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란생(何蘭生)
선양(禪讓)은 유가의 사전에서는 상고시대의 성현정치(聖賢政治)를 대표한다. 공자제자들이 오매불망하는 꿈속에서 선양은 도통(道統)이 정통(政統)에 승리한 표지이다. 천하는 덕이 있는 자가 다스리고, 정권을 잡은 우두머리는 동시에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인치국(聖人治國)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요순우탕, 문무주공은 모두 성인치국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다만, 예악이 붕괴된(禮崩樂壞) 춘추시대이후에 이러한 도정합일(道政合一)의 정치모델은 파괴되고 말았다.
이것은 유가들의 영원한 유감이다.
공자때부터, 역대 유가의 지도자들은 모두 상고의 성현정치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성인이 정권을 잡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정권을 잡은 사람이 성인으로 되기를 희망했다. 즉, "치군요순(治君堯舜)"이다. 그러나, 선양이라는 상고시대 정치적 몽상은 정말로 존재했던 것일까?
일찌기 요순선양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은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였다. 그는 한헌제의 선양을 받아들인 후 한마디를 던졌다: "순우수선, 아금방지(舜禹受禪, 我今方知, 순임금 우임금이 선양을 받은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알겠다)" 정권을 조씨들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앞에서, 여러해동안 정치적 괴뢰인 한헌제는 더 이상 도덕적인 부담을 지니고 있지 않은 조비와 나란히 존재할 수 없었다. 조비는 자신의 마음으로 순임금과 우임금의 마음을 추정했다. 이렇게 하여 요순선양의 아름다운 정치신화는 분쇄되었다.
정통사서가 아닌 <<죽서기년>>도 이런 주장을 채택하고 있다: "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였고, 순에게 갇히게 된다. 순은 요를 감금하고, 다시 단주를 막아서, 부친과 서로 만날 수 없게 하였다." 그 의미는 순이 정변을 일으켜서, 요임금과 태자 단주를 구금하고, 제위를 탈취했다는 말이다. <<상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는 그 안의 잔혹과 공포를 엿볼 수 있다: "요가 순으로 하여금 제위를 승계하게 했다....공공을 유주에 유배시키고, 환도를 숭산으로 쫓아내고, 삼묘는 삼위로 갔으며, 곤을 우산에서 죽였다. 네명의 죄를 처벌하자, 천하가 복종했다" 선양이라는 이벤트가 벌어진 후에 순은 요임금에 충성하는 중신들을 주살했다. 일벌백계의 책략이었고, 그의 권력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인사들에 대한 경고였다. 즉, 요임금의 네 중신에게 손을 쓰지 않고서는 천하가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가 유가가 순임금에게 붙여놓은 아름다운 장식을 제거하고 나면, 진실한 순임금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순은 밭에서 일을 했다. 역산에서 친히 농사를 지었다. 시골의 가난한 사내아이였다. 평화시대에 보통촌민에서 수십년동안 노력하여 요임금의 두 딸을 취하기에 이르고, 조정의 중신이 되고, 다시 섭정왕이 되고, 마지막에는 천자위를 차지한다. 이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순에게는 남이 갖추지 못한 뛰어난 점이 있고, 독문절기가 있음을 말해준다.
평화시대에 정치적인 지위를 획득하려면 일정한 절차가 필요하다. 난세에서처럼 밑바닥에서 왕후장상이 되기는 힘들다. 이런 점에서 평화시대는 일반백성들에게는 복이지만, 정치야심가에게는 불운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다만 진정한 수완을 지닌 정치고수라면, 평화시대라고 하여 그다지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알고 있다. 과거시대에 고시를 통하여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과거이전에 관리를 선발하는 방법은 징벽(徵僻)이었다. 조정에서 누군가가 현명하다는 말을 들으면, 조서를 내려 그에게 관직을 내리고 정부를 위하여 일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포부를 지닌 사람이라면 정치의 궤도를 걷고자 한다. 그러자면 무명지배가 되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사회적으로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덕행을 하거나 재능이 남보다 월등해야 한다. 그래야 이름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 그러나, 재능으로 이름을 날리기 보다는 덕행으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 더욱 빠르다. 왜냐하면 재능은 관리로 채용된 후에 일처리하는 과정에서 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행은 언제든지 나타낼 수 있다. 소위 "대덕(大德)"은 "세행(細行)"으로 나타난다. 모든 자잘한 일에서도 사람의 고상한 품격을 드러낼 수 있다. 그리하여,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조정의 징벽을 얻기 위하여, 덕행을 쌓는데 주력한다. 산야에 숨어있으면서 자신이 명리에 담백한 고매한 인격자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거나, 부모에게 효도하여 효자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로운 일에 재물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착한 사람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징벽제도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시행하던 한나라때 많이 발생했다.
