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계진(丁啓陣)
"소저"라는 단어에 대한 최신 버전의 <<현대한어사전>>(제5판, 상무인서관 2009년, 북경)에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1) 옛날에 돈있는 집안의 종이 주인의 딸을 부르는 칭호, (2) 젊은 여자 혹은 시집가지 않은 여자에 대한 칭호.
확실히 이러한 해석은 옛날의 뜻에도 맞지 않고, 오늘날의 뜻에도 맞지 않는다.
먼저, 오늘날의 뜻에 맞지 않는 점을 살펴보자. 모두 알다시피, 오늘날 많은 지역에서 일정한 정도로, "소저"라는 단어는 더 이상 "젊은 여자 혹은 시집가지 않은 여자"를 칭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흥업종에 종사하거나 섹스산업에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여자를 부르는 칭호이다. 주요한 변화는 세 가지이다. 첫째, 신분이 서로 다르다. 이전에는 양가집 규수를 가리켰으나, 지금은 풍진여자를 가리킨다. 둘째로 이전에는 존경과 애정이 담겨 있었지만, 지금은 경멸과 하대의 색채가 있다. 셋째로 예전에는 젊은 여자로 결혼하지 않은 것을 강조했지만, 지금은 업계에 종사하는 무리로서 나이도 늘어났고, 결혼한 여자도 포함하게 되었다. 이러한 세 가지 변화로 인하여, 많은 지방에서는 더 이상 "젊은 여자 혹은 시집가지 아니한 여자"를 "소저"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광동,광서지방에서는 일반적으로 "정녀(靚女)"라고 부른다.
다음으로, 옛날의 뜻에도 맞지 않는 점을 살펴보자. "옛날에 돈있는 집안의 종이 주인의 딸을 부르는 칭호"라는데서 "옛날"이 그다지 오래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는다. 최대한 거슬러올라가봐야 원나라때까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나라때의 유명한 잡극인 왕실보의 <<서상기>>를 보면, 여주인공 최영영을 부를 때 시녀인 홍낭은 입만 열면 "소저"라고 한다. 아마도 이때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상한인 듯하다. 다시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송나라때의 "소저"는 더 이상 존칭이 아니라 비칭이다. 전유연의 <<옥당봉진록. 영왕궁화>>를 보면 차와 술을 관장하는 궁녀 한소저가 변란을 틈타 방화를 기도하고 애인과 도망치고자 한다. 여기서는 궁녀를 '소저'라고 불렀다. 마순도의 <<주신록>>에는 진언수의 시녀를, 악가의 <<정사>> 6 <<왕혁요의>>에는 홍공의 첩을 모두 '소저'라고 불렀다. 이는 시녀와 첩을 소저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소동파의<<성백석상증기인양저시>>에서는 건강의 기녀 양씨가 죽은 후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채오의 처가 되었다. 한 도사가 와서 검을 휘둘러 쫓아내고는 "이것은 건강의 기녀 양소저이다"라고 한다. 홍매의 <<이견지>> 27 <<부구임소조>>에서는 부구는 놀기좋아하는 무리인데, 자주 임소저와 놀면서 몰래 도망치기로 했는데 성공하지 못하여, 둘은 자결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것들을 보면 송나라때 "소저"는 창녀기녀를 가리키는 칭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송나라때 "돈있는 집안에서 종이 주인의 딸을 부르는 칭호"는 일반적으로 "소낭자(小娘子)"라고 불렀다. "소저"라는 칭호를 쓴 것은 원,명,청과 근현대의 일이다.
이를 보면, "소저"라는 말은 원래 그다지 존귀한 신분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비천한 신분에서 존귀하게 바뀐 것은 개략 원나라때의 일이다. 지금은 다시 풍진여자로 전락했는데, 이는 반박귀진(反璞歸眞)이라고 할 수 있다. 용어의 원래의 뜻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수십년전에, 문화대혁명시대에 '자산계급소저'라는 말은 선망하는 가운데 경멸하는 의미였는데, 이것은 중간의 에피소드 혹은 낭화(浪花)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저의 몸값이 한번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졌는데, 여기에는 사회적인 합리성이 있다. 원나라때 "소저"라는 단어가 명성을 떨치고 몸값이 뛰어버린 것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는 듯하다: 하나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이치가 작용한 것이다. 존귀한 것이 비천해지고, 비천한 것이 존귀해졌다; 다른 하나는 혁명의 결과이다. 몽골인들이 남송의 운명을 끊으면서, '소저'에게 덧씌워진 것들을 걷어내 버렸다. '소저'들이 들고 일어났고,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존귀해진 것이다.
물극필반은 오랫동안 유효한 이치이다. 사회합리성은 상대적인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필자는 예측해본다. "소저"의 명성과 몸값이 전락한 것도 일시적인 것이다. 비극태래(否極泰來). 아마도 다시 사회에서 존귀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소저"들이 종사하는 일은 그 죄악이 극악한 것도 아니고, 용서못받을 업종도 아니다. 이와 반대로 오랫동안 유행한 말고 같이, 그녀들은 훔치지도 않았고, 빼앗지도 않았고, 땅을 차지하지도 않고, 건물을 차지하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고, 오염도 없고, 내수를 촉진하여 발전시키는 등등의 특징과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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