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1842년 8월 29일에 맺은 남경조약을 보면, '배상'도 요구하고, '할지(割地)'도 요구하며, '통상(通商)'도 요구한다. 아주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다만, 영국은 절제심을 발휘했다. 제일 먼저 중국의 대문을 부숴서 열어제낀 나라이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여는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빼앗아 갔다. 배상금은 2100만은이었다. 토지의 경우에도 대부분 조차지이고, 홍콩의 경우에도, 해적이 출몰하는 황량한 어촌밖에 없는 홍콩섬을 할양받아 바다를 메워서 항구로 만들고, 건너편인 구룡지역을 추가적으로 할양할양받지만, 나머지 홍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계지역은 99년간 조차하는 방식이었다.
미국: 1844년 7월 3일에 맺은 망하조약 및 그 이후 1858년 6월 18일의 천진조약을 보면, 돈도 요구하지 않고, 땅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망하조약에서는 아편무역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명문으로 집어넣어, 아편무역에 종사하는 미국인은 중국의 사법기관에서 처벌받게 허용하였다. 미국은 그저 '권력'만 요구했다. 협정관세, 영사재판권범위확대, 중국영해에서의 미국인보호를 위한 조치권, 최혜국대우가 그것이다. 언뜻 보기에 아주 신사적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치명적인 것들이다.
프랑스: 1844년 10월 24일에 맺은 황포조약을 보면, 기본적으로 영국과 미국이 맺은 조약을 따랐지만, 기세는 약함을 느낄 수 있다. 그저, 영국, 미국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간 것일 뿐이다. 물론, 돈이나 땅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비교적 평등한 조약으로 취급되고 있다.
러시아: 러시아는 중국과 1689년 9월 7일의 네르친스크조약, 1727년 9월 1일의 캬흐타조약, 1858년 5월 28일의 아이군조약, 1860년 11월 14일의 북경조약등의 여러 조약을 맺었지만, 핵심은 단 한가지였다. 땅을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가 빼앗아간 면적이 모두 합쳐서 150만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고 말한다.
일본: 1895년 4월 17일 맺은 시모노세키조약(마관조약)을 보면, 일본은 그 어느 서구열강보다 악독했다. 배상금이 백은(白銀) 2억냥이고, 땅은 요동반도, 팽호열도, 대만과 부속도서를 빼앗아갔다. 당연히 통상쪽의 요구사항도 빠지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당시백은 2억냥은 일본의 3년간 GDP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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