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임표)

임표는 찬당탈권(簒黨奪權)한 적이 없다

중은우시 2009. 1. 5. 23:33

글: 노구불로(老九不老)

 

앞 글에서(임표는 후계자를 네번이나 거절했다), 필자는 임표가 네번이나 후계자가 되는 것을 사양했다는 것을 쓴 바 있다. 그는 모택동에게 "손오공머리테"를 두르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의 손안에서 가지고 놀다가 죽는 운명을 피하고자 했다. 이에 대하여, 대다수의 독자들은 신선하게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동감하며 여러 댓글을 남겼다. 다만, 어떤 글로거들은 글에 나오는 "임표는 당과 권력을 찬탈한 적이 없다"는 견해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하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 따졌다. 호의를 품은 친구들 중에서는 나에게 이 일은 아주 민감하니, 다른 사람들에게 네가 임표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일한다는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임표는 일찌기 풍운의 정치인물이었다. 사람들이 미워하고,욕하였으며, 일찌감치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진 사람이다. 그의 심복들은 모두 나이가 들어 죽었고, 그의 가정도 이미 파괴되었으며, 근 사십년이나 흘렀다. 필자가 보기에, 임표는 이미 정치인물에서 역사인물로의 전환이 끝난 사람이다. 우리가 오늘날 대면하는 임표는 하나의 역사인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의 눈으로, 역사의 언어로 그를 평가할 수 없을까? 그에게 억지로 뒤집어씌워진 부정확한 것들을 모조리 제거해버리고 나서 피와 살이 있는 정상인으로 환원해볼 수 없을까?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방법은 오직 하나이다: 역사적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만일 사실을 말하게 하면, 나는 감히 단정할 수 있다: 임표는 당을 찬탈(簒黨)한 적이 없다.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임표는 그저 공청단과 공산당에 참가했을 뿐, 출신성분도 좋고, 초기부터 중국공산당의 창시자인 임육남(林育南), 임육영(林育英), 초초녀(肖楚女), 운대영(惲大英)등의 보살핌을 받았다. 황포군관학교에 들어가면서 장개석의 국민당과 약간의 연계를 가진 것을 제외하면, 그는 계속 홍군내에서 싸웠고, 한번도 체포된 적도, 감옥에 갇힌 적도, 당을 배반한 적도 없었다. 모택동도 말한 바 있다. 임표는 역사문제가 없다고. 건국후, 1958년 임표는 관직이 당의 부주석에까지 오른다. 이후 "후계자"가 되어 헌법에까지 이름이 명시된다. 그는 계속하여 당내에서 "일하고 투쟁"했다. 역사는 보여준다. 임표는 장국도처럼 별도로 중앙을 세운 적도 없고, 고대의 왕망처럼 "찬탈'한 적도 없고, 무측천처럼 '찬권'한 적도 없으며, 이등휘처럼 '찬당'한 적도 없다. 천수이벤처럼 (국민)당을 떠나 별도로 (민진)당을 세우지도 않았다. 임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산당당원이었다. 그가 어느 당을 찬탈했는가? 우리가 인정할 것은 임표의 일은 바로 중국공산당 내부의 일이라는 것이다. 임표문제의 사실, 성격은 순수한 당내투쟁, 종파투쟁이며 많은 부분은 모택동의 전제, 독재, 정치광열에 반대한 정확한 방향이었다.

 

만일 사실을 말하라면, 나는 감히 단정할 수 있다: 임표는 권력을 탈취(奪權)한 적이 없다. 임표가 권력을 빼앗았다는 유일한 근거는 그가 여산회의에서 '국가주석을 두자'고 주장하였고, 이 '계륵'인 국가주석에 오르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첫째, 한가지를 분명히 하자면, 임표가 국가주석을 두자고 제안한 것은 절차적으로 완전히 합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치에도 맞다. 국가에 군주가 없으면 안된다. 이것은 어린아이도 아는 이치이다. 임표의 주장은 대회에 참가한 대표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자료에 따르면, 여산회의의 전날 저녁에, 중앙정치국의 5명의 상임위원이 회의를 열었는데, 모택동 한 사람을 제외하고, 회의에 참가한 주은래, 주덕, 강생과 임표의 4사람은 모두 국가주석을 두는데 동의했다. 만일 소위 민주집중제가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1대4로 모택동은 절대소수이다. 둘째, 임표가 이 국가주석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안될 게 무엇인가? 알아야 할 것은 전임 국가주석이 유소기라는 것이다. 모택동이 아닌 것이다; 나를 후계자로 삼으려면, 바로 나를 국가주석으로 세워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후계자로 세워주는 성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임표의 권력탈취라고 한다면, 그것은 임표의 "유소기"의 권력을 탈취하는 것이지, 모택동의 권력과는 무관한 것이다. 당연히 관계가 있다면, 모택동이 유소기문제에서 잘못 교훈을 얻어서, 그는 일찌감치 중국이라는 국가를 전부 자기 주머니속의 개인물건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국가주석은 너무 번잡하고, 나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으나 남에게 주기도 싫으니, 아예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떠냐, 너 임표가 감히 나와 싸워보겠다는 거냐. 이 후계자는 바로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산회의후, 임표는 모택동이 진정으로 자신을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청한다. 그러나 모택동은 한 마디로 거절한다. 임표가 겨우 국가주석이라는 자리를 두자고 제안만 했고, 단 하루도 주석자리에 앉아본 적도 없는데, 이것도 '탈권'인가? 만일 죄를 덧붙이려면 무슨 죄를 못붙이겠는가? 임표는 탈권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그는 모택동 개인 전제권력의 희생물인 것이다.

 

역사는 다행히 공정하다. 1980년대초에 강청등을 재판할 때, 정치적인 필요에 의하여, 죽은지 10년된 임표를 꺼집어내서, 그들을 "임표반혁명집단"이라고 명명했다. 사정은 이해가 간다. 최근 호금도 총서기는 화국봉을 추도할 때 과감하게 새로운 견해를 밝혔다: "화국봉은 임표집단문제를 처리할 때 중요한 작용을 발휘했다. 임표를 위하여 "반혁명"의 모자를 벗겨주었다." 임표가 반혁명이 아니라면, 찬당탈권은 논할 것도 없지 않은가? 누가 중국공산당을 불공정하다고 하는가? 이것이 바로 영명한 것이고, 바로 실사구시이다. 정의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