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요목종(遼穆宗) 야율경(耶律璟): 평생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은 황제

중은우시 2010. 3. 28. 20:56

글: 수은하(水銀河)

 

고대에 황제는 직무상의 편리를 이용하여, 삼궁육원(三宮六院)을 두더라도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명나라의 좋은 황제인 홍치제가 단지 장황후 한 부인만을 두었는데, 신하들은 계속 상소를 올려 법도에 따라 최소한 12명의 후궁을 두어야 한다고 하곤 했다. 황제들에게 중요한 것은 혼인이 아니라 규모이다. 규모가 되다보니 황제는 호색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황제들은 보편적으로 호색한이다. 홍치제같은 경우는 아주 특수한 경우이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도 이민족에게는 당하지 못한다. 중국의 삼,사백명이나 되는 황제중에서 딱 한 사람은 평생동안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요나라의 네번째 황제인 요목종 야율경이다.

 

요목종은 요태종(遼太宗) 야율덕광(耶律德光)의 아들이다. 그는 사촌형인 요세종(遼世宗)이 피살된 후에 즉위했다. 황제에 오르기 전에, 그는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다. 신하들도 그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의 악습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같다. 그래서 그가 황제위를 승계하는 과정에서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즉위하고나서, 많은 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된다.

 

먼저, 그의 별명을 보자. 수왕(睡王), 잠보왕이다. 어떻게 자길래 이런 별명을 얻었는가? 그는 낮에는 잠을 잔다. 그는 술을 마시는 것도 분위기를 따졌는데, 저녁에 술을 마시는데, 밤새도록 마시다가, 아침에 날이 밝으면 머리를 쳐박고 잠을 잔다. '아침이 되어야 잠이 들고,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니, 나랏사람들이 '수왕'이라고 불렀다."

 

잠자는 것이외에 그가 두번째로 좋아한 것은 살인이다. 어떤 때는 술을 많이 마시고 만취상태에서 사람을 죽였다. 어떤 때에는 다른 사람이 동물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죽였다. 요리사가 한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으면 요리사를 죽였다. 그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은 대신, 반역자뿐아니라, 사슴사육사, 늑대사육사등 동물사육사가 있다. 속담에 토끼는 주변 풀은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는 달랐다. 자주 가까이 있는 시종이나 신하들에게 칼을 들이댔다. 그를 조금만 불쾌하게 만들면 그가 친히 죽여버리곤 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마다 두려움에 떨었다.

 

좋아한 것이 있으면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야율경이 가장 싫어한 것은 여인이다. 그의 황궁내에는 오직 한 여인만이 있었다. 소황후(蕭皇后). 그러나 그는 소황후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한창 나이에 생과부로 지냈다. 손자를 안기 힘들 것같다고 느낀 야율경의 모후는 매일 그에게 '불효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후손을 두지 않는 것이 가장 크다'고 했지만, 그는 차라리 불효자가 될 지언정 여인을 가까아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여인에 대한 자신의 반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는 생전에 유언을 남겼다. 사후에 소황후와 합장하지 말도록.

 

그가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은 이유가 생리적인 것인지 심리적인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 우리가 알 도리는 없다. 한가지는 확실하다. 그는 자신을 좋은 남자의 모범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여인에게 시간과 비용을 너무 많이 쓰지말도록 말했다. 일찌기 곁에 있던 시위가 처를 그리워하여, 휴가를 보내주지 않으면 일을 태만히 했다. 야율경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그 시위의 처를 죽여버린다.

 

비정상적인 야율경을 정상적인 신하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그가 39세되던 해에, 바깥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그가 술에 취하여 화를 내면서, 요리사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했다. 요리사들은 두려웠고, 평소에 많은 괴로움을 당한 터여서 몇 사람이 상의해서 한밤중에 그를 죽여버린다. 그가 죽은 후에 저명한 소태후의 남편인 요경종이 황위에 오른다. 이로써 요나라의 공포의 역사는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