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경제/중국의 산업

강서(江西) 문항진(文港鎭): 붓의 도시

by 중은우시 2009. 9. 1.

글: 황강(黃康)

 

중국 붓의 제조중심이면서 중국 판매시장의 70%를 차지하는 강서 문항은 지금 붓제조업자들의 버림을 받고 있다. 여기서 독점은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이곳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붓은 에너지가 아니며, 문항은 중석유(中石油)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주붕정(周鵬程)은 문강진 주방촌(周坊村)의 붓판매업자(筆商)이다. 1990년대에 주붕정은 혼자서 하북성 흥륭현으로 가서 붓을 팔았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화관(畵館), 서원(書院), 예술관을 찾아갔다. 그러나, 자신이 정성껏 만든 붓을 사주지 않았다. 많은 대가들은 강서의 붓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의 주붕정에게 큰 타격이었다.

 

주붕정이 붓을 팔기 위해서 적봉시(赤峰市)를 지날 때, 붓가게에 북경(北京) 이복수(李福壽)의 붓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품질이건 가격에서건 모두 상등품이었다. 1자루에 27 위안이라는 가격은 주붕정의 가슴을 칼로 찌르는 것같았다. 당시 수입수준으로 볼 때, 27위안에 붓 1자루를 산다는 것은 상당히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주붕정이 팔던 붓은 당시 1자루에 겨우 몇 마오(毛. 위안의 1/10) 수준이었다. 가격에 그렇게 큰 차이가 나다니. 주붕정에게 이는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고향인 주방촌에서 사람들은 대대로 붓을 만들며 살아왔고, 작은 마을의 인구는 2000명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거의 모든 집안은 전통붓을 제작해왔다. "붓제조방법은 이미 천년이상 전해져 내려왔지만, 지금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좌절을 겪은 후에 주붕정은 깨달았다. 조상의 관념을 가지고 현대에도 살아가려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시험을 해보고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새로와지고 변화하는 것이 붓을 살리는 길이었다.

 

과거에, 주방촌의 각 집에서는 모두 전통적으로 특색있는 붓을 만들었다. 모두 서로 간여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장사를 했다. 원료조달도 서로 도와가면서 했고, 상호이익을 추구하며, 성의껏 협력했다. 이것이 과거에 주방촌에서 붓제조가 성행한 하나의 이유이다. 현재, 그들은 부득이 시장의 천변만화하는 수요에 맞추어야 했다. 붓의 종류를 줄이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돈버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이와 동시에 주붕정은 "붓장사"에서 전통에서 현대로 변신을 꾀했다.

 

"나의 고객은 80%이상이 국내의 공예미술대가들이다. 그들은 붓을 사는데 아주 많이 따진다. 그리고 개방적이다. '시필(試筆)'은 그들이 붓이 좋고나쁨을 가리는 기준이다. 일단 붓이 대가의 인정을 받으면, 그후의 사업은 아주 편해진다. 나는 여러 대가들과 좋은 우의를 맺었다" 주붕정의 말이다.

 

"시필"은 붓판매상인이 공예미술대가의 명성을 이용하여, 마케팅을 하는 일종의 방식이다. 현재, 공예미술대가들은 서화원에서 통일적으로 붓을 구매하지 않는다. 이 권리를 모두 자신의 손 안에 쥐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어떤 붓을 살 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주붕정과 같은 붓판매상인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들 대가들이 붓을 사용해주게 되면, 간접적으로 붓제작업자들의 판매에 길을 열어주는 것이 된다.

 

주붕정에 따르면, 절강의 한 대가는 최근에 그로부터 특제 붓을 몇 개 사서, 그림을 그리는데 쓴다고 한다. 대가의 요구조건에 따라 적합한 원재료를 사서 제작했다. 그리고 앞뒤로 '시필'을 3,4번은 했다. 샘플이 그 대가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붕정의 붓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대가가 붓의 제조방법에서 개선해주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그림을 그리는데 더욱 적합한 붓을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붕정은 계속하여 각지시장에서 붓을 개선하는데 쓰일 원재료를 구한다. 그리고 예상되는 붓의 가격을 대가에게 미리 통지한다.

 

"시필은 전문활동이다. 붓끝의 감촉과 경험을 통해서만 붓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이런 수준이나 경험이 없다. 다만,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잘못 보는 때가 있다." 주붕정에 따르면, 바로 '시필'의 문턱이 있기 때문에, 일단 대가들의 '시필'을 통과한 제품이라면 가격이 급속히 올라간다고 한다.

 

'시필'이외에 문항의 붓제조상인들은 필장(筆莊)을 통하여 붓의 마케팅을 한다.

 

문항에서 크고 작은 필장들이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는데, 겨우 몇 사람이 일하는 작은 작방(作坊)도 한 '필장'이다. 주붕정의 현재 작방에는 기술자가 6명이 있다. 그래도 필장이라고 부른다. "필장의 규모의 대소에 달려있지 않고, 명성이 힘이다"

 

필장은 그저 최신유행하는 하나의 시장마케팅개념일 뿐이다. 실제로 운용방식은 시장에서 대량의 붓원료를 구매하거나, 심지어 완성품을 구매한 후, 자신의 필장의 브랜드를 붙여서, 다시 필장의 브랜드에 의지해서 파는 것이다.