순임금의 독문절기는 바로 그가 쇼를 하는 능력이 일류였다는 것이다. 순이 요임금에게 징벽되어 일을 맡게 된 이유는 바로 그가 덕행과 재능에서 모두 아주 뛰어난 사회적인 명성을 얻었던 것이다. 그는 은일, 효행과 재능에 모두 힘을 쏟았다.
먼저, 효(孝)에 힘을 쏟았다. 역사서에는 "부친은 완고하고 모친은 악독하고 동생은 오만하다"고 적혀 있다. 그의 부친, 계모와 이복동생은 그를 죽이기 위하여 갖은 수단을 썼다. 여기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순의 집안에 재산이 별로 없었는데, 순의 가족들은 왜 그를 죽여버리려고 했을까? 더욱 불가사의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은 순이 이미 요임금의 사위가 된 후에, 그의 가족은 계속하여 그에게 여러가지 모살행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순이 곡창을 만들 때, 곡창을 불태운다. 순이 우물을 팔 때는 낙정하석(落井下石, 우물속으로 돌을 던짐)한다. 모두 죽이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순을 죽여서, 그의 동생인 상(象)이 모든 재산을 가지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순이 부마가 된 후에는 이기적인 상에게 있어서, 형에게 의탁하는 것이, 형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이익이 컸을 것이다. 역사서에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상이 이때 순을 죽이려고 기도한 것은 형이 죽으면 동생이 이어받는(兄終弟及) 것때문이다. 순의 두 꽃처럼 예쁜 부인을 넘겨받아 요임금의 부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이런 주장은 너무나 견강부회적이다. 부마를 죽인다는 것은 정치적인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 생각해보라, 순이 비정상적으로 죽으면, 가장 큰 혐의를 받을 사람은 바로 상의 모자이다. 이전에 그들은 여러번 순에 대하여 나쁜 짓을 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상이 이것도 몰랐을까? 교만한 두 공주가 남편을 죽인 원수와 결혼을 하려고 할까? 그녀들이 남편으 죽인 원수를 살려둘까? 사람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추측해보자면, 군자이든 소인이든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정사에서 순이 그의 가족과 은원이 있다고 한 것은 정권을 장악한 순의 창작으로 보인다. 아니면 그들이 짜고친 고스톱일 것이다.
창작도 좋고, 연극도 좋다. 어쨌든 순은 이를 통하여 효자라는 미명을 얻는다. 이것이 최종 목적이었다. 효자라는 미명을 얻은 후에, 순은 역산의 토지위에서 그의 덕망과 재능을 보여주는 이벤트를 벌인다. 그는 백성들과 하나가 되어, 그가 가는 곳으로 백성들이 따라갔다; 다른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순이 가면 스르르 풀렸다. 백성들은 분쟁이 발생하면 그를 찾았고, 그는 그것을 판단했고, 그의 재판에 모두 승복했다. 당연히 이것은 모두 나중에 순의 어용학자들이 한 말이다. 결론적으로, 그의 이름은 금방 역산을 넘어 천자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그리하여 조정은 정벽하여 조정에 불러 일을 시킨다.
순이 요의 조정에 온 후, 금방 요임금의 환심을 산다. 요임금의 말년에 재해가 빈번했다: "홍수가 일기도 하고, 산이 무너지기도 했다" 공공, 곤, 환도등 명신들이 이때 모두 조정에서 일을 했다. 이들은 모두 순의 선배들이다. 그러나, 순은 그들이 갖추지 못한 것을 하나 갖추었다. 즉, 그는 부마였던 것이다. 요임금이 단주를 제외하고는 가장 믿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믿음 때문에, 요임금은 말년에 정사를 돌보지 않고, 수도에 빠지고, 순의 주청에 대하여는 살펴보지도 않고 동의해주었다. 순이 일을 하기 시작한지 20년이 지나자 이미 세상은 바뀌어 있었다.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이미 날개를 단 꼴이었다. 모든 의사결정이 순에게서 나오지 요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요임금은 권력을 빼앗긴 후에 궁중에 유폐된다. 태자 단주는 다른 곳에 구금된다. 다만, 간교한 순은 바로 요의 천자위를 빼앗지 않는다. 그는 그저 섭정을 할 뿐이다. 8년간 섭정을 한 후에 다시 한번 쇼를 해서 단주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태도를 보인다. 다만 백성들이 동의하지 않아서, 그는 할 수 없이 스스로 천자위에 오른다.
