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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홍콩; 마카오

마카오가 11일 먼저 중국에 귀속된 경위

by 중은우시 2009. 12. 17.

글: 수은하(水銀河)

 

홍콩문제에 대한 영국정부와의 <<연합성명>>이 1984년 12월 19일 체결되었다. 그후 등소평은 "홍콩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마카오 차례다"라고 말했고, 이 말을 기점으로 중국과 포르투갈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홍콩의 협상경험과 성공적인 사례가 있는데다가, 포르투갈은 영국보다 힘이 약했으므로, 당시 많은 사람들은 아주 순조로운 협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포르투갈정부는 협상에서 여러가지 패를 내놓았으며, 한때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중국측의 책임자는 '시인외교가'로 불리우는 주남(周南)이었다. 그는 중국과 영국간의 홍콩반환협상의 대표단 단장이기도 했었다. 마카오반환의 가장 주요한 문제는 반환시간이었다. 주남은 이렇게 회고한다: "처음에는 3가지 생각이 있었다. 하나는 1997년 이전에 먼저 마카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둘째는 홍콩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고, 셋째는 서로 분리하여 홍콩문제를 먼저 해결하고나서 마카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등소평이 지시한다: "식민주의의 꼬리를 다음 세기까지 끌고가지 말라." 이것은 적어도 2000년 1월 1일 이전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홍콩반환협상이 초기에 긴박했던 것과 비교하자면, 마카오반환협상의 초기는 여유있었다. 1986년 6월 30일, 쌍방의 제1차협상이 북경 조어대 국빈관에서 거행된다. 중국내에서 모두 4차에 걸쳐 협상을 진행한다. 매번 협상이 끝날 때마다, 주남은 포르투갈 대표단을 데리고 중국내 경승지를 유람토록 했다. 3번에 걸쳐 본 곳은 각각 승덕, 태산 및 장강삼협이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주남이 홍콩반환협상에서 "마오타이담판(식사등 비정규적인 외교협상)"의 경험때문이다. 쌍방은 관광하면서 문제를 논의했다. 분위기가 가벼워지고, 효과도 더욱 좋았다.

 

경험이 풍부한 협상전문가로서, 주남은 일부 문제에 대하여는 아주 신축성있게 처리했다. 예를 들어, 마카오출생 포르투갈국민의 국적문제, 중국어지위문제, 법률본토화문제등의 협상에서는, 주남이 대국의 풍도를 보여주었고, 문제해결에 충분한 과도기를 부여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주권과 회귀와 관련한 중요문제에 관하여는 조그만큼의 양보여지도 없었다." 주남은 말한다. 이것은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지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포르투갈 대통령 수아레즈가 돌연 개입하면서 사태에 변화가 생긴다. 3차협상이 끝난 후, 포르투갈측은 주남에게 포르투갈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한다. 당시 포르투갈 총리인 실바와 협의과정에서 포르투갈측은 협상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오후, 대통령 수아레즈가 주남을 접견할 때 돌연 이렇게 말한다: "금세기내에 마카오를 반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1세기의 적절한 시기를 잡아서 마카오문제를 해결하자."

 

주남은 그 자리에서 반박했다. "귀국의 협상대표, 특명전권대사는 모두 금세기내에 마카오를 반환하는데 동의했숩나다. 어떻게 당신들이 다시 이의를 제기합니까?" 수아레즈는 만일 우리 단장이 동의했다면, 그가 한 말은 정부를 대표한 것이 아니다. 주남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 "만일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지면, 이후 우리는 누구와 협상해야 합니까?" 그러자 수아레즈는 더 이상 답을 하지 못했다. 대화는 이렇게 교착상태에 빠졌다.

 

주남은 대사관에 돌아온 후, 즉시 전보로 보고했다. 그리고 중국외교부로 하여금 상대방에 압력을 가하도록 요청했다. 중국측의 강경한 입장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원래 다음날 어레인지 되었던 관광일정를 주남이 일방적으로 취소한다. 주남이 추가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당시 포르투갈은 잘못 예측하고 있었다. 1997년 홍콩반환후, 외자가 대량으로 홍콩을 빠져나와 마카오로 올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을 자꾸만 늦추고자 했었다.

 

중국외교부의 강렬한 반대로 포르투갈측의 의도는 실패로 끝난다. 주남이 포르투갈을 떠나기 전에, 포르투갈 외무장관은 한차례 더 협상을 진행하자고 건의한다. 포르투갈측의 태도가 부드러워진 것이다. 1987년 1월, 포르투갈 외무장관은 포르투갈정부최고회의의 결과를 전달했고, 20세기의 마지막 날에 반환하는데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주남은 당시 다시 한번 반박했다: "연말은 현지의 성탄절휴가기간이다. 주민들이 바깥으로 많이 여행을 떠나니, 반환행사의 효과가 제대로 나지 않을 것이다. 며칠 앞당기는 것이 어떻겠는가?" 포르투갈 외무장관은 정부에 보고한 후, 11일을 앞당기기로 결정한다. 즉 1999년 12월 20일을 반환일로 확정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마카오는 20세기내에 중국에 되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