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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하(夏)나라의 연환복수극

by 중은우시 2009. 12. 25.

글: 윤검상(尹劍翔)

 

필자의 인상에서, 중국의 역사에 이런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반란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예를 들어, 한나라때의 칠왕의 난 때의 오왕 유비, 당나라 안사의 난에서의 안록산, 명나라 정난지역의 주체등등이 있다.

이들은 반란이 성공하면 영웅으로 칭송되고, 실패하면 효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효웅도 좋고, 영웅도 좋다. 그들이 유명해지는 것은 바로 대규모의 살륙때문이다.

시신이 온 들판에 가득하고, 백골이 겹겹이 쌓여있다.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피눈물속에 쓰러져간다. 생명은 잔인하게 짓밟히고, 결국 남아있는 것은 결국 그 몇몇 사람의 명성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반란이다.

가치가 있는가?

당사자들은 잘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들 당사자들은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 가치가 있는가?

만일 네가 긍정적인 견해를 지닌 국외자라면, 네가 자신을 반란자들의 칼 아래 놓여봐야 한다. 스스로 경험해봐야 한다. 단지 그런 환경하에 놓였던 사람만이 무고한 피살자의 고통, 무력감 그리고 원한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란은 농민의거와 다르다. 반란자는 대다수 먹고 입는데 걱정이 없거나 거대한 재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개인의 욕심이 만족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더 많은 이익을 빼앗으려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처입는 사람들이 만일 여기서 끝나지 않기로 맹세하고, 자신의 것이었던 이익을 되찾아로겠다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살륙이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불가에서 말하는 원수를 원수로 갚는 것이다.

중국역사상 첫번째 노예제왕조인 하나라에 일찌기 60년에 걸친 반란과 복수의 이야기가 펼쳐진 바 있다. 이것은 피비린내나는 이야기이고, 3대의 사람들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이 육십년동안, 반란, 복수, 복국이 일어나고, 몇몇 역사의 주인공들이 교체되며, 싸움은 그치지 않는다. 무수한 생명이 그 가운데 비명횡사한다. 이 변란의 구체적인 사망자수는 이미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무수한 생명이 이 변란중에 사라져갔다. 무수한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처는 남편을 잃고, 모친은 아들을 잃었다.

이 육십년의 변란은 세계역사상 권력탈취, 복수의 처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약 천육백년후에 영국작가 세익스피어가 쓴 햄릿과도 같은 복수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이야기의 주인공은 왜 그렇게 악독했는가? 왜 그들의 인간성은 왜곡되었는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피를 좋아하는 마왕이 되게 만들었는가?

아래에서 우리는 이 변란의 세부적인 사항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인간들이 이 난리통에 얼마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웠는지를 느껴보자.

 

이 반란을 시작한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그는 후예(后羿)라고 한다.

다만 이 후예는 요(堯)임금때의 그 사일영웅(射日英雄)이 아니라, 하나라 유궁씨(有窮氏) 부족의 우두머리이다. 사람들은 자주 이 두 후예를 서로 혼동한다. 왜냐하면 이 후예도 활을 잘 쏘는 명궁이었기 때문이다.

유궁씨 부족은 하나라때의 대부족이고, 실력파였다.

기원전21세기, 대우(大禹)의 아들 하계(夏啓)가 하왕조를 건립한다. 이는 중국역사상 첫번째 통일국가이다.

하나라는 비록 형식상으로는 완전한 국가였지만, 이 국가는 느슨한 부족연맹을 기초로 하였다. 이 연방은 통일된 법률이 없었고, 통일된 관리가 없었고, 심지어 통일된 명령이나 복종도 없었다.

다른 부락이 복종하게 하려면 한가지 조건밖에 없다. 네가 확실히 강대해야 한다. 누가 강대한지에 따라 그가 우두머리가 된다. 이것이 그 당시의 법도였다. 이 법칙은 모든 부락들이 충실하게 신봉했다.

만일 다른 부락이 강대하고, 네가 약소하면, 미안하지만 아무도 너에게 충성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가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고, 너는 그냥 곁에서 쉴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하,상,주 세 왕조의 기본적인 정치형태이다. 그들은 부족연맹을 기초로 한 것이고,  정권이 안정되지 않은 통일국가였다.

