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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증시

양하주창(洋河酒廠): IPO와 기업내부갈등

by 중은우시 2009. 8. 15.

글: 도희년(陶喜年)

 

양하주창은 증감회IPO심사를 통과했다. 이는 전체 숙천(宿遷)의 신경을 건드렸다. 만일 특별한 일이 없다면, 숙천시 숙성구(宿城區) 양하소진(洋河小鎭)에 위치한 양하주창(공식명칭은 강소양하주창주식유한공사, 이하 '양하주창'이라 함)은 이 도시의 첫번째 상장회사가 될 것이다. 2009년 7월 29일, 양하주창은 순조롭게 증감회의 IPO심사비준을 통과했다. 최종 상장과는 이제 한걸음만 남았다.

 

양하주창의 상장은 숙천의 역사를 새로 쓰는 외에 현지인들을 가장 진동시킨 것은 125명의 평균재산이 5000여만위안(약90억원)에 이르는 부호가 하룻밤만에 대거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중 양하주창의 동사장인 양정동(楊廷棟)과 총경리장우백(張雨柏)은 재산이 모두 10억위안(약1800억원)이 넘게 된다.

 

125명의 관리직이 졸지에 갑부가 되는 것과 더불어, 양하주창의 3000여명 직원들의 불만과 불평도 터져나온다. 이 125명은 상장이 된 후에 평균개인재산이 5000만위안가량이 될 것이다. 이 125명의 억만장자중에서 20명은 중간관리급도 아니다. 그저 판매업무사원이다. 겨우 판매사원이 지금은 재산이 천만위안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경제가 상대적으로 낙후한 강소북부지역에서는 엄청난 것이다. 누가 그들에게 이렇게 큰 재산을 가져다 주었는가? 바로 국유기업 개조후 상장이다. <<강소양하개조상장은 왜 125명의 파티인가?>>라는 글에서 하초(夏草)가 이를 밝힌 바 있다.

 

양하주창의 <<주식모집설명서>>에 따르면, 회사의 총주식은 40,500만주이고, 이번에 발행하는 주식은 4500만주이다. 발행후 발행주식총수의 10%를 차지한다.

 

양하주창의 3대주주는 양하집단, 남천무역과 남해무역이다. 각각 38.61%, 12.61%, 11.83%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 양하집단은 숙천시국유자산관리위원회가 100% 지배하는 기업이다. 남천무역, 남해무역은 종업원지주기업이다.

 

종업원중에서 29명은 지분비율이 0.7%이상이다. 만일 이회사의 전년도 순이익 7.43억위안을 기초로 한다면, 30배의 PER로 볼 때, 양하주창의 시가총액은 222.9억위안에 달할 것이다. 이는 양하주창이 상장에 성공했을 때, 상술한 29명은 억만장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머지 근 100명은 천만장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중에 동사장 양정직은 양하주창의 1.2%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남천무역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양하주창의 4.12%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총경리 장우백은 직접 양하주창의 0.81%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남해무역을 통하여 양하주창의 4.12%지분을 보유한다. 양자의 재산은 10억급에 달한다.

 

하초에 따르면, 양하주창 IPO는 몇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가장 민감한 것은 주주의 자금원이다.

 

양하주창 경영진으로 구성된 두 개의 지주회사중에서 남천무역의 등록자본금 및 납입자본금은 각각 54.48만위안이다. 남해무역의 등록자본과 납입자본은 51.12만위안이다. 두 회사는 강소양하주창의 2200만주를 인수하면서, 모두 5,258만위안의 현금을 지급했다. 겨우 105.6만위안의 자본금 이외에 나머지 5.152.4만위안의 자금원은 모두 두 회사의 주주로부터 차입한 돈이다. 그중 대부분의 차입금은 친척과 동료들로부터이다. 동사장 양정동의 예를 들면, 그는 남천무역에 실제출자하고 대출로 제공한 것이 890.4만위안이다. 그중 자체자금은 120.4만위안이고, 나머지 770만위안은 모두 개인차입금이다. 양정동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은 모두 23명인데, 그의 장모, 큰형, 둘째형, 조카, 동창이 각각 400만위안 혹은 500만위안을 빌려준 외에, 나머지 18명의 대출자는 모두 회사동료이다. 그리고 1인당 대출금은 모두 30만위안이다.

