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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당)

당나라 궁중에서는 어떤 애완동물을 길렀는가?

by 중은우시 2009. 8. 3.

글: 진심(盡心)

 

당나라때, 적막한 후궁에는, 많은 동물들도 양육되고 있었다.

 

한때는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 유행했었다. 그러나, <<구당서>>의 기록에 따르면, 무측천이 그녀와 황제의 총애를 다투던 소숙비를 괴롭혀서 죽게 만들었는데, 소숙비가 죽으면서 무측천이 쥐로 변신하고, 자신은 내세에 고양이로 태어나겠다고 저주한 바 있다. 그리하여 무측천은 고양이를 무서워했고, 그이후로 궁중에서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금지되었다.

 

개를 애완동물로 기르는 것은 비교적 보편적이다. 왕애(王涯)의 <<궁사(宮詞)>>의 13번째에는 "백설아불지행(白雪兒拂地行), 관면홍담부증경(慣眠紅毯不曾驚), 심궁갱유하인도(深宮更有何人到), 지효금계폐만형(知曉金階吠晩螢)" 여기서, "백설아"는 개의 품종이다. 땅바닥에 붙어서 오고가며, 붉은 카페트 위에서 잠을 자는데 익숙해서인지 놀라지도 않는다. 깊은 궁궐 속에 누가 오겠는가? 황제는 오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애완동물마저도 쓸쓸하고 적막하다. 한가하고 무료하다. 백설아도 그저 황금계단에서 개똥벌레를 보고 짖을 뿐이다.

 

<<유양잡저>>의 기록에 따르면, 양귀비가 기를 애완동물인 개의 이름은 "강국자(康國子)"였다. 현종과 친왕이 바둑을 둘 때, 양귀비는 개를 안고 곁에서 구경했다. 양귀비는 현종이 바둑을 질까 걱정해서, 애완견을 시켜서 바둑판을 흐트러놓게 하였다.

 

이외에 몇가지 동물들도 자주 후궁에 의해 길러졌다.

 

앵무새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후궁의 애완동물이 된다. 주경여의 <<궁사>>에는 "함정욕설궁중사(含情欲說宮中事), 앵무전두불감언(鸚鵡前頭不敢言)" 궁중의 일을 말하고 싶지만, 앵무새가 앞에 있으니 감히 말하지 못한다. 이외에 앵무새는 황금으로 만든 새장에 갇혀 있고, 궁녀는 깊은 궁궐에 갇혀 있다. 서로 운명이 비슷하다. 서인(徐夤)의 <<궁앵(宮鶯)>>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가련앵무긍언어(可憐鸚鵡矜言語), 장폐조롱세월사(長閉雕籠歲月). <<명성잡록. 일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영남에서 바친 백앵무는 당명황과 양귀비에 의하여 "설의녀(雪衣女)"라고 이름붙여지며, 백앵무에게 시를 낭송하도록 가르킨다. 몇변 가르치니 시를 읊을 줄 알았고, 사람보다도 총명했다. 이어서 황상이 바둑을 둘 때, 형세가 불리해지면, 앵무가 날아와서 판을 흐트러버렸다. 양귀비의 그 애완견과 마찬가지로 주인의 뜻을 잘 헤아렸다.

 

궁중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것은 귀뚜라미()의 소리였다. 백거이의 <<금중문칩>>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서창독암좌(西窓獨暗坐), 만이신칩성(萬耳新蟄聲)" 여기서 "칩"은 귀뚜라미를 가리킨다. 그는 궁궐의 곳곳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쓴 것이다. 이들 귀뚜라미는 일부는 자연환경 속에서 자란 것이고, 어떤 것은 전문적으로 기른 것이다. 왕인유의 <<개원천보유사>>에 따르면, 당나라때의 후궁의 여성들은 귀뚜라미를 작은 금새장속에 넣어서 침대 곁에 두고서 그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그것들을 서로 싸우게 하면서 보고 즐겼으며, 이기고 지는 것에 내기를 했다. <<부선잡록>>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귀뚜라미싸움은 천보연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역대황제들은 왕왕 귀뚜라미싸움의 취미를 지니고 있었다.

 

거미를 기르는 것은 비교적 특수하다. <<개원천보유사>>에 따르면, 7월 7일 칠석날, 궁녀들은 거미를 잡아서 작은 접시에 놓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미줄의 조밀한 정도를 보고, 빽빽하면 좋은 일이 많고, 성기면 좋은 일이 적다고 여겼다. 일종의 점을 치는 행동이다. 거미라는 애완동물은 바로 칠석날 쯤에 기른다.

