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서하(西夏)의 이원호(李元昊): 코가 베어죽은 개국황제

by 중은우시 2009. 6. 3.

글: 간(簡)

 

개국황제로서 비정상적 사망을 맞이한 명단중에는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도 있고, 정변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으며, 구금되어 굶어죽은 사람도 있고, 나라를 위하여 순국한 사람도 있다. 장렬한 죽음도 있고, 비참한 죽음도 있고, 처량한 죽음도 있고, 아름다운 죽음도 있다. 머리 뒤에는 한 나라를 개국하였다는 찬란한 광환이 빛나고 있으므로 그들의 죽음은 모두 살펴볼만한 가치가 있고, 노래할만한 것도 있고, 눈물흘릴만한 것도 있다. 다른 경우와 비교하자면, 서하왕조의 개국황제인 이원호는 코가 베어져서 죽었다. 그런 면에서는 가장 멍청한 경우라 할 것이다.

 

코는 고대에 준(準)이라고 불렀다. 한고조 유방은 "융준(隆準)"을 가지고 있어, 후세인들에게 중국역사상 가장 잘생긴 황제로 불리운다. 마찬가지로 서하의 개국황제 이원호도 "고준(高準)"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그의 키가 크지도 않고 머리도 둥글었지만, 그의 높이 솟은 코는 전체적인 인상을 비범하다고 주기에 충분했고, 위풍당당했다. 북송의 변방을 지키던 장수 조위가 이원호의 화상을 본 후에 "정말 뛰어난 인물이로다(眞英物也)"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원호는 생긴 모습이 특이했을 뿐아니라, 웅재대략을 지니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패업을 이룩하겠다는 뜻을 품었다. 부친인 덕명이 죽은 후에, 그는 당항족의 수령이 된다. 그 동안 그는 "서로는 토번의 건장한 말을 노략질하고, 북으로는 회흘의 정예병사를 거두어들였다" 세력범위가 "동으로는 황하에 미치고 서로는 옥문관에 미치며, 남으로는 소관에 이르고, 북으로는 대막을 통제했으니, 땅이 사방 만여리가 되었다" 황제를 칭한 후에, 이원호는 요나라와 연합하여 송나라를 견제한다. 삼천구, 호수천, 정천채의 삼대전투에서의 승리를 거둠에 따라, 송, 요, 서하의 정족지세를 구축한다.

 

전쟁은 영웅을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폭군을 만들어낸다. 자신에 반대하는 자를 제거하고, 외척의 권력찬탈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원호는 "준주살(峻誅殺)" 정책을 실시한다. 공신을 시기하고 모친의 일당에 타격을 가하며, 약간만 움직임이 있으면 아무런 사정을 보아주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흉악하고 살인을 좋아하는 이외에 이원호는 아주 호색했다. 며느리가 예쁜 것을 보고는 바로 자기 것으로 해버렸다; 공신 야리우걸(野利遇乞)을 잘못 죽인 후에, 그의 미망인 몰장씨와 몰래 사통했다. 이 두번에 걸친 호색한 짓거리른 결국 이원호를 죽음으로 몰아넣게 된다.

 

원래, 모친인 야리씨황후는 부친에게 축출되어 냉궁에 들어가 있었다. 태자인 영령가(寧令哥)는 이미 불만이 가득했다; 자신의 사람하는 처까지 다시 부친에게 빼앗기자, 그는 부친과 원수지간이 된다. 야심이 커진 국상 몰장와방(沒臧訛龐)은 영령가와 이원호간의 조화될 수 없는 갈등을 이용해서 태자를 제거하고, 누이인 몰장씨가 낳은 아들 영령량(寧令諒)으로 대체하게 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몰장와방의 교사아래, '차도살인'의 독계가 비밀리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천수예법연조 11년(1048년), 원소절의 깊은 밤에, 영령가는 이원호가 술에 취한 틈을 타서, 궁중으로 난입하여 칼로 찌르게 된다. 이원호는 비록 치명적인 일격을 피하기는 했지만, 코가 모조리 베어져 버렸다. 다음 날, 이원호는 사망한다. 이원호의 죽음에 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놀라서 죽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이원호는 평생 전쟁터에서 살았는데, 칼부림이 일어나고 피가 튀는 광경은 너무나 많이 보았을 것이다. 하물며 어의들이 전력을 다하여 상처를 치료하고 지혈을 했다. 그러므로 위의 두 가지 견해는 설득력이 없다. 필자가 분석하기로는 이원호는 바로 코가 베어졌기 때문에 그 화도 나고 치욕을 참지 못하여 죽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서하 사람들은 원래 코를 숭상했다. 그래서 외족들에게는 "코를 베어내는" 형벌을 가하였다. 이것은 한때 당항족의 색다른 취미로 여겨지기도 했다. <<서하서사>>의 기록에 따르면, 서하와 요나라간에 전쟁이 발생했는데, 이원호는 포로로 잡은 요나라사람들의 코를 베어낸 후에 다시 풀어주었다고 한다. 이것으로 적군에게 치욕을 준 것이다. 지금 이런 야만적인 형벌이 자신의 몸에 가해졌으니, 이원호로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볼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목숨까지 잃게 된다. 그리고 수만명의 코를 베어냈던 사람이 결국은 친아들에게 코가 베어져서 죽었으니, 어떻게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