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당)

당나라 사람들은 뚱뚱한 여인을 미인으로 생각했는가?

by 중은우시 2009. 4. 13.

글: 정계진(丁啓陣)

 

당나라사람들의 여성에 대한 심미관에 있어서, "뚱뚱한 것이 아름답다"는 주장이 있는데, 연원도 깊고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말이다. 어떤 전문가는 고증을 거친 후에 당나라사람들의 심미관은 확실히 뚱뚱한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당나라사람들이 뚱뚱한 것을 아름답게 생각한 몇가지 원인을 제시했다: 당나라의 경제는 번성하여, 사람들은 충분히 입고 먹을 수 있었으며 건강하고 풍만한 체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나라의 문화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마음이 넓고 몸도 컸다; 당나라의 황족에게는 선비족의 피가 흘렀는데, 그들은 천성적으로 체격이 건장한 여성을 좋아했다....이런 말든은 모두 그럴듯하다.

 

실제로,이런 주장은 맞지 않다. 최소한 정확하지 않다.

 

사람들이 당나라의 여인들이 뚱뚱한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은 주로 양귀비의 체형과 당나라때 궁중회화와 사녀화(仕女畵)에 나오는 여자들의 이미지 때문이다.

 

사실, 당나라의 저명한 화가인 염입본(閻立本)의 <<보련도(步輦圖)>>와 주방(周昉)의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를 자세히 살펴보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림 속의 궁녀, 사녀는 전혀 뚱뚱하지 않다. <<보련도>>의 9명의 궁녀는 이세민을 둘러싸고 천천히 가고 있는데, 가마를 든 사람도 있고, 우산을 받쳐든 사람도 있고, 부채를 들고 있는 사람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모두 힘이 넘치는 것같고, 절대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같은 약한 여인은 아니다. 다만, 그녀들의 몸매는 실제로 모두 가냘프다. <<잠화사녀도>>의 여자는 개략 신분이 고귀하고, 나이가 약간 많은 이유로, 몸매가 약간 풍만하다. 그러나, 서 있는 자태는 모두 가볍고, 봄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같다. 분명히 그녀들의 몸내는 '날씬하다'는 말로 형용할 수 있는 것이다.

 

양귀비에 관하여, 문헌에 몸이 뚱뚱하여 더운 것을 두려워했다는 기록이 있다. <<개원천보유사>>에는 그녀가 "몸에 살이 많아서, 여름이 되면 더위에 고생했다"는 말도 있다. 다만, 양귀비가 "몸에 살이 많아서"라는 것은 절대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뚱뚱한 정도에 이른 것이 아니다. 기껏해야, 약간의 살이 있을 뿐인 것이다. 즉, <<양태진외전>>에서 말하는 "약간 살이 있었다(微有肌也)"는 것이다. 춤을 잘 추는 여인(예상우의무는 그녀의 특기였다)이라면 평소에 사지를 많이 쓸 것이다. 약간의 살이 있는 것이야 당연하다. 양귀비가 더위를 싫어한 것은 그녀의 체질이 그러해서일 것이다. <<개원천보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양귀비는 "매번 숙취에서 깨어날 때면 폐열로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리하여 자주 새벽에 혼자서 화원에 가서 꽃의 이슬을 먹었다고 되어 있다. 이는 폐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양귀비는 여름에는 매일 입에 시원한 옥어(玉魚)를 물고 있었다.

 

역사문헌의 어느 곳을 뒤적여 보아도, 양귀비가 당현종의 사람을 받은 것이 그녀가 뚱뚱해서라거나 풍만해서라고 기록한 것은 없다. <<신당서>>, <<구당서>>의 양귀비전에는 모두 양귀비가 총애를 받은 것은 주요한 원인이 그녀의 "자질이 아주 빼어났다(資質天挺)"는 것을 들었다: 구체적으로는 가무를 잘하고, 음률에 통달했고, 두뇌가 기민하여 총명했고, 황상의 뜻을 잘 알고 맞추어 주었다". 즉, 그녀는 문예에 뛰어나고, 총명하고 영리했으며, 사람의 뜻을 잘 헤아렸다. 거기에, 두보의 <<여인행(麗人行)>>에 묘사된 것처럼, "태농의원숙차진, 기리세니골육균(態濃意遠淑且眞, 肌理細骨肉勻, 자태는 농염하고 뜻은 멀어 맑으면서도 진실한데, 피부결은 섬세하고 뼈와 살도 적당히 붙어 있다)" 즉, 그녀는 아믐답고, 단정하며, 기품이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상황을 보면, 당현종은 양귀비의 살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것같다. <<양태진외전>>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한번은 당현종이 백화원에서 <<한성제내전>>을 보고 있었다. 양귀비가 보고는 무슨 책인지 물어봤다. 당현종은 웃으면서, "묻지 마라. 알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양귀비는 책을 빼앗아서 보니 책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한성제는 조비연을 얻었는데, 몸이 가벼워 바람에도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그녀가 날아갈까 겁이나서 황제는 수정반을 반들고, 궁인으로 하여금 잡고 있게 해서 춤을 추었다..." 이때 당현종은 그녀에게 농담으로 말했다: "너는 그녀보다는 바람에 견딜만하지 않느냐?" 양귀비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자신있게 말했다: 그래도 내가 추는 예상우의무가 조비연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이백(李白)이 한림으로 있을 때, 황상의 명을 받아 쓴 <<청평조사>> 3수는 양귀비의 아름다움과 당시의 궁중생활을 노래한 것이다. 그중 두번째 수는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일지홍염노응향(一枝紅艶露凝香)

