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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진시황)

진시황은 조고(趙高)의 손에 죽었는가?

by 중은우시 2010. 5. 3.

글: 유조흥(劉照興)

 

진시황의 죽음에 대하여 <<사기>>에 많은 기록이 있다. 각각 <<진시황본기>>, <<이사열전>>, <<몽염열전>>등에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시황이 제5차 출순때 일행이 평원진(平原津)에 도착했을 때, 병이 들었다. 억지로 사구평대(沙丘平臺, 지금의 하북성 광종 서북쪽)까지 갔는데, 그 곳에서 붕어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진시황이 너무 여색을 밝히고, 몸이 약하고 병이 많은 데다가, 출순기간동안 먼 거리를 가느라 피곤했기 때문에 병으로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필자는 관련 전적을 검토해본 결과 진시황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비정상적으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조고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진시황은 역사상 다른 봉건제왕들처럼 몸이 약하고 병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여러 사적을 뒤져보면 그가 무슨 병을 앓았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몸이 건강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진왕정20년(기원전227년)에 형가가 암살하려고 할 때, 그는 당황한 가운데도 소매를 떨치고, 기둥을 돌아서 도망쳤으며, 형가에게 따라잡히지 않았다. 진시황의 제5차출순때 그는 겨우 오십세여서, 늙었다고 할 수가 없다. 평원진에서 병이 들어서도 140리를 더 가서 사구평대에 이르렀다. 사구평대에서 병을 치료할 때, 구두로 공자 부소에게 조서를 내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는 그가 아직도 사고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무슨 치명적인 급환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합적으로, 진시황의 체질과 당시의 상황을 보면, 사구에서 병석에 누워 다시 일어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사구궁은 사면이 황량하고, 궁실은 아주 넓다. 전해지는 바로는 이 곳은 원래 은나라 주왕이 금수를 기르던 곳이다. 전국시대에, 조나라 무령왕이 반란을 일으킨 장자 장을 비호했다는 이유로 공자성과 이태를 이곳에서 포위당하여 나가고자 해도 나가지 못하고, 먹을 것도 없어서 결국 산채로 사구의 궁중에서 굶러죽고 만 적이 있다. 이를 보면 이 땅은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환경하에서 불측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아주 크다고 할 것이다.

 

둘째, 여러가지 현상으로 추측하면, 조고가 진시황을 시해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저명한 사학자 곽말약은 일찌기 역사소설 <<진시황의 죽음>>을 쓴 바 있다. 거기에는 진시황이 평원진에서 황하를 건널 때 간질병이 발작하여 후뇌를 청동빙감(靑銅氷鑒)에 부닥쳐 뇌막염의 병세를 악화시켰고, 혼미상태에 빠졌다고 묘사하고 있다; 마차가 사구에 이른 후 하룻밤을 유숙하였는데, 다음 날 조고, 이사등은 진시황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오른쪽 귀에 검은 피가 흐르고, 오른 쪽 귓구멍안에 1촌길이의 쇠못이 박혀 있는 것을 본다. 이 소설은 일찌기 진시황의 죽음이 비정상적이었음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누가 살해하였는가? 소설에서는 호해라고 보았다. 사실, 조고가 살해했을 가능성이 호해보다 크다. 왜냐하면 조서, 옥새등이 모두 조고의 수중에 있었고, 왕위를 계승하는 결정권도 그와 이사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었다. 호해가 부친을 시해하더라도, 조고, 이사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왕위를 얻을 수가 없고, 오히려 살신지화를 당한다. 그러나 조고는 항상 황제의 곁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조고보다 훨씬 실행하기 편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환관 조고가 진시황을 시해하였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첫째, 조고는 환관이다. 그의 부모는 진나라의 죄인이다. 일설에 따르면, 진나라 통일전쟁중에 조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조고의 부친은 진나라에서 궁형을 받고, 모친은 노비가 된다. 조고의 모친은 진나라궁중에서 조고의 형제 몇 사람을 낳는데, 모두 태어나자마자 노비였다. 나중에 지시황이 조고의 신체가 건장하다는 것을 듣고, '법률'을 약간 알고 있다는 것을 듣고, 그를 중거부령에 발탁한다. 이는 궁중의 가마와 마차 및 인장과 서신을 관장하는 환관의 우두머리이다. 진시황은 조고로 하여금 자신의 아들 호해에게 법률을 가르치도록 명한다. 진시황의 이번 출순때, 중거부령의 일이 빠질 수가 없다. 그리고, 나중에 조고는 "행부새사(行符璽事)", 즉 황제의 명령과 병력의 이동시 증빙인 '부'와 '새'를 관장하게 된다. 조고의 진시황의 병중 그리고 사후의 여러가지 태도를 보면 진시황의 죽음이 조고와 관련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그는 몽염, 몽의 형제와 원한이 있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고가 일찌기 큰 죄를 범한 적이 있는데, 몽의가 법으로 그를 다스려, 사형에 처하고자 했다. 나중에 진시황이 간여하면서 사면을 받는다. 당시, 몽염은 흉노에 위세를 떨치고, 몽의는 상경의 자리에 있었다. 한 명은 무장으로 바깥의 일을 보고, 한명은 문신으로 조정의 업무를 처리했다. 그들은 진시황의 신임을 깊이 받았고, 더더구나 공자 부소의 존경을 받았다. 일단 부소가 즉위하면, 몽씨형제의 지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고는 몽씨형제를 미워하면서 두려워했다. 몽씨형제의 위협을 벗어나려면, 반드시 부소의 즉위를 저지해야 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그는 항상 부소와 몽씨형제를 제거할 기회를 노렸다. 기원전210년, 진시황의 제5차출순은 주로 운몽, 회계등지를 순유했다. 이때 이사, 호해, 조고등이 진시황을 따랐다. 상경 몽의도 수행대열에 끼었다. 몽의는 몽염의 친동생이고, 황제의 심복이다. 그러나, 진시황이 도중에 병에 걸리자, 몽의는 산천에 기도하도록 보내어진다. 이것은 아마도 조고등의 음모일 것이다. 몽염이 30만병력을 이끌고 부소와 함께 상군에 주둔하고 있는데, 진시황의 곁에서 몽의를 떠나보냈다는 것은 부소의 이목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자신의 음모를 실행하는데 걸림돌을 제거한 것이다.