 

"어떻게 동료로부터의 대출금이 모조리 30만위안인가? 강소 양하주창에 돈있는 직원이 그렇게 많은가?" 하초는 이 두 종업원지주회사의 자금원이 허위진술된 것으로 의심한다. 그리고 아마도 위법위규할 것이라고 의심한다.

 

이외에,그는 상장의 희망이 이미 확실해보이던 2006년에 두 종업원지주회사는 5,258만위안의 돈으로 상장회사의 근 25%지분을 인수했다. 이는 헐값매각의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2006년 회사중고위층은 2.39위안/주로 인수했는데, 자본증자후에는 9주로 증가했다. 발행후의 PER 30배로 계산하면 주당 시가증가가 근 백배에 달한다.

 

양하주(洋河酒)의 명성은 이미 수백년이 되었다. 1979년에 양하주창에서 생산한 양하대곡(洋河大曲)은 중국의 "팔대명주"로 뽑혔다.

 

양하진은 숙천과 사양(泗陽)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양하주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곳이다. 양하주로 이름난 고진으로써 술향기가 넘쳐난다. 직공병원, 호텔에서 생활구역까지 양하진의 곳곳에는 이 오래된 국유기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외계에서 양하주창의 상장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과는 달리, 8월 1일, 기자가 이 곳에서 취재할 때는, 양하진과 양하주창에서는 모두 양하주창의 상장이 통과된 것을 축하하는 플랭카드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백주업계의 관례에 따르면, 한여름의 7,8월에는 양조노동자가 모두 휴가를 가기 때문에, 커다란 공장지대는 텅 빈 것같았다.

 

양하주창의 생활구역에서 시대주보 기자를 만난 직원들은 둘러앉아서 카드를 쳤고, 회사상장에 관해서는 언급을 꺼렸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얘기하다가 보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회사의 상장이 통과되기 전후하여, 이 곳의 인터넷은 모조리 끊겼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상장에 관한 것을 얘기할까봐 우려한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공개적인 경우라면 아무도 기자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불만을 얘기할 수 없다. 너희들이 돌아가고 나면, 위에서 우리를 찾아온다. 우리는 모두 그게 두렵다." 카드를 치던 직원의 말이다.

 

단지 1대1의 상황하에서만 양하주창의 직원들은 시대주보의 기자에게 자신의 회사상장에 대한 의견을 얘기했다.

 

"상장은 회사전체적으로 분명히 좋은 일이다. 우리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불만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몇대가 계속 양하주창에서 일했다. 지금 회사가 겨우 좋아졌고, 우리의 과실을 딸 수 있게 되었는데, 모조리 100여명의 경영진이 가져가 버렸다" 직원 두빈(가명)의 말이다.

 

두빈의 일가 3대는 모두 양하주창에서 일했다. 그는 요즘 회사경영관리가 개선되었다는 것과 직원대우가 제고되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지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급여는 모두 2000위안이상이다. 그리고 연말에는 몇천위안의 상여금도 나온다. 현지에서는 괜찮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들의 불만이 잠재워지지는 않는다. 2006년 4월, <<직공안치방안>>이 나온 다음 달, 국유기업개조에 불만을 품어 양하주창의 직공은 집단파업을 했다. 4일간 지속되었고, 여러 곳에서 관심을 나타냈따.

 

또 다른 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2003년경, 양하주창의 경영이 곤경에 처했다. 일찌기 직원들에게 자금을 모았다. 1인당 5000-8000위안을 냈다. 수천명의 직원을 계산하면 수천만위안의 자금이다. 그러나 개략 2006년쯤 이 자금을 직원들에게 되돌려주었다. 당시 직원은 이미 상장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돌려받지 않으려 했다. 2,3개월동안 대치하다가 결국은 반환받고 말았다.

 

"기업이 위급할 때, 직원들이 돈을 내서 함께 난관을 넘었다. 그러나 회사가 상장할 때는, 경영진만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이 직원은 이를 "강을 건넌 다음에 다리를 철거하는 것"으로 비유했다.

