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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스포츠

마샤오춘: 바둑국가대표팀 총감독 경선시의 발언원고

by 중은우시 2009. 2. 2.

* 마샤오춘은 2005년부터 중국의 바둑국가대표팀의 총감독을 지냈는데, 신임 총감독 경선에 나서서 위빈(兪斌)과 맞붙었으나, 위빈에 패배하였음. 아래의 발언원고는 경선시 선발위원들에게 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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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도자 및 전체 대원 여러분:

 

나는 2005년 7월 경선을 통하여 총감독을 맡은 후, 현재 이미 3년여가 지나서, 예정된 임기를 초과했습니다. 이번에 국가대표바둑팀에서 새로 감독진을 구성하게 되어, 나는 총감독의 직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아래는 나의 경선에 임하는 사항에 대한 보고입니다.

 

나의 경선보고의 주제는 임기내에 내가 어떻게 업무를 진행하였는지, 성적은 어떻게 얻었는지입니다. 보고내용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분: 감독성적회고

 

2005년 10월 19일, 구리(古力)와 천야요예(陳耀燁)가 LG배의 우승,준우승을 모두 차지했습니다.

2006년 1월 13일, 뤠시허(羅洗河)가 2:1로 이창호를 꺽고 삼성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6년 3월 24일, 창하오(常昊)가 이창호를 이김으로써 4연승으로 중한대항전에서의 승리를 낚았습니다.

2006년 9월 28일, 구리와 셰허(謝赫)가 각각 이창호와 이세돌을 이김으로써, 그들은 춘란배에서 창하오 펑췐(彭)이 4강을 모두 차지했습니다. 이는 중국팀이 춘란배를 처음 차지한 것이며, 또한 중국팀이 세계대회에서 거둔 가장 뛰어난 성적입니다.

2007년 1월 24일, 창하오는 2:0으로 이창호를 이기고 삼성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7년 2월 21일, 창하오는 박영훈을 이겨서, 중한대항전과 마찬가지로 중국팀이 농심배 단체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중국팀이 16년만에 처음으로 한중일 삼국의 단체우승을 차지한 것이므로 역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2007년 7월 7일, 구리가 이창호를 이기고 후지쓰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8년 8월 29일, 구리와 퍄오원야오(朴文堯)는 토요타배의 우승,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임기내에 거둔 6번째 세계챔피언입니다. 토요타배의 승리는 우리가 모든 세계대회의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2008년 10월에 거행된 제1회 세계지력운동회에서 중국팀은 금메딜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한국을 앞섰습니다.

 

이 3년간, 우리는 양국대항전의 승리와 아시아배의 우승 아시아단체전의 승리등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세계대회 준우승, 3위도 있었으며, 앞으로 진행될 결승전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괜찮은 성적이지만 너무나 많기 때문에 여기서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당연히, 승부의 세계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사입니다. 우리는 실패한 때도 있었고, 참패한 때도 있었습니다. 다만 현재는 내가 총감독 경선에 참여하는 것이니까, 여기서는 실패한 원인은 잠시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는 그냥 성공한 경우만 말씀드리고 실패한 경우는 말씀드리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제2부분: 형세분석, 중점파악

 

2005년전에, 바둑계는 한류가 거셌습니다. 1988년 세계대회가 생긴 이래로, 우리는 7년후인 199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첫번째 우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2005년 3월까지의 17년간, 우리는 모두 3 사람이 4번의 세계대회우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위기의 형세하에서, 중국기원의 지도자들은 비교적 느슨했던 감독조직을 재편하여 몇몇 감독팀을 구성했습니다. 그리하여 2005년 6월 23일에 제1차 감독경선이 있었습니다.

 

2005년 7월 6일 임명장을 받고 총감독에 취임한 후, 나는 7월의 승단전의 훈련공백기간을 이용하여, 깊이있게 당시의 형세를 분석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곳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최강의 적수인 이창호, 이세돌에 대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씁니다. 동시에 훈련방법에서도 속기를 추가하였습니다. 1시간, 3시간등 다양한 시스템적 훈련을 하게 했습니다. 결과를 보면 알듯이 8월 1일부터 10월 중순까지, 짧은 2개월여의 시간동안, 현저한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10월 19일의 LG배 4강전에서 구리가 강적 이세돌을 이겼으며, 이는 우리가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돌격신호였습니다. 이 승리이후, 우리와 한국간에 놓여있던 얇은 창호지같은 간격을 뚫을 수 있었다. 이후에 이어지는 승리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제3부분: 자신의 장점은 무엇인가

 

첫째: 시합전 경기준비.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의 임기중에 여러번 팀을 이끌고 대회에 참가하여 성공한 경력이 있는데(모두 최후 결승단계에서), 그중 두 번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제1차, 2006년초 뤄시허와 이창호의 삼성배결승에서 제1국을 승리한 후, 제2국을 패배하였다. 제2국과 제3국사이에 휴식일이 없어서, 어떻게 기술적으로 심리적으로 빨리 실패에서 빠져나올지가 아주 중요한 문제였고, 핵심적인 문제였다. 결전 전날밤, 나는 뤄시허와 장시간동안 기술전술을 분석했고, 뤄시허는 빨리 실패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승리의 자신감을 얻었고, 다음날의 경기에서 뤄시허는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여 이창호를 이기고 삼성배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제2차: 2007년 농심배의 실패이후, 나는 팀내에서 반복하여 농심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먼저 사상적으로 이 개념을 모든 기사들의 마음 속에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경기의 관건적인 마지막 단계가 시작하기 전에, 즉 2008년 구정을 전후하여, 나는 여러번 창하오, 구리등과 함께, 마지막 몇몇 상대방 및 한국측에서 선택할 출장순서를 분석했다. 상해대회기간동안, 나는 매 국마다 기술전술분석에 참가했고, 결국 창하오가 멋있게 삼연승하여 우리는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농심배를 차지할 수 있었다.

