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만당여시인(晩唐女詩人) 어현기(魚玄機)의 타락사

중은우시 2009. 7. 24. 19:58

글: 초현(草玄)

 

1. 피비린내나는 반면교재

 

한 고대미녀가 있다. 지금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당나라말기에는 그녀의 명성이 하늘을 찔렀고, 팬들을 무수히 거느렸다. 지금의 스타여배우에 못지 않았다.

 

"관본위"의 사서는 이렇다: 많은 도살자, 악한, 후안무치한 자를 명성이 뛰어난 영웅으로 그리지만, 무수한 준재들은 그저 연기처럼 날아간다.

 

본문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이 고대의 미녀는 그래도 행운스럽다. 왜냐하면 사서에는 기록해주지 않았지만, <<전당시>>에는 그녀의 44수의 시가 실려있고, 단구 5련도 실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적필기인 <<당시기사>>, <<당재자전>>등에도 그녀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비록 내용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가 전모를 파악하는데 문제는 없다.

 

이 고대의 미녀는 바로 만당의 여시인 어현기이다.

 

만당(당나라말기)에 명문집안에서는 어현기의 삶을 가지고 반면교재로 삼아 딸들을 교육시켰다.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현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얘기해준다. 여자아이가 너무 재주가 뛰어나면 안된다. 재주가 뱃속에 가득 차 있으면, 오줌을 참는 것처럼 참지못하고 내뱉게 된다. 집을 나가 문학클럽에 간다든지 문인들과 교류한다. 집안에 갇혀 있더라도 참지 못하고 담장을 사이에 두고 서신왕래를 하거나, 좋은 집에 시집을 간다고 하더라도 남편에게 버림받게 되고, 기껏해야 그저 사교계의 꽃이 된다. 기녀와의 유일한 차이라면 칭호가 다르다는 것뿐이다. 잘못되면, 어현기처럼 24살에 사형을 받는다. 참혹하게 죽는다."

 

아마도 그 명문가의 여자아이들은 이 피비린내나는 반면교제의 앞에 놀라서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감히 글을 읽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하며, 학문에 마음을 두지 못할 것이다. 영어를 배우지 못하고, 미술을 배우지 못하며, 악기를 배우지 않고, 어떤 것도 배우지 않을 것이다. 현재 유치원 다니는 여자아이들이 배우는 모든 것을 그녀들은 하나도 배우지 않을 것이다.

 

고대의 교육체계는 현재와 천양지차이다. 현재는 아이들이 출발선에서부터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아이들에게 과외까지 해가면서 온갖 것을 배워준다. 고대에는 여자이이들에게 출발선에서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하게 하였다. 서로 다른 체제이고 서로 다른 극단이다. 어느게 더 좋은지는 하늘이나 알 것이다.

 

어현기는 아주 불쌍하다. 그녀가 고대에 누렸던 것은 현대의 교육체계와 같은 것이었다. 당나라말기의 황보매가 지은 <<삼수소독>>이라는 글을 보면, 어현기는 창녀집 딸이다. 기원에 있는 여자아이는 현재의 여자아이들처럼 출발선에서 뒤지지 않기 위하여, 매일 기생어미로부터 혼나면서 금기서화를 배웠다. 다행히 당나라가 강성했기 때문에 외국어는 배울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외국어까지 배워야했을지도 모른다.

 

어현기는 기원에서 현대교육체제에서와 같은 교육을 받은 후, 결국 인재로 성장한다. 여기에 선천적으로 미모까지 갖추어, 출발선부터 이기고 들어갔다. 15,6세때 기원에서 나와서 이억이라는 관료에게 시집간다. 이억은 당선종 대중13년에 장원급제한 인물이다.

 

만일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그것은 어현기 아가씨의 입신출세기일 것이며, 교육효과도 전혀 달랐을 것이다.

 

2. 굴원의 팬

 

그러나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다. 어현기가 당대 장원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것은 정실부인이 아니라 소첩이었다.

 

현대인들은 '소첩'이라는 지위에 대하여 약간의 오해가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의 작은마누라와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정확치 않다. 고대에 소첩의 실제지위는 아주 낮았다. 심지어 사람으로 취급해주지도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지위는 집안의 쇼파나 컴퓨터와 같은 가전제품 수준이다. 소첩이 집안에서 아무리 잘 지내더라도 비교적 비싼 쇼파나 컴퓨터일 뿐이다.

