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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임표)

임표와 모택동의 최후 대면

by 중은우시 2009. 1. 23.

구술: 두수현(杜修賢)

 

1971년 5월 1일, "5.1"국제노동절의 폭죽놀이를 하는 밤에, 모택동이 왔다. 당연히, 모택동이 있는 자리이면 임표도 참가하여야 한다. 이것은 "문혁"이래로 고정된 법칙이다.

 

어둠이 내리고, 중앙지도자가 속속 천안문의 성루에 도착했다. 모택동은 중간원탁의 동쪽머리에 앉았다. 곁에는 시하누크 국왕이 있고, 동필무(董必武)가 시하누크의 오른쪽에 앉았다....이때 나는 임표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주은래 총래의 눈도 임표를 찾고 있었다.

 

모택동은 약간 머리를 들고, 건너편의 빈자리를 슬쩍 일별하고, 고개를 돌려 시하누크와 얘기를 나누었다. 마치 아예 그 자리가 비어있는 것은 보지 못한 것처럼.

 

마침내, 임표가 느릿느릿하게 초조해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나중에 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게 들으니, 그날 밤, 임표는 담배를 피우고자 했고, 성루에 오르고 싶어하지 않았다. 총리가 전화를 걸어 재삼 그에게 저녁의 활동에 참가하도록 요청하여, 그는 할 수 없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그만두었다. 다 피우지 못해서 그런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은 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바로 곁에 있는 모택동과 악수를 하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저 누런 얼굴만 굳히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촬영을 할 때는 일반적으로 정,부통수(正副統帥)가 말을 나누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시작한다. 영화를 찍는 사람은 여전히 모택동을 향하여 카메라를 조정하고 있었다. 나는 메인테이블의 전경을 한 장 찍었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특히 임표의 표정은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즐거운 표정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천천히 바깥쪽으로 걸어가서, 되돌아보았다....아, 나는 그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임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임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임표는 그냥 떠나버린 것인가? 만일 가버렸다면, 우리는 내일 신문에 어떻게 사진을 실을 것인가?

 

이때, 사람의 눈길이 메인테이블의 빈좌석으로 쏠렸고,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조급해진 것은 총리 주은래였다. 그는 눈길을 계속 그 빈자리로 보냈고, 목젖이 계속 움직였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듯이, 그러나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택동의 머리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젖혀졌고, 눈길이 건너편의 빈 자리를 지나갔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고, 찾지도 않았다.

 

경비원이 잰걸음으로 총리의 앞으로 갔다. 총리의 짙은 눈썹이 찡그려지더니, 얼굴색이 보통때와는 달리 심각해졌다. 나는 급히 나가서 알아보니, "임표가 집으로 일찍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망연해져서 메인테이블로 돌아왔다. 모택동은 오색찬란한 하늘을 쳐다보면서 약간 입을 벌리고 있었으며, 친절하고 우호적이며 약간은 어린아이같은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택동은 임표가 말도 없이 떠난 것에 대하여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였다.

 

"몸이 좋지 않아서, 먼저 돌아갔습니다." 시하누크는 동필무에게 물었다가 이런 대답을 듣고는 안심하는 듯했다.

 

이것이 임표가 떠난 것에 대한 가장 좋은 해명이었다. 그것 말고는 사람들이 임표의 기괴한 행동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노두(老杜)!"

 

나는 깜짝 놀랐다. 총리가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모주석과 임부주석이 함께 있는 사진을 찍었는가?" 총리는 바로 물었다.

 

"아...찍었습니다. 딱 한 장 찍었습니다."

 

주은래총리는 이때 약간 조급해 하는 것같았다. 그는 영화 텔레비전 기자는 모두 찍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는 신문선전을 담당하는 책임자를 불러서 혼을 냈다.

 

누군가 이때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중얼거렸다: "우리는 주석과 부주석이 얘기하는 장면을 기다렸습니다."

 

총리는 바로 화를 내며, 한 손으로 허리를 집고, 한 손으로 공중에 손짓을 해가면서 말하는데, 말투가 더욱 준엄했다.

 

기회를 놓친 기자와 직무소홀의 책임자들은 한 마디도 말을 못했다. 나는 총리를 여러해동안 보았지만, 그가 이렇게 크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보았다.

 

총리는 훈계를 마친 후에 나보고 빨리 사진을 현상하라고 했다. 1시간내에 서화청으로 가져오라고 했다.

 

금방 사진은 현상되었다: 모주석은 얼굴을 옆으로 향하고  시하누크국왕과 담화를 하고 있었다. 얼굴빛이 굳어 있어서 그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것은 알 수 있었다. 임표는 외투를 걸치고, 농민과 같이 손은 소매 속에 집어놓고, 허리를 굽히고, 쪼그린 모습이었다. 얼굴은 근심어린 표정이랄까 병색이 든 표정이랄까....

 

사진 속의 인물의 감정이 너무나 명확히 나타났다. 찍은 각도도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딱 이 한 장 뿐이었다.

 

서화청으로 갔다. 총리는 돋보기안경을 끼고는 사진을 쳐다보았다. 모주석과 임표의 사진을 본 후에 물었다: "딱 이 한장인가?"

 

"그렇습니다."

 

총리는 정리한 다음 마지막으로 말했다: "텔레비전과 영화에 이 사진을 사용해라. 네가 처리해라."

 

5월 2일, 신문이 나왔다. 이 한 장은 신문 전면을 장식했다. 표제는 잘보이는 굵은 글씨체였다: "우리의 위대한 영수 모주석과 그의 친밀한 전우 임부주석은 캄보디아국가원수 노로돈 시하누크 국왕 및 부인과 함께 천안문 성루에서 함께 폭죽을 구경했다>>

 

4개월후, 임표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