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독서삼미(讀書三味)
안사의 난(安史之亂)이 발발한 후, 낙양, 장안이 차례로 함락되고, 당현종은 사천으로 갔다(幸蜀). 당현종이 왜 사천으로 갔는가? 어떤 사람은 당현종이 황급히 도망친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당현종이 반란군의 창끝을 피해서 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한 가지 사실은 도망친 것도 좋고, 피한 것도 좋다. 장안을 떠나서부터, 태자 이형(李亨)이 영무(靈武)에서 즉위했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황제위를 양보할 때까지, 당현종은 대당정부의 유일한 합법적인 최고지도자였다. 이 기간동안에 또 다른 정부를 구성해서 영무에서 황제위에 오른 당숙종(唐肅宗)을 직접적으로 말하면, 그의 즉위는 무슨 즉위도 아니다. 그저 불난 틈을 타서 강도짓하는 격이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황위찬탈행위이다. 아주 정교하게 포장된 찬탈극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데 무슨 근거라도 있는가? 먼저 <<구당서>> 권10 <<숙종본기>>의 내용을 보자:
칠월 신유(辛酉). 황상이 영무에 이르렀다. 그 때 위소유가 공급물과 장막등을 준비했는데, 없는 것이 없었다. 배원, 두홍점등이 진언하여 아뢰기를: "이제 역적들이 강상을 어지럽히고, 그 독이 함곡관에까지 흐릅니다. 주상은 황제의 지위를 귀찮아하고, 사천으로 옮겨가셨습니다. 강과 산이 가로막아서, 아뢰는 길이 막혔습니다. 종묘사직과 신기는 반드시 귀속이 있어야 한다. 만백성이 현명한 성군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뜻과 백성들의 마음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전하께서 이를 받아들여서 사직을 안정시켜주십시오. 그것이 왕의 큰 효도입니다" 황상께서 말하기를 "역적을 평정하고, 황상의 가마를 영접해서, 태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좌우에서 모시는 것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여러분은 왜 그렇게 조급해 하는가?" 배원등은 여섯번이나 글을 올렸고, 그 뜻이 아주 간절했다. 황상은 부득이해서 그 말에 따랐다. 그 때가 같은 달 갑자일이며, 황상이 영무에서 황위에 올랐다.
이를 보면, 대신 배원, 두홍점등이 3가지 이유를 제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실질은 바로 당숙종으로 하여금 황제위를 찬탈하게 하는 것이었고, 사람들의 이목을 가릴 핑계와 당당한 명분을 찾는 것이었다. 아래에서 하나하나 분석해보자:
첫번째 이유: "이제 역적들이 강상을 어지럽히고, 그 독이 함곡관에까지 흐릅니다. 주상은 황제의 지위를 귀찮아하고, 사천으로 옮겨가셨습니다." 이 이유는 뒤의 두 가지 이유의 출발점이다. 말하는 것이 마치 실제인 것같다. 개략적인 뜻은, 국가에 반란이 발생하고, 현종황제는 이 국면을 다스릴 수 없고, 촉의 땅으로 피난을 갔다. 그가 황제위를 내놓은 것과 같으니, 황태자인 당신이 황제에 오를 때이다. 이것이 부친을 위하여 근심을 해소시켜주고, 사직을 위하여 곤란을 해결해주는 것이며, 대국을 보전하는 것이며 이치상 당연한 선택이라는 말이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당시 황태자였던 당숙종은 비록 당현종에 의하여 천하병마원수로 임명되었고, 양경(낙양,장안)을 회복하고, 반란을 평정하는 전권을 부여받았지만, 새로 자리에 오른 사람이 호소력이 충분하지 않아서, 더욱 큰 권력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부친의 걱정을 덜어주고, 사직의 곤란을 해결하는데, 반드시 별도 정부를 만들어서, 스스로 황제가 되어야만 하는가? 이런 논리라면, 당현종의 다른 아들들도 모두 이런 '기치'를 내걸고, 별도의 정부를 구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당현종이 사천으로 갔다고는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사천으로 옮겨갔다는 것이 '황제위에 싫증을 냈다"는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일하는 장소가 바뀐 것일 뿐이다. 사람이 아직 퇴위하지 않았지 않은가. 여전히 태자인 이형이 즉위할 충분조건은 갖추어져 있지 않다. 하물며, "행촉"의 기간동안 당현종은 황제위에 싫증낸 것이 아니라, 당시의 국면하에서 여전히 전국이 반란평정업무를 주재하고 있었고, 가능한한 최대로 당나라정부의 최고지도자에 상응하는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다.
