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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오늘

북경호적인구(北京戶籍人口): 왜 항상 우대받는가?

by 중은우시 2009. 8. 10.

글: 이자양(李子暘)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호적제도(戶籍制度)와 계획생육제도(計劃生育制度, 가족계획제도)가 맞물려서, 이같은 황당한 지경에 이르게 될 줄은. 모든 정치풍자나 블랙유머드라마보다 심한 정도이다. 어떤 공민은 자신의 나라에서, 이미 결혼조차 할 수가 없다(2009년 8월 6일자 남방주말을 보라). 그들의 자녀는 자신이 다니던 지방에서 대학입시에 참가할 수도 없다. 반드시 자신이 아마도 한번도 가본 적도 없는 곳에 가서 대학입시에 참가해야 한다.

 

듣기로 이런 사람들은 무슨 공민이 아닌 것같다. 그냥 러시아의 농노(農奴)나 미국의 흑인노예같다.

 

외지대학생은 북경에서 졸업한 후, 직장에서 채용되는 경우, 만일 정식 호구(戶口)를 취득하지 못하면, 집체호구(集體戶口)를 얻을 수 있다. 이것만 해도 운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집체호구는 결혼할 때 아주 골치가 아프다. 만일 결혼하면 반드시 호구를 옮겨가야 한다. 가정호구로 바뀌고, 옮겨가면서 집을 사야 한다. 현재 백만위안이 넘는 주택가격으로 누구나 집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졸업한지 몇년도 되지 않는 학생이라면 도저히 부담할 수 없는 수준이다. 자신의 집이 없으면, 정식의 호구카드를 만들 수 없다. 호구카드가 없으면, 민정국이 결혼증을 발급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집체호구 안에서 결혼등기를 해주면 안되는가? 안된다. 만일 거기서 결혼하면, 집체호구의 관리자는 반드시 계획생육을 준수해야 하고, 아이를 초과해서 낳아서는 안된다. 만일 그것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의 관료생애는 끝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체호구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것도 안된다. 농업호구라고 해서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라. 호적제도의 제한은 쌍방향이다. 소도시도 마찬가지이다. 나가는 것은 허용하지만 들어오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비록 방법을 강구해서 결혼했다고 치더라도, 네가 낳은 아이는 인도의 불가촉천민과 같은 부류가 된다. 비록 불가촉자는 아니지만, 때가 되면,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너의 아이가 북경의 학교에서 즐겁게 다닐 때는, 다른 아이와 별다른 구별이 없다. 매일 노력해서 성적이 올라 우수한 학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입시때가 되면, 바로 멍해질 것이다. 너의 아이는 반드시 너의 원래 호구소재지로 가서 시험에 참가해야 한다. 과목이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거기에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없다.

 

가장 우울한 것은 어느 구체적인 사람이 너를 괴롭히는 것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구를 붙잡고 화풀이를 할래야 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모두 선량하다. 모두 국가를 잘 만들고자 하고, 너를 괴롭히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너는 놀림감이 된 것이다. 놀림감이 되면서도 전혀 흔적도 없이.

 

왜 이렇게 엉터리규정이 많은가? 이 정부는 왜 이렇게 자신의 공민을 온갖 방법으로 못살게 구는 것일까? 원인은 바로 사람들이 이렇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제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북경이라는 대도시로 물밀듯이 밀고 들어와서, 북경호적인구가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더욱 격렬한 경쟁에 휩싸이고, 아마도 외지인에게 패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드시 그들을 보호애햐한다. 반드시 북경호적인구를 보호해야 한다.

 

헛소리다.

 

