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중국의 대외관계

중국은 아프리카국가를 계속 원조해야하는가?

중은우시 2010. 4. 30. 12:59

글: 신력건(信力建)

 

신중국이 건립된 후, 일변도(一邊倒, 한편으로 완전히 치우치는)의 외교전략으로, 미국을 우두머리로 한 서방선진국과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 후에 소련과 싸우게 되면서, 소련을 우두머리로 한 소위 동구사회주의진영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결국 할 수없이 눈을 멀리 아프리카로 돌려서, 척박한 토지에서 친구를 찾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비록 부득이한 고충이었지만, 결과는 아주 심각했다: 상당한 장기간동안 중국은 영토대국, 인구대국이면서도 세계삼류국가로서의 지위에 머물러야 했고, 국제업무에 실질적인 발언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세계의 대국들과 친구로 사귈 수 없었으며, 더더구나 세계대국이 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사귀는 가난한 친구들은 우리 국가의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를(우리도 그렇게 표방했었다) 마치 아무리 꺼내써도 마르지 않는 양식창고로 여겼다. 계속되는 원조요청으로 인민의 부담은 가중되고, 국가의 현대화진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시 모택동의 3개세계론은 아프리카인민을 단결시켰고, 아프리카에 대한 대량의 무상원조 - 예를 들어, 탄자니아잠비아철도는 신중국을 이들 가난한 나라들의 지도자급인물로 만들었고, 제3세계국가의 대표적인 국가가 되게 하였다. 바로 이들 흑인친구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유엔에 들어가게 해주었다. 등소평의 개혁개방노선은 중국경제를 신속히 발전시키게 하고, 중국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의 모범사례가 된다. 그들은 중국의 경제건설을 부러워했고, 수시로 손을 벌렸다.

 

1956년부터 아프리카국가에 대한 원조를 시작하였고, 그 이후로 멈추지 않았다. 53년동안, 중국이 아프리카 50여개국가에 900여개의 프로젝트를 원조하여 건설했다. 중국-아프리카합작포럼이 개최된 후, 중국은 아프리카31개국가의 대중국채무105억인민폐를 탕감해주었다. 2007년, 중국의 외교지출은 230억위안인데, 그중 108억위안을 대외원조에 사용했고, 원조대상은 절대다수가 아프리카국가이다. 예를 들어, 카메룬의 수도인 야운데는 인구150만의 도시인데, 중국이 원조하여 건설한 회의센터, 부녀병원, 시청광장, 멀티스포츠센터등 프로젝트가 있다. 이것은 단지 아프리카국가의 한 도시의 사례이다. 중국의 아프리카각국에 대한 원조규모는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무상원조는 바라는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것은 먼저 이렇게 나타난다: 이들 아프리카친구들은 중국에 대하여 우호적일 뿐아니라, 아프리카에서 헌병, 경찰등은 중국인을 아주 좋아한다. 중국인이 차에 앉아있는 것을 보면, 멀리서도 휘파람을 불어서 차를 도로가에 세우라고 한다. 먼저 자동차의 각종 증명서를 검사한 후에 운전면허증을 검사한다. 그 후에 신분증과 차량의 물건을 검사한다. 이런 귀찮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통행료'를 내야 한다. 중국국민이 아프리카에서 종사하는 각종 경영활동은 여러가지 난관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백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들과 우의를 얘기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패도를 얘기한다. 네가 우리 땅에 있으니 내가 너를 처리하겠다. 네가 피를 조금 흘려주어야 겠다. 중국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자주 무례한 대접을 받아서, 중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서 외교관을 오라고 하면, 이들 외교관들은 중국내에서는 대단한 사람들이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면서 부탁을 하고, 공손하게 달러나 유로를 내민다. 한번은, 한 외교관이 공항에서 억류된 중국국민을 비행기에 태우기 위하여 100달러짜리 달러를 내민 적이 있다. 그런데, 공항경찰이 부주의하여 현금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 외교관은 자신이 허리를 숙여서 주워가지고는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그 무뢰배인 경찰의 손에 집어주었다.