 

셋째, 조고는 내심으로 부소가 황위를 계승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부소는 사람됨이 올바르고, 아부를 하는 조고를 멸시했기 때문이다. 진시황의 어린아들 호해는 멍청한 자이다. 그리고 조고가 진시황의 명을 받아 법률을 가르친 바 있다. 두 사람은 의기가 투합했다. 조고는 호해를 황제로 앉히면, 그의 권력을 잡고 정적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시행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진시황의 명령을 어기고, 조서를 내려보내지 않는다. 호해를 설득하고 이사를 협박하여 세사람이 음모를 꾸며서 진시황의 조서를 위조하고, 호해로 하여금 황위를 승계하게 한다. 동시에 진시황의 명의로 부소가 불효하다고 질책하고, 몽염은 불충하다고 질책하며, 그들을 즉시 자살하도록 명한다. 조서를 받은 후 부소는 눈물을 흘리며 자결한다. 몽염은 멍청하게 죽기를 원하지 않아, 감옥에 갇혀서 처분을 기다린다. 호해, 조고, 이사는 부소가 이미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행에게 밤낮을 달려 신속히 함양으로 돌아가도록 명한다. 백성과 신하들을 속이기 위하여, 지름길로 함양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 순유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구에서 정경을 거쳐 태원에 도착하고, 다시 직도로 함양으로 가서, 3,4천리를 돌아간 것이다. 여름에 고온이라, 진시황의 시신은 이미 부패하여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가리기 위하여 물고기를 사서 모든 마차에 실음으로써 악취를 감추고,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함양에 도착한 후, 그들은 즉시 진시황의 사망소식을 알리고, 장례를 지낸다. 곧이어, 호해가 등극하여 황제가 된다. 그가 진이세이다. 조고는 낭중령에 오르고 이사는 여전히 승상의 지위를 유지한다. 조고는 음모를 이룬 후, 기세등등하여 사람들을 압박했다. 그는 진이세에게 참언을 올려 몽씨형제를 죽이고, 여러 공자를 주살한다. 함정을 파서, 이사를 죽음으로 내몬다. 이사는 조고의 음모를 발각한 후, 글을 올려 조고를 고발하나, 진이세는 조고의 편을 들고, 이사를 투옥시켜 죄를 묻는다. 이사는 결국 함양에서 요참을 당한다.