 

어현지는 재색을 겸비했다. 이억이 그녀를 첩으로 삼을 때 적지 않은 돈을 썼을 것이다. 그 돈은 지금으로 따지면 값비싼 브랜드 컴퓨터 가격정도일 것이다. 이억은 장원출신이므로, 당연히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그래서 매일 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온라인게임에 심취했다. 그렇지만 이억의 정실부인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다. 남편을 돌보고 자식을 기르는데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이억을 컴퓨터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고, 더 이상 온라인게임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손해를 보면서까지 이 브랜드 컴퓨터를 중고시장에 내놓으려 한다.

 

이 고관부인의 행동은 고대에는 사람들로부터 무슨 인권이니하는 질책을 받는 행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관료사회에서는 크게 칭찬받고 지지받는 행동이었따. 만일 이억이 정실부인의 말을 듣고 이 컴퓨터를 버린다면, 명성은 높아지고, 관운은 트일 것이다.

 

이억은 정치적인 머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비록 이 브랜드 컴퓨터를 버리기 아깝긴 했지만, 관직도 오르고, 돈도 벌고 싶은 생각에, 정실부인의 말을 듣고 억지 웃음을 지으면서 그 뜻에 따른다.

 

그러나, 남자는 어쨌든 점유욕이 강하다. "내가 쓰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도 쓸 수 없게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어현기는 함의관(咸宜觀)으로 보내어진다. 거기서 여도사가 된다.

 

어현기는 여기에 불만이 많았다. 당연히 욕도 하게 된다. 일반적인 여인이라면 도관에서 욕을 해댔을 것이다. 그러나, 어현기는 일반적인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기원에서 현대교육을 받은 재녀이다. 그저 자신이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탄할 뿐이었다. 만일 남자로 태어났다면 분명히 명사가 되었을 것이다.

 

무엇이 명사인가? <<세설신어>>에 따르면, "평소에 일이 없이 술을 잔뜩 마시며 <<이소>>를 읽으면, 명사라 할 수 있다"

<<이소>>는 어현기가 많이 읽은 책이다. 굴원의 명작이다. 이 글때문에 후세시인들은 모두 '소인'이라고 칭하게 된다. 그리고 문인은 '소객'이라고 칭한다.

 

굴원은 <<이소>>에 뭐라고 썼는가? 여기서 상세히 논하지는 않겠지만 간단하게 이해하자면 낭만주의, 애국주의이다. 무슨 분노청년의 고함도 아니고, 면양의 구차함도 아니다. 그리고 그는 국가가 혼군과 탐관오리에 의하여 엉망이 되었다고 보았다. 이 국가를 구하고 이 세계를 구하여야 한다는 신념에 차있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이 글쟁이가 다른 사람들이 돈버는데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러니 누가 그를 신경쓰겠는가? 그래서 불만에 가득찬 그는 <<이소>>에서 빙빙 에둘러서 불만을 터뜨렸다. 마지막으로, "이 나라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내가 왜 여기서 투덜대고 있겠는가. 너희들이 모두 새로운 생활을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저 산속으로 들어가서 신선이나 되겠다. 너희와 어울려 놀지 않겠다."

 

어현기는 사랑하는 사람에 의하여 도관에 버려진다. 그녀의 심경은 아마도 굴원이나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분노한 끝에 분명 이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이 배신자. 어찌 이리 마음이 악독한가? 내가 너를 그리워할 이유가 뭐냐. 내가 누구냐. 나를 따르던 관료, 재자, 명인이 얼마나 많았느냐. 원망이나 하고 사느니, 차라리 기녀가 되자, 어쨌든 남자는 모두 좋은 것들이 아니다. 나는 너희를 가지고 놀겠다. 내가 재녀인데 뭐가 두려우랴."

 

3. 여도사는 미쳤다.

 

그래서, 어현기는 도관에서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친 다음 몇몇의 가난한 집 딸들을 데려다 기를다. 그들을 잘 기른다. 제자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시녀와 같았다. 시기가 무르익자 어현기는 마침내 도관의 바깥에다가 "어현기 시문후교(詩文候敎)"라는 붉은 종이를 내붙인다.

 

간단한 몇 글자이지만, 이것이 불러일으킨 광고효과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에도 인터넷이 있었다면 이 몇 글자는 분명히 대형 포탈사이트의 전면을 장식했을 것이다. 무슨 게이트보다 훨씬 요란했을 것이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왜 그런가?

 

먼저, 이 광고에 '어현기'라는 세 글자가 무슨 뜻인지를 보자. 당시 장원의 소첩이었다. 재색을 겸비하고 이름을 경사에 날리던 여인이다. 즉 그녀는 고관의 가족에다가, 미녀작가에다가, 스타배우까지를 한 몸에 갖추었다.

