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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한중관계

김정일과 그의 핵심측근

by 중은우시 2009. 7. 4.

글: 마욱동(馬旭東)/환구시보 2009년 6월호

 

북한이 김정운을 후계자로 확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서방국가와 한국, 일본의 매체는 즉시 일련의 문제를 제기했다: 누가 북한최고지도자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인가? 그들은 북한의 후계자문제에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그들은 북한의 장래 정치국면에 어떤 작용을 할 것인가? 이것은 사실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는 문제인 것이다.

 

세 아들의 처지는 각각 다르다

 

김정일은 세 아들이 있다. 장남 김정남, 차남 김정철과 삼남 김정운이다. 김정철은 건강과 성격적인 이유로 외부에서 언급하는 경우가 드물다. 국제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그가 장래 북한지도층의 핵심구성원이 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6월 1일, 한국 국가정보원의 보고에서는 제2차핵실험후, 북한정부는 외국주재 대사관과 영사관에 외교전문을 보내어, 김정일의 삼남으로 현재 25세인 김정운이 '후계자로 확정되었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북한의 당정군고위지도자들은 김정운에게 충성하고, 김정운을 찬양하는 새로운 노래를 배우라고 지시했다.

 

이 소식은 즉시 국제사회에 김정운이 누구인지를 찾는 붐을 불러일으켰다.

 

얼마전에 독일의 벨트 일요일판(Welt am Sonntag)에서는 독점보도를 통하여 1993년부터 1998년까지, 김정운은 '박철(朴哲)'이라는 가명으로 스위스 베른국제학교를 다녔다고 하였다. 동창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키가 크지 않은데, 머리는 아주 크다. 얼굴을 아주 둥글고, 여드름이 나 있다, 검은색 청바지와 검은색 티셔츠를 즐겨 입었고, 아주 유머러스하며 아무하고나 잘 어울렸다." 동창들이 놀라는 것은 "북한과 적대적인 국가에서 온 학생들하고도 그는 아주 잘 지냈다. 예를 들어 그는 몇몇 한국학생들과도 아주 사이좋게 지냈다. 왜냐하면 그는 일본만화를 아주 좋아했는데, 그 한국학생들은 일본만화를 아주 잘 그렸기 때문이다." 이외에 외부에서는 김정운이 농구를 좋아한다는 소문도 퍼졌다. 사실 이것은 베른국제학교에서 기른 습관이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온 학생이 그에게 농구를 가르쳤는데, 그는 동작이 재빠르지는 못했지만, 운동에 재능이 있었고, 잘 했다."

 

북한에 돌아간 후, 김정운은 신비스럽게 숨어지냈따. 한국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여러 북한지도층의 핵심인사들도 그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후의 김정운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그는 보통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지는 않았다. 그는 조선노동당 역사연구소장인 강석숭(姜錫崇)이 친히 일대일로 수업을 했다.

 

북한에 돌아온 후, 김정운은 농구를 더욱 좋아했다. 일찌기 평양 "기관체육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의 토로에 따르면, 그 체육대와 '4.25체육대' 및 '평양시체육대'에서 키가 크고, 잘 생긴 농구선수는 자주 '1호활동'에 뽑혀갔었다고 한다. 그것은 김정운과 함께 농구를 하는 것이다. 경기가 끝나면 대원들은 선물을 받았다. 거기에는 미국 NBA농구스타인 마이클 죠단의 경기비디오와 스위스금시계등이 포함되었다.

 

김정일이 김정운을 기르는데 애쓰는 동안, 김정운은 갈수록 많은 직무를 맡게 된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운은 최근에 이미 최고군사지도기구인 국방위원회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매월 김정일을 수행하여 10여차례 군대를 시찰하고 사열했다.

 

금년 6월초, 북한의 공식매체인 <<노동신문>>은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국가운명과 혁명에 관련된 중요한 사항이 이미 해결되었다." 한국의 여러 브레인그룹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를 "북한이 권력이양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석했다.

 

6월 8일에서 11일, 미국 CIA와 국방정보국, 한국의 국가정보원 및 국방부정보본부의 관리는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거행된 "한미특수정보교류회"에서 "북한정권의 삼대세습"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의견을 교환했다. 회의기간동안 나타난 중요한 상황은 다음과 같다: 김정운이 이미 '영명한 동지'라는 칭호를 획득했다. 이에 대하여, 한미정보관리들은 일치하여, "영명한 동지라는 칭호는 실질적으로 김정운에게 현명한 영도자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라고 본다. 한국의 분석가들은 칭호는 북한에서 아주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북한의 제1대지도자인 김일성의 칭호는 "위대한 수령"이었고, 김정일의 칭호는 "경애하는 수령"이었다.