순이 단주에게 양보한 것은 정치적인 쇼이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다: "순이 단주에게 양보하고 남하의 남쪽으로 갔다. 제후들이 배알할 때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다. 소송을 하는 자들도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다.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단주를 노래하지 않고, 순을 노래했다. 순은 말했다: "하늘의 뜻이다. 그리고는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한번 비교해보자. 한 사람은 정권을 30년간 잡고 있던 사람이고, 당금의 섭정왕이며, 모든 문무관리들이 다 그의 손에 발탁되고 배양되었다; 다른 한 사람은 비록 태자이지만, 정적에 의하여 현명하지 못하다는 모자가 씌워졌고, 여러해동안 구금되어 있었다; 날개도 없고, 적수공권인 태자인데, 어떻게 권위에 넘치는 섭정광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인가? 머리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아무도 순에게 고개숙이지 않고 단주에게 고개를 숙이지는 않을 것이다.
순의 섭정은 수천년후에 왕망의 가황제와 비슷하다. 재미있는 것은, 순은 가식적이지만, "하늘의 뜻이구나"라고 탄식을 했다. 왕망은 나중에 한을 폐할 때도 비슷하게 "황천위명(皇天威命)"이라고 했다. 왕망이 동시효빈을 했던 아니던 간에, 최소한 왕망은 요순선양의 실질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역대이래로 영웅만이 영웅을 알아본다. 그리고 간웅만이 간웅을 알아본다.
이런 정치권모술수는 시작이 어렵지, 한번 선례만 있으면, 도미노효과를 발휘한다. 순이 갖은 머리를 짜내어 천자의 자리에 올랐고, 동시에 정치의 화산에 앉았다. 요임금이 남긴 것을 그가 수습해야 했다. 천하는 비록 일시적으로 그에게 겁을 먹었지만, 그가 이어받은 것은 홍수가 매년 발생하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진정 천하를 장악하려면, 시급한 것은 바로 치수사업이었다. 먼저 물을 다스려야,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방법이 없다. 순은 하 ㄹ수 없이 치수세가출신의 우(禹)를 등용한다.
이전에, 순은 우의 부친인 곤을 죽여버린다. 부친을 죽이고 아들을 썼다. 순이 혹시 몰랐던가? 부친을 죽인 원수는 불공대천지수라는 것을. 그러나, 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치수할 능력이 없었다. 순은 어쩔 수 없이 제한적으로 우를 기용하게 된다. 우는 나중에 치수흘 하면서, "세번이나 집대문을 지나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가 치수사업에 집중한 것을 보여주는 것 이외에 아마도 가장 중요한 원인은 순임금에게 조그만큼도 트집을 잡히지 않겠다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치수과정에서 집안에 들어갔다면, 순임금은 이를 이유로 그가 직무에 소홀히 하고, 집안일을 위하여 국가일을 방치했다든지 아니면 더욱 중대한 정치적인 모자를 씌울 수 있었을 것이다; 성은을 무시하고, 조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녀자의 정에 이끌려 군신간의 대의를 망각했다는 등... 우는 나중에 검박한 것으로 유명한데, 아마도 그가 처한 사방에 의심의 눈초리가 번득이는 정치환경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에게 있어서, 원한을 품고 원수의 아래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여리박빙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우가 명을 받들어 치수를 할 때, 홍수는 이미 국가의 큰 우환이 되어 있었다. 치수는 자연히 국가의 다른 일체의 사무보다 우선시되었다. 전체국가가 모두 동원되었고, 모든 관청, 모든 자원, 모든 사람이 치수를 우선적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권력중심은 무형중에 치수지휘부로 통합되기 시작한다. 국가의 생사여탈권, 인사상의 승진진퇴가 모두 치수에 대한 태도에 따라서 결정되게 된다. 이는 순임금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다. 다만 우에 있어서는 이것은 다시없을 큰 기회이다. 결국 우는 구하를 소통시키고, 강을 바다로 끌어들여, 광세의 공을 세운다. 이 덕행으로 그는 천자를 뛰어넘는 공을 세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치수과정에서 무형적으로 전체 국가기관을 통제하게 되었고, 전체국가의 재물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우의 위망이 순임금을 넘어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익등 부장의 추대하에, 우가 선양을 받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역사는 다시 간단하게 재현되었다. 우가 순으로부터 선양을 받는다. 순이 옛날에 했던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우는 순의 아들 상균(商均)을 피해 양성으로 간다. 천하의 제후가 상균을 제거하고 우를 찾아간다. 우는 그리하여 천자위에 오른다."