유궁씨 부족은 바로 이런 역사배경하에서 강대해져서 실력을 갖춘 부족이 된다.

이때, 하나라의 제2대군왕인 태강(太康)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대우의 손자이고, 하계의 아들이다. 그는 귀족자제의 우량한 전통을 승계했다. 그는 부친의 창업시의 어려움은 아예 잊어버리고, 매일 먹고 마시고 놀았으며, 조정을 돌보지 않았다. 이리하여 하 부족의 실력이 급격히 쇠락한다.

유궁씨의 부족수령인 후예는 웅심을 가진 남자였다. 웅심의 또 다른 해석은 권리, 미녀, 재부에 대한 변태적인 추구이다.

태강의 황음무도함을 보고, 후예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그는 무슨 하늘의 도를 대신 행하거나, 백성을 고통에서 구해주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 것이 그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기회는 항상 준비하는 사람에게 오는 법이다.

태강의 가장 큰 취미는 사냥이었다. 후예는 바로 태강의 이 취미를 이용해서 반란을 일으킨다.

한번은 태강이 시종들을 데리고 낙수의 남쪽으로 사냥을 나갔다. 그는 사냥을 하면할수록 신이나서 100여일을 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기회가 온 것이다. 확실히 왔다.

후예는 친히 병사를 데리고 낙수 북안에 매복했다. 이때, 태강은 그가 사냥한 야수를 끌고, 기분좋게 돌아오고 있었다. 낙수의 가에 이르렀을 때, 돌연 한 무리의 인마가 그의 귀로를 막았다.

이것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섬멸전이다. 결과는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후예의 부대가 태강의 무리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태강을 모시고 사냥을 하던 군사는 분명히 숫자도 적었을 것이고, 오랫동안 편안한 생활을 하느라고 전투력이 그저 산속의 야수나 상대할 정도였을 것이다. 흉맹하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유궁씨의 정예병사들 앞에서 그들은 잡아먹히기를 기다리는 순한 양과도 같았다.

유궁씨의 군사는 후예의 지휘하에 태강의 진영으로 뛰어들고, 그들이 날카로운 칼을 들어, 태강이 가장 신임하던 용사들을 베었다.

전투는 금방 끝난다. 하부록은 태강을 제외하고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유궁씨의 병사는 칼과 검을 가지고 여전히 신음하고 있던 병사들의 심장을 하나하나 찔러갔다.

이때, 후에는 차가운 눈으로, 포로로 잡힌 태강을 쳐다본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태강은 온 몸을 부들부들 떤다.

일반인의 논리대로라면, 이때 후예는 날카로운 칼을 들어, 한 칼에 태강을 두동강이 내야 한다. 그러나, 후예는 또 다른 방식으로 태강을 처벌한다.

태강을 유배형에 처한다. 후예가 지나치게 자비롭다고 생각하지는 말라. 태강이 봐준 것같지만, 유배는 고대 오형중 하나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새도 살지 않는 곳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사실은 사형의 일종이다.

태강의 결말은 비참했다. 그는 사람이 살지 않는 유배지에서 그의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사람들은 몇 해후에, 백골이 한무더기 사람들이 살지않는 유배지역에 남아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이 한 때 군왕을 지냈던 태강의 유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두려운가? 약간, 그러나 방법이 없다. 이것이 바로 반란이다.

끝났는가? 당연히 아니다. 이상은 그저 이 참극의 시작을 설명하기 위한 도입부에 불과하다.

후예는 태강을 처리한 후, 하왕조는 기본적으로 후예의 손에 장악된다.

처음에 후예는 하왕실을 폐하고 스스로 왕에 오르지는 않았다. 그는 태강의 형제인 중강(仲康)을 하나라왕으로 앉힌다. 그러나, 이때 후예는 실권을 자신의 손안에 확실히 부여잡는다.

중강은 후예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몇년후에 형을 따라 죽는다. 후예는 다시 중강의 아들인 하상(夏相)을 왕으로 앉힌다.

2년후, 후예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하상을 쫓아내고, 하부족을 짐관(斟灌, 지금의 산동성 조현)이라는 곳에 안치한다.

이때, 후예는 철저히 하나라의 왕위를 빼앗았다.

