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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영화

상해영화계 몰락의 역사

by 중은우시 2009. 11. 17.

글: 임해용(任海勇)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의 상해뉴스에서는 모두 상해의 한 행사를 크게 보도했다. 그것은 바로 상해영화제작창(上海電影製片廠)의 설립60주년기념행사였다. 왜 내가 이들 뉴스를 보고 들은 이후 왜 뉴스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찬탄의 반응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아주 분명하게 어쩔 수가 없다는 탄식의 소리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분명히 설명하기 위하여, 우선 신중국문화건설측면에서의 전체적인 인상을 말해야 할 것같다. 즉, "신중국의 역사상, 문화대혁명은 하나의 운동이며 하나의 현상이다; 운동으로서 그것은 명확한 기한, 10년이 있다; 그러나 현상으로서 그것은 시종일관 존재한다. 이 운동이 정식 시작되기 전이나 아니면 그것이 종료되었다고 선포한 이후이거나." 나는 상해영화제작차의 이 60년간의 참담한 경영, 몰락의 경력은 바로 위에서 한 말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다.

 

나는 먼저 하나의 개념에 주의해주기 부탁한다. "상해영화제작창"과 "상해의 영화제작창"을 글자 1자의 차이이지만 혼동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이 이치는 우리가 "상해대학"을 얘기할 때와 같다. 절대 "상해의 대학"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후자는 청나라때 탄생하고 풍부한 문화축적을 이룬 강남최고학부 복단대학을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전자는 그저 삼류대학일 뿐이다.

 

이런 비유를 하게 된 것은, 바로 내가 오늘 나침에 본 상해문광의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상해영화제작창의 휘황한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유명한 이름들을 나열하였기 때문이다: 김염(金焰), 조단(趙丹), 백양(白楊), 왕단봉(王丹鳳), 상관운주(上官雲珠)등등. 중국영화계에서 한때 빛나는 스타였던 이들의 이름을 들으면서 나는 먼저 우리의 뉴스에서 자주 써먹는 이화접목(梨花接木)의 수법을 생각했다; 그 후, 나는 바로 한 마디 명구를 생각해냈다: 언급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말하기 시작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들이 "상해영화제작창"의 자랑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상해의 영화제작창"의 자랑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그들의 휘황과 자랑은 신중국의 것이 아니라, 그 이전 민국시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번 강남의 명성(名城) 남통(南通)에 강의하러 간 적이 있다. 남통의 시끄러운 시장거리에는 남통출신의 스타인 조단의 조각상이 서 있다. 그것은 그의 대표작인 <<십자가두>>의 한 장면을 조각한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영화계에서 가장 재능이 있던 남자스타의 영화생애 자체는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는 중국사회의 비극이다. 그의 대표작은 민국시대에 찍은 <<마로천사>>, <<십자가두>>와 <<까마귀와 참새>>등의 영화이다. 그의 유감은 신중국의 초기에 직은 혁명화되고 개념화된 애국주의영화에 있다. 예를 들어, <<섭이>>와 <<열화중의 영생>>등이 그것이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비록 이런 선전영화이지만, 조단에게 기회를 많이 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민국시대 신강군벌 성세재의 감옥에서 10년의 고귀한 청춘시대를 보내게 되고, 다시 신중국에서 악몽시기의 감옥에서 원래 그의 가장 성숙한 연기를 보여줄 황금시기를 그냥 흘려보내게 되었다.

 

매번 백양을 생각할 때면, 나는 그녀의 대표적인 예술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녀는 민국시대의 대표적 영화인 <<일강춘수향동류>>에서 연기한 현숙한 처인 혜분(惠芬)의 이미지이다. 정말 아쉽게도, 그녀가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의 재난을 겪고난 후에, 송경령을 표현하는 드라마인 <<쇄향인간도시애(灑向人間都是愛)>>를 보면서 나는 놀라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정한 문화대혁명의 폭풍은 그녀의 신선한 예술세포를 모조리 말라버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른 대스타들은 나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일강춘수향동류>>의 하문염(何文艶)등으로 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상관운주는 문화대혁명의 칠흙같은 밤에 비분강개하여 자신의 창문에서 뛰어내려 꽃같은 목숨을 잃었다. 아릅답고 애교넘치는 왕단봉은 정치적인 유치함으로 마찬가지로 문예분야의 스타인 장애령과 함께 홍콩에서 상해탄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는 여작가와 같이 금선탈각의 재주가 없었다. 결국 각양각색의 굴욕을 다 받게 된다; 나라의 문을 수십년간 걸어닫았다가 다시 열었을 때,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온 가족과 함께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이 땅을 떠났다. 그 후에 대륙에서 영화를 주제로한 어떤 행사를 하더라도, 그녀는 감히 되돌아와서 참가할 엄두를 못냈다.