 

비록 운영과정은 간단하지만, 이름있는 필장이라면 붓을 판매하면서 이윤 50%이상에 이른다. 그러나, 붓시장이 너무 적다는 한계가 있어, 그다지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한다는 것이 주붕정의 솔직한 말이다.

 

주붕정의 필장은 문항에서 약간의 명성이 있는 편이다. 국내인사가 와서 구매상담을 할 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 두 나라의 고객도 명성을 듣고 찾아온다. "이는 주로 주선생이 여러해동안의 붓제작경험과 상인으로서 신용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많은 고객을 두게 되었고, 모두가 단골 고객이다." 문항의 선전 간사 공선생의 말이다.

 

"현재의 문제는 전통적인 필장이 시장의 압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붓의 생산량이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붓의 품질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고, 산업클러스트의 문제도 아니다. 여러해동안 붓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스스로 "화하필도(華夏筆都)"라고 자랑하는 문항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주붕정의 필장을 예로 들면, 고객의 주문이 100개를 넘어가는 경우가 기본적으로 없고, 수십개만 주문을 해도 많은 것이라고 한다. 만일 제작방법이 복잡한 경우라면 아마도 십여일을 해야한다고 한다. 시간과 인력이 얼마나 많이 투입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계속하면, 붓을 통하여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먹자니 맛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편이다. 이는 문항의 대다수 붓제작업자들의 경험이다. 시필이건 필장이건 모두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붓제조사업을 크게 하려면, 문항인들은 더욱 본질적인 사고와 탐색을 해야할 것이다.

 

문항과 온주는 아주 비슷하다. 사람은 많고 논밭은 적다. 전해지는 바로는 진나라 이래로, 점차 형성된 "나갈 때 붓을 한 짐 지고 나가면, 올 때는 가죽을 한 짐 지고 들어온다"는 장사모델이 형성되었다. 문항의 사람들은 조상대대로 시장을 돌아다니는 정신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사람이 거의 살지않는 곳까지도 문항상인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장인(張印)은 신세대 80년대생 상인의 대표격이다. 금년 구정때 그는 막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는 금방 결혼한 신부를 데리고 멀리 티벳의 라싸로 갔다. 왜냐하면 그 곳에 그가 여러해동안 닦은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처는 내가 라싸에서 고생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장인의 말이다.

 

자신은 회화를 아주 좋아해서, 대학에서는 평면설계를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장인은 라싸에서 그의 고모부와 토건공사를 시작했다. 어느 우연한 기회에, 장인은 라싸의 문구시장의 이윤이 내지보다 높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붓장사에 관심을 돌렸다. 장인이 보기에, 시장에서 문구장사는 여러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하나는 현지의 물자가 상당히 모자란다는 것이다. 둘째는 시장경쟁이 비교적 적다는 것이다. 셋째는 라싸의 물가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심지어 거의 북경, 상해등 대도시 수준에 가깝다.

 

장인이 라싸에서 경영하는 문구점에는 대부분의 붓의 조달경로가 문항이다. 장인에 따르면, 현재 집에서 그는 3대째 붓판매상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때부터 붓사업을 시작했다. 동생, 여동생도 모두 외지에서 하고 있다. 만일 경영이 잘되면 그들은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사실상 현재 문항에는 1만여명의 붓유통업자들이 남북으로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얻고, 창구를 열고, 제품을 판매한다. 초보적인 통계에 따르면, 문항사람들은 전국의 현급이상 도시에 이미 붓류를 위주로 하는 문화용품판매창구를 5000여개 열었으며, 마케팅네트워크는 전국각지에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금속펜, 붓은 시장에서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많은 문항상인들이 외지에서 장사를 할 때, 한편으로는 문항의 붓문화, 산업장점을 전파하고 있다. 이는 유리한 면이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점은 붓제조상인들의 '집단탈출' 추세이다. 이는 문항이 진정한 붓제조기지가 되려면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항은 내륙에 위치해 있으며, 교통의 장점이 별로 없다. 다만 가장 중요한 점은 문항은 다른 지역처럼 정책적인 우대조치가 없다는 것이고, 세금이 과중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지기업들의 생존압력이 아주 심각하다. 제조업체를 남겨두어야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붓제조업계의 인사가 하는 말이다. 그에 따르면, 문항상인들은 모두 외지에 투자하여 제조한다고 한다. 현지에서 공장을 열고 붓제조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규모를 이룬 업체도 몇 되지 않는다. 많은 경우는 아직도 가내수공업수준이다. 브랜드의식도 결핍되어 있다. 비록 온주, 심천등지의 붓산업이 발달된 지역에서도 대부분의 붓은 문항에서 조달받지만, 문항의 붓제조는 자신의 브랜드가 없다. 그리하여 규모화, 산업화의 경영모델을 갖추기가 힘들다.

 

현재, 문항문화용품기업의 수는 이미 3000여개에 이르렀다. 그중 붓제조기업과 작방은 2100개이다. 볼펜, 만년필등을 만드는 고싱 1000여개이다. 작은 작방식의 전통공예가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규모화 산업화된 브랜드기업이 나타나기 힘들다.

 

약간의 규모를 갖춘 상인들은 모두 외지에 투자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OEM방식으로 운영한다. 적지 않은 문항사람들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설마 나중에 문하에는 그저 허명만 남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