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손가하(孫嘉夏)
우친잉(吳琴英)의 리다지퍼 공장은 10년전에 창립되었고, 절강성 이우시의 스타기업이다. 공장의 점유부지는 100무(1무는 200평)이고, 건축면저근 10만평방미터에 달한다. 전성기때에는 1000여명의 직원과 100여명의 기술직 및 관리직이 있었다. 그리고 1000여세트의 국제선진적인 자동화설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연간생산액은 1억위안을 넘어섰다.
작년하반기, 리다지퍼는 금융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모범사례로 현지에서 널리 주목을 받았었다. 그러나, 최근 이 기업이 생산중단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9월 23일, 리다지퍼의 공장지역은 텅텅 비어 있었다.
"현재 이들 설비는 우리가 사들였다. 사들인 돈은 우친잉이 가져가서 직원들의 급여로 지급했다" 이들 설비를 지키고 있던 한 책임자의 말이다.
큰 자물쇠로 잠겨 있는 리다의 사무실구역에서 한 남자가 무료하게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 떠났다. 이렇게 큰 공장에." 그는 쓸쓸하게 말했다.
9월 10일, 리다지퍼는 마지막 생산을 마쳤다. "왜냐하면 전기료를 내지 못해서, 전력공급국에서 전력공급을 해주지 않았다. 리다는 계속 생산할 수가 없었다." 이우시 북원가 가도판사처의 부주임인 뤄샤오쥔(駱小俊)의 말이다. 그녀는 리다지퍼의 사후처리를 책임지고 있고, 여전히 예전의 이 스타기업을 살리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리다지퍼가 소재한 공장구역의 건물관리회사인 이우시차오휘물업서비스유한공사의 건물관리책임자 웨이원(魏文)도 잘 알고 있다. 공장가동중단전에, 리다지퍼는 새로 건설중인 공장건물의 건설노동자들이 '돈을 받으러' 찾아왔다는 것을. 비록 당시에는 안정시켜 돌려보냈지만, 리다지퍼의 꽉막힌 자금줄은 그 단초를 드러냈다. 차오휘물업공사는 지금까지도 리다지퍼로부터 수도비를 받아내지 못했다.
기자는 우친잉에 전화를 했다. 그녀는 피로한 듯이 기자에게 말했다: "아주 바쁘다. 계속 회의중이다"
"현재 이런 상황하에서 그녀에게 뭐라고 말하게 할 수 있겠는가?" 이우지 지퍼업종협회 비서장 우신시(吳新喜)의 말이다. "사태가 발생한 후, 법원은 리다지퍼공장의 일부 완제품, 반제품, 원재료를 경매했고, 약 130만위안의 현금을 확보했다. 이것으로 직원들 급여를 주었다. 공장내의 일부 자산은 차압되어 있다" 뤄샤오쥔의 말이다.
현재, 뤄샤오쥔은 여전히 우친잉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기업은 기업의 생각이 있다. 우리는 기업이 의견을 내놓기를 기다린다. 정부가 구해줄 수 있으면 구해줄 것이다. 그들에게 방안이 있다면 우리는 고려해볼 것이다"
리다지퍼공장의 지금 처지는 아마도 43세의 우친잉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일 것이다. 작년에 금융위기하에서도 수출량이 생산량의 50%를 점하는 이 지퍼공장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다시 리다지퍼공장은 이미 6년의 수출경험이 있었고, 제품을 구미에 수출하는 것이 위주였다.
당시 매체는 2008년 하반기에 보도를 통하여, 리다지퍼를 금융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모범사례로 소개했다. 우친잉도 당시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여, "일찌기 연초에 미주와 유럽의 고객주문에 새로운 상황이 나타났다. 리다는 바로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그후에 회의에서 즉시 금년의 업무임무를 재조정했고, 판매정책을 재조정했다. 에너지소비량을 줄이고, 이윤증가속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 내부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보기에, 리다지퍼공장은 우친잉이 말하는 것처럼 '안정적인 이윤증가속도'를 유지하지 못했다. '바로 안정적인 이윤증가속도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이우는 전세계 최대의 지퍼생산기지중 하나이다. 보통 지퍼의 이윤은 겨우 몇 리(厘)에 불과하다. 생산기업도 개당가격이 아니라, 톤단위로 판매한다. 후가공기업으로서, 리다지퍼공장의 이윤율은 더욱 낮았다. 원재료가격이 인상되고, 인건비가 올라가고, 은행대출이 줄어들고, 외부주문이 감소하는 것이 모두 가치사슬의 최저층에 위치한 이 기업에 타격을 주었다.
아마도 바로 이런 이유로, 이 여자스타기업가는 부동산, 광산에 투자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리다지퍼공장은 이미 가동중단되었고, 이 기업은 소재지건물관리공사에 19만위안의 수도료를 연체하고 있다. 지퍼1개당 1푼의 '고이윤'으로 계산하더라도, 이 채무를 갚기 위하여 리다지퍼은 1900만개의 지퍼를 판매하여야 한다.