 

그러나, 양하주창의 경영진은 다른 견해를 보였다.

 

몇번을 연결해서, 8월 3일 오전, 양하주창 남경 사무실구역에서 양하주창의 시장부장 주위가 회사를 대표하여 시대주보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주위는 대학졸업후 양하주창에 취직했다. 이미 9년이 지났다. 종업원지주의 남천무역 최초의 63명 주주중 주위의 지분량은 11위에 해당한다. 주위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양하주창에서 10년이 되었고, 저축도 많지 않았다. 2006년도에 출자할 때, 주위는 은행에서 5만위안을 대출 받았고, 나머지 15만위안은 누나와 한 동료가 빌려주었다.

 

"감정적으로, 나는 직원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만일 역사의 각도에서 보자면, 현재의 각도에서 되돌아보지 않는다면, 견해가 달라질 것이다. 당초 주식을 매입할 때는 모두 양하의 미래에 대한 판단, 신뢰가 현재처럼 분명하지 않았다. 당시 대다수는 모두 망설이고 배회했다. 기업의 미래에 자신감이 없는 상태였따. 많은 경영진은 모두 행정명령의 형식으로 규정된 시간내에 인수자금을 납입하라고 요구했다. 많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주식인수후에 압력과 리스크를 견뎠다. 은행과 친척으로부터의 차입금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회사의 한 부총경리, 한 부총공정사와 한 판매부총경리가 사직했는데, 거의 모두 원가에 지분을 전부 양도했다. 그렇게 하여 이 부담을 벗어난 것이다." 주위의 말이다.

 

주위는 말한다. 한편으로 당시 정책이 종업원지주를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법>>은 주주의 수를 제한했다. 당시에 만일 직원들에게 강제로 주식을 인수하라고 했다면, 만일 회사가 파산했을 때, 직원은 각종 수단으로 회사에 주식을 돌려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떡할 것인가? 그는 회사발전이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출로라고 본다. "만일 기업이 파산하면, 직원의 이익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금원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주위는 말했다. 만일 문제가 있었다면, 증감회의 전문심사때 일찌감치 드러났을 것이라고 한다.

 

회사고위층의 주식인수시의 경영상황에 대하여 일부직원은 주위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설명해야할 것은 2002년 개조이래로 양하주창의 주주배당은 계속하여 괜찮았다고 한다. 양정동을 예로 들면, 2002년 12월 주식인수시, 108.0836만주는 여러번의 자본적립금으로 한 증자, 주식배당을 통하여 486.3762만주가 된다. 6번의 이익배당을 통하여 1주당 3.76위안의 배당금을 받았다. 그런데, 이 주식을 인수한 원가는 겨우 1.53위안에 불과하다.

 

양하주창의 두번에 걸친 IPO신청시에 계속하여 이 125명의 주주출자자금원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이에 대답하기 위해서인지, 2007년 양하주창은 개조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상장심사통과에 실패한 후, 2008년 6월, 숙천시 인민정부는 <<강소양하주창주식유한공사 2006년 증자관련사항에 대한 확인 서한>>(숙정함[2008]22호)을 내려서, "양하주창 경영관리자(중간층이상의 관리인원과 업무, 기술핵심인원을 포함)가 남천무역, 남해무역에 출자하고 대출을 제공하여 발행인증자자금으로 삼았는데, 자금원은 상술인원의 자체조달자금(자체자금 및 친척 친구 동료로부터의 차입)은 자금원이 합법적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양하주창의 증자과정에서는 양하집단, 양하주창을 포함한 국유, 국유지주기업의 대출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유재산권 혹은 자산을 목적물로 하여 저당, 질권설정, 현금화등의 방식으로 자금을 모집하지 않았다.

 

숙천시인민정부는 심지어 만일 남천무역, 남해무역의 지분구조, 주주, 출자, 자금원등에 분쟁이나 이의가 나타나면 숙천시인민정부가 책임을 부담하겠다고까지 승락했다.

 

양하주창의 125명의 하룻밤만에 갑부가 된 관리층중에서 양정동, 장우백은 가장 관심을 끄는 두 사람이다.