 

신비한 김정운과 비교하자면,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외부세계에서 아주 익숙하다. 북한정계에서 벗어난 후, 그는 국제매체의 인터뷰에 자주 응했다. 6월 6일, 그는 "김정운 후계"문제에 대하여 일본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시종 웃음을 띄면서 유려한 영어로 태연자약하게 답변했고, 수시로 호탕한 웃음을 보였다. 그는 "김정운이 부친과 닮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김정남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부친이 동생을 후계자로 지명한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부친은 동생을 아주 사랑한다." 이것은 즉시 국제사회에 "김정운은 확실히 김정일의 후계자이다"라고 해석되었다.

 

2001년이전에, 김정남은 거의 북한의 미래 후계자로 공인되었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을 데리고 가짜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던 스캔들이 나면서, 그는 점차 북한정계에서 멀어졌다. 그후에는 자주 파리, 북경과 마카오에 몸을 드러냈다. 외부에서는 그동안 김정남을 회사를 열어, 북한을 위해 적지 않은 달러를 벌었다고 알려졌다. 그리하여 부친의 마음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 올라갔다고 보았다. 한국의 옵서버에 따르면, 김정남은 '정치로의 대변신'을 실현할 가능성이 있었다.

 

매부는 전력을 다하여 국사를 보좌한다.

 

김정일의 정치생활에서 매부인 장성택(張成澤)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여러 형제자매중에서, 김정일과 여동생 김경희(金敬姬)는 사이가 가장 좋다. 김정일은 다른 형제자매를 모조리 외국주재대사로 내보냈고, 그들을 평양의 정치중심에서 멀어지게 하였지만, 오로지, 김경희만은 곁에 남겨두었따. 김정일의 옛 요리사인 일본인 후지모토(藤本建二)에 따르면, "평양강 동쪽의 32호초대소는 사실 김정일 일가의 관저이다. 그 안에는 김정일 일가가 살고 있을 뿐아니라,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와 그녀의 남편인 장성택도...." 살고 있다고 한다.

 

금년 4월 9일, 63세된 장성택은 북한 국방위원회위원이 되고, 이어서 노동당 행정부장에 임명되었다. 6월 12일, 한국의 <<중앙일보>>는 군정요직을 겸비한 장성택은 이미 북한의 사실상의 "2인자"가 되었다고 한다. 서방정보기구들은 심지어, 장래 그가 '진정한 실권을 장악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영국의 <<타임지 일요일판>>에서는 장성택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금테안경을 쓰고, 검은 양복을 입으며, 머리에는 항상 머릿기름을 바른다" 일본의 <<AREA>>잡지에서는 장성택의 이름은 북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는 젊었을 때 키가 크고, 공인된 미남자였다. 그리고 성품도 우수하고 가무에도 뛰어나며 주량도 남달랐다고 한다.

 

최근 들어, 장성택과 김정일은 항상 그림자처럼 함께 다닌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2008년에 발표한 95건의 김정일 시찰활동에 관한 보도에서, 장성택이 수행한 횟수가 가장 많았다. 금년 1/4분기에 그는 김정일을 수행하여 19차례나 현장지도를 했고, 김정일의 업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한다. 김정일의 신임으로, 장성택의 두 형인 장성우(張成佑)와 장성길(張成吉)은 모두 조선군대의 최고직장군이 되었다.이는 장성택이 당정군에서 상당한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성택이 북한의 미래정국에서의 역할에 대하여, 한국의 <<중앙일보>>는 6월 12일자 보도를 통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새로운 요직임명이다"  즉, 나이가 많지 않은 젊은 "황태자" 김정운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4명의 실권을 가진 장군들은 충성심이 대단하다

 

한국매체는 김정일이 김정운과 북한의 미래를 완전히 장성택 한 사람에게 의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국의 <<중앙일보>>는 일찌기 이렇게 보도한 바 있다. 김정일은 그에게 충성심이 강한 인민군 장군들로 장성택을 견제할 것이라고.

