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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전)

레이펑(雷鋒)은 중국인의 우상이었던가?

by 중은우시 2009. 1. 19.

글: 이회지(李悔之)

 

2008년 11월 23일, 인민망(人民網)의 "인민시평"의 잘 보이는 위치에 실린 <<레이펑에서 저우제룬(周杰倫)까지, 30년우상의 변화>>라는 글을 보았다. 이 글에 나오는 내용중 일부를 발췌해보면 아래와 같다:

 

"한 시대에는 한 시대의 조류가 있다. 조류는 왕왕 풍류를 만든다. 우상은 풍류인물의 대표이다. 매 역사연대에 모두 시대의 흐름을 타고 태어나며, 사회와 시대의 정신면모의 축소판이다. 이 점에서 개혁개방 30년도 예외는 아니다.

 

만일, 전통중국에 1천년동안 공자 1인이 사람들의 정신세계에서 발군의 인물이라고 한다면 현대중국은 루쉰(魯迅)과 레이펑이다. 최소한 반세기동안은 그렇다; 그러나 당대중국에 이르러서는 짧은 30년만에 사람들의 우상은 하나가 노래를 끝내자 마자 바로 다른 사람이 무대에 등장하듯이, 각자 겨우 3,5년씩 반짝하고 지나갔다. '물시인비(物是人非)'의 속도로, 정말 놀라자빠질 정도이다. 이런 놀라움 속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사회진보의 수레바퀴가 시대정신과 함께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서 우리는 작자가 마음 속으로 중국인민의 정신세계에서 레이펑은 루쉰과 마찬가지로 사람들 마음 속의 우상이었다는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나는 상당한 의문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고금중외의 저명한 정치가, 군사가, 민족영웅, 과학가, 예술가...그리고 당대의 수많은 영화스타, 가수등등은 모두 일찌기 여러 사람들의 마음 속에 우상이었다. 그러나, 레이펑이 중국인의 마음 속에 우상인 적이 있었던가? 내 생각에는 개별성으로 말하자면 긍정적이다. 그러나, 보편성으로 말하자면 절대로 부정적이다.

 

"우상"이라는 말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원래의 의미는 나무조각, 진흙등으로 만들어 미신적인 사람들 모시고 받들도록 만든 사람의 상(像)이다.  이 측면에서 보자면, 폄하하는 취지가 비교적 많은 것이다. 다만,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이 개념은 계속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여기서 나는 이를 "사람들로부터 고도의 숭배를 받으며 본받고 싶어하는 인물"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확실히 이와 같은 한 사람의 다른 사람에 대한 고도의 숭배는 마음 속으로부터 기꺼이 생겨나는 일종의 우러러보는 느낌이다. 이럴 때만이 후자는 전자가 스스로 본받거나 배우고자 하는 모범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이펑이 중국인의 마음 속에 "사람들로부터 고도로 숭배받으며 본받고 싶어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답안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아다시피, 정부의 공식적인 이데올로기로 정교하게 포장하여, 레이펑은 일찌감치 바라볼 수는 있지만 따라갈 수는 없는 도덕과 정치의 부호가 되어 버렸다. 피와 살로 되고, "사람들로부터 고도의 숭배를 받고, 본받고 싶어하는 인물"은 아닌 것이다. 레이펑정신의 주요한 점은: 당에 충성하고 모주석에 충성하는 것이다; 레이펑정신의 실질은 멸사봉공, 대공무사(大公無私), "당이 결정하면 바로 집행한다"는 것이 레이펑의 행동가이드라인이다; 기꺼이 '영원히 녹슬지 않는 나사못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 레이펑의 인생가치추구이다....그러므로, 장기간동안, 중국인민의 마음 속에 "생활속에서 나왔으나, 생활에서 벗어나 높아진" 레이펑은 그저 '인간세상사람이 아닌' 정치적 토템이었다. 절대로, '마음 속으로 기꺼이 따르고자 하는' 숭배대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전국인민에게 중국공산당이 시키는대로 따르게 하기 위하여, 중국공산당은 계속하여 "레이펑정신"을 크게 선전했고, 레이펑을 전국인민이 학습해야할 모범으로 올려놓았지만, 이 노력은 확실히 성공하지 못한 것같다. 왜냐하면, 레이펑의 '고상한 품격'이라는 것은 바로 "증오와 애정이 분명한 계급입장, 언행일치의 혁명정신, 멸사봉공의 공산주의 품격, 분불고신(奮不顧身,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분투노력함)의 무산계급투지"이다. 이는 성격에 거리낌이 없고, 전횡발호하던 모택동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이고, 역대이래로 사람들이 '성인'으로 보고 있는 주은래 본인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이다. 더더구나 절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레이펑은 '인민으로부터 고도의 숭배를 받고 본받고 싶어하는 인물"이 될 수가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당연히 지적해야 할 것은, 과거 상당한 시간동안, 아주 빈번하게 전개된 정치화되고 형식화된 "레이펑배우기(學雷鋒)"운동은 적극적인 사회적 의의를 발휘하지 못했을 뿐아니라, 상당한 정도로 중국인들을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만들었다. 다 알다시피, "레이펑배우기"운동은 모두 조직적이고 피동적으로 진행되었다. 상당한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형식으로 생각했고, 부담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소극적으로 따라하는 척했을 뿐이다. 일부 사람들은 "레이펑배우기"측면에서 아주 열정적임을 나타냈지만, 사실상 그것은 공리주의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 절대로 그의 내심에서 나온 진정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레이펑을 배워서 착한 일을 하자"는 활동을 그저 "당에 충성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이는" 좋은 기회로 활용했을 뿐이다. 그래서, 자주 전개된 "레이펑배우기"는 사실상 아주 허위적인 '조가(造假)'활동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쓴 소위 "레이펑배우기 심득경험"은 모조리 거짓말이고 헛소리이다. 이것은 바로 "간접적으로 중국인들의 도덕을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

 

나는 절대 레이펑 본인의 '뛰어난 이미지'를 폄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더더구나 레이펑정신의 가치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중하게 이런 이치를 설명하는 것은 원래, 레이펑은 생생하게 살았고, 피와 살이 있는 보통사람이라는 것이다. 절대 '인간세상에 살 것같지 않은' 신선이 아닌 것이다. 레이펑이 정신과 도덕품격은 고상함에 의문이 없다. 다만, 어떤 목적에 따라 레이펑의 이미지는 정교하게 정치적으로 포장되었다. 레이펑정신을 무한히 끌어올리는 것은 레이펑이미지와 레이펑정신에 대해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레이펑이 진정으로 사람들이 배우고 따라할 모범과 우상이 되도록 하려면, 반드시 레이펑을 진정한 인간의 모습으로 환원시켜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