1. 중앙과 지방의 인사조정을 진행했다. 최원, 방관, 최환의 세 사람을 재상으로 임명했고, 이를 통하여 위난시기의 중앙정부의 호소력을 강화했다. 인심을 끌어들이고 응집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태자 이형을 천하병마원수에 임명해서, 삭방, 하동, 하북, 평려등의 병마를 통할하고 양경을 회복하도록 했다. 이외에 영왕 이린, 성왕 이기, 풍왕 이공을 각로도통절도사로 임명하여 각각 외진을 나누어 지키게 했다. 이를 통하여 국면을 안정시키고 반란을 평정하는데 긍정적인 조건을 창조했다. 사료의 기록에 따르면, 이 임명조서가 내려지자, "원근에서 모두 경하했고, 모두 정권을 회복시키는데 충성을 다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란군의 두목인 안록산은 가슴을 치며 탄식했다고 한다: "나는 천하를 얻을 수 없겠구나"
확실히 당현종의 행위를 보면 당숙종이 내건 즉위의 이유에 헛점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사람들이 충분히 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두번째 이유: "강과 산이 가로막아서, 아뢰는 길이 막혔습니다. 종묘사직과 신기는 반드시 귀속이 있어야 한다." 이 이유는 첫번째 이유의 연장이다. 아주 객관적이다. 그 뜻은, 현종황제가 사천으로 가서 교통이 불편하다.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데도 곤란하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떠나게 되니 대당강산은 국가정권에 응집력의 핵심이 없어졌다. 이런 상황하에서 황태자가 황제가 되어 사직의 주인이 되어야 비로소 반란을 평정할 수 있고, 사직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이는 시세가 그러한 것이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마외파에서 헤어질 때, 당현종은 고력사를 통하여 자신의 당숙종에 대한 두터운 바램을 전달했다: "너는 잘 떠나라. 백성들이 바라는 바를 신중하게 하고 어기지 말라. 나를 개의치 말라(莫以吾爲意). 서융 북적은 내가 일찌기 잘 대해주었다. 이제 나라가 어려우니, 그들을 반드시 쓸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열심히 잘 해라." 당현종의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나를 개의치 말라"는 말은 음미할 만하다. 나의 이해로 최소한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하나는 부자감정의 각도에서, 태자 이형에게 부황을 걱정하거나 그리워하지 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군신대의의 각도에서, 태자 이형에게 이러한 특수한 시기, 특수한 경우에 상례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반란을 평정하는 제반 조치는 보고해서 승인받을 필요없이 스스로 알아서 결단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의사가 당현종의 본 뜻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는 별론으로 하고, 당현종의 이형에 대한 절대적인 신임을 보냈다는 것은 다툼없는 사실이다.
이런 절대적인 신임이 있었기 때문에, 이형은 황제가 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대로 반란을 평정하는 중임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형은 굳이 별도 중앙정부를 만들어 황제가 된다. 이것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다.
1. 교통이 곤란하므로, 보고나 지시를 받는데 불편하다고 스스로 황제에 오를 수 있는가? 이런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 장수는 바깥에 있을 때는 군주의 명도 받지 않을 수 있다. 어깨위에 반란평정의 책임을 진 천하병마원수이자 태자인 이형은 언제든지 군정등 관련 사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을 보고하고, 어떤 일은 지시를 기다릴 것인지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되고, 교통이 불편한지 여부와 필연적인 관계도 없다. 둘, 당현종은 이미 충분히 수권했다. 이 권력범위내에서, 태자 이형은 해야할 일을 잘하든 못하든 완전히 그의 능력과 책임하에서 할 수 있다. 보고, 지시를 기다리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이지 문제의 관건은 아니다.
2. 대당강산, 국가정권이 응집력의 핵심을 상실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거짓이슈이다. 이치는 아주 간단하다. 당현종이 죽지 않았고, 퇴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찌 응집력의 핵심이 없단 말인가. 설마 현종황제는 그저 장안에 있을 때만 핵심이고, 낙양에 있어도 핵심이지만, 사천에만 가면 핵심이 아니란 말인가?
확실이 이러한 객관적인 조건에 대한 주장은 그저 핑계일 뿐이다. 당숙종이 즉위하는 이유로서 사람들을 설복하기 힘들다.
