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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일본문화의 뿌리는 중국이 아니다

by 중은우시 2010. 4. 22.

글: 진희아(陳希我)

 

일본에 관하여 중국인들은 가장 쉽게 이야기한다. 일본문화의 뿌리는 중국이라고. 가장 강력한 증거는 바로 일본이 현재도 중국의 한자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자가 일본에 전래된 유래에 관하여 이런 전설이 있다: 감진(鑒眞)대사가 일본으로 건너갈 때, 많은 중문서적을 가져갔다. 그런데 도중에 바닷물이 배 안으로 들어와서, 서적이 젖어버렸다. 어떤 문자는 완전히 보였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지금도 사용하는 한자이다; 어떤 것은 일부만 보였다. 이것이 바로 일본어의 카타카나(假名)이다. 이러한 주장은 아주 널리 알려져 있다. 당연히 중국에서만. 이 전설에 숨은 의미는 이렇다: 일본문화는 비록 중국에서 유래했지만, 그저 '반토막'짜리 중국문화이다. 만일 전설이 맞다면 그 '반토막'으로도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일본문자를 보면 처음에 봤을 때는 한자와 카타카나가 겹쳐져 있어서 아무리 보아도 이상했었다. 크고 작고, 네모도 있고 원도 있도...전혀 조화가 맞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익숙해지고나서 다시 중국문자를 보면, 오히려 너무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게 되었다.

 

사실, 일본을 얘기하기는 아주 어렵다. 필자는 심지어 이런 생각도 한다: 일본인은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황인종이고, 같이 동아시아에 위치하고, 바로 이웃한 나라이지만, 미국인들보다 알기가 훨씬 어렵다. 일본문화는 궤이하다. 카와바타 야스나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그것을 '애매하다'고 했다. 전통학자들은 그것을 '화(和)'라고 했다. 소위 "신도(神道)를 근본으로 하고, 유교를 지엽(枝葉)으로 하고, 불교를 화실(花實)로 하여" 모조리 조화를 이루어 함께 한다. 당연히 나중에 서방의 요소도 개입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조화롭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부조화이다. 다만 바로 그 부조화가 서로 부딪쳐 이 민족의 생명력을 만들어낸다.

 

사실, 일본문화의 뿌리를 중국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언어를 놓고 보더라도, 일본글자는 비록 한자를 가차(카타카나)했지만,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도 일본에는 자신의 언어가 있었다. 그래서 일어에는 '음독'과 '훈독'이 있는 것이다. 한어는 그저 빌려서 글로 쓰거나 발음한 것일 뿐이다. 소위 '화혼양재(和魂洋才)'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다만 최소한 전자는 중국인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중국이 일찌기 피해를 입었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성깔이 있다. 죽어라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자면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굴복하지 않는 것은 그저 내심에서이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중국인들이 패배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망이 많다. 중국인들이 스스로에게서 유래했다고 믿은 이 민족은 강대해진 후에 다시 중국을 쳤다. 필자가 어렸을 때, 비록 일본인은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지만, 머리속에는 이미 일본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나중에 일본땅을 밟아보니, 첫번째로 보이는 것이 일본국기였다. 나의 귀에는 항일영화에 나오는 일본놈들이 마을로 진군하는 때의 음악이 들렸다. 우리는 계속하여 약자였다. 우리는 강자가 되고 싶었다. 우리를 괴롭혔던 나라들만큼 강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본인에 대한 심정은 복잡하다. 필자는 이런 말로 표현하고 싶다. 선망과 원한이 교차한다. 선망이든, 원한이든, 모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일백여년전의 중국은 강제로 눈을 떴다. 그러나 일백여년동안 중국은 여전히 세계를 잘못 읽었다. 오늘날에도 양복을 입고, 양식주택에 살고, 서양신문을 보고 심지어 서양인터넷에 들어가지만, 중국은 세계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서복이 일찌기 일본으로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곳은 신기루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일본은 실제로 존재했다. 일본은 우리에게서 얼마나 멀리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