우친잉은 지퍼공장이외에, 가족들이 자동차수리공장도 경영했다. 그러나, 이 공장도 몇년전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리다지퍼공장은 자동차수리공장의 채무를 떠앉았다. 그리고 매년 나누어 상환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리다지퍼공장 자신의 경영에 문제가 나타난다. 안정적인 이윤이 없고, 고액의 부채를 지고 있다보니, 점점 무너지게 된다. "금융위기에 만일 기업 자체의 체질이 좋다면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구멍이 있는 기업이라면, 거대한 외부압력까지 겹치게 되면, 아마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만일 리다지퍼의 경영에 문제가 없었더라면, 이 채무를 갚는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상황을 잘 아는 인사의 말이다.
리다지퍼가 가동중단된 원인을 우친잉의 '원가를 고려하지 않은' 토지매입에서 찾는 사람들이 더많다. "개략 2005년경, 우친잉은 75무의 땅을 매수했다." 뤄샤오쥔의 말이다. 현재는 원래 새로운 공장건물을 지으려던 이 부지에 공사가 중단되었다. 아마도 원래 반년내에 완성하려던 전체 공사가 절반밖에는 완료하지 못한 것을 보인다. "은행대출은 확실히 얻기 힘들다. 마침 당시 그녀는 새로운 프로젝트도 있었다" 뤄샤오쥔의 말이다. 전선이 길어지자, 방대한 캐시플로우가 필요해졌다. 이리하여 우친잉은 눈길을 고리의 민간대출로 돌린다. 이는 그녀의 자금조달비용을 더욱 증가시켰다.
"우리가 파악한 숫자에 따르면, 그녀가 지고 있는 민간차입금은 5000여만위안이고, 은행대출은 8000만위안이다. 신공장의 건축공사비는 약2000만위안이어서, 합계 1.6억위안에 이른다" 우신시의 말이다.
"만일 그녀가 오로지 지퍼사업만 벌였다면, 아마도 지금처럼 골치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실이 있더라도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신시는 탄식하며 말한다. 우친잉은 일찌감치 지퍼에는 뜻을 접었다는 것이다. "지퍼는 아주 안정적인 업종이다. 그녀가 지퍼공장을 한 것은 아마도 당시 정부의 일부 정책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기업이 없으면, 정부의 이런 우대정책을 향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후에 그녀는 필요한 75무의 땅을 받아냈다" 우신시의 말이다. 그 후에 우친잉의 사업은 가속화된다. "작년에 그녀는 북경에 부동산을 투자하고, 귀주의 광산에 투자했다. 다만, 그녀는 이들 업종의 문외한이다. 경영효과가 좋지 못했다. 거액이 결손을 입은 것이다" 우신시의 말이다.
우친잉의 첫번째 사업자금은 물류에서 나왔다. 그녀는 이우소상품시장의 인류물류(人流物流)에 의지하여 사업자금을 마련한다. 그후 그녀는 민감하게 느꼈다. 그곳에 세계최대의 지퍼생산기지중 하나이지만, 여러 기업의 경영은 모두 저급지퍼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고급지퍼기업을 만들려고 했다. 이때, 우친잉은 106만위안짜리 설비와 300만위안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급여를 얼마 주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가 회사에 무엇을 가져다주는지를 신경쓴다. 나는 기술자들과 개인대우문제로 따진 적이 없다" 우친잉은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했다. 그녀는 세계에서 유명한 일본 YKK지퍼회사에서 고급기술책임자를 스카우트하기 위하여, 연속 2년간 매주 3번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그녀의 회사로 올 때까지.
그러나, 현지의 적지 않은 업계인사들이 보기에, 리다지퍼는 그저 '제품품질이 비교적 좋은" 것이지, "고급지퍼"는 아니었다. 외부인들이 보기에, 창업초기의 우친잉은 기업의 기술수준을 아주 중시했다. "아마도 비싼 인력자원비용과 비율이 맞지 않는 생산으로 결국 그녀는 쓴 맛을 본 것같다." 이것이 업계인사의 평가이다.
"이 기업은 우리의 특허시범기업이다. 여러해동안 적지 않은 영예를 획득했다" 뤄샤오쥔은 리다는 그저 개별적인 사건이라고 한다. "민영기업은 확실히 각종 문제를 안고 있다. 다만 리다지퍼의 도산은 그 자신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특수한 문제이다"
우신시도 같은 생각이다: "리다지퍼는 이우의 모든 지퍼기업을 대표하지 않는다. 리다의 '마지막 순간'에 생산은 이미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고, 원가를 맞추지 못하는 상황하에서 진행되었다. 아쉽게도 생산량이 너무 적었고, 결국은 채무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것은 이우기업 전체를 대표하는 상황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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