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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홍수전)

홍수전의 태평천국은 어떻게 멸망하였는가

by 중은우시 2009. 4. 5.

글: 조염(趙焰)

 

증국번(曾國藩)이 시선을 금릉에 집중하여 쏘아보고 있을 때, 그의 적인 옛날의 서당선생(홍수전)은 눈으로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키가 큰 광동사나이는 지금까지 병든 몸을 이끌고 오랜 시간동안 그는 가벼운 손발놀림으로, 기운이 황홀하고, 희노애락이 무상하여,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같았다. 금릉에 진주한 후, 홍수전은 더욱 기괴하게 바뀌어갔다. 그는 마치 하루종일 꿈에 빠져있는 사람같았다. 계속 혼잣말을 해대고, 스스로를 가두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은 이 환상가는 아주 짧은 시간내에 하늘로 올라서 천상의 보좌에 앉았는데, 그의 내심은 마치 이런 천지개벽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에 그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비록 금릉의 외곽에서는 계속하여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홍수전은 전방의 적수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밀실에서 계속 그의 천부에 기도를 했다. 그가 보기에, 기도의 역량은 남정북벌보다 훨신 효과적인 것처럼 보였다. 눈앞의 이런 적들은 마치 요마귀괴(妖魔鬼怪)와 같이, 언젠가 천부의 역량을 빌어 가볍게 소탕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진실하지 않았다. 의미도 없었다. 이 세계는 그저 그의 임시로 머무는 여관이었다. 그는 이 여관의 힘을 빌어 하늘로 오르고, 혹은 충분히 즐기고 놀면 된다. 그를 곤혹스럽게 하는 유일한 문제는 이 세계에 앞으로 얼마나 더 머물 것인가, 그리고 천부는 언제 그를 소환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홍수전의 사상발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서당선생출신인 홍수전은 종교에 대한 인식이 계속하여 생경했고, 몸에 익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에서 계속 낙방했던 낙백서성은 고식화된 과거선발방식에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바로 이런 상황하에서, 홍수전은 기독교의 교의에 접촉한다. 그 피안의 희망은 그의 내심에 있는 장작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를 광적인 종교인으로 변모시켰다. 그는 자기의 방식을 교의 내에 너무나 많이 효모로 집어넣었다. 그러다보니 교의는 팽창하여 폭발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그가 기독교를 숭상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가 기독교의 어떤 신비감에 흥미를 느꼈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마음대로 그 안의 기적, 유령과 성현을 확대했다. 실제로 진정 홍수전의 내심에 자리잡은 것은 여전히 성선득도(成仙得道)의 중국민간전통이었다. 여전히 황제의 꿈이었다. 금릉에 들어온 후, 홍수전의 두뇌에 오랫동안 잠복되어 있던 욕망이 폭발한다. 왕권에 대한 갈구는 종교에 대한 환상을 대체했다. 여기서 언급할 점은 금릉이라는 도시를 홍수전은 이상하리만큼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금릉에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고, 필연이었다. 그 해에 금전기의(金田起義)를 일으키고, 계속 북상하여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면서, 부지불식간에 목표는 금릉으로 정해져 버렸다. 이 호거용반의 고도에 들어온 후, 홍수전은 더 이상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이 곳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홍수전이 금릉에 도착해서 황제가 되는 것은 그가 보기에 단 하루만이라도 황제를 할 수 있으면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느낌을 좋아했다. 사람들이 그의 발아래 엎드리는 느낌이 좋았다. 그것이 현실에서이건 정신적인 것이건...

