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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언어

중국어 방언은 소멸할 것인가?

by 중은우시 2010. 2. 21.

글: 정계진(丁啓陣)

 

최근들어 매번 고향으로 가서 설을 지낼 때마다, 필자는 보통화(普通話, 중국의 표준어)의 세력이 계속 확대되는 것을 느낀다. 고향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고, 고향에서 보통화로 말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빈도도 늘고 있다. 전자는 주로 젊은이나 어린이들이고, 후자는 주로 어느 정도 문화수준을 지닌 성년, 중년인들이다.

 

필자는 7살된 질녀와 얘기할 때는 기본적으로 보통화로 말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간지 반년된 질녀는 보통화를 이미 제법 잘하고 있다. 방언과 비교하면, 질녀는 확실히 보통화로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필자가 방언으로 그녀와 얘기할라치면, 처음에는 그녀도 방언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얘기하다보면, 그녀는 어느새인가 보통화로 바꿔서 말한다. 이야기를 편하게 하기 위하여 필자도 할 수 없이 질녀를 따라서 보통화로 말할 수밖에 없다. 질녀가 집으로 데려와서 노는 어린친구들, 필자가 접촉해본 질녀와 나이가 비슷한 연령대의 어린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이런 상황이었다. 농촌 아이들도 이러한데, 도시아이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성년, 중년인들 중에서, 보통화를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다만, 사투리에 큰 차이가 없는 같은 마을이나 같은 도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화로 교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제,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공간, 시간,사람간의 거리가 대폭 축소되면서, 사투리가 서로 다른 마을, 현 간의 사람들이 같은 탁자에 둘어앉아 얘기하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 보통화로 말하지 않고, 방언으로 얘기하면, 이상하게 느껴질 뿐아니라, 의사소통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개혁개방이래로, 사회는 상전벽해의 변화가 있었다. 과학기술은 날로 새로와진다. 계속 새로 등장하는 것들은 대부분 보통화로 표현된다. 많은 단어, 문장이 사투리로는 표현하기 힘들게 되었다. 80년대중반, 쿤밍에서 상하이로 가는 기차에서 필자는 지방자존심이 아주 강한 원저우(溫州)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고향에서 변호사를 겸업하고 있는데, 신강 알타이에서는 보석을 캔 바도 있고, 티벳에서는 목수를 지낸 바도 있으며, 당시 송사를 적지 않게 외우고 있고, 당시의 유행가는 모두 부를 줄 아는 원저우청년이었다. 그는 자신있는 말투로 말했다: 보통화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원저우화(溫州話)로도 모두 표현할 수 있다고. 나는 그에게 "그러나 반드시 모두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는 말을 해보라고 했더니, 그는 한참동안 주워섬겼어나 원저우말로 어떻게 말할지를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 비록 '말을 가장 분명하게 하는 상해사람'이라는 주입파(周立波)에게도 완전히 상해말을 쓰고 보통화를 쓰지 말라고 한다면, 필자는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그의 해파(海派, 상해파)의 깨끗한 말과 예술적 매력은 대거 감쇄될 것이라고. 사실 충분히 의사표현하는 것도 아마 문제될 수 있을 것이다. 비교해보자면 필자는 개략 이런 사실을 발견하였다: 최근 2,30년이래, 방언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물, 뜻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우려를 나타낸다. 중국어 방언은 머지않은 장래에 소멸하지나 않을까? 960만평방미터 토지에 사는 십수억의 사람들이 사투리의 차이가 별로 없는 중국어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러시아의 상황과 같이, '방언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드러낸다.

 

여러해전에, 필자는 학술논문을 통하여 이런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방언과 표준어의 사이에, 영원이 두 가지 힘이 존재한다. 하나는 구심력이고 하나는 원심력이다. 두 가지 힘은 하나가 강해지면 하나가 약해진다. 이렇게 방언과 표준어는 서로 기복이 생긴다. 다만, 너죽고 나살기 식의 국면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고래로 방언현상은 계속 존재했다는 것이 바로 강력한 증거이다. 영화드라마작품에서 대형문예이벤트에서, 방언이 계속 나타나는 것은 의미심장한 징조이다. 그러므로, 필자 본인은 방언이 철저히 소멸할 것이라고 걱정하지는 않는다.

 

필자의 생각으로, 몇년이 지나면, 춘추전국시대에 '백가쟁명'이 나타난 것처럼, 지역감정이 나타나서, 방언감정이 대거 드러나지 않을까 한다. 언어에서 일정한 지역차이, 사회차이를 유지하는 것은 생물다양화의 자연법칙에도 들어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