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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선진)

사상(商)나라는 왜 자주 천도하였는가?

by 중은우시 2010. 2. 2.

글: 왕입붕(王立鵬)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상나라는 빈번하게 천도(遷都)하였다는 것을.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따르면, "은인천사, 전팔이후오(殷人遷徙, 前八而後五)". 여기서 우리는 상나라가 하(夏)나라를 멸망시키기 전에 8번, 하나라를 멸망시킨 후에 5번이나 수도를 옮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기. 은본기>>에도 이렇게 언급한다: "반경(盤庚)이 하남(河南)으로 넘어가서, 다시 성탕(成湯)의 옛땅에 거주했다. 다섯번이나 옮기고 고정된 거처를 두지 않았다(五遷無定處)" 그렇다면, 왜 상나라는 이렇게 빈번하게 수도를 옮겼을까?

 

첫째, 권력투쟁설이다. 중국교과서에서 채택하고 있는 설인데, 상나라의 통치계급내부에 왕권투쟁이 벌어져서 천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만일 왕권을 두고 분쟁이 생기면, 빼앗은 사람이 그 자리에 눌러앉으면 되지 않는가? 왜 힘들여 빼앗은 수도를 버리고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가? 그리고 이런 일이 우연히 한 번 일어났다면 모르지만, 상나라에서 그렇게 자주 천도가 일어난 것을 설명하는데는 부족하다.

 

둘째, 유목설이다. 상나라사람들은 유목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유목민족이라면 반년에 한번 혹은 일년에 한번은 옮길 것이다. 그리고, 상나라사람들이 이전한 노선은 하남의 북부에서 산동의 남부를 한바퀴 도는 것이었다. 유목민족의 활동범위라면 이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풀밭이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을테니까. 게다가 상나라사람들의 묘를 보면, 비록 양, 말등의 가축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개나 돼지와 같은 가축이 훨씬 많다. 이를 보면 상나라사람들은 유목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하환설(河患說)이다. 즉 황하의 범람으로 계속 옮겨다녔다는 것이다. 다만, 이 설은 왜 상나라사람들이 황하의 주변을 계속 옮겨다녔는지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더 안전한 교동반도나 혹은 하남의 남부로 아예 옮겨가지 않고. 하물며 고대에는 한 씨족의 생존상황은 어느 정도 물과 관련이 있다. 소위 풍수라는 것도 바로 이런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보면 하환설도 설득력이 약하다.

 

넷째, 또 하나의 가능성인데, 초기의 상나라사람들은 조경농업(粗耕農業)에 가까웠다. 그들은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다시 토지가 비옥한 지방을 찾아다녔다. 이렇게 하여 농산물의 수량을 확보하고, 전체 씨족을 먹여살렸다. 당시 사람들은 아마도 화경농업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한 토지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농사짓고 나면,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 한 곳에 눌러앉아 살 수는 없었다. 근세에 이르러, 동나마일대의 도서지방의 원주민들은 여전히 이러한 유농경작(遊農耕作)을 하고 있다. 벼를 많이 심고, 토지의 지력에 의존하는 것이 약화된 이후에 비로소 일정한 지역에 상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나라의 초기에 있었던 빈번한 천도를 보면, 상나라초기의 농업은 조경농업수준임을 알 수가 있다. 조경농업의 경제형태는 초기 상나라 씨족사회의 사회형태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