 

홍수전은 먼저 사람을 보내어 명나라의 고궁을 철거한다. 원래 자금산 부근에 우뚝 솟아있던 거대한 궁전은 광서 호남에서 온 농민들에 의하여 철저히 분해철거되었다. 그 후에 홍수전은 거대한 기둥과 돌을 현무호의 곁으로 운반하도록 지시하고, 새로운 궁전을 만들게 한다. 궁전이 완공된 후, 홍수전은 하루종일 화려한 천왕부속에서만 보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는 한편으로는 두서없이 일부 철학과 신학문제를 고민하고, 어떻게 왕권과 종교를 더욱 긴밀하게 연결시켜서, 신하와 백성들을 자신의 교인으로 만들어 아무런 사심없이 모든 것을 바치도록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환상을 꿈꾸었다.  또 다른 측면으로, 그는 역사상 모든 제왕과 마찬가지로, 방중술을 수련하고, 남녀교합과정에서 극도의 쾌락을 얻었으며, 해탈의 도리를 모색했다. 당연히 그의 모든 노력은 실패한다. 그의 두뇌상으로건 그의 신체상으로건. 그는 하늘에 통하는 길을 얻지 못한다. 나중에, 높은 자리에 있다보니 게을러지고, 그저 즐기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된다. 형세가 급전직하하여, 이수성등이 계속 금릉의 형세가 위급하다고 일깨워주고, 그에게 금릉을 떠나 다른 곳으로 도읍을 옮기자고 권하지만, 계속 사색에 빠져있떤 홍수전은 듣지를 않는다. 홍수전이 보기에 세계는 이처럼 허환(虛幻)하고, 위험도 마찬가지로 허환하다. 그저 황제가 되는 느낌만이 약간은 진실하다고 느껴진다. 구차하게 세상을 살아가느니,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불꽃이 검은 하늘을 가르는 것처럼 순간의 인생을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홍수전이 한 모든 것은 바로 그렇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그는 종교의 실천자나 창시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연약하고 무력한 철학가 혹은 머리가 복잡하고 두서없는 환상가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서 1864년이 되었다. 소남(蘇南, 강소성 남부)에서 태평군의 소주성 수비장수인 고영관등은 총사령관인 삼소과을 죽인 후에 회군(淮軍)에 투항한다. 이리하여 소주가 함락된다; 절강에서 좌종당(左宗棠)은 군대를 이끌고 항주를 함락시킨다; 금릉성의 아래에서 증국전(曾國)이 친히 지휘하여 결사대를 조직하여 바위를 타고 자금산에 올랐으며 천보성(天堡城)을 함락시켰다. 이리하여 금릉을 내려다보는 고지를 확보하게 된다. 그후 상군(湘軍)은 다시 태평문, 신책문 밖까지 밀고 들어왔고, 금릉은 완전히 포위된다. 마지막 결전이 곧 끝날 상황이었다. 그러나 증국번은 기뻐할 수가 없었다. 형세가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잔혹과 냉혈은 더욱 심해졌고, 인성의 인내력도 극한에 다달았다. 특히 전선의 관병은 극도의 도살로 거의 인성과 이성이 붕괴된 것같았다. 금릉성의 아래에 2년감 잠복하고 있던 증국전은 더욱 그러했다. 그의 정서는 하루하루 더 조급해졌다. 몸과 마음이 이미 거의 궤멸될 지경에 이르렀다. 소주에서, 항상 이성이 굳건했던 이홍장(李鴻章)도 의심암귀라고 마음이 급해지나 먼저 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여, 소주성을 바치고 투항한 '팔대왕' 고영관등을 죽여버린다. 그 후에 다시 대거 살상을 하게 된다. 만명이 넘는 태평군의 투항병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그 소식은 증국번에게까지 들려온다. 증국번은 비록 아주 놀랐지만, 여전히 이홍장을 다독거린다. 이 모든 것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지척지간에 죽고 사는 것이 갈린다. 증국번은 전선의 장병을 위로하는 서신을 계속하여 보낸다. 그들에게 전쟁중의 과도한 살륙은 어떤 때는 부득이한 것이 맞지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번 이런 서신을 쓸 때마다 증국번은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이 이 지경에 이르러, 가까이에서 칼을 쥐고 맞싸우는데, 핏물이 뚝뚝 흐르는 도살장이 아닌가?