 

넷째, 진시황이 사구에서 병치료를 했는데, 이는 조고에 모살의 기회를 제공했다. 진시황의 병이 중한 상태에서 조서를 내려 부소에게 '함양으로 와서 장례를 주재하라'고 한다. 이는 부소로 하여금 승계하게 하겠다는 말이다. 조고는 알았다. 이 일은 자신의 생사영욕에 관련이 되므로, 즉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당시 진시황의 곁에는 이사만 있었다. 이사는 사심이 많아, 통제하기 쉬웠다. 다른 시종들은 모두 조고의 편이었다. 또한, 조고의 당시 처지를 보면, 그저 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진시황이 구두로 조서를 내릴 때 조고가 그 일에 참여한다. 조서를 밀봉한 후, 조고는 내려보내지 않았다. 기회를 보아 호해와 이사를 설득하고, 조서를 위조하여 부소를 죽인다. 그러나, 조서를 오랫동안 내려보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만일 진시황의 병세가 호전된다면, 조서를 내려보내지 않은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조고는 바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만일 진시황이 오랫동안 죽지 않고, 이사도 설득하지 못하여, 오히려 진시황에 고발한다면, 조고는 역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사를 설득하기 전에 진시황을 죽여야 했다. 이를 보면, 조고는 조서를 내려보내지 않을 때부터 이미 활시위가 당겨진 화살처럼 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진시황은 평상시에 깊은 궁궐에 있어서, 경비가 삼엄했고,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지금은 여행중에 병이 들어 쓰러지니 이는 하늘이 준 기회이다. 조고가 호해에게 얘기한 것처럼 '의심하고 망성리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 결심을 내리고 감히 행하면 귀신도 피하고, 나중에 성공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중병에 걸린 진시황에게 손을 쓴 것이다. 그의 목숨을 일찍 거둔 것이다. 이 가능성이 아주 크다.

 

다섯째, 조고의 언행이 가장 좋은 회답이다. 그는 호해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이 듣기로 탕무가 그 주공을 죽였는데, 그것을 의롭다고 하지 불충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위군이 그 부친을 죽였는데, 공자가 글을 쓰면서 불효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조고는 군주를 시해한 것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진시황이 조고를 중승상으로 삼은 후 얼마되지 않아, 대택향에서 진승,오광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때부터 농민반란이 줄을 잇는다. 이때 조고는 천하가 이미 어지러워졌다고 보고, 시기가 성숙했다고 보고 황제위를 빼앗으려고 한다. 그는 대신들이 불복할까봐 우려하여, 한가지 시험을 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복종하는지 보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지록위마'의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루는 조고가 사슴을 끌고 함양궁중으로 들어온다. 이를 진이세에게 바치면서 말이라고 한 것이다. 진이세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면서, 승상이 틀렸습니다.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즉시 좌우의 관리들에게 도대체 사슴인지 말인지를 물었다. 그들중 어떤 사람은 조고가 무서워서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묵묵부답했다. 어떤 사람은 조고에 잘보이기 위하여 거짓말을 해서 말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사실대로 사슴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조고는 사슴이라고 직언한 자들은 모두 자신에 반대하는 자들로 보고 그들을 하나하나 제거했다. 그리고 침묵하거나, 앞장서서 말이라고 한 신하들은 조고가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조고는 여론을 살펴보고 그의 사위인 함양령 염락으로 하여금 병사 천여명을 이끌고 도적으로 위장하고 망의궁으로 쳐들어간다. 진이세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른다. 염락은 호해의 죄상을 여러개 열거한 후 그에게 자살하도록 핍박한다. 호해는 살려달라고 빌지만, 염락은 교만하게 말한다: "신은 승상의 명을 받았고, 천하를 위하여 그대를 없애는 것이다" 말을 마치자 주변의 병사들을 호해에게 향하게 한다. 호해는 어쩔 수 없이 자결한다. 이때 조고는 옥새를 자신의 몸에 차고 있었다. 대전으로 가서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여러 신하들이 따르지 않아서 그는 어쩔 수 없이, 호해의 형의 아들인 자영을 왕으로 올린다. 이 쿠데타를 보면 조고는 심성이 악독하고 수완이 독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진시황을 시해했다고 하더라도 놀라울 것이 없다. 그러나, 악행을 많이 저지른 조고는 결국 스스로 그 응보를 받아서 자영에게 살해당하는 최후를 맞이한다. 

 

이를 보면, 진시황의 사망은 실제로는 궁정정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정변의 주체는 조고였다. 그는 사사건건 운명을 지배하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했다. 부소, 몽염, 몽의, 이사, 호해등은 그에게 지배된 희생양들이었다. 다만, 조고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면 먼저 진시황을 지배해야 했다. 진시황의 명의를 빌어서만이 자신의 음모를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진시황은 그가 지배할 수 없다. 오로지 그가 죽인 후에야 비로소 조서를 위조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분석해보면, 조고가 진시황을 살해할 가능성과 필연성이 모두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