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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공자)

소위 "공자후손"은 모조리 가짜이다

by 중은우시 2010. 2. 12.

글: 황수우(黃守愚)

 

공자(孔子)는 우리가 영원히 피해갈 수 없는 성현(聖賢)이다. 그의 사상의 정수와 '지꺼기'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얼마전에, 영화 <<공자>>가 상영되었다. 공자를 빌어서 얘기하는 자는 과강지즉(過江之)으로 많다. 높이 받드는 자는 하늘까지 끌어올리고, 깍아내리는 자는 땅 속으로 끌어내린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공자를 평가하려는 사람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리고, 학술연구외에 웃기는 일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자칭 공자후손이라는 자들이다.

 

전해듣기로, 국내외에 자칭 공자후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이백만명은 된다고 한다. 최근에 만든 <<공자세가보(孔子世家譜)>>에는 이천여년의 공자혈맥이 기록되어 있다. 더욱 가소로운 일은, 공자의 현재 소위 '소수민족' 후예들이다. 사실 복단대학 주유쟁(朱維錚) 교수가 일찌기 말한 바 있지만, 공자의 후손은 모조리 가짜후손이다. 나도 그의 견해에 동조한다.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졸부가 족보를 만들면서, 부모없는 자식이면서 적당히 누구를 부모라고 얘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공자의 후손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이런 부모없는 자들이 아니면 사칭하는 자들이다.

 

고대인들은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의 조상을 제사지내면 안된다. 비록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조상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더라도, 그는 그 향화와 음식을 받지 않는다. <<논어. 위정 제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그 귀신이 아닌데 제사지내면 첨(諂, 아첨하다)이고, 의로운 일을 보고도 행하지 않으면(見義無爲), 이는 용기가 없는 것(無勇)이다" <<좌전. 희공십년>>에는 "자신의 동류가 아니면 제사음식을 바쳐서는 안되고, 백성들은 자신의 족속이 아니면 제사지내선 안된다." <<예기. 곡례하>>에는 "제사지내지 말아야 할 것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음사(淫祀)'이고, 음사를 하면 복이 없다." 현재 사람들이 공자의 후손으로 사칭하는데, 이는 이것을 자본으로 하여 명예를 얻고 자신의 몸값을 높이고, 집안을 빛내고, 복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전통적인 중국언어환경하에서, 이런 사칭은 쉽게 이해가 된다. 1949년이전에 공자의 적계후손은 "연성공(衍聖公)"에 봉해졌다. 그리고 황제의 자리처럼 세습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내부에서 투쟁이 벌어지게 되고, 춘추전국시대의 희비극이 연출되는 것이다.

 

사실, <<공자세가보>>가 아무리 완벽하고 연속되더라도 위조부분이 적지 않다. 만일 사마천이 <<공사세가>>를 쓰지 않았더라면, 동중서가 독존유술의 기치를 들지 않았더라면, 공자의 후손의 계보는 정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칭 공자의 후예라는 자들도 이를 자랑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초의제(楚義帝)의 경우를 보면, 그는 초회왕(楚懷王) 웅괴(熊槐)의 손자라고 하며, 민간에서 양치기로 지냈었다. 그가 정말 웅괴의 손자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진승, 오광의 난때, 그들은 스스로 부소(扶蘇), 항연(項燕)이라고 사칭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하여 백성들을 따르게 하려고 했다. 고대에 적계혈맥은 당연한 이치로 상속권과 합법성을 지닌다. 소위 공자의 구대손이라는 공부(孔)가 진승, 오광의 난에 가담하였다가, 전투중에 전사하고 만다. 그후 공자의 적계혈맥에 대한 기록은 단절된다. 공안국(孔安國)은 공부의 질증손(侄曾孫)으로, 공자양(孔子襄)에게서 나왔다. 그는 적계후손이 아니다. 공부의 적계후손에 대하여는 역사에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실제로 사마천의 <<공자세가>>에서의 공자세계는 확인하기 어렵고, 진위를 판단할 수 없다. 이를 적법한 근거로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유방의 부친 모친과 같이,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는 확인할 길도 없다. 그저 그들이 유할아버지, 유할머니로 불렸다는 것만 안다. 그런데 무슨 조상의 계보를 논하겠는가? 다행히 유방은 엉뚱한 사람을 조상이라고 주장하면서, 계보를 조작해내지 않았다.