하상은 우울했다. 비록 자신은 백부처럼 사람이 살지않는 곳에서 참혹하게 죽지는 않았지만, 원래 자기 것이었던 모든 것을 빼앗겼다.

복수. 반드시 복수한다. 이것이 하상의 생각이었다. 일련의 새로운 참극은 하상의 이런 생각에 복선을 깔아놓는다.

반란의 성공은 후예에게 거대한 이익을 가져다 준다. 그의 야심은 졸지에 팽창한다. 권리를 일단 손에 넣자, 그는 미녀와 재부에 대한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였다.

후예는 백성에 대한 착취와 민간미녀에 대한 흥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흥해도 백성이 고생하고, 망해도 백성이 고생한다.

이때, 백성들은 후예의 본질을 꿰뚫어보았다. 이 자는 사실 태강과 차이가 없다. 백성과 각 부족의 불만은 두 번째 참극에 무대를 제공한다.

버마제비가 매미를 잡는데, 참새가 뒤에 있다. 후예는 자신의 뒤에 두번째 반란자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반란의 목표는 그 자신이었다.

 

수이(水夷)는 순호(純狐)부족의 두령이었따. 그는 당시에 후예가 제2의 태강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후예를 본받아, 후예의 통치를 뒤집어엎고자 했다.

수이는 아주 천진했다. 그는 정의는 자기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기습의 방식을 택하지 않고, 다른 부족과 연합군을 구성하여 후예를 토벌하고자 했다.

폭군이라고 해서 반드시 망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군사적으로 수이와 후예는 실력차이가 너무 컸다.

연합군이 패배하고, 후예의 군대가 연합군을 치명적으로 공격했다. 소수가 포위망을 뚫은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순호부족은 이 전투에서 사망한다. 수이도 후예의 군대가 휘두르는 칼에 맞아 전사하고, 시신의 수급조차 찾지 못했다.

또 한번 피가 강물이 되어 흘렀고, 시신이 들판에 가득했다.

당연히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후예는 수이에게는 항아(嫦娥)라고 부르는 여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주 예뻤다. 후예는 항아를 얻고 싶어했다. 그러나 항아는 오강(吳剛)과 이미 혼약이 되어 있었다.

다만, 오빠의 죽음에 항아는 분노했다. 그녀는 복수를 하고 싶었다. 자신의 유일한 피붙이를 위하여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항아는 애인 오강과의 혼약을 파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후예의 곁으로 가서 오빠의 복수를 할 기회를 노린다.

그러나, 여자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후예라는 사람은 능력이 뛰어났다. 잘 생긴데다가 재능도 뛰어났다. 복수의 원한을 가진 항아도 자신의 오빠를 죽인 원수를 점점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는 애인은 잊어버린다.

항아에게 있어서, 후예를 죽일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 많았다. 후예가 그녀를 아주 총애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었다. 잠을 자면서 후예에게 칼질을 하거나, 후예가 먹는 음식에 독을 넣는 것도 모두 가능했다.

그러나, 항아는 그녀가 사랑해서는 안되는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살인의 이기는 그녀에게 은근한 사랑으로 바뀐다. 그녀는 이 남자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고, 후예를 위하여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어한다.

이런 변화된 욕망은 항아 자신의 원한에 대하여 잊어버리게 한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생각한다. 만일 우리들 가운데 항아와 같은 사람이 많다면 원한을 사랑으로 바꿀 수 있다면, 많은 비극은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만, 후예는 야심만만하고, 흉포하고 잔인한 인물이다. 이것은 바뀔 수 없는 성격이다. 그는 군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 인민들에게는 가렴주구했다. 그를 반대하는 부족연맹을 패배시켰다.

항아는 일찌기 이 모든 것을 바꿔보려고 했다. 그녀는 여러가지 노력으로 후예를 정치적인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게 하고자 했따. 그러나 권력의 최고봉에 오른 후예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했다.

과연 후예는 금방 무너진다. 후예를 무너뜨린 사람은 그의 심복인 한촉(寒)이었다.

한촉의 반란은 이 살륙극의 두번째 피크였다. 그는 공공연히 후예에 반란을 일으켜서는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간단하면서도 쉬운 방법을 쓴다. 등 뒤에서 칼로 찌르는 것이다.

