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초기)

청나라의 황궁(皇宮)은 어떻게 경비했는가?

중은우시 2010. 1. 23. 22:12

글: 이국영(李國榮)

 

청나라때의 궁궐경비제도를 얘기하자면, 팔기(八旗)를 얘기해야 한다. 팔기는 청나라때 독특한 군사 및 민정조직이다. 만(滿), 몽(蒙), 한(漢)으로 나뉘어진다. 청나라의 입관(入關, 산해관을 들어와 북경과 중원을 차지한 것을 말함)이후 북경을 안정시키고 전국을 통치하기 위하여, 다시 팔기병을 금려팔기(禁旅八旗)와 주방팔기(駐防八旗)로 나뉜다. 금려팔기는 경영팔기(京營八旗)라고도 부르는데, 경사(京師), 즉 북경에 주둔하고, 주방팔기는 전국각지에 나뉘어 주둔한다. 금려팔기는 다시 낭위(郎衛)와 병위(兵衛)로 나뉜다.

 

"낭위"는 황제의 호위를 담당한다. 여기에는 시위처(侍衛處)와 친군영(親軍營)으로 나눈다. 주로 만주팔기, 몽고팔기중에서 선발된 정예인원으로 구성된다. 영시위내대신(領侍衛內大臣) 혹은 어전대신(御前大臣)은 모두 황제의 훈척대신(勳戚大臣)중에서 선발되었다. 시위중 어전시위는 황제의 신변호위를 담당한다. 인원은 주로 상삼기(상황기, 정황기, 정백기)에서 무예가 뛰어난 자들로 뽑는다. 인원은 합계 600명가량이다. 그외에 남령시위(藍翎侍衛), 종실시위(宗室侍衛) 수백명이 있다. 그리고, 만주, 몽고 상삼기에서 뽑은 시위친군(侍衛親軍) 1400여명이 있다.

 

"병위"는 황제의 위수(衛戍)부대이다. 호군영(護軍營), 효기영(驍騎營), 보군영(步軍營), 건예영(健銳營), 화기영(火器營), 신기영(神機營)등으로 나뉘는데 황제의 숙위(宿衛), 청필(淸蹕, 행차시의 길정리) 및 궁금(宮禁, 궁궐경비)의 전주(傳籌)와 금문(禁門)의 개폐등의 일을 담당한다. 병위는 만주, 몽고, 한인팔기로 구성되며, 각영에는 통령, 도통 혹은 총통대신, 관리대신을 두었다. 그중 호군영은 자금성의 주요 방어부대였다. 통령이 지휘했고, 직책은 자금성의 각 문을 지키고, 문의 개폐와 야간순라전주, 황제조회경연의 호위등을 담당했다. 호군영은 만주, 몽고팔기중에서 젊고 튼튼하며 무예가 뛰어난 장정으로 모두 15000여명을 뽑았다. 경운문에는 당직대신등 3명이 있어, 궁정의 문금(門禁) 사무를 담당했다.

 

이외에, 궁정의 금위조직에는 대대로 황실의 노비로서, 내무부에 예속된 포의(包衣)들이 있었다. 이들은 황제의 신임을 받는 또 하나의 특수한 역량이었다. 그중에는 삼기포의호군, 효기, 전봉의 3영(營)이 있는데, 관병이 모두 7천여명이다. 내무부대신이 지휘했다. 주요한 직책은 궁문을 지키고 출입을 검사하는 것이다. 궁안에 이들이 지키는 궁문은 모두 12곳이 있었다. 궁정금위임무를 맡고 있는 자로는 인원수가 1800여명에 이르는 전봉영이 있고, 경사를 지키고 황제의 순시에 따르며, 총과 포를 다루는 화기영의 관병이 약 7800여명이 있었다; 현대의 특수부대에 해당하는 신기영은 관병의 수가 10000여명이었다. 이외에 북경의 구문(九門)을 장악하고 자금성 바깥의 전체 북경의 문을 지키고, 치안을 관리하는 보군영(보군통령아문)이 있었다. 팔기보병과 경성녹영의 병마를 지휘했는데, 보병이 합계 53000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