 

다음으로 "시문후교"라는 글을 보자. 고대에 일반적으로 집안의 여자아이들이 공개적으로 문학살롱에 참가할 수는 없다. 더더구나 공개적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지는 못한다. 이것은 분명히 간판을 걸고 영업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도관의 바깥"에 걸었다는 것을 보자. 이것은 또 하나의 악착스런 심리상태이다.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전문적이지 못할까 걱정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자면, "여도사(비구니)는 일반적으로 남자와 무슨 교분이 없다. 다만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그녀들은 실제로 남성사회에서 정절의 꽃병이다. 남자들은 이 세계에 이처엄 성결한 여인을 우리는 숭배해야 하지만, 어떤 때는 우리가 훔칠 수도 있다"

 

사실 위 글은 전문적이지만 충분하지는 못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악착스런 심리상태를 전문적인 용어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악착스런 심리상태가 아니다. 아. 어떤 일은 그저 할 뿐, 설명할 수 없다. "황제의 새 옷"처럼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저 무지한 어린아이만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어쩔 거냐. 필자가 그저 무지한 어린아이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지한 어린아이가 되기 전에, 나는 먼저 여도사의 모습으로 나타난 미녀이미지를 하나 얘기하고자 한다. 당현종의 양귀비, 천룡팔부에 나오는 단정순의 처인 도백풍, 홍루몽의 묘옥등이 있다.

 

좋다. 얘기를 시작하자. 대단한 인물들이 기원의 미녀들은 시들하게 느껴져서, 지식여성을 데리고 놀고, 영화배우를 가지고 놀고, 고관의 가족과 놀아난다. 그래도 마지막에 다시 정토와 성녀사회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결론적으로, 나는 여러분들이 이해했을 것으로 믿는다. 어현기의 이러한 광고를 도관의 밖에 내건 후에 장안 전체가 얼마나 들썩였을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어현기는 도관의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고, 문전성시를 이룬 여러 재자명류, 관료부호들을 문 바깥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재주와 용모를 흠모하여 아부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자신을 버린 이억이 이제는 후회막급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소해 한다. 그녀는 분명히 이를 보고 기뻤을 것이다. 기뻐할 수록 타락했다. 그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한걸음 한걸음 심연으로 빠져들어갔다.

 

어현기는 일찌기 숭진관의 남루에 오른 바 있다. 새로 진사에 오른 인물들의 명단을 보고, 시를 하나 지었다. 그 시에서는 자신이 만일 남자였다면 당연히 방에 이름이 올랐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동시에 자신을 배신한 이억을 생각했다.

 

사실 어현기는 갈수록 타락하는 동시에, 내심의 분노는 더더욱 쌓여갔다. 그녀는 이러한 울분을 멍청한 남자들에게 쏟아냈다. 그리고 자신의 시비들에게 쏟아냈다.

 

한번은 그녀가 시비 녹시가 그녀의 애인과 사통한다고 의심했다. 그녀는 녹시의 옷을 벗기고 수백대를 때렸다. 소위 강장 밑에 약졸이 없다고, 녹시도 제대로 훈련받고 재색을 겸비하며 개성이 뚜렷한 여인이었다. 굽히지 않을 뿐아니라, 말대꾸까지 했다. 어현기가 음탕하다고 은근히 풍자했다. 어현기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녹시를 때려죽인다. 가련한 녹시는 죽기 전에 악독한 말을 남긴다: "저 세상에 가서라도 네가 음탕한 짓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

 

필자는 재색을 겸비한 어현기가 왜 이렇게 악독하게 변모했는지 모르겠다. 한번은 아주 착실한 여자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그녀가 돌연 이런 말을 했다: "나도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를 했다. 자주 손님들에게 혼났다. 그래서 매번 내가 다른 곳에 가서 식사를 할 때면, 참지 못하고 그들 웨이트리스를 혼내곤 한다. 아마도 평소에 억압된 것을 전부 풀어버리는 것같다"

 

나는 졸지에 어현기가 왜 그렇게 악독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따. 이억이 그녀를 버렸다는데 대한 울분을 해소하지 못한 것 이외에도, 그녀는 유년기때부터 기생어미로부터 맞아가면서 쌓였던 울분을 그녀가 시비에게 풀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자가 왜 여자를 힘들게 하는가?"라는 애탄이 나오게 되는 점이다.

 

<<당시기사>>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어현기는 죽기 전에 옥중에서 시를 지었는데, "무가지보를 구하기는 쉽지만, 사랑하는 낭군을 얻기는 어렵다(易求無價寶, 難得有情郞)"

 

이것이 바로 어현기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무수한 여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천여년을 전해졌다.

 

어현기가 단두대로 가면서, 내심으로 이 시를 우울하게 읊었을까? 아니면 다른 생각을 했을까?

 

그해에 그녀는 겨우 24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