 

조정은 확실히 이러한 살상의 강도를 강화하려고 했다. 북경에 숨어지내던 고관대작들은 더 이상 기다리기 지친 것같았다. 그들은 계속하여 증국번의 행동이 느리다고 질책했고, 증국번이 총공격명령을 하달하지 않는데 불만을 표시했다. 조정은 계속하여 이홍장의 회군에게 금릉으로 가서 협공하라고 독촉했다. 고든의 서양용병도 금릉으로 가서 승리의 과실을 나눠먹고 싶어했다. 그들은 계속하여 조정에 압력을 가했고, 금릉으로 증원을 가려고 했다. 증국번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것은 바로 서양인들이 끼어드는 것이었다. 그는 고든의 요구를 거절한다. 바로 이 관건적인 순간에 금릉성바깥의 총사령관 증국번이 병으로 쓰러진다. 여러날을 고열에 시달리며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한다. 안경의 증국번은 그 소식을 듣고는 대경실색한다. 밥을 먹으도 삼키질 못할 정도였다. 증국번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증국전의 병세였다. 금릉성의 함락이 눈앞에 닥쳤는데, 감정적으로 말하자면, 증국번은 당연히 금릉을 함락시키는 공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증국번은 아홉째동생 증국전이 금릉을 함락시키려는 열망을 가진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어쨌든 증국전은 금릉성 아래에서 못처럼 근 2년간 박혀 있었다. 증국번은 증국전에게 서신을 보낸다:

 

"네가 서신에서 말한 '간의 병이 이미 깊고, 고질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면 쉽게 화를 내고 일을 만나면 걱정된다'는 몇 마디 말을 읽고는 내가 아주 걱정되는구나. 금년이래로 강소, 절강등의 성에서 함락한 도시가 아주 많다. 유독 금릉성은 지금까지도 확신이 없다. 거기에 군비가 아주 부족하니, 마음에 들지 않는 일과 듣기 싫은 얘기들이 속속 들려온다. 나는 우울함이 병이 되었다. 하물녀 너의 노고는 나보다 백배는 더 하니,  너의 심혈은 나보다 몇 배나 더한 부담을 안고 있지 않으냐. 봄날이래로, 나는 너의 간병이 발작할까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서신에서 너는 매번 모호하게 말을 했는데, 이 네마디 말로 실제상황을 다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병은 약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모든 일 모든 사물을 느긋하게 생각해야 한다. 화도 내지 말고 고민하지도 말라. 그래야 병세가 완화될 것이다. "독사가 손을 물면, 장사는 팔을 자른다(毒蛇蟄手, 壯士斷腕)" 이는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다. 내 형제가 만일 생명을 보전하려면, 화나는 것과 분노를 독사처럼 보고 큰 용기를 내어서 그것을 제거하기 바란다.

 

간이 발작하거나 화를 벌컥 낼 때, 마음이 평정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면 겁낼 필요가 없다. 확실히 이런 경우가 있다. 네가 젊어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이미 쇠약한 사람의 경우에도 자주 화를 가눌 수 없는 때가 있다. 반드시 자신이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도록 해야 하고, 이처럼 나쁜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석가모니가 말한 "항룡복호(降龍伏虎)"이다. 용은 상화(相火., 욕망)이고 호랑이는 간기(肝氣, 분노)이다. 자고이래로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이 이 두 관문을 넘지 못했던가? 너와 나 두 형제만 이러한 것이 아니다. 관건은 이 두 가지 감정을 잘 억제하는 것이고, 그것이 너무 왕성하게 불타도록 하지 않는 것이다. 항룡은 물(水)을 기르는 것이고, 복호는 불(火)을 기른 것이다. 고대 성인들이 말한 욕망을 죽이는 것이 바로 항룡이고, 분노를 억제하는 것이 바로 복호이다라는 말이다. 유학과 불교는 비록 주요한 도리가 같지는 않지만, 그들이 혈기를 절제해야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다른 점이 없다. 어쨌든 우리는 지나친 욕망으로 우리의 신체를 해하여서는 안된다."

