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소하(夏小荷)
시를 쓰는 이 남자는 1683년에 태어났다.
시를 쓰는 남자는 많지만, 그는 특별했다. 그의 이름은 한번 보고, 들으면 잊지 않는다. 창양갸초. 그 뜻은 "범음해(梵音海)"라는 것이다. 그리고 듣기도 좋다. 아마도 그의 이름을 지어준 고승은 일찌감치 그의 일생을 간파한 것이 아니었을까?
일생이라고 말하지만, 창양갸초는 24년밖에 살지 못했다. 그러나, 시인으로서는 충분하다. 14살부터 10년간 시를 썼고,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66수이다. 모조리 애정시이다.
그의 시는 그의 이름처럼 듣기 좋다.
"그 달에 내가 모든 경통(經筒)을 돌린 것은,
도를 깨닫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대의 손가락끝을 만져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해에 산길에서 머리를 숙여 부복한 것은
부처를 만나뵙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대의 따스함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생에 산과 물을 돌고 불탑을 돈 것은
내세에 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중에 그대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바로 이 시이다. 어떤 사람은 곡을 붙여서 부르기도 했다. 사백년간이나 불리워졌다. 오늘 들어보고, 비로소 알았다. 원래 그의 시였다는 것을. 전생, 이승과 내세가 모두 그에 의하여 갈파되었다.
그는 꽃들의 말을 들을 줄 알았고, 바람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내가 공부하는 라마의 얼굴은
마음 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공부하지 않은 애인의 얼굴은
나의 마음 속에 분명하게 비친다"
"그녀를 생각하면 생각을 그만둘 수 없다.
이렇게 배워나가면,
이승에서
부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를 만나면
눈에는 한스러움이
그녀를 만나지 못하면
쓸쓸함이 가득하다.
만나면 말이 없고,
그저 꿈 속에서 서로 함께 한다"
그의 시는 당연히 티벳어이다. 인터넷에는 두 가지 중국어 번역본이 있다. 하나는 고시격률에 따른 고본이고, 하나는 시인 이사의 백화본이다. 후자의 번역이 더욱 마음에 든다. 그의 진실한 말투같다. 고원의 바람이 만든 남자, 꼿꼿한 등, 칼로 깎은 듯한 얼굴, 칼끝같은 시. 커다란 사랑.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애송될 운명이다. 갑자기 세상에 나타난 이 남자는 위대한 마음을 지닌 활불이었다. 불법을 공부하면서, 그는 사랑을 노래했다. 아무도 그렇지 않았다. 불법에 의지하면서도 그는 사랑을 진솔하고 치열하게 노래했다.
그와 같이 총명한 사람이 몰랐을 리는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에게는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것을. 사혈(死穴)이라는 것을. 그는 '활불이 환생'한 사람이지, 세상의 보통사람이 아니다. 세상의 감정을 지녀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래도 사랑했다.
그의 비밀은 큰 눈이 오는 날, 한 행각승에 의해서 드러난다. 낭만적인 사랑은 이로써 끝이 난다. 불법이 용납하지 않는 그의 애인은 사형에 처해진다. 그는 어떡할 것인가? 그에게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돌리고, 부처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다시는 고독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가 답한다: 모든 마음은 태어나면서부터 고독하고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은 부족함을 안고 일생을 살아간다. 그저 그것을 원만하게 만드는 또 다른 절반을 만났을 때, 모르고 지나가거나 혹은 이미 그것을 가질 자격을 잃어버렸다. 그는 다시 부처에게 묻는다: 만일 사랑할만한 사람을 만났는데, 자신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부처가 대답한다: 인간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 세상은 계속 변한다. 애인과 즐기면 된다. 그것이 복인지 화인지는 따지지 말라. 이 문답은 바로 그 스스로 물을 것이고, 부처의 대답은 그가 깨달은 불법이다.
깨달으면 또어쩔 것인가? 어쨌든 화를 불러왔다. 그는 강희제에 의하여 '청규를 지키지 않고 풍기를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폐출되고, 유배된다. 강희제가 어찌 그를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정치가의 심사에 사랑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후궁비빈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창양갸초는 24살 때, 경성으로 압송되어 가다가 나무초 부근에서 피살당한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죽을 때까지도 한가지 물건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한 여인의 영원히 늙지 않는 검은 머리카락이었다고 한다. "만일 생겸이 그저 어느 날에서 계속 중복된다면, 너는 어느 날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너와 사랑했던 날이면 그 어느 날이든. 만일 내일이 세상의 종말이라면, 너는 오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세상이 무너질 때에도 너만 내 곁에 있다면." 그는 정말로 그렇게 해냈다. 그때 그는 부처였다. 투명하고 깨끗하게 성불한 것이다.
또 한가지 설이 있다. 그는 그날 밤에 어둠을 틈타서 떠나버렸고, 행방을 모른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 이상한 설을 믿고 싶다. 그는 이렇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는 것을 믿고 싶다.
그의 고향은 지금까지도 여러가지 노래들이 그를 노래한다. "활불 창양갸초가 풍류적이고 방탕했다고 말하지 말라; 그가 원했던 것은 일반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여러 승려들이 너와 함께 염불하고 기도할 때는 그들이 너를 창양갸초라고 부르지만, 백성들이 너와 함께 춤추고 노래할 때는 그들이 너를 "탕상왕파(宕桑旺波, 창양갸초의 속세이름)"라고 부른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의 고향사람들은 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를 보통사람처럼 취급해주고, 이 부끄럼많은 소년, 이 존엄한 달라이라마를 사랑했다. 티벳사람들은 말한다. 그와 같이 여자를 아끼는 남자는 오백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하다고.
어찌 오백년뿐이랴 천년동안에도 창양갸초 한 사람 뿐이다. 그는 성인이면서 범인이다. 그리고 가장 뛰어난 시인이고 가장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인간세상에 불쑥 나타났다가 늙어서 사라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멀어져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사람들은 그를 잊지 못하고, 오랫동안 그리워하게 하는 것이다.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 > 역사인물 (청 중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효장황태후: 왜 죽은지 37년만에 비로소 묻혔는가? (0) | 2010.01.12 |
---|---|
롱커도(隆科多): 강희제 유조의 유일한 목격자 (0) | 2009.11.20 |
홍임휘(洪任輝)사건: 청나라 80년 쇄국정책의 도화선 (0) | 2009.01.20 |
납란성덕(納蘭性德) : 미인과 결혼하면 단명한가? (0) | 2008.02.29 |
도광제(道光帝) : 중국역사상 가장 검소했던 황제 (0) | 2006.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