 

둘째: 전력을 다하여 여자팀을 양성했다. 감각이 뛰어났고, 방법도 적절했다.

 

제1회 세계지력운동회의 대체적인 종목이 결정되었을 때, 나는 즉시 여자팀을 잘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금메달의 수량에서 남자와 여자가 같았다. 우리의 여자수준은 비교적 낮아서, 끌어올리기가 쉬웠다. 그리고, 우리는 국가대표팀이 집단훈련을 하므로 남자들이 여자들을 도와주기 쉬었다. 단기간내에 한국팀과 대등하게 싸울만한 실력을 갖출 수가 있었다.

 

이에 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 나는 장시(江西)의 친구에게 연락해서, 2007년 11월 22일부터 28일까지, 여자팀을 이춘(宜春)의 양밍산(陽明山)온천리조트로 보내어 1주일간의 폐관수련을 했다. 사실, 외지로 간 주요한 목적은 훈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목적은 여자기사들로 하여금 긴장된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대도시를 떠나서 조용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보내어 마음을 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대자연의 풍경을 느끼고, 혁명성지 징강산(井崗山)도 가서 애국주의교육도 받게 했다. 몸과 마음이 느긋해졌을 때, 그녀들에게 지력운동회의 중요성과 임무를 얘기했고, 시간이 긴박하다는 것도 얘기했다. 훈련과정에서, 나는 1:2의 훈련방식을 생각해냈다. 이렇게 하면 혼성팀의 준비도 하면서, 여자기사들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는 일거양득의 훈련방법이었다. 나중에 위빈이 여자팀을 지도할 때도 자주 사용했고,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셋째: 지피지기로 포진을 잘하였다.

 

정관장배이건 한중대항전이건 농심배이건, 선수선발, 출장순서에 있어서 나는 비교적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특히 농심배와 정관장배등에서 출장명단을 확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종전과 같은 단일한 선발방식을 지양하고, 선발과 와일드카드를 병용하는 원칙을 세웠다. 이리하여 주력선수가 선발전에서 의외로 패배하여 선발되지 못하는 결과를 방지하고자 했으며, 단체의 전체적인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넷째: 공평공정, 사리를 도모하지 않았다.

 

임기내에 나는 명확히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직권을 이용하여 참가자격이 없는 기사를 참가시킨 적도 없고, 국가대표팀에 참가할 자격이 없는 기사를 국가대표팀에 넣은 적이 없다. 국가대표팀이 있어야할 선수를 국가대표팀에서 내보낸 적도 없다. 대회참가자격문제에 있어서, 나는 점수제를 채택하여 종전의 윤번제를 대체했다. 제도가 더욱 합리적이 되고, 운용하기 쉬워졌다.

 

제4부분: 업무능력에 대한 자체평가

 

현재, 이창호와 이세돌은 여전히 우리가 넘어야할 중요한 관문이다. 본인의 바둑에 대한 독특한 이해력과 경대에 대한 경험등에 비추어, 나는 스스로 이러한 난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고, 내외의 인사들도 모두 공감하고 있다. 이러하기 때문에, 나는 자신이 총감독으로 둘도 없는 후보자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감독 경선에서 제2지망을 아예 적어내지 않았다.

 

제5부분: 부족한 부분

 

본인의 결점은 비교적 산만하다는 것이다. 약간의 성적을 거두고, 임무를 완성하면 바로 만족한다. 그리하여 2006년이후의 성적을 비교해보면 약간 내려간 것을 알 수 있다.

 

고점에 달할 때가 있으면 저점에 달할 때도 있고, 장점이 있으면 약점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 장점과 단점은 있다. 내 생각으로 나의 단점이 큰 틀에서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양호한 업무환경하에서 다른 코치, 감독, 선수들과 잘 일하는데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기가 닥치면 나는 반드시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가장 큰 위기는 바로 이세돌로부터 오고 있습니다.

 

이번에 내가 다행히 총감독에 뽑힌다면, 나는 최선을 다하여 일련의 계획을 만들고, 돌파구를 찾아서, 머지않은 시간내에, 더 많은 우리의 기사들이 세계최고수준의 기사들과 맞겨룰 수 있도록 하고, 더 많은 기사들의 수준을 끌어올리겠습니다. 만일 지도자여러분과 동료여러분들이 믿지 않거나 잠시 믿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나는 예전에 경선에 응했을 때의 그 말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반년만 맡겨봐 주십시오. 안되면 내 스스로 용퇴하겠습니다.

 

이상은 나의 경선에 임하는 의견보고입니다. 여러분께서 가르침을 주시고 고귀한 의견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