 

동한 말기, 소위 공자의 20대손이라는 공융(孔融)은 전가족이 피살당한다. '새집이 뒤집어지니, 온전한 알이 남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는 잘 알 것이다. 공융의 혈맥이 중단되었음은 너무나 분명하다. 송나라때 여진은 삼공(三孔, 즉 孔林, 孔廟, 孔府)를 불태워버린다. 그후에 금(金)나라는 공자의 후손이라는 사람을 "연성공(衍聖公)"에 봉한다. 그가 북공(北孔)이다. 구주(衢州)의 남공(南孔)과 나란히 존재했다. 나중에 몽골군대가 곡부를 점령한 후, 또 다시 "연성공"을 한 사람 임명한다. 이 때는 남송, 금, 몽골의 세 나라가 정립하고 있었다. 하늘에 세 개의 태양이 뜬 꼴이 되었다. 동시에 세 명의 "연성공"이 나타났다. 나중에 쿠빌라이가 천하통일을 한 후에 '북공'을 '연성공'의 합법적 승계인으로 인정한다. 북공이 공자의 진짜 후예인지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중국에 아직 엄격한 의미에서 대대로 이어지는 족보의 개념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공자세가보>>는 연속성을 확인받기 어렵다. 족보를 만드는 풍습이 나타난 기원은 아주 이르다. 아마도 상나라 주나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나라말기 오대에 전란이 빈번하면서, 족보는 대부분 전해지지 않게 된다. 현재 보존상태가 비교적 완벽하고, 세계가 분명한 것은 명청시대이후의 것이다.

 

역사적으로 조상을 사칭하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멀리까지 얘기할 것도 없다. 근대의 장개석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생부가 도대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더 멀리 조상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공자세가보>>로 얼마나 많은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모조리 헛소리이다.

 

남송에 임가산(林可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족보를 만들면서 스스로 임포(林逋)의 제7대적손이라고 했다. 그는 임포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매처학자(梅妻鶴子, 매화를 처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다)"의 임포의 자손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시를 지어 이렇게 풍자했다: "화정(임포)은 처를 들이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칠대손이 세상에 나타난단 말인가? 만일 학의 씨이거나 매화의 씨가 아니라면, 분명히 오이를 오얏나무에 달아놓는 격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풍자했다: "화정(임포)는 처를 들이지 않았고, 그저 학을 아들로 두었을 뿐이다. (임)가산이 스스로 짐승의 종자라고 인정하다니, 정말 오이를 오얏나무에 거는 격이다." 오이를 오얏나무에 건다는 것은 아무 관계없는 사람을 친족으로 우긴다는 뜻이다.

 

명청시기에, 족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보장(譜匠)"들은 <<만성통보>>, <<상우록>>을 뒤적여보고는 모모성씨의 사람들을 위하여 역사상 유명한 사람을 조상으로 모시게 도와주었다. 심지어 구양수, 소식, 주희, 문천상, 방효유등의 명인들이 족보에 서문을 적은 것으로 하기도 했다. 부모없는 자식이 누군가를 부모라고 우기고, 조상이라고 우기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아무나 붙잡아서 우기면 된다.

 

이전에,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스스로 유하혜(柳下惠)의 몇대손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이세민의 후예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주희의 후예라고 자처했다. 사실 따져보면 모두 증거가 없다. 모조리 조상을 사칭한 것이다. 전해들은 이야기이지만, 두월생(杜月笙)은 성공한 후에 족보를 만들었는데, 처음에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주어서 당태종때의 명재상 두여회(杜如晦)를 조상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두월생은 두여회의 이름에 회(晦, 그믐)자가 좋지 않다고 보고, 다시 두보(杜甫)를 억지로 끌어들여 조상으로 삼았다.

 

비록 <<공자세가보>>를 만들기는 했지만, 현재 공자의 후손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공자의 진짜 후예라고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자세가보>>가 진실이고 틀림없다고 증명하려면, 반드시 공자의 순수한 혈맥이 끊어지지 않고 내려왔고, 모든 기록이 진실하고 믿을만하며, 중간에 절대로 끼워넣거나, 씨를 빌리거나, 성을 사칭한 자들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증명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조상을 아무렇게나 정하고, 족보를 함부로 만드는 일이 많았으므로, 필자는 무릇 공자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가짜라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