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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남북조)

모용초(慕容超): 거지에서 황제까지

by 중은우시 2009. 10. 8.

글: 송연(宋燕)

 

오호십육국시대에 전진(前秦)이 전연(前燕)을 멸망시켰다. 전연의 많은 모용씨 성을 가진 귀족들은 전진의 관리가 되었다. 그중 모용덕(慕容德)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전진때 장액군(張掖郡)의 군장(郡長)을 지냈고, 노모와 형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나중에 그는 군대에 들어가게 되고, 대군을 따라 진(晋)나라와 전쟁을 치르러 떠나게 되었다. 생사가 불분명하고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하에서, 떠나기 전에 그는 몇몇 친지들에게 소금도(小金刀)를 남기고, 나중에 혹시 서로 헤어져 살게 되면, 서로 찾을 때 증빙으로 삼자고 했다. 그리고는 전쟁터로 떠났다.

 

그가 참가한 전투는 바로 유명한 비수지전이다. 전진의 군대는 대패하고, 군대는 궤멸한다. 정권마저도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모용덕은 전연의 한 왕을 따라 반란하는데 가담한다. 그가 장액군에 남기고 온 가족들은 모조리 주살당하다. 다만, 그의 모친과 임신한 형수만 사면받는다. 모용덕의 부하였던 호연평(呼延平)은 이들을 구해내서 서강(西羌)의 황량한 땅으로 가서 거주한다.

 

그곳에서 형수는 유복자를 낳으니, 그가 모용초이다.

 

몇년후 모용덕의 모친이 세상을 떠난다. 죽기 전에, 소금도를 꺼내어 모용초에게 주면서 그의 신세내력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에게 이 신물을 가지고 숙부를 찾으라고 말한다.

 

모용초 모자와 호연평 부녀의 일행 4사람은 이렇게 친척을 찾는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들은 유랑하면서, 유민들에 섞여서 장안에 도착한다. 구명은인인 호연평은 도중에 죽어버리고, 나머지 몇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모용초는 호연평의 딸을 처로 맞이한다.

 

이때 전진은 일찌감치 멸망했고, 장안은 후진(後秦)의 영토가 되어 있었다. 모용덕은 이미 타향에서 황제에 오르고, 남연(南燕)을 건립했다. 그리하여 후진의 적국중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장안에서, 모용초 일행은 진실한 신분이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이목을 가리기 위하여, 모용초는 미친 척하면서, 길거리에서 구걸하여 모친과 처를 먹여살린다. 그는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은 적도 있었다. 후진의 천왕 요흥(姚興)이 그를 불러서 몇 가지를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는 바보인 척 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모용덕도 그를 찾고 있었다. 모용덕은 일찌감치 형에게 유복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변(吳辯)이라는 사람을 보내어 사방에서 찾도록 시킨다. 오변은 한참을 찾다가, 장안에서 점을 치며 살아가는 종정겸(宗正謙)의 입에서 그들의 소식을 듣는다. 그가 비밀리에 안배하여, 종정겸은 모용초의 이름을 바꾸게 하고, 집안 사람들까지 속이고, 그 혼자만 데리고 후진을 빠져나와 남연으로 들어간다.

 

이때 모용덕은 이미 70세였다.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그리하여 친척을 무척이나 찾았다. 모용초가 입국했다는 말을 듣자, 너무나 기뻐하면서, 300명의 기병을 보내어 영접하게 했다. 두 사람이 만나고, 모용초가 소금도를 바치자, 모용덕은 애통해했다. 그후 모용초를 왕으로 삼고 얼마지나지 않아 모용덕이 사망하니, 황제위는 모용초에게 넘어간다.

 

이렇게 하여 모용초는 거지에서 황제가 된다. 20여년의 인생길은 영화처럼 흘러갔다. 2년후 그는 후진에 신하를 칭하면서 그 댓가로 모친과 처를 맞이해온다. 그는 친히 멀리까지 나가서 영접했다. 이 영화는 여기가 클라이막스이다.

 

아쉽게도 인생은 영화와 같지 않다. 클라이막스후에도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사람의 여러가지 비열한 근성은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은 진흙탕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점점 빛을 잃어간다. 모용초의 이야기도 그러했다. 모친과 처를 맞이한 3년후에 모용초는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여, 강력한 이웃인 진(晋)나라에 망하고 만다. 그 자신도 길거리로 끌려나가서 목이 잘린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26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