세번째 이유: "만백성이 현명한 성군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뜻과 백성들의 마음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이 이유는 앞의 두 개 이유에 대한 보충이다. 아주 미혹적이다. 그 뜻은 국가가 어려운 시기에 백성들이 모두 기대하고 있고, 각종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났다. 현명한 군주만이 그들을 도탄에서 구제해줄 수 있다. 이 명군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이다. 태자 이형. 이것은 백성의 뜻이자, 하늘의 선택이다.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이, 당현종의 사천행은 그의 동기가 어떠하든간에 백성들의 기대에 상당한 정도로 배치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당현종을 황제로 인정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니다. 마외파의 육군이 앞으로 나가지 않고, 양귀비를 주살하라고 했다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그런데 이것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영무에서 즉위하기 전에, 백성들은 태자 이형에게 확실히 많은 기대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바로 그에게 현종을 대체해서 황위에 오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태자이고 현종황제를 대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이끌어 반란을 토벌할 총사령관이라고 인정하고 기대한 것이다. 바로 이러하기 대문에 태자 이형이 하서에서 병사를 모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흥분해서, "우리 태자의 대군이 곧 도착한다"고 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이형의 추대자들이 잘 활용한 것이다. 만백성이 현명한 성군을 기대한다는 것은 전혀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포장을 잘 하는 사람들은 왕왕 이렇다. 그저 내가 써먹을만한 "소재"만 있으면, 관련이 있든 없든 별 상관이 없다. 그저 편집하고, 잘라내고, 분식하는 것이다.
마외파에서 당현종과 헤어진 후 이형은 군대를 이끌고 북상했다. 하루는 저녁에 영수에 도착했다. 이때, 하늘에 돌연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백운이 서북에서 일어났고, 수장에 이르렀는데, 누각의 형상이었다. 사람들은 이것이 천자의 기운이라고 했다" 이것이 기괴한 일인가? 사실, 조금도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고민해볼 점이라면 바로 이들 '사람들'이다. 그들은 왜 이런 자연현상을 사람 일과 연계시켰는가? 그리고 이것이 진짜 천자가 출현하기 전의 상서로운 징조라고 했을까? 이것은 사실 포장이다. 태자 이형을 즉위하게 하기 위하여, '왕권신수'의 근거로 삼은 것이고,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평량에서 출발한 후, 곧이어 몇 가지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색깔구름이 하늘로 오르고, 백학이 앞을 이끌었다. 군대가 출발하기 전에 황룡이 황상(이형)이 쉬는 집의 하늘로 올라갔다" 이것은 더욱 생각해볼 점이 있다. 만일, 하늘에 채색구름이 나타나고, 대군이 백학을 놀라게 하였다면 그것은 그저 보편적인 현상이다.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황룡이 집에서 나와서 하늘로 올라갔다니. 그것도 이형이 머무는 집에서 나와서 날아올랐다니. 이것은 개별사건이다. 만일 하늘의 뜻이 아니라면, 누가 인위적으로 이런 광경을 만들어냈을까? 아마 아무도 그것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천자가 누구인지는 이미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분명한 일이다.
대풍 영남에 이르렀을 때, 이형은 황하를 북으로 건너가서 풍녕을 안정시키려고 했다. 이때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서 모래를 끌고 왔다. 한걸음 앞의 사람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군대를 영무로 되돌였다. 그러자 모래바람이 갑자기 멈추었고, 하늘이 맑아졌다. 정말 신기하고도 신기한 일이다. 천자가 될 사람을 정해줄 뿐아니라, 즉위할 장소까지 정해주다니. 이러한 여러가지 사건들은 모두 포장의 극치를 이룬다. 그러나, 포장이 아무리 잘되더라도, 어쨌든 야심을 모두 감출 수는 없다. 위소유는 영무에서 모든 설비를 완비했다고 하는데, 이와 결국 일찌감치 태자의 즉위를 위한 준비를 다해두었다는 말이다. 이것 이상으로 이 사건의 진상을 잘 설명해주는 일은 없다. 그래서, 이처럼 인간세상의 일을 처리하면서 하늘의 뜻을 가지고 조작하면서, 당숙종이 즉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삼았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납득할 수 없게 만든다.
이상의 세 가지 이유가 모두 설득력이 없었지만, 당숙종은 대신들의 여러번에 걸친 반복적인 권유하에 결국 황제의 보좌에 오른다. 이것은 바로 다음을 설명한다: 당숙종의 즉위는 근본적으로 무슨 즉위가 아니라 찬탈이다. 하나의 정교하게 설계된 찬탈극이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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