후예는 비록 포악했지만, 이 한촉을 아주 신임했었다.

중대한 공식장소에, 한착은 항상 후예의 좌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호위 겸 모사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한촉의 마음 속에는 후예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왜 왕위도 그의 것이고, 금은보화도 그의 것이며, 항아와 같이 이렇게 예쁜 여인도 그의 것인가? 이것이 공평한 일인가?

한촉은 계속하여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그보다 못한 것이 무엇인가? 나는 왜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없는가? 설마 나는 평생 이 깡패두목을 따라서 쫄다구로 보내야 한단 말인가?

매번 한촉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 속에서는 열불이 일어났다.

그를 죽이자. 그의 자리를 차지하자. 한촉의 마음 속에는 이런 죄악의 생각이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홍콩르놔르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 역사에서 정말로 일어나게 된다.

비수가 후예의 등을 찌르고 들어갈 때, 후예의 동공에는 희미하게 미소짓는 한촉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핏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후예는 쓰러진다. 평생을 권력쟁취를 위하여 살아온 그는 또 다른 권력을 갈망하는 자에게 피살된 것이다. 후예는 이렇게 세상을 떠난다. 그를 사랑하는 상아와 그가 온갖 머리를 써서 차지한 왕위를 버리고 떠난다.

얻었다. 모든 것을 얻었다.

한촉은 즉위했다. 그가 즉위한 후 처음으로 한 일은 후예의 처 순호, 즉 상아를 차지한 것이다. 상아는 비통해서 죽고자 했다.

이 여인은 오빠의 복수를 위하여 후예의 곁으로 왔으나, 점점 후예를 사랑하게 되는데, 후예가 죽어버렸따. 자신은 다시 후예를 죽인 한촉에게 몸을 맡기고 있다.

항아는 자살을 생각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한 가련한 여인의 비극은 역사에서 계속 상연되고 있다.

항아는 마비되었고, 습관이 된다. 남자는 그저 그녀를 가지고 노는 야수일 뿐이다. 그녀는 한촉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는다.

한촉은 후예와 비교하여, 정치적으로 더욱 잔인한 인물이었다. 군사적으로도 더욱 노련한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아주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능력은 후예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그는 왕위에 40년간이나 안정적으로 앉아 있는다.

후예는 비록 왕위를 찬탈했지만, 그는 최소한 하왕조의 왕실에 혈맥을 남겨주고,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러나, 한촉은 즉위후에 하부족을 몰살시키고자 한다. 그는 하왕조의 종실에 대하여 '종족말살'의 정책을 쓴다. 금방 그는 후예에게 쫓겨난 하왕조의 명의상의 군주 하상에게 독수를 쓴다.

 

많은 경우, 더욱 큰 비극은 복수주의의 정서하에서 탄생한다.

당시의 하상은 후예의 찬탈사건을 겪은 후, 점점 현재의 곤경을 벗어나기 위하여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미 자신의 주위에 암암리에 세력을 키운다. 그러나 한촉은 절대로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후예보다 노련했다. 그는 민감하게 이를 깨닫는다. 그리고 즉시 행동을 취하여 하왕조의 마지막 남은 세력을 말살시키고자 한다.

하상은 비록 복국을 한마음으로 생각하지만, 그리고 세밀하게 준비하지만, 그는 자신의 적수가 이미 바뀌었다는 것을 몰랐다. 약간의 연민의 마음을 지니고 있던 후예는 이미 한촉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후예를 대체한 것은 더욱 무섭고, 흉악하고 성숙한 적수였다.

하상의 최후는 <<좌전>>에 한 마디로 묘사하고 있다: "요()로 하여금 짐관씨와 짐심씨를 멸망시키게 하고, 상(相)은 요에 의하여 죽는다"

여기의 "요"는 바로 한촉과 순호(항아)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이 아들은 아주 대단했다. <<제왕세기>>에는 "요는 힘이 세서, 육지에서 배를 몰 수 있었다" 이를 보면 그는 아주 힘이 센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상은 연합군을 구성하여 요가 이끄는 유궁씨 군대의 진공에 대항하고자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스스로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한다. 하상은 복국을 원했고, 그에게 속했던 모든 것을 되찾으려 하였다. 이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순리에 맞는 일이었다.