 

새를 기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독수리, 매와 같은 류이다. 왕건의 <<궁사>>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내인롱탈해홍조(內人籠脫解紅) 대승쟁비출수고(戴勝爭飛出手高)". 여기서 "롱탈"은 매이다. 매는 독수리보다 약간 작은 맹금이다. "홍조"는 일종의 새를 매다는데 쓰는 붉은 색의 끈이다. "대승"은 포곡조(布谷鳥)이다. 당연히 궁중여성이 새를 기르는 것은 풀어서 날리면서 노는 것이다. 앵무새를 새장 안에 가두어 기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땅위를 걷는 것, 하늘위를 나르는 것도 모두 기른다. 물안에서 노는 것도 예외는 아니다. 왕건의 <<궁사>> 삼십에 보면 이렇게 쓰고 있다: "춘지일난소풍파(春池日暖少風波), 화리견선수상가(花裏牽船水上歌), 요색검남신양금(遙索劍南新樣錦), 동궁선조득어다(東宮先釣得魚多)" 이는 후궁이 낚시를 즐기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궁중에는 물이 많다. 각종 물고기가 그 안에 자란다. 그리고 낚시를 위해서 만든 "조어정(釣魚亭)"과 "조어선(釣魚船)"도 있다.

 

궁중에서 양(羊)을 기르는 것은 비교적 재미있다. 양으로 하여금 수레를 끌게 해서 걷는 대신 쓸 수 있다. 당나라때 이런 방식을 사용했는지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에는 언급들이 있다. 은요번의 <<궁사>>에는 "야심파유양거과(夜深怕有羊車過), "자기롱등간설문(自起籠燈看雪紋)" 이는 후궁들이 혹시라도 황제의 승은을 입을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서 한밤중에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눈위에 자국이 있는지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황제가 양거를 타고 후궁을 돌아다니다가, 양이 머무는 곳에 그가 내려서 그 후궁의 거소에서 밤을 지새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많은 후궁들이 양에게 잘보여야 했다. "대나무 잎을 문에 꽂아두거나, 소금즙을 땅에 뿌려서 황제의 수레를 끌어들이려 했다"

 

당나라때 어떤 황제는 동물을 기르는 취미가 있었다. 나은의 <<감농후인사주발>>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십이삼년취시기(十二三年就試期), 오호연월내상위(五湖煙月奈相違), 하여매취호손농(何如買取胡孫弄), 일소군왕편저비(一笑君王便著緋)" 그 내용은 원숭이를 잘 다루는 자도 관직을 얻는데 뭐하러 힘들게 공부를 하느냐는 것이다. 당소종 이엽은 원숭이를 기르는 취미가 있었다. 번진의 난을 피해서 사천지방으로 도망쳤을 때도 그가 기르는 작은 원숭이를 데려갈 정도였다. 그리고 원숭이를 기르는 자에게는 붉은 관복을 입게 해주었느니, 고위관료로 삼은 것이다.

 

<<전당시>>에는 "투계"에 대하여 언급하는 곳이 오십여곳이나 된다. 이 운동은 도박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나중에는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것과 연결시키게 된다. "생아불용식문자(生兒不用識文字), 투계주마승독서(鬪鷄走馬勝讀書), 가가소아년십삼(賈家小兒年十三), 부귀영화대불여(富貴榮華代不如)(신계동요). "신계동(神鷄童)" 가창(賈昌)은 닭을 잘 훈련시켰고, 투계를 잘해서, 당현종의 총애를 받는다. 그리하여 영화부귀를 누린다. 당나라의 여러 황제는 이 투계의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당희종은 투계외에 투아(鬪鵝)도 즐겼다. 이들 닭이나 거위는 모두 애완동물로 궁중에서 기르던 것들이다.

 

당무종 이염(李炎)은 좋아하는 동물들에게 아호를 붙여준 바 있다. 그리고 "십완(十玩)"도를 그렸다. 그것은 각각 구고처사(九處士) - 학, 장명도위(長鳴都尉) - 닭, 성성노(惺惺奴) - 원숭이, 장이공(長耳公) - 나귀, 용객(茸客) - 사슴, 현소선생(玄素先生) - 백구(白鷗), 영수자(靈壽子) - 거북, 수문사(守門使) - 개, 서장(鼠將) - 고양이, 변가(辨哥) - 앵무. 황제가 이렇게 동물을 좋아하다보니, 궁안에 기르던 애완동물도 적지 않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