운우무산왕단장(雲雨巫山枉斷腸)

차문한궁수득사(借問漢宮誰得似)

가련비연의신장(可憐飛燕倚新粧)

 

한떨기 붉고 예쁜 모란꽃이 이슬을 머금은 듯

운우의 조화를 부리는 무산신녀가 죽어도 따라잡지 못하겠다

한나라 궁실의 누가 가장 비슷할까

불쌍한 조비연이 새로 단장하고 나와야 할 것같다.

 

이 시에서 이태빅은 양귀비를 모란에 비유하고, 조비연에 비유했다. 만일 양귀비가 정말 뚱뚱한 여인이었다면, 조비연은 날씬한 이미지로 이름이 있으니 대조적이 될 것이다. 정말 양귀비가 뚱뚱했다면 이 시는 양귀비를 희롱하는 것이 될 것이다. 아마도 양귀비 본인이 조비연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조비연에 비유해주는 것을 즐겼을 것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양귀비에게는 "비비(肥婢)"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녀를 질투하고 미워하는 사람(예를 들면 梅妃)가 그녀를 욕하는 말일 것이다. 이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뚱뚱한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비연수(環肥燕瘦, 양옥환 즉 양귀비는 뚱뚱하고, 조비연은 날씬하다)"라는 말은 송나라때의 문호인 소동파가 쓰기 시작했다. 소동파는 <<공신노구묵묘정시>>에서 이러한 두 구절을 썼다: "단장비수각유태, 옥환비연수감증(短長肥瘦各有態, 玉環飛燕誰敢憎, 키가 작건 크건, 몸매가 뚱뚱하건 말랐건 모두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다. 양옥환과 조비연을 누가 싫어할 수 있으랴)". 소동파가 양귀비와 조비연을 뚱뚱하고 마른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묘사한데는 아마도 세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같다: 첫째, 소동파는 그 자신이 몸이 뚱뚱했다. 그리하여 뚱뚱한 것은 모두 좋아했다. 서법, 몸매등등. 그래서 양귀비를 자신의 우군으로 끌어들여서 근거로 삼고자 했다; 둘째, 소동파는 도연명을 본받아, 글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양귀비가 뚱뚱한 여자라고 오해했다; 셋째, 소동파는 고의로 우스래를 한 것이다. 전고를 날조하여 진사에 합격할 때, 상고의 성현의 말까지고 고쳐버린 전력이 있다. 양귀비에게 엉뚱한 말을 붙이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데, 소동파는 글재주가 뛰어났고, 그의 글은 후세에 깊은 영향을 남긴다. 그리하여, "환비연수"라는 말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역사상식이 되어 버렸다.

 

확실한 것은 당나라사람들의 미에 대한 기준에 '날씬함'은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차류씨구문>>, <<당어림>>등 문헌의 기록을 보면, 당현종의 아들인 당숙종 이형이 태자였을 때, 이임보의 모함을 받아 위험한 지경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는 걱정으로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었고, 모든 오락을 멀리했다. 그리하여 처량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따. 당현종이 그 소식을 듣고, 고역사를 경조윤(京兆尹, 수도의 시장)에게 보내어, "민간에서 날씬하고 키크며 피부가 하얀 여자 다섯을 뽑아서, 태자에게 주라"고 한다. 이로써 볼 때, 당현종시대의 미의 기준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몸매가 날씬하고, 키는 크며, 피부는 햐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승(詩僧) 관휴(貫休)의 시는 당나라사람들이 뚱뚱한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위인무귀천(爲人無貴賤)

막학계구비(莫學鷄狗肥)

 

사람됨에 귀천은 없다.

닭이나 개가 살찌는 것을 배우지 말라.

 

이 시의 의미는 사람은 귀천을 불문하고 뚱뚱한 모습이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당나라사람들의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의 기준에는 "날씬한 것이 자랑스럽고, 뚱뚱한 것은 부끄럽다"는 기준이 있는 것이다. 당나라사람은 뚱뚱한 것을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미워했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사람들이 뚱뚱한 것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당시에서 "세요(細腰, 가는 허리)", "요조(窈窕)"라는 말이 쓰이는 상황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당시에서 "세요" "요조"는 모두 미녀를 형용하는 말이다.

 

당나라사람들이 뚱뚱한 것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도 있었다. 예를 들면 길을 갈때 타는 말, 배가 고플때 먹은 말린 닭고기, 오리고기, 물고기등이나, 농사를 짓는 논밭, 감상하는 꽃망울등등의 경우에는 모두 '뚱뚱한' 것을 아름답게 생각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백거이(白居易)의 "마비쾌행주, 기장능가무(馬肥快行走, 妓長能歌舞)"라는 구절이다. 말은 뚱뚱해야 아름답고, 가무를 하는 기녀는 날씬하고 키큰 것이 좋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