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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전)

임표의 아들과 모택동의 딸

by 중은우시 2009. 7. 30.

글: 대산무언(大山無言)

 

임입과(林立果), 이눌(李訥)은 3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너무나 유명했었다. 하나는 부통수(副統帥)의 아들이고, 하나는 정통수(正統帥)의 딸이다. 용은 용을 낳고, 봉은 봉을 낳으며, 쥐새끼는 땅구멍을 판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쥐의 무리는 아니다.

 

임표를 비판할 때, 임표의 죄상중 하나는 임입과가 20여세에 공군 작전부부부장의 위치에 발탁되었다는 것이다. 오법헌(吳法憲)이 이를 고발할 때, 이런 저런 증거를 내밀며, 임표가 어떻게 어떻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씨집안이 다 죽지는 않았다. 임두두(林豆豆, 임표의 딸)는 이를 부인했다.

 

임두두는 말했다: "나와 임입과가 공군에 간 것은 모두 부친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임입과를 작전부 부부장으로 발탁되면서, 섭군(葉群, 임표의 처)는 집안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가지 규칙을 정했다: 누구도 수장(首長, 임표)에게 말해서는 안된다. 1년후, 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섭군이 화를 벌컥 냈다. 그날 부친이 나에게 물었다: "노호(老虎, 임입과)는 요즘 뭘로 바쁘지?" 나는 말했다: "작전부부부장이잖아요." 부친은 놀라서 물었다: "그가 전투를 알아?" 다시 물었다: "어디서 작전부부부장을 하지?" 나는 말했다: "공군에서요" 부친은 더욱 놀랐다: "공군에도 작전부가 있어?"

 

임표의 딸의 이 말은 믿을 수 있을까? 뭐 어려울 게 있겠는가? 당시 임표판공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아직 다 죽지는 않았으니, 조사해보고 물어보면 되지 않겠는가?

 

다시 오법헌에게 물어보자. 오법헌은 당초에 임표가 그에게 지시했다고 말한 것은 거짓이라고 인정했다. 왜 거짓말을 했는가? 임표는 오법헌에게 박하게 대하지 않았는데. 오법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와 임입과가 공군에 간 것은 부친과는 모두 직접관계가 없다" 그러나, 임입과의 승진은 임표와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중국에서는 너무나 정상적인 일이다.

 

모택동의 딸인 이눌, 모택동의 조카인 모원신(毛遠新), 그리고 그 외교부의 재녀 왕해용(王海容)은 모두 헬기를 탄 것처럼 수직상승하지 않았던가? 바로 지금도 고관자제중 누가 "쥐새끼"같은가? 풀뿌리인가? 그렇지만 이눌, 모원신, 왕해용의 발탁이 모택동과 직접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1966년 정통수인 모택동의 딸 이눌이 해방군보(解放軍報)에서 '소력(蕭力)'이라는 이름으로 조반(造反)을 일으키고, 반당분자인 총편집인 조역아(趙易亞)를 몰아낸지 얼마되지 않아, "여러 사람들이 추대하여" 해방군보사의 실질책임자가 된다. 막 북대를 졸업한지 며칠도 되지 않은 이십여세의 여자아이가 해방군보의 제1인자의 자리에 올랐는데, 누가 지시라도 했는가? 모택동? 그럴 리가 없다. 강청? 불가능하다. 너무 지나치고, 너무 드러난다. 모택동 강청이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있는가? '여러 사람들이 추대'하였다고? 사람들이 밀어올렸다니? 공산당의 장관급 간부들 중에서 언제 '여러 사람들이 추대'한 적이 있는가? 그렇게 민주적이었던가?

 

이눌이 조반을 일으키고, 군내에서 대자보를 붙인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임표가 즉시 섭군을 보내서 조사했다. '소력'이라는 사람을 조사해보니 바로 이눌이었다. 공주이다. 즉시 서신을 보내여 지지하고 위대한 통수에게 보고했다. 모택동도 즉시 지지를 표시했다. 모택동이 딸로부터 조반후에 말한 것을 들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이눌은 이십여세만에 해방군보의 실질책임자에 오른다. 장관급이지 않는가? 이 장관급 자리가 임입과의 부부장(차관)급보다 작은가? 나중에 모택동의 전문연락원이 되어 북경의 각 대학, 각 단위의 큰 일들을 모탣동에게 모조리 보고했다. 이눌 연락원이 어떻게 부친에게 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십여세된 여자아이가 문제를 보고 문제를 인식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모택동은 믿었다. 아들중에서 괜찮은 자는 떠났고, 떠나지 않은 아들은 희망이 없다. 이눌의 지위가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눌은 그래도 어렸다. "9차대회"이후의 단련기간에 사랑을 하게 된다. 모택동은 딸에게 여러가지 당부를 해야 했다. 이눌의 엄마는 십여세때 이미 로맨스에 빠지지 않았던가? 남녀간의 일을 이눌이 생각지 않았겠는가. 정말 지혜로운 자는 천가지를 생각하지만 한 가지쯤은 놓친다는 말이 있다. 결과적으로 결혼후 얼마되지 않아서 망가진다. 이공주는 이때부터 우울함에 빠진다. 이것은 그녀의 엄마와 다른 점이다. 그녀의 엄마는 남자를 우울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강에 투신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이눌은 그래도 괜찮다. 스스로 우울증에 빠졌으니.

 

어찌되었건, 이눌은 이십여세에 장관급이 되었다. 그리고 이 장관급은 임입과의 차관급보다 높았다. 어쨌든 그녀는 정통수의 딸이 아닌가? 어떻게 보더라도 부통수의 아들보다는 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