다만 역사의 성패는 실력에 따른다. 순리에 맞다는 명분에 따르지 않는다.

하상은 패했다. 그는 시원하게 죽었다. 얼마나 시원한가 하면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을 정도이다.

한촉은 안심했다. 자신의 마음 속의 근심거리가 마침내 제거된 것이다. 다만 한촉은 몰랐다. 새로운 복수가 서막을 열고 있다는 것을.

세번째 참혹한 사건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한 여인을 소개하기로 하자.

후민(后緡), 하상의 처이다. 저명한 군왕 소강(少康, 杜康이라고도 한다. 그는 술을 발명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의 모친이다. 이 위대한 모친에 관하여, <<사기. 오태백세가 제1>>에는 오자서가 말한 것이 남아 있다: "옛날에 유과씨가 짐관을 죽이고 짐심을 토벌했고, 하나라의 왕 상을 죽였다. 상의 비인 후민은 그때 임신중이었다. 유잉(有仍)으로 도망쳐서 소강을 낳았다." 오자서의 말에 의하면, 하상이 죽었을 때, 그의 처인 후민은 임신중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하상과 후민은 서로 사랑하는 한 쌍의 부부였다. 후민은 유잉씨 부족의 딸이었다.

유잉씨는 하상과 연합한 아주 중요한 부락이었다. 앞에서 말한 바 있지만, 누가 강하면 그가 우두머리이다. 이런 강대함은 바로 누구의 장인이 강대한지, 누구의 외삼촌이 강대한지로 된다.

하상은 비록 높은 뜻은 지니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는 자신을 숨길 줄 몰랐다. 그는 회이, 풍이, 황이를 차례로 토벌하고, 우이와는 우호관계를 건립한다. 계속하여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였따. 이런 변화로 한촉으로 하여금 한눈에 그가 복수하려한다는 깨달을 수 있게 했다.

기억해라.

누가 강하면 그가 우두머리이다. 영원히 잊지 말아야할 하상주의 진리이다. 한촉은 마침내 하상의 움직임을 눈치챘다. 방법이 없다. 이는 바로 투쟁이다. 그래서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다. 당연히 네가 죽는게 낫다. 결과는 하상이 피살당한다. 그러나 후민은 살아남았다.

전설에 따르면, 후민은 종의 도움하에, 담벼락의 개구멍으로 도망친다. 그리하여 재난을 면하지만, 상황이 아주 위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민은 남편이 전쟁에서 패하여 피살당했다는 말을 듣고, 아주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눈물을 흘릴 시간이 없다. 위패를 만들어 제사를 지낼 시간이 없다. 추도회를 개최할 시간이 없다. 더더구나 물건을 챙길 시간도 없다. 지금은 그저 한 가지만 생각해야 한다. 도망.

비밀유지공작을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후민은 다른 곳에는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친정인 유잉씨 부족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번에 돌아가는 것은 왼손에 닭을 들고, 오른 손에 오리를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뱃속에 태아를 가지고 가는 것이다.

<<좌전>>의 기록에 따르면, 후민은 두(竇, 지금의 산동성 하택 성북쪽)에 있는 유잉씨 부족으로 가서 숨는다.

후민이 친정에 가서 오래지 않아 해산하고, 남자아이를 낳으니, 바로 소강이다.

당시 후민이 임신하지 않았다면 그녀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남편을 따라 자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호씨와 마찬가지로 한촉에 굴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읽어보았는가? 곽정의 모친 이평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그녀는 나쁜 자들에게 치욕을 당하면서도 시종 신념을 가지고, 마침내 몽고에서 아이를 낳게 된다.

이것이 바로 모친의 위대함이다. 아무리 유약한 여인이라도 아이를 임신하면, 그녀의 성격은 더 없이 강하게 바뀐다.

후민은 바로 그중의 전형적인 대표인물이다. 그러나 강한 모친도 공통된 약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물며 소강은 어려서부터 한마리 용이었다.

이러한 강인함은 후민에게서 하나의 사상으로 변모한다. 원한은 원한으로 갚고, 원수는 원수로 갚는다.

