간 고지도, 지도사를 연구한 일부 성과를 책으로 만들어, 금년 10월에 <<고지도 비밀코드 --1418, 중국이 세계를 발견한 수수께끼의 비밀>>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본인은 운이 좋게도 맨처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유강선생이 책에서 제기한 여러 견해에 찬동한다. 나는 고지도로부터 출발하여, 역사연구의 신분야를 개척하고, 이를 통하여 일련의 가려진 역사진상을 들춰내야한다고 본다.

 

주류 전문가 학자들이 <<천하제번식공도>>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완전히 옳은 것도 아니다. 유강 선생의 답변도 이 고지도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을 모두 풀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고지도를 떠나서, 세계에서 현재 발견된 일련의 고지도(중국의 그리고 유럽의 것들을 포함한)리면, 우리는 한가지 명확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지도가 있었고, 그 다음에 지리적 "발견"이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일련의 고지도가 역사의 먼지 속에서 깨어나면서, 우리는 교과서에서 나열한 "지리적 대발건"의 시간순서표에서 고지도의 표기는 시간상으로 명백히 전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고지도의 '미지의 토지'에 대한 표기는 왕왕 '지리적 대발견'보다 시간이 앞선다. 그렇다면, "지리적 대발견"은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들 고지도상의 정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유럽인들이 '지리적 대발견'을 하기 전에, 이미 누군가가 이 '미지의 토지'를 발견한 것은 아닐까? 필자가 유강 선생의 새책에 근거하여 몇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1415년, De Virga 지도가 베니스에서 만들어진다. 이 지도는 북대서양에 위치한 Azores군도를 표기하고 있다. 12년후, 포르투갈인은 이 군도를 "발견"한다. Mauro지도는 1459년 베니스에서 만들어졌다. 이 지도에는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과 아프리카 동부해안선이 그려져 있다. 이 지도가 완성된 28년후인 1487년에 포르투갈인 Bartolomeu Dias가 희망봉을 "발견"한다.

 

1489년, 이탈리아 플로렌스에 살고 있는 독일인이 세계지도를 하나 만든다. 이름은 Martellus지도이다. 이 지도는 한가지 분명히 드러나는 잘못이 있다. 이 지도는 아시아와 미주를 하나로 그렸다. 미주대륙을 아시아동부와 연결된 거대한 반도로 그린 것이다. 이 지도가 완성된 3년후인 1492년, 컬럼버스가 스페인을 출발하여 서쪽으로 항해하여, 중국을 찾으러 간다. 컬럼버스가 미주대륙에 도착했을 때, 그는 스스로 중국에 도착한 것으로 알았다. 이 두가지 착각은 우연인가? 어떤 사람은 컬럼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유사한 지도를 구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컬럼버스의 "대발견"은 지도에 이미 나타나있는 정도를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Waldseemuller 세계지도는 독일의 한 전도사가 1507년에 만든 것이다. 이것은 미주대륙의 "출생증"으로 불린다. 미국과 독일정부의 여러해동안의 교섭끝에 얼마전에 미국정부가 수천만달러를 들여서 독일인의 손에서 매입했고, 미국의 국보로 취급하고 있다. 이 지도의 제작시간은 컬럼버스가 미주에 도달한 때로부터 그다지 시간이 흐르지 않은 때이다. 그런데, 태평양을 그렸고, 정확한 미주해안선을 그렸고, 마젤란해협을 그렸다.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 지도가 그려진 6년후에, 유립인은 육지로 파나마를 지나서 처음으로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13년후 마젤란은 처음으로 태평양을 항해한다.

