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적화(翟華)
마침내 그 유명한 <<건국대업>>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일찌감치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내가 가장 의외로 생각했던 것은 이런 장면이었다: 은막의 주은래가 허리를 숙이고, 근무병에게 불을 빌려서, 담배에 붙인다. 그리고 익숙하게 한 모금을 빨고는 파란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이 장면을 보기 전에, 나는 계속하여 주은래는 제1대 개국원훈들 중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은 지도자로 알고 있었다. 주은래와 접촉해본 많은 사람들은 주은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극배우인 이영위(李榮威)는 1964년 북경에서 공연을 했는데, 그때 주은래가 그와 일부 배우들을 불러서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이영위는 주은래의 곁에 앉았다. 이영래는 감격하여 담배를 꺼내서 주은래에게 드렸다. 그랬더니 주은래는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했다.(출처: 인민망: 중국공산당신문>>자료중심>>사해회모>>인물장랑)
당연히, 주은래에게 담배를 피우는 기호는 없었지만, 그가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196년대에 전선가무단(前線歌舞團) 단장을 맡았던 하방(何仿)의 회고에 따르면, 1965년의 어느 날, 전선가무단은 중남해 자광각에서 주은래 등 중앙지도자들과 저녁파티를 개최했다. 저녁파티가 진행될 때, 전선가무단 단장인 하방은 주은래의 곁에 앉아서, 담배를 꺼냈다. 주은래가 물었다: "너는 나이가 몇 살인가?" 하방이 대답했다: "저는 28년에 출생했고, 49년에 총리를 뵈었을 때 21살이었습니다. 그 때 당신은 나보고 아직 어린애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저보다 30살이 많습니다. 제가 올해 37살이나, 총리께서는 67세일 것입니다" 주은래가 말했다. "맞다. 너는 담배를 피우는가?" 하방이 대답했다: "예술 창작을 하려면 밤을 새우는데, 담배를 피우면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피우게 되었습니다" 주은래가 말했다. "나도 담배를 배워본 적이 있다." 하방이 놀라서 물어보았다: "총리께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총리께서는 언제 담배를 피워보셨습니까?" 주은래가 하방에게 대답했다: "1946년 남경에서 마샬과 담판을 할 때, 나는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샬이 질문을 하면, 나는 실제로 이미 다 알아들었지만, 통역이 통역하기를 기다리고, 다시 담배를 꺼내서 천천히 피웠따. 이렇게 하여 생각할 시간을 번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담판중에 원칙을 견지할 수 있었고,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어서 주은래는 웃으며 말했다. "담판이 끝난 후, 나는 다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하방을 아주 즐거워했다(출처: 오약농 글, <<당사문원>> 2007년 제9기)
건국이후, 특히 문혁기간동안 주은래도 담배를 피운 적이 있다. 진양용(陳揚勇)이 쓴 <<고탱위국(苦撑危局): 주은래의 1967년>>(중경출판사)에는 1966년 12월 16일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다:
강청등은 노동자체육관에서 "북경시중학생 자산계급반동노선비판 서사대회"를 개최했다. 주은래도 참가하고 접견했다. 회의에서, 강청은 주영흠(周榮鑫)의 이름을 거명하며 비판했고, 그로 하여금 무대 앞으로 나와서 머리를 숙이고 죄를 인정하게 했다. 당시 회의현장에 있던 목흔(穆欣)의 회고에 따르면, 강청의 돌연한 습격에, 주은래는 아주 진노했다. 그러나 여전히 자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던 주은래가 손을 뻗어 담배 하나를 쥐고는 묵묵히 피우는 것을 보았다. 얼굴색이 아주 무거웠다. 회의를 주재하던 친구는 회의장에 긴장한 분위기와 총리의 분개를 느낄 수 있었다.
주은래의 마지막 비서중 하나인 기동(紀東)의 회고록 <<난망의 팔년>>(중앙문헌출판사)에는 1973년을 전후하여 발생한 사건 하나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주은래는 모택동의 비판을 받았다. '사인방'은 이 기회를 빌어서, 주은래에 대하여 집중포위공격을 행했다. 기동은 이렇게 썼다:
내가 유일하게 한번 주은래가 국매(國駡, 他媽的-타마더-이라는 욕)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사정은 임표일당이 극좌인지 극우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주은래는 이런 견해를 지지했다. 즉, 임표일당은 극좌라는 것이다. 그래서 극좌세력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인방'은 오히려 임표는 극좌가 아니라 극우라고 말했다. 거꾸로 주은래가 '극좌'를 제거해야한다는 방식을 비판했다. 당시 주은래는 문건을 하나 들고, 자세히 살펴본 후에, 문건을 오른쪽 뒤의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나는 한 마디를 분명히 들었다: '마더(媽的). 어째서 극좌가 아니라는 거야. 바로 극좌이지."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한마디 한마디는 분명했다. 나는 총리의 눈썹이 찡그려지는 것을 보았다. 두 팔을 의자의 손잡이에 놓고, 윗몸은 등받이에 기댔다. 두 눈은 창밖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또 한번은 역시 회의에서, 당시 모택동의 비판을 빌어서, "사인방"이 주은래에 대하여 소위 '방조(幇助)'를 진행했다. 실제로는 포위공격이었다. 이 회의상에서 주은래는 다른 사람에게 담배를 한개비 달라고 했다. 나는 그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당시 담배 한 개비를 달라고 해서는 손에 쥐고 있다가 마지막에는 구겨서 뭉그러뜨려 버렸다.
위의 역사기록을 보면, 주은래는 평소에 확실히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아주 힘들 때에 비로소 담배를 손에 댔다. 그렇다면, <<건국대업>>에서 주은래가 담배를 피운 것은 어떤 배경하에서인가? 당시는 1948년 10월 아주 중요한 요심전투가 격렬하게 진행될 때였다. 주은래는 초조하게 전방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담배 하나를 불에 붙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주은래가 한 모금만 빨고는 담배를 머리를 처박고 지도를 보고 있던 주덕 총사령관에게 건넨다.
<<건국대업>>의 이 장면은 아주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감독은 담배 하나를 도구로 하여, 교묘하게 주은래가 담배를 피울 줄은 알지만 즐겨피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표현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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