그러나, 이 모자가 편안한 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하지는 말라. 그들은 반드시 하상의 교훈을 생각해야했다. 비록 자신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집에 있지만, 소강의 신분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해서는 안된다. 만일 비밀이 누설되면, 하왕조의 마지막 희망을 지킬 수 없을 뿐아니라, 자신의 친족들까지 연루시키게 된다. 후민은 이 점을 잘 알았다. 그리고 후민은 유잉씨의 지지만으로는 강대한 한촉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비록 먹고 사는데는 걱정이 없지만, 모자는 그저 숨어지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소강은 총명하면서도 내성적이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그는 말이 없고 모친의 말을 잘듣는 사람이었으며, 심지어 지체장애자라고도 하였따. 이점은 그의 부친보다 뛰어났다. 왜냐하면 그가 조용히 지냈고, 자신을 잘 숨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병법에서 말하는 시약(示弱, 약하게 보이는 것)이다.

후민은? 그녀는 이야기를 잘 했다. 한편으로 노래하며 한편으로 얘기했다. 그녀는 남편이 참혹하게 죽은 것과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로 엮었다. 부족의 사람들에게 불러주어서, 다른 사람들의 동정을 샀고, 사람들에게 한촉에 대한 원한을 강화시켰다. 당연히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가장 깊이 감동받은 사람은 아들인 소강이었다. 모친의 이야기속에서, 소강은 한 가지 글자만을 들었다. 그것은 바로 "한(恨)"이었다.

원한이 쌓이면 잔인하게 폭발한다.

이러한 생활을 이십년간 했다. 순식간에 소강이 스무살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숨기고자 해도, 소강의 존재는 한촉부자에게 발견되었다. 왜냐하면 단서를 너무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숨기려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촉의 아들인 요는 하상에게 아들이 하나 있고 유잉씨부족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아주 두려워했따. 풀을 뽑으려면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한촉부자는 이를 잘 알았다.

하나라의 후손을 말살시키기 위하여, 초(椒)를 유잉씨부족에 보내어 소강을 내놓으라고 하게 된다. 말로는 내놓으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암살하겠다는 것이다. 소강은 그 음모를 들은 후, 유잉씨부족의 주도면밀한 안배하에, 순임금의 후예인 유우씨(有虞氏, 지금의 산서성 영제현)부족으로 간다. 유우씨부족은 인재인 소강을 보자 아주 기뻐하며, 소강을 포정(正)에 임명한다. 소강이 유우씨 부족으로 갔는데, 유우씨는 그에게 관직을 주었을 뿐아니라, 이요(二姚)를 그에게 시집보낸다.

원한은 일종의 원동력이고 이런 동력은 쉽게 소멸되지 않는다.

동시에 대부족의 지지를 받은 소강은 자신감이 급증하여 나라를 되찾으려는 희망을 되살린다. 그러나 소강은 여전히 알고 있었다. 한촉을 제거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는 기다렸다. 가장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점점 복수의 시간이 다가왔다.

 

재위40년이 된 한촉은 결국 죽음의 신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십년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한 군주가 만일 사십년이상 재위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수명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것은 완전히 증명한다. 이 군왕은 적어도 어떤 측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한무제를 생각해보라. 55년의 제왕경력을 지니고 있다. 천고일제라 불리우는 강희대제도 61년이다.

아쉽게도 한촉의 사적은 정사에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한촉은 간신이거나 반란자의 이미지일 뿐이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소강이 복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번 성공으로 한촉의 수십년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역사는 이 군왕의 이름조차도 남겨놓지 않을 뻔했다. 아마도 이것은 반란실패자의 운명일 것이다.

한촉이 죽었다. 그의 아들인 요가 즉위한다.

그러나 요는 힘이 세다는 것을 제외하고, 이 자는 부모의 장점을 물려받지 못했다. 전설에 따르면 요는 즉위후, 죽은 형의 형수인 여기(女岐)와 간통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죄명은 약간 억울하다. 남편이 죽었는데, 무슨 간통인가?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싫어하면 모든 것을 스캔들로 말한다. 그냥 가래침을 뱉는 것이나 도로를 가로질러가는 것도 무슨 살인방화처럼 악독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역사학자는 바로 요를 싫어하는 전형적인 무리이다.