그러나, 우는 순이 예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하늘의 뜻이니 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비록 사양하고 물러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절차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비록 순임금을 핍박하여 물러나게 하고, 강제적으로 천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순임금이 효도로 명성을 날려서 정치자본을 취득했던 것과 비교하자면, 그는 어쨌든 천하창생을 위한 불세의 공을 세웠던 것이다. 그가 천자위에 오른 것은 인심이 그러했고, 실질을 얻은 후 명분까지 얻은 것이 된다.
땅을 일구던 순임금은 물을 다루는 우로 대체된다. 결국 남방을 순수(巡狩)하다가 창오의 들에서 붕어한다. 그리고 그곳에 릉을 만든다. 불쌍한 농삿꾼출신의 퇴위천자는 평생동안 연극을 한다, 결국 마지막에도 아황과 여영이 그의 능을 눈물로 적신다. 아마도 소위 순수라는 것도 이상한 점이 있다; 이미 퇴위한 천자가 무엇때문에 천하를 순수하는가? 하물며 그때는 남방이 지금처럼 개발된 상태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말만 들어도 황량하고 공포스러운 밀림의 땅이었으며, 원래는 유배지였다. 순임금이 순수(巡狩)를 했다는 것은 실제는 정치적으로 유배갔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아황, 여영이 그렇게 곡을 하며 상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피가 대나무에 배어들어 반죽(斑竹)이 되었으며, 결국은 둘 다 죽어 상비(湘妃)가 되어 혼이 구의산을 떠돌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순임금부터, 선양은 하나의 법도를 형성하게 된다: 선양받은 천자도 너무 심하게 핍박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퇴위천자와 그 승계인에게 일부 특권을 보류시켜주고, 그들에게 손님의 예로 천자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고, 모두 강토를 주고, 선조의 제사도 지낼 수 있게 해주었다. 마치 조비가 한헌제를 폐위시킨 다음 산양공으로 하면서 유협으로 하여금 그 봉지(封地)에서 봉한정삭(奉漢正朔)을 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천하의 진기한 것은 내가 산양공과 함께 누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만, 실제로는 그들은 서로 내심으로 다시 보지 않고자 했다. 한 사람은 도덕적인 미안함에서 또 한 사람은 군신이 바뀐 난감한 처지를 견디지 못해서이다. 그리하여 군신의 예로 만날 것인지 손님과 주인의 예로 만날 것인지가 처음에는 정해지지 않았었다. 퇴위군주는 비록 봉지는 유지하지만, 사실 감시받으며 거주하는 것이다. 봉지에 연금되는 것이다. 이제 이런 지경이 되면 천하의 진기한 음식을 가져다 준다고 하더라도, 마치 돌을 씹는 것같을 것이다.
순, 우의 선양은 역사에 의하여 신화로 남게 된다. 우리는 무것이 정치적 신화이고 무엇이 정치적 거짓말인지 잘 알고 있다. 왜 거짓말도 여러번 반복되면 절대진리와 뒤집을 수 없는 신화로 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순, 우가 선양이 있은 후, 한나라가 망하여 천하의 주인이 없게 되자, 천하는 수백년간 축록의 시대를 맞이한다. 진정으로 왕조의 교체가 마치 주마등같았다. 각지의 영웅효웅이 들고 일어났다. 예를 들어, 왕망, 조비, 사마씨, 유유, 소도성, 소연, 진패선등이 "네 노래가 끝나자마자 내가 무대에 오른다"는 식으로 정권이 선양의 악순환으로 맞물렸다. 비록 혁명처럼 격렬하지는 않았지만, 평화로운 가면의 아래에는 마찬가지로 피눈물이 충문했다. 인간성의 어두운 일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한 가지를 증명한다: 선양은 강력한 권력에 억지로 덧붙인 도색이다. 절반밖에 못가리면서, 이를 대거 선전하는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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