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송연(宋燕)
오대십국시대의 어느 날, 진(晋)나라 - 나중의 후당(後唐)의 왕궁에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사건에서 왕궁의 상하 사람들은 모두 당시 왕비로 있던 유부인의 수완이 뛰어남을 직접 느꼈다.
당시 진왕 이존욱(李存勖)에게는 세 명의 비(妃)가 있었다: 위국부인(衛國夫人) 한(韓)부인, 연국부인(燕國夫人) 이(伊)부인, 위국부인(魏國夫人) 유(劉)부인. 이들간의 총애경쟁은 치열한 상황이었다. 상대방을 타격하고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하여, 내력이 불분명했던 유부인은 스스로 명문출신이라고 자처했다. 그 당시는 혼란기여서, 모두 사방으로 유랑하였으므로, 호적은 일찌감치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못해서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누군가가 스스로 어떤 출신이라고 말하고, 앞뒤가 틀리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유부인은 운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의 이미지를 잘 쌓아가고 있으면서,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을 때, 점치는 노인 하나가 나타나서는 스스로 유산인(劉山人)이며, 그녀의 아비라고 밝혔다.
유부인의 신세내력에는 애매모호한 점이 있었다. 그녀가 5,6살때, 당시는 전란중이었는데, 그녀나 포로로 붙잡혀 간다. 나중에 미모가 뛰어나서 왕궁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성공을 향하여 전진했다. 당시 그녀를 붙잡아갔던 자는 원건풍(袁建豊)이라고 하는데, 진나라의 군인이었고, 당시도 여전히 이존욱의 군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그녀의 내력을 밝히는 유일한 단서였다. 그래서 이존욱은 원건풍을 찾고, 유산인이 진짜인지 확인해달라고 하게 된다.
원건풍은 유산인을 보고 난 후에 "당초 부인을 얻었을 때, 누런 수염을 지닌 늙은이가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사람입니다"라고 확인해주었다.
가족간의 상봉이 막 이루어질 참이었다. 유부인이 명문의 후예인지 여부도 막 드러날 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작은 예상했지만, 결말은 예상하지 못했다. 유부인은 나타나자 마자 노인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나의 부친은 그 때 불행히도 해를 당했고, 전란중에 죽었다. 나는 그의 시신 옆에서 곡을 하고 있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 후에 떠났다. 네가 어디서 나타난 시골 늙은이이길래, 이렇게 헛소리를 지껄이는가?" 말을 마치고 사병들에게 그를 끌고나가서 곤장을 치게 하고, 반쯤 죽게 만든 다음에 풀어주었다.
신분위기는 그녀의 과감한 대의멸친의 결단으로 넘길 수 있었다.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녀의 출신에 대하여 의심은 품었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는 못했다. 사실 이존욱은 그녀의 출신에 개의치 않았다. 그가 신경쓰는 것은 그녀의 미모였다. 유부인은 나중에 후궁중 총애를 가장 많이 받는다. 그리고 후당이 건립된 후에는 황후에 오른다. 최고의 명예를 얻은 것이다.
출신문제는 그녀에게 항상 골치거리였다. 후당이 건립된 후, 황상과 황후는 수도 낙양을 다스리는 관리인 장전의(張全義)의 집에 들르게 된다. 술이 세 잔 돌고, 다섯 가지 맛의 음식이 나오자, 황후 유부인은 돌연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랄만한 거동을 한다. 그녀는 황후의 신분으로 땅바닥에 꿇어앉아 장전의에게 말한다: "나는 어려서 양친을 잃었다. 노인을 볼 때마다 불쑥불쑥 그 생각이 난다. 나는 당신을 의무(義父)로 삼고 싶으니 허락해달라." 이 거동에 장전의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극력 사양했지만, 황후가 끝까지 우겨서, 장전의는 할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부터 유황후는 드디어 명문가의 부친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아무도 유황후의 신분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말은 하지 않고, 그녀가 말하는대로라고 명문집안출신이라고 말해주고는 있지만, 유황후의 생활에서는 여러군데 그녀가 어렸을 때의 집안교육의 영향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존욱이 진왕으로 있으면서 천하를 얻으려 할 때, 그녀는 비로서 당시 수도인 위주에 거주하고 있었다. 돈에 대하여 아주 집착을 했고, 왕궁의 땔감, 야채, 과일도 모두 가져다 팔아서 돈으로 바꾸었다. 후당시기에 황후가 된 후에는 아예 문무관리들에게 뇌물을 받아서, 자신의 비자금을 챙겼다.
그렇게 많은 돈을 그녀는 어떻게 썼을까? 그에게 어디 쓸 곳이 있었던가? 없었다. 그저 어렸을 때 곤궁한 생활을 하다보니, 그녀는 재물을 모으는 것만으로 안전감을 느꼈던 것같다. 황후가 되어서, 그녀의 재물을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그녀의 유일한 씀씀이는 불경을 베끼는데와 절의 비구니들에게 보내주는 돈뿐이었다.
그녀의 이런 취미는 나중에 그녀의 남편을 망치고, 그녀의 부귀를 망쳤따. 후당에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여러군데서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관리들은 이존욱에게 궁중의 재산을 병사들에게 하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군심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유부인은 그 소식을 듣고, 몇몇 아들을 데리고 1개의 화장대와 3개의 은대야를 가지고 나와서 관리들에게 말했다: "궁안에 돈이 없다. 이것밖에 남지 않았다. 그걸 팔아서 병사들에게 나눠주어라" 이존욱과 관리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급여가 밀리자 갈등은 격화되었다. 이존욱은 결국 군인의 손에 죽는다. 유황후는 이때, 여전히 그녀의 재물만을 생각했다. 그녀는 재물을 가득 싸가지고 도망을 친다. 비구니의 암자로 들어간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녀가 일생동안 힘들여 모았던 재물을 한번도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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