과부가 된 형수를 취한 것을 제외하고, 요의 교만, 사치, 음탕, 안일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요가 정무를 소홀히 하고 교만,사치,음탕,안릴했다는 것은 바로 그가 똑똑하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소강이 점점 굴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두운 곳에서 요를 노려보고 있으면서, 기회가 있으면 무너뜨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되찾고자 하였다.

누가 강하냐에 따라 누가 우두머리인지 정해진다.

소강은 하상주시대의 철칙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철저히 깨달았다.

소강은 자신의 영지에서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었다. 원래 하왕조의 구부락도 천천히 그에게 기울어졌다. 여기에 유우씨, 유잉씨의 양대부족의 지지도 확보했다. 외조부모, 외삼촌, 장인, 처남...이들은 외척집단을 이룬다.

마침내 은인자중하던 소강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얼굴에 살기를 드러내고, 눈에는 깊이를 알수없는 살기로 충만했다.

그의 수하들은 알았다. 유궁씨를 처치할 때가 곧 올 것이라는 것을.

피빚은 피로 받는다. 유궁씨는 하부족 3대에 대한 피빚이 있다. 얼마의 피로 갚아야 할 지는 소강 자신도 모른다. 다만 그는 항항 모친이 그에게 얘기해준 원한에 가득한 노래를 기억한다. 이때 그의 심장은 뛰고, 살륙은 그의 눈에서 아주 평상적인 것이 된다.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필요한 희생이다.

소강은 먼저 신하인 여애(女艾)를 내부에서 호응하게 하고, 아들 저()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노신 미(靡)와 연합하여 과(顆), 과(過)의 두 나라를 공격하게 한다.

결과는 아주 순조로왔다. 요를 지지하던 두 나라는 멸망한다. 또 한번의 생령이 도탄에 빠지는 참극이 상연된다. 당연히 소강의 논리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것이다.

저는 유궁씨에게 명궁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왕의 수이, 하상등이 실패했던 교훈을 되살려, 저는 많은 모병(矛兵), 순병(盾兵)을 길렀다.

모든 것이 준비완료된 후, 그들은 즉시 요에 대한 두번째 진공을 개시한다.

결과는 역시 아주 순조로웠다. 요의 왕궁은 금방 소강의 군대에 포위된다.

요의 궁전을 포위공격할 때, 하나라병사는 먼저 여기(女岐)를 오살한다. 이 여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잘못이라면 잘못된 시대에 태어나고, 잘못된 집안에 태어난 것밖에 없다.

곧이어 요의 죽음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복수의 피비린내는 항상 역겹다.

육십여년에 걸친 유궁씨의 하나라를 대체한 국면은 마침내 끝이 난다. 역사에서는 이를 '소강중흥(少康中興)'이라고 부른다. 나라가 망한지 오래된 이후에 하나라는 기적처럼 재건되었다.

이것은 중국역사상 저명한 반란과 복국의 전쟁이다. 다만 이 전쟁의 시말은 정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사기. 하본기>>에는 이 육십여년에 걸친 전쟁을 한 마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나는 이것이 태사공 사마천의 건망증때문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마천은 이 참혹한 전쟁의 시말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전쟁에는 승리자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 오십보 백보이다. 모두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질렀다.

영화 <<적벽>>에 나오는 주유의 말을 빌리자면, "모두 패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애인, 친구와 친척을 희생시키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그들의 불세의 공을 세우기 위하여, 한번 또 한번의 살륙을 저릴렀고, 일막 또 일막의 인간참극을 일으켰다.

비극이다.

후예, 한촉, 요, 수이, 하상, 소강 이들은 사실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저 그들중 누구는 승리자이고, 누구는 실패자일 뿐이다. 그들은 악독했다. 그들은 한번 또 한번의 전쟁을 일으켜 무수한 생명을 잃게 만들었다.

아마도 인류의 마음 속에는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가 보다. 이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순환하게 만들고, 계속하여 반란, 복수와 같은 인간참극을 일으키게 한다.

인류가 모든 것을 마음 속에서 버린 후에, 비로소 선량한 본질이 나타난다. 그리고 결국 이런 인간비극의 역사가 다시 재연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은 그저 혼자만의 바람일 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