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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오대십국)

이존욱(李存勖): 뺨을 맞고 상을 내린 황제

by 중은우시 2009. 1. 2.

글: 진락석(陳洛夕)

 

통상적인 이치대로라면, 황제는 구오지존이고, 권력이 천하를 뒤흔들게 되므로, 누구든 그를 신선처럼 경이원지(敬而遠之)해야 마땅하다. 만났을 때 허리를 펴고 똑바로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담대한 사람들은 호랑이 엉덩이도 만지는 법이다. 예를 들어, 동위의 권신은 일찌기 효정제에게 주먹을 세번 내지른 적도 있고; 당나라의 구량영은 대담하게도 당문종을 납치한 적이 있다; 오늘 얘기할 이 황제는 더욱 특별하다. 신하에게 귀싸대기를 두 대 얻어맞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상을 내렸다. 이는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바로 후당(後唐)의 개국황제 이존욱(李存勖)이다.

 

이존욱은 당나라말기 군벌 이극용(李克用)의 장남이다. 885년에 태어났다. 무인집안출신이므로, 그는 창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고, 싸움질하고, 말타고 활쏘는등등에 모두 정통했다. 그러나, 흥미가 여러가지였던 그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바로 노래하고 춤추고 연극을 공연하는 것이었다. 그의 황후인 유옥낭(劉玉娘)은 바로 피리를 잘 불어서 마음에 들어 취한 것이다. 그가 젊었을 대는 그의 이씨집안이 중원을 점거한 주온(朱溫)의 일가와 싸우느라고 바빴다. 그는 잠시 자신의 예술에 대한 취미를 접어둘 수밖에 없었고, 정력을 모조리 전쟁터에 쏟아부었다.

 

개평2년(908년) 정월, 이극용은 등에 독창(毒瘡)이 나서 쓰러진다. 그는 자신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이존욱을 침상곁으로 불러서 말했다: "주온은 우리집안의 원수이다. 이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네가 알고 있을 것이다; 유인공(劉仁恭)은 내가 추천해서 올린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나중에 말을 수시로 뒤바꾸면서 주온에게 의탁했다; 거란(契丹)은 일찌기 나와 결의형제를 맺었다. 그런데 맹약을 깨트리고, 안면을 바꾸었다. 이 원한을 풀지 않으면 나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다." 그리고는 그는 아들에게 화살 3대를 주면서 당부했다: "이 세 대의 화살은 세 명의 원수를 대표한다. 너는 반드시 원수를 갚아라." 이존욱은 부친의 한마디 한마디를 마음 속에 새겼고, 부친의 유업을 이루겠다고 맹서한다.

 

이후 15년간, 이존욱은 자기의 맹서를 잊지 않고, 매번 출정할 때마다 이 세 대의 화살을 지니고 갔으며, 싸우고 나면 되돌아와서 종묘로 돌아가서 자신이 부친의 유업을 완성했음을 고했다. 911년, 그는 유인공을 생포하여 연(燕)나라를 멸망시켜서 첫번째 임무를 완성한다; 920년을 전후하여 그는 거란을 격파한다. 그리하여 순조롭게 야율아보기가 부친과의 맹약을 배반한 원수를 갚았다; 923년, 그는 개봉을 공격하여 일거에 점령한다. 그리고 양말제(梁末帝)는 어쩔 수 없이 자결한다. 이렇게 그는 주온의 후량을 소멸시키는 가장 큰 사명을 완수한다. 바로 이 해에 그는 낙양을 수도로 하여, 오대중 후당(後唐)을 세운다.

 

부친이 내린 "세 대의 화살(三支箭)" 임무를 모두 완성하자, 이존욱은 이제 즐겨도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예전에 적들을 소멸시킬 때의 열정을 연극공연과 감상에 퍼붓는다. 당시에 유명한 배우는 모조리 그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가장 높은 녹봉과 가장 좋은 주택과 심지어 절대적인 신임을 주었다. 황제특유의 방식으로 스타를 쫓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희극배우들은 당시의 문무백관들보다 총애를 받았고, 언제든지 황궁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이존욱을 만날 때도 군신의 예를 하지 않아도 되고, 형아우하면서 불렀고, 서로 장난치며 놀았다. 가장 웃기는 짓은 그들은 대신들의 언행을 감시하며, 그 내용을 몰래 이존욱에게 보고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느 대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에 관해서 나쁜 내용을 이존욱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대신들은 분수를 지키면서 생활해도 살신지화를 입을 수 있었고, 배우들은 법과 기율을 어겨도 법밖에서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러한 불공평한 대우는 금방 대신들과 장교들을 실망시키게 된다. 이존욱은 스타배우를 쫓아다니는 과정에서 천하인의 인심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스타배우를 쫓아다니는 것은 하나의 수단이다. 진정한 목적은 바로 자신이 스타배우가 되어,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는 것이었다. 이존욱은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그 자신에게 예명(藝名)을 붙인다. 바로 "이천하(李天下)"이다. 얼굴에 분칠을 하고 친히 무대에 올라 공연을 했다. 무대에서 그는 자신을 황제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보통의 연기자로 생각하고 다른 배우들과 함께 공연에 참가했다. 일찌기 한번은 공연을 하는데, 이존욱이 무엇을 잘못먹었는지 갑자기 큰 소리로, "이천하, 이천하는 어디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가 소리치자마자, 경신마(敬新磨)라고 부르는 배우가 앞으로 달려나와 귀싸대기를 올려부쳤다. 그리고는 "이천하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다. 또 누가 있어 찾는단 말인가?" 그 숨은 의미는 바로 천하를 통치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이라는 것이다. 왜 다른 사람을 찾느냐는 말이었다. 이존욱은 그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고, 얌전하게 그에게 돈을 하사했다.

 

배우들 중에서 경신마는 좋은 편에 속했다. 이존욱이 잘못하는게 있으면 에둘러서 시정하게 했다. 예를 들어,한번은 중모현에서 사냥을 하는데, 이존욱의 말들이 농지를 밟게 되었다. 현지 현령이 말을 막으려고 하자, 이존욱이 화가나서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경신마는 돌연 배우들을 한무리 데리고 현령을 붙잡아 쓰러뜨린 후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이렇게 욕했다: "너는 황제가 사냥을 좋아하는줄 모르느냐. 왜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게 해서, 조정에 세금을 납부하게 하느냐. 왜 농민들에게 쫄쫄 굶으면서 농지를 황제에게 내놓아 사냥을 하도록 하지 않느냐. 너의 죄는 만번 죽어도 마땅하다!" 이존욱은 그 말을 듣고 가가대소를 하며, 현령을 풀어주었다.

 

경신마와 비교하자면, 다른 배우들은 수준차이가 많았다. 그들은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며, 총애를 빌미로 온갖 위세를 부렸다. 각지의 절도사들까지도 그들에게 선물을 보내어 잘봐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가장 심했던 경우는 그들이 환관들과 연합하여, 위주장병의 처와 딸 1000여명을 빼앗아간 것이었다. 오대십국은 칼로 일어서서 정권을 세우는 시대였다. 군심이 왕왕 한 국가의 존만을 결정했다. 이존욱이 이렇게 장병들을 홀대하니, 장병들도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 926년, 이극용의 양자인 이사원(李嗣源)이 병사들의 추대를 받아 개봉을 점령한다. 이존욱은 반란을 평정하고자 했으나, 실패한다. 오히려 그가 평소에 총애하던 배우들의 손에 죽는다. 후당제국은 이리하여 이사원의 시대로 접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