 

금년 2월 20일, 김정일이 오극렬(吳克烈) 대장을 북한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한 후, 외부에서는 즉시 오극렬을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는 측근"이라고 보도했다.

 

오극렬은 어려서부터 김정일과 '형제처럼" 자란 사이이다. 1979년에서 1988년까지, 그는 조선임민군 총참모장을 맡았고, 이 기간동안 북한군대의 현대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당시의 인민무력부장 오진우(吳鎭宇)와 갈등이 발생하여 그는 직위가 강등되었다. 나중에 김정일의 보호하에, 오극렬은 재기했고, 1989년에 노동당행정부장을 맡았다. 이후 20년동안, 직무가 어떻게 조정되든, 간첩양성과 침투공작은 그의 업무핵심이었다. 한국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얼마전에, 김정일은 노동당과 군대에 분산된 대남한간첩기관을 통합하여 오극렬이 직접 지휘하도록 했다고 한다.

 

한미정보인원은 오극렬이 중용되는 것은 김정일이 자신에게 사고가 발생하여, 김정운이 승계받은 후에 불안정한 상황이 나타날 것에 대비한 조치라고 본다.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상무부장 겸 노동당행동부장인 현철해(玄哲海) 대장은 김정일이 아주 신임하는 두번째 장군이다. 그는 작년에 김정일을 수행하여 시찰에 참가한 횟수가 오극렬의 바로 다음이었다.

 

1934년에 출생한 현철해는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후, 루마니아에 유학을 갔었다. 말수가 적은 그는 김씨일가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그리하여, 노동당행동부장에 임명된 것이다. 어떤 사림은 이렇게 말한다. 노동당행정부장이라는 것은 김씨일가의 '호위대'라고. 그 부는 2000명의 장교로 구성되었는데, 많은 구성원들은 12살이 되기 전부터 특수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여러번 생사의 관문을 돌차해야 비로소 정식구성원이 된다. 그들이 장착한 무기는 북한의 다른 특수부대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부대의 주둔지를 김정일이 시찰할 때는 호위병을 데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사전에 통지하지 않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외에, 북한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춘(金永春) 차수와 인민군총참모장 이영호(李英浩) 대장도 외부에서는 김정일의 측근으로 본다.

 

김영춘은 1995년에서 2007년까지 조선인민군총참모장을 맡았다. 그후 조선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서방매체에서는 그가 조선군대의 '매파인물"이라고 본다. "대포동1호"의 발사(1998년), 제1차연평해전(1999년), 제2차연평해전(2002년), "대포동2호"발사(2006년)등의 사건은 모두 그가 총참모장을 맡고 있을 때 발생한 것이다. 한국소식통은 "김영춘은 평소에 거의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는 작전구상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다"

 

이영호는 조선군내부의 "소장파"이다. 한국의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영호는 일찌기 평양방위사령부 사령관을 지낸 바 있고, 2002년과 2007년에 북한의 건군사열의식에서 열병지휘관을 맡았다고 한다.

 

측근들의 특별대우

 

김정일의 측근이 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좋은 측근이 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국매체에 따르면, 김정일의 아주 주요한 측근이라고,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충성도를 다시 확인받은 후에 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권력중추에 있는 장성택과 현철해도 모두 '먼저 처벌받은 후 재기한' 경력이 있다.

 

한국매체는 이렇게 보도한 바 있다. 김정일의 핵심측근은 김정일이 주최한 모임에 참석할 수 있고, 외국수입자동차를 선물받을 수 있고, 전용고급아파트를 배정받을 수 있고, 전자제품을 배정받을 수 있다. 소위 '모임'는 바로 김정일고 핵심측근들이 내외형세, 인사조직문제등에 대하여 밀담을 나누는 회의이다. 동시에 측근들은 자신의 환갑, 자녀결혼등의 경우에 특별한 선물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보도된 적도 있다. 김정일은 측근을 기르기 위하여, 자주 벤츠나 BMW에 "216"이라는 번호판을 단 다음에 선물로 측근에 주었다. 이는 가장 신임하는 적계라는 뜻이다. 이 번호가 없는 차량은 마음대로 김정일의 거처에 드나들 수 없다. 그러므로, 북한에서, 벤츠에 "216"이라는 숫자가 붙은 번호판을 달고 있으면, 그 차의 주인은 김정일의 심복이고 북한의 최고지도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