 

1960년에 태어난 양정동은 양하주창에 오기 전에 사양현위 부서기였다. 1997년 숙천이 시로 승격한 다음 해, 양정동은 양하주창으로 와서 당위서기, 동사장을 맡는다. 양하주창에 있는 동안, 양정동은 전국노동모범에 뽑히고, 16대, 17대 대표를 맡았다.

 

2002년말, 양하집단이 개조되면서 주식회사인 양하주창이 성립된다. 양정동보다 4살어리고, 당시 사양현 부현장으로 있던 장우백이 양하주창의 총경리가 된다. 장우백은 이전에 사양의 여러 국유기업의 책임자를 지냈다. 그리고 현경제위원회에서 여러해동안 일을 했다. 현지관리중에서는 경제를 아는 것으로 유명했다. 장우백이 부임한 후, 양하주창의 "남색계열" 브랜드가 나오게 된다. 이것은 양하주창이 기사회생하게 되는 핵심조치였다. 사실상, 바로 남색경전계열이 성공했기 때문에, 양하주창은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성공적으로 상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증감회에서 한달을 자더라도, 회사를 상장시키겠다" 2002년, 양하주창의 한 고위층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귀주마오타이, 우량예등 중국팔대명주중 7대명주가 모두 상장에 성공했다. 오직 소북의 작은 도시에 위치한 양하주창만이 낙후된 것이다.

 

업계인사들이 보기에, 이는 양하주창이 편벽한 곳에 있어 관념이 낙후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사양의 한 관리는 이렇게 말한다 1990년대, 상해의 모증권회사가 사영에 와서 양하주창의 상장을 추진한 바 있다. 양하주창의 한 간부는 상장이 뭔지를 몰랐다. 그저 이 증권회사가 그저 자금찬조받으러 온 줄 알았다. 그래서 수하에게 이렇게 분부했다: "만일 가지 않으면, 그들에게 2,3백만을 찬조하면 그만이 아니냐"

 

2002년 양하주창은 개조를 통해서 상장하려고 할 때였는데, 양하대곡에 의존하여 겨우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었고, 이미 몰락세가 뚜렷했다. 고객들이 양하를 찾아오는데 익숙했으므로, 백주업계의 시장화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국면에 적응하지 못했다. 시장점유률은 1%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엉망인 기업을 증감회에서 한달이 아니라 일년을 자더라도, 상장될 수 없었다." 당시 개조에 참여했던 관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가 보기에, 당시에 경영진은 회사지배구조를 바꾸는 방식이 아니라, 죽어라 달라붙는 방식으로 상장을 추진하려고 했었다. 이는 양하주창이 얼마나 국유기업의 관념에 물들어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2003년, 개조후에 민영자본이 들어온다. 그리고 14명의 간부층에 주식보너스제도를 실시한다. 양하주창은 남색경전의 중고급술을 내놓는다. 시장에서 점차 반응이 좋아졌다. 2006년이 되어서는 남색경전이 점차 백주시장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삼년동안 회사의 영업수익은 각각 10.71억위안, 17.62억위안, 26.82억위안으로 올랐다. 백주업계의 영업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10%, 1.48%, 1.74%로 올랐다. 지금 백주업계의 7개 주요상장회사와 비교하자면, 양하주창의 영업수익, 순이윤, 순자산수익륭등 지표는 모두 4위안에 든다.

 

숙천의 최고기업으로서, 양하주창의 세수는 현지 재정수입의 10%이상을 차지한다. 강소백주업계의 "삼구일하(三溝一河, 쌍구, 탕구, 고구와 양하)" 중에서 2008년 양하주창의 시장점유율은 13.53%에 달하여, 이미 의심의 여지없는 최고브랜드가 되었다.

 

만일 이번 상장과 10억재산이 관심을 모으지 않고, 양정동, 장우백의 두 정부관리출신의 국유기업경영진은 분명해 대다수 양하주창의 발전과정에서 이익을 취한 직원의 신임과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기업상장과정에서 이익을 전혀 얻지 못한 3000여명의 직원들과 어떻게 함께 잘 지내느냐가 앞으로 그들이 직면한 가장 골치아픈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