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분석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차이점

중은우시 2009. 8. 10. 14:04

글: 하삼파(何三坡)

 

공자를 얘기하자면, 중국의 남자들이 여자를 잘 알지 못하게 된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공자는 호고(好古)했지만, 호색(好色)하지 않았다. 그는 전통에 대하여는 완전히 고개를 숙였지만, 여인에 대하여는 그다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는 여인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고, 여자와의 관계는 계속 힘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여자는 정말 다루기 힘들다. 소인과 비슷하다. 너무 멀리하면 원망하고, 너무 가까이하면 버릇이 없다. 정말 뭐라고 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는 결국 마누라를 피해서,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한다. 마치 상갓집 개와 같이.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달랐다. 젊었을 때 호색했다. 하루종일 길거리에 서서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아주 푹빠졌고 눈빛이 반짝였다. 길거리에서 점치는 사람이 이것을 보고는 그를 비웃었다: "소크라테스. 너는 본성이 음탕하다. 이미지관리에도 신경을 써라."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욕망이 이렇게 강렬하지만, 나는 계속 그것을 통제하느라 바쁘다. 그것만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매일 길거리에 나가고 뜻을 꺽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그리스에서 가장 섹시한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한다. 미녀를 집안으로 들인 후에 자식을 여럿 낳는다. 그러자 그 미인은 알아차렸다. 원래 소크라테스는 가난뱅이며 아주 게으른 것이다. 하루종일 사람들과 주둥이나 놀린다. 그러다보니 그 여자는 화를 풀 길이 없어서 화가나면 그의 머리에 물을 끼얹곤 했다. 신부가 악처로 바뀐 것이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웃음을 지으며 유머를 잃지 않았다.

 

두 위인을 함께 놓고 보면, 구분은 명확하다. 이것은 바로 도덕가와 철학가의 차이이다. 이는 동서양의 문화분야의 차이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이래로 서방에는 많은 철학의 대가들이 출현한다. 그리고 공자이래로 중국에는 무수한 도덕의 대가들이 나타났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항상 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게 말한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이런 차이는 아주 분명하다. 가장 현저한 것은 바로 서방은 한 여인을 위하여 싸우지만, 중국은 싸우지 않기위하여 여인을 줘버린다.

 

나는 고귀함과 비속함의 경계가 바로 여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비밀을 발견했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왕조를 제대로 건립하게 되면 그것은 모두 황제와 충신의 공로이다. 한 왕조가 망해버리면, 바로 여인에게서 책임을 찾기 시작한다. 포사로부터 서태후, 강청에 이르기까지 수천년간 계속 그러했다.

 

오늘날에도, 실패한 남자와 술을 같이 마신다면, 여자들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정말로 황당하지만, 재미있는 일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