 

다시 중국의 사례를 보자. 명나라 말기, 전도사인 마테오 리치는 중국으로 온다. 명나라정부를 위하여 세계지도를 하나 제작하는데,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이다. 역사서에서는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 유립의 최신 지리적 발견지식을 전해주었고, 중국은 이때에 비로소 처음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에는 한 가지 장점이 있다. 연대는 일반적으로 잘못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테오리치가 그린 <<곤여만국전도>>는 1602년에 완성된다. 마테오 리치 본인은 8년후에 사망한다. 즉, 마테오 리치가 죽은 후에 세계에서 발생한 일은 그가 당연히 알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곤여만국전도>>를 보자. 그 위에는 북미주의 허드슨만이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베링해협도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유럽인들의 "지리적 대발견"의 시간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영국인이 허드슨만을 발견한 것은 마테오 리치가 사망한 몇 개월 후이다. 즉 <<곤여만국전도>>가 완성된 8년후이다. 러시아인이 베링해협을 "발견"한 것은 <<곤여만국전도>>가 완성된 46년후이다. 그렇다면, 마테오 리치는 중국에 세계와 지구의 신정보를 가져다준 사신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중국지리지식을 절치한 간첩인가?

 

이러한 사례는 아주 많다. 이러한 사례는 모두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한다: 유럽인의 "지리적 대발견"은 거의 모두 먼저 지도가 있었다. 그후에 다시 지도를 보고 찾아간 것이다. 이들 사례는 유강선생의 추측만이 아니다. 최근 수십년동안 서방학술계에서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슈이다. 그렇다면, 유럽인의 "지리적 대발견"이전에 나타난 그 많은 고지도의 위에 나타난 지리적 정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누가 만든 것인가? 그저 역사책이 이름을 남긴 유럽탐험가, 항해가의 이전에 있었던 이름없는 사람일 것이다. 유럽역사교과서에 기재된 사실에 어긋나는 고지도의 진실은 현재 주류 역사학계에서 모두 여러가지 방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후세인의 위조"라는 것이 가장 상용적이 수법이다. "후세인의 위조"라는 것을 입증할 수 없을 때에는, 예를 들어, 미국정부가 국보로 취급하는 Waldseemuller 세계지도같은 것에 대하여는 고지도 제작자의 '추측', '우연의 일치'라고 본다. 확실히 현재 세계 주류역사학자의 이런 견해는 억지스럽다. 유강선생의 책에서 또 한가지 사례를 들고 있는데, 우리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유럽 역사교과서에는 1771년에 영국인 쿠크 선장이 호주를 "발견"했다고 쓰고 있다. 그리하여 호주는 영국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1789년 한 유럽인이 증거를 찾아내서, 쿠크선장의 이전에 호주를 발견했다고 입증했다. 그런데, 이 '황당한 이론'은 금방 집중포화를 받아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근 200년후 옛날의 증거가 다시 수면위로 솟아올랐다. 1545년에 완성된 Dauphin지도에 이미 호주가 그려져 있다. 쿠크 선장이 호주를 발견하기보다 200년이나 전이다. Dauphin은 중세의 한 프랑스왕자의 칭호이고, Dauphin지도는 프랑스인이 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만일 Dauphin지도를 진실로 인정한다면, 호주는 영국의 영토가 아니라고 해야할 것이다.

 

나는 유강선생의 <<고지도 비밀코드>>를 읽은 후, 유강선생과 한번 만났다. 얘기가 잘 통했다. 우리는 한가지 문제를 함께 토론했다. 유럽식민자에 있어서, 만일 그들의 '지리적 대발견'이전에 고지도상에 '미지의 토지'의 존재가 표기되어 있다면, 유럽식민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와 유강선생의 견해는 약속이나 한듯이 일치했다. 그들은 반드시 그 고지도를 숨겨버릴 것이다. 반드시 고지도를 최고기밀로 유지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컬럼버스가 바다로 나가기 전에 미주를 그린 고지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절대 지도를 먼저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처럼 "보물지도"를 개인재산으로 보아 온갖 머리를 짜내서 지도를 보고 찾아갈 것이다. 지도의 진실한 위치를 찾은 후, 다시 말할 것인다: "그것은 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위에서 나열한 모든 고지도는 마테오 리치가 그린 <<곤여만국전도>>를 제외하고 유럽에서 나타난 고지도는 제작시기가 15.16세기이다. 그러나, 일단 제작을 하고 나면 금방 사라진다. 수백년후에야 현대인들에 의하여 차례로 발견된다. 필자는 모든 고지도가 수백년간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것은 모두 인위적인 곳이고 고의적인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