먼저 말할 것은, 나는 북경호적인구를 가진 일원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밝혀야만, 속이 더럽고, 이해력이 낮은 사람들이 내가 그저 화풀이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년전에 나는 소산권방을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을 욕한 바 있다. 사람들은 내가 소산권방을 샀기 때문에 그렇게 분노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사실 소산권방을 사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앞서나가는 경제관념이 없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나의 사사로운 이익과 당연히 관계가 있다. 나의 실제수입과 경제수익은 당연히 주변사람들의 수준, 노력, 창조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나는 이렇게 황당하고, 속좁은 사회에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우수한 인재들이 이 도시에 다 함께 가능한한 모여살기를 바랄 뿐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진취적이지도 않고, 황당하고 가소로운 사람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사람은 사람이다. 보호구역에 있는 동물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북경에서 태어났다면, 그리고 당신이 북경호적인구의 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당신이 우연히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혹은 정부가 너를 이 곳에 살라고 비준한 것일 뿐이다. 그것뿐이다. 만일 너 자신이 무능하거나 노력하지 않아서,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과 경쟁하여 이길 수가 없다면, 할 수 없이 보따리를 싸서 떠나야 한다. 더이상 북경에서 계속 생활해서는 안된다. 너는 네가 생활비를 부담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살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북경에 와서 경쟁한다. 북경에서 주택을 사려고 한다. 집값은 그래서 오른다. 네가 살 능력이 되지 않으면, 그저 임차하는 수밖에 없다. 임차도 할 수 없다면, 봐라. 북경을 떠나는 것 이외에 또 무슨 방법이 남아 있겠는가?

 

모두 함께 대학입시에 참가하고, 너의 점수가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면, 다른 사람이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 설마 네가 이 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의 대학에 너에게 우선적으로 개방되어야 한단 말인가? 너는 스스로가 바라문이나 크샤트리아인줄 아는가?

 

북경은 너의 도시가 아니다. 너에게 속한 것이라면 네가 돈을 내고 사거나 다른 사람에 너에게 준 집 뿐이다. 이외에 도시의 넓은 지역은 권리라는 의미에서 너와는 무관하다. 너는 걸핏하면 이 도시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지 말라. 그것은 후안무치한 참월(僭越)이다.

 

정신적으로 너는 자신이 도시의 주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신적인 주인은, 그저 네가 이 도시의 정신과 원칙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야한다는 것뿐이다. 도시는 모든 사람에게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협력할 장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도시의 정신과 원칙은 태생적으로 자유이다. 사람은 도시에서, 더욱 크게 서로를 격려할 수 있고, 창조력이 더욱 크게 발휘될 수 있다. 이런 정신에서 자폐, 제한, 정체, 기생과 같은 개념은 없다.

 

그리고, 북경호적인구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한번도 어느 관리에게 위탁하여 그들이 우리를 위하여 외래경쟁을 배제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이 도시에서 나보다 더욱 우수한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라고 요청한 적도 없다. 나는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든지간에 그렇게 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관련 관리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필자를 포함한 북경호적인구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를 아무런 경쟁력도 없는 쓰레기로 취급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격과 존엄에 대한 능멸이다. 나는 그들의 이런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기꺼이 경쟁에 참여하고 이 도시에서 자신의 위치를 쟁취할 자신이 있다. 만일 성공한다면, 나는 자신의 노력결과를 향유할 것이다. 만일 성공하지 못하면,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책임져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노예가 아니다. 그들은 나의 주인이 아니다.

 

실제로, 북경호구인구라는 이 단어는 나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집체호구"에서 내가 농노를 연상한다면, "호적인구"에서는 사육당하는 가축이 연상된다. 실제로 사육자는 자상해 보인다. 실은 오만한 태도로 이 피사육자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더욱 슬픈 일은 이들 사육당하는 가축들이 이것을 가지고 우월감에 젖는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다른 사람보다 위라고 여기는 것이다. 정말로 천성적인 노비근성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노비이외에, 더 많은 사람들은 바보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일방적인 선전을 받았다. 부지불식간에, 그들은 이미 피사육자의 각도에서 세상을 본다. 모든 사란 사람들을 그와 먹을 거리를 다투는 피사육자으로 보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사육이 필요없는 경우를 상상도 하지 못한다. 자신이 스스로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이 도시가 개방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유경쟁을 두려워한다. 정부의 보호를 잃을까 두려워한다. 많은 피사육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겉으로는 자상해 보이지만 실은 오만한 관리들의 든든한 뒷배경이다. 바로 이런 거대한 뒷배경을 가지고, 관리들은 공민들이 심지어 결혼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블랙코미디를 저지르는 것이다.

 

나 개인은 당연히 이를 바꿀 능력이 없다. 다만 나는 북경에서 성실한 노동에 의존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 잘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좋겠다. 나는 그들이 평화와 비폭력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주장해주면 좋겠다. 역사적으로 무수한 성공한 선례들이 우리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권리의 쟁취는 가볍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 권리가 최후의 승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