 

증국번을 안위하게 해주는 것은 이홍장의 태도였다. 어쨌든 이홍장은 그의 제자이다. 자신이 길러낸 사람이다. 핵심문제에 있어서, 이홍장의 태도는 아주 의리있었다. 증씨형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홍장은 여러번 자신이 공을 다투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조정의 재촉에 계속 지연시켰다. 어떤 때는 부대에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어떤 때는 조정에 진언하여 자기의 군대가 호주로 옮겨서 남쪽에서 금릉을 포위하겠다고도 하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점이라면, 이홍장의 병마이동은 절강에서 금릉으로 포위하려던 좌종당을 화나게 했다는 것이다. 좌종당은 황급하게 조정에 보고서를 올려서, 이홍장이 경계를 넘어서 공을 다툰다고 말하여, 이홍장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이홍장이 한 모든 일은, 아주 분명하다. 바로 시간을 끄는 것이다. 그리하여 금릉을 함락시킨 공을 증국전에게 돌리기 위한 것이다. 한 사람으로서 이처럼 거대한 유혹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이홍장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증국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사람을 보내어 증국전에게 전력을 금릉성을 함락시키라고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시 시간을 끌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1864년 7월 19일, 병석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던 증국전은 공성명령을 내린다. 금릉성으로 통하는 지하통로는 이미 파놓았다. 증국전은 거의 쉰 목소리로 점화명령을 내렸다. 몇분후, 수만근의 화략이 큰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금릉성의 성벽이 이십여장이나 무너져 버린다. 검은색의 화약연기가 하늘로 올라갔고, 전체 금릉성은 산이 흔들리고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성벽위의 태평군이 폭약과 더불어 사라졌을 뿐아니라, 상군들 중에서 가장 앞장서서 진군하던 사백여명의 사병도 폭약속에 분신쇄골하였다. 수만의 상군이 다 함께 소리치며, 칼과 검을 휘두르며 회오리바람처럼 성내로 밀고 들어갔다. 이때, 금릉성은 이미 식량이 끊긴지 여러 날이고, 잔존한 태평군은 이미 전투력을 상실했다. 저녁이 되자, 금릉의 9개 성문은 격파되고, 십여년간 싸워오고, 특히 2년간 금릉성 아래에서 지키고 있던 증국번의 "길"자영은 이러한 미친 듯한 기쁨 속에서 일찌감치, 창립초기에 증국번이 제정한 각종 기율은 잊어버리고, 대규모의 살상약탈을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이 미쳤다. 실제로 성이 함락된 이후, 이전에 전쟁은 쌍방의 이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장시간의 살륙과 압력으로, 잔존한 사람의 인성은 일찌감치 사라졌다. 홍수전의 금릉이 포위된 최후의 순간에 성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정신이 철저히 붕괴된다. 그는 하루종일 입으로 혼잣말을 하면서, 계속 신령을 불렀다. 하늘에 먹을 거리를 달라고 갈구했고, 자신의 천병천장이 배부르게 먹고 적을 죽이게 해달라고 갈구했다. 실망끝에, 홍수전은 음독자살한다. 죽기 전에 홍수전은 심지어 수하에게 18층의 두터운 베를 준비하라고 한다. 그리고 죽은 후에 자신을 꼭 싸달라고 명령한다. 홍수전은 무엇을 바랐던 것인가? 해탈인가? 도피인가? 신권에 의지하여 지위를 확립한 통치는 도덕과 왕권에 의지한 통치보다 우매하고 낙후하다. 이런 방식은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형용해야 하는가? 금릉성을 함락시킨 후, 증국전은 사람을 데리고 천왕부로 밀고 들어갔다. 사람을 시켜 홍수전의 묘를 파헤치게 한다. 홍수전의 전신을 싸고 있던 두터운 베는 이미 썩었다. 칼과 도끼로 시체를 토막내어 잘라버린다. 비록 이러했지만, 증국전은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시켜 살점을 파내어 화약통에 넣고는 포탄에 넣어서 연속하여 발사하게 했다. 증국전도 마찬가지로 미쳤따. 홍수전이 죽었지만, 그래도 그의 영혼을 흩어놓아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원한인가? 이것은 분명 최후의 광란이다.

 

전쟁은 이처럼 가장 광적인 방식으로 최고조에 이르고, 결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