 

김염을 얘기하자면, 이번 상해영화행사활동의 여주인공인 김염의 처 진이(秦怡)를 함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찌기 영화계에서 빛나는 영화황제(影帝)였던 김염은 동북으로 가서 그가 전혀 잘하는 분야가 아닌 혁명을 주제로한 영화를 찍을 때, 엄동한설에 술을 마셔서 위장을 해치게 되고, 그후 병석에 눕게 된다. 그리고 이들 금동옥녀부부의 유일한 아들은 원래 건강하고 활발하며 총명하고 멋진 소년이었는데, 미친듯한 문화대혁명의 과정에서 놀라서 폐인이 되어버린다. 진이라는 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집안의 이 비정상적인 원인으로 비정상적이 되어버린 두 남자를 돌보느라고 그녀의 아름다운 인생의 시절을 다 보내게 된다. 그녀가 연기한 <<여람5호>> <<해외적자>> <<청춘지가>>등 영화에서 설교적인 냄새가 많이나는 인물이미지를 연기했는데, 이는 진이로 하여금 집안 집밖에서 모두 비극적인 여인으로 남게 만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 대스타들과 상해의 영화제작창이 세워지기 전에 탄생한 더 많은 대스타들 예를 들어, 호접(蝴蝶), 주선(周璇), 완령옥(阮玲玉)등 그녀들의 전성기와 휘황한 시기는 모두 이 시기에 속하지 않는다. 더더구나 상해영화제작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상해영화제작창을 얘기하자면, 부득이 상해영화제작창의 저명한 인물인 사진(謝晋)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대표작들 <<홍색낭자군>>, <<목마인>>, <<여람5호>>, <<무대자매>>, <<아편전쟁>>, <<고산하의 화환>>등 정치과목 교재와 마찬가지로 바로 주제로 들어가서 애국주의교육을 하는 외에, 우리에게 예술적인 감동을 얼마나 주었는가?

 

상해영화제작창이 자랑할만한 영화배우나 영화가 없기 때문에, 어제밤의 상해TV뉴스에서 상해영화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서 상영집단의 총재인 임중륜은 그의 득의의 작품인 연합원선(聯合院線)을 크게 자랑했다. 그는 상영집단의 상업적인 성공을 가지고 예술적인 창백함을 가리려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왜 일찌기 휘황찬란했던 상해의 영화업이, 상해영화제작창으로 되면서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열기가 차갑게 식어버렸는지. 나는 한가지 원인을 생각했다. 신중국이후, 상해라는 무대는 분명히 변화했다. 이전에는 경제와 문화를 그리는 것이 위주였다. 그런데 갑자기 정치를 주제로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수십년동안, 상해는 중국의 정계의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정치적인 스타는 많이 배출한 것이다. 동시에 상해는 갈수록 중국정치스타의 요람이 되고, 각종 문예의 스타들은 냉대를 받게 된다. 이전에 중국영화계에서 군계일학격이고 유아독존격이었던 상해영화의 지위는 이런 분위기하에서 그 빛을 잃어갔다. 임중륜은 상해연합원선의 수입이 전국영화매표수입의 10분의 1을 차지한다는 것을 가지고 상해영화의 자랑을 삼는 것은 너무 견강부회하다는 느낌이다. 어느 공장의 제품이 상해에서 잘 팔린다고 하여, 그것을 가지고 상해의 공장이 잘 만든다고 할 수는 없고, 상해에 그 제조에 관한 전문가가 많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기껏해야 상해으 소비자들이 소비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뉴스에서 상해영화제작창의 출품작중 강해양이 지도한 엉망으로 만든 영화작품 <<고고1977>>이 중국사람들조차 별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몇몇 국내의 영화상을 받았다는 것을 가지고 상해영화제작창의 휘황한 업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보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언급한 그들 민국시대의 영화스타들이 세상을 떠난 것이 그들에게 커다란 불행은 아닐 수 있다고. 만일 그들이 살아있다면, 상해의 영화계가 옛날에 스타들이 운집하여 서로 재능을 뽐내던 시절에서 현재 단조롭고 재미없고 천박하게 바뀐 것을 보게 되면, 아마도 그들 예술가들은 살아서 죽은 것보다 더 힘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