 

다음으로, 원조효과가 좋지 않다. 아프리카원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왕왕 2차대전후 미국이 유럽경제부흥을 도와주었던 마샬계획을 얘기한다. 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즉시 유럽에 130억달러(지금으로 보면 1천억달러에 상당한다. 그러나, 서방이 아프리카에 원조한 2조달러에 비하면 20분의 1에 불과하다)를 원조한다. 그러나, 마샬계획은 단기적인 것이고, 한계가 있었으며, 목표가 뚜렷했다. 주로 인프라시설의 건설에 쏟았다. 그러나, 중국의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는 기한도 없고, 구체적인 목표도 없으며, 그저 가난한 사람들에게 평균적으로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다. 비록 이렇게 함으로써 가난한 사람의 생활이 단기적으로 개선될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목표에서 전체국가를 가난에서 벗어나고 현대화할 수 있게 해주지는 못한다. 그외에 당시 마샬계획의 지원을 받은 유럽국가는 이들 원조가 미국의 그들에 대한 빚이라고 행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에 대하여 주도면밀한 경제계획을 세웠고, 효과적으로 원조대금을 사용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정부는 중국의 원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경제개혁에 노력을 ㅎ지 않고, 그저 돈을 나눠주고, 마구 써버린다. 한 친구는 이렇게 탄식한 바 있다. 인류역사상, 어느 나라도 아프리카나라들처럼 이렇게 원조를 받아서 경제발전을 얻은 곳은 없을 것이다. "기한도 없는 기부금에 의존하는 경제체제는 거의 전멸해버렸고, 오히려 원조에 의존하지 않는 나라는 성공했다." 예를 들어, 동유럽의 발트삼국은 독립한 후에, 미국의 마샬식의 원조를 받지 않았다. 주로 자신의 경제개혁에 의존하고, 시장경제의 길을 충분히 걸었다. 결과는 모두 경제적으로 성과를 거두었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라 삼국의 실질수입증가는 놀라울 정도인 167%, 146% 및 125%에 달한다. 아시아 사룡(대만, 한국, 싱가포르, 홍콩)도 서방의 원조에 의존하지 않고, 시장화와 글로벌화로 경제를 성장시켰다. 도대체 시장경제를 취할 것인가, 아니면 시장에서 멀어질 것인가. 이 자체는 답을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자립한 아이는 일찌감치 독립하지만, 편애를 받는 아이는 영원히 크지 못한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서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및 유럽국가는 모두 복리생활을 누린다. 그저 편하게 살면서 납세자들의 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백만장자가 될 수가 없다.

 

우리는 본다. 아프리카에 서방의 원조가 아주 많다. 그러나 그 돈은 정부관료들이 빼돌린다. 원조는 아프리카국가재정예산의 주요부분이 되었다. 예를 들어, 이디오피아는 원조금이 국가예산의 90%를 차지한다. 또 다른 7개의 아프리카국가도 원조금이 국가재정예산의 70%이상을 차지한다. 잠비아로 와서 아프리카 원조프로젝트를 진행한 중국엔지니어가 쓴 글을 보면, 그가 잠비아에서 본 것은 그 나라 대통령일행의 차량이 모조리 벤츠, BMW등 고급차량이었다고 한다. 현지의 친구가 그에게 말해주었다. 외국원조는 대부분 정부고관들의 주머니로 들어가서 쓰는데, 주로 차량을 사는데 쓴다는 것이다. 아프리카국가의 장관들은 모두 세계적인 고급차를 몰고 있다. 거주하는 곳은 엄청나게 큰 부지를 가진 2층짜리 집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중국이 그들에게 종자를 원조한다. 옥수수, 쌀, 보리등의 종자이다. 그러나, 그들은 종자를 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먹어버린다. 원조를 얼마 해주면 그만큼 먹어버리는 것이다. 현지에서 그가 관찰하고 얻은 결론은 이렇다: "외국원조는 대부분 아프리카의 자립이나 발전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저 소수인들의 생활이 날로 부유해지고 사치스러워질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문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모택동시대에 아프리카를 원조한 것은 신중국이 하루빨리 유엔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었다면, 우리가 현재 아프리카를 원조하는 것은 무엇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