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경제/궈메이 황광위 사건

산롄(三聯)의 궈메이(國美)에 대한 반격

중은우시 2009. 1. 19. 21:46

글: 이준휘(李俊輝)

 

장지셩(張繼升)은 궈메이가 가장 허약한 시점을 틈타 공격을 했다. 자유를 잃은 황광위(黃光裕) 부부는 이미 반격할 힘이 없다.

 

중관촌(中關村)을 통합하는 것도 중도에 중단되고, 모회사 궈메이전기는 홍콩항생종합지수, 항생유통지수에서 제외되어 버리고, 온갖 힘을 들여서 차지했던 산롄상사는 다시 반기를 들고 있다.

 

일찌기 천하제패를 노리던 궈메이계는 바람앞의 등불신세가 되었다. 수성(守城)의 천샤오(陳曉)는 가전업의 경영인재이지, 자본시장에서 공수에 능한 인재는 아닌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궈메이의 자본광란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적이 발생하지 않는 한, 궈메이의 패배는 정해진 것이다.

 

산롄의 예언

 

"이전에 나는 말했었다. 산롄상사를 인수하는 것은 황광위가 미끄럼틀을 타는 것이 될 것이라고. 현재 보니 그 말이 적중한 것같다." 황광위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산롄그룹의 한 고위층은 자신의 예언을 다시 한번 말하였다. 궈메이에 대한 원한은 그의 말투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산롄은 궈메이를 미워할 이유가 충분하다. 왜냐하면 산롄그룹은 산롄상사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한 과정이 정말 참기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황광위가 체포되자, 산롄그룹의 장지셩에게는 절호의 반격기회가 되었다. 2009년 1월 14일, 상장회사인 산롄상사는 공고를 통하여 2008년도 지분경매에 관한 분쟁에 관하여, 산롄그룹은 궈메이전기유한공사, 제남궈메이전기유한공사, 산동용척도건설유한공사, 산동영도투자유한공사, 제남분행, 산동제로서풍경매유한공사를 상대로 산동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원고의 지분경매는 무효이다; 피고는 연대하여 원고가 입은 손실 5000만위안을 배상하고, 나머지 거액의 손실보상에 대한 청구는 잠정적으로 유보하겠다"라는 판결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공고가 나오자, 궈메이의 대변인인 허양칭(何陽靑)의 핸드폰은 금방 불이 났다. 허양칭은 그저 산롄으로부터 소장을 받았다는 말만 했을 뿐, 나머지에 대하여는 전혀 답변하지 않았다. 천샤오도 아무런 답이 없다. 경매전때 목소리를 높이던 것과는 선명하게 대비가 된다. 황광위가 지휘하지 않으니, 궈메이는 자본시장에서의 목소리가 금방 미약해졌다.

 

산롄상사는 산롄집단이 궈메이를 제소했다는 것을 공고하는 동시에, 제1대주주인 용척도건설유한회사("용척도건설")의 요구에 따라, 2월 2일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여, 전 산롄그룹이 산롄상사에 보낸 '옛경영진'을 몰아내고, 궈메이가 지명한 이사로 바꾸어 전면적으로 이관절차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산롄그룹의 고위층은 궈메이가 이때 주주총회를 개최하여, 산롄상사의 경영진을 교체하겠다고 한 것은 바로 산롄그룹의 소송제기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산롄의 소송청구는 합법성을 지니고 있다. 만일 증거가 충분하면, 경매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제남의 변호사인 문건남은 이렇게 생각한다. 산롄상사가 누구의 손에 떨어질지는 아직 최종적인 결론이 나지 않앗다.

 

궈메이는 산롄상사를 사냥목표로 삼았는가? 산롄상사의 지배권을 만일 산롄그룹이 다시 되찾아간다면, 그것은 궈메이에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산롄그룹의 예언은 어떤 자신감에서 하는 것인가?

 

황광위전략회고

 

황광위의 전략에는 산롄상사를 병합하는 것이 가전통합의 단계적 끝내기였다. 그러나, 교묘하게도, 큰 위기를 발생시키게 된 것이다.

 

2004년, 궈메이전기는 홍콩에 우회상장한 후, 황광위는 재산이 40배나 튀는 신화를 만들었다. 다만 궈메이는 이후 전략이 2005년에 정리된다. 그해 3월 19일에 개최된 '궈메이글로발전략합작서미트"는 바로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숙(李肅)은 화군창업자문의 창시자이다. 그리고 그 서미트의 주최자이기도 했다. 그의 회사는 그 기간동안 궈메이의 전략고문을 맡았다. 그는 궈메이의 2005년을 전후한 전략의 확정과 조정을 소개했다.

 

2004년 성공적인 우회상장이후, 황광위는 허군창업자문 및 여러 두뇌인물을 초청하여 미래의 전략에 대하여 설계하고 검토했다. 마지막으로, "가전, 부동산"의 융합발전이라는 최종구조를 만들어낸다.

 

구체적인 전략은 가전업종에서, 황광위는 가전연쇄점모델이 미래에 분명히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종적으로는 "디지탈화, 차별화, 서비스화"로 향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하여 궈메이디지탈회사를 만들고, 엔터넷상에 e비지니스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다. 궈메이 디지탈회사는 미래 전략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요 기능은 3가지이다: 가전영역의 최첨단기술에 관심을 가진다; e비지니스를 연구한다; 가치있는 제품, 기술의 인수와 유지로 벤처캐피탈의 모델과 유사하게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궈메이는 첫째 가정영역에서 경쟁을 탈피하여, 완전히 장악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격전에 휘말리고, 경쟁의 진흙탕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미래전략을 이어갈 방법이 없다.

 

황광위는 가전업무발전의 궤적을 이렇게 생각했다: 가격인하경쟁 - 주문직판 - 반직판 - e비지니스.

 

이를 위하여, 궈메이는 2005년에 두 가지 목표를 제시한다. 하나는 2,3선도시에 대규모로 연쇄점을 발전시킨다. 궈메이의 새로운 채널을 만들어, 가전브랜드를 대체하여 브랜드에 대한 깊이있는 통제, 가전업종의 깊이있는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하여 궈메이가 예정한 방향으로 발전시킨다. 구체적인 전략으로는 중소브랜드는 가격전을 벌여서, 도태시키고; 대형 가전브랜드와는 합작, 연맹으로 발전한다. 중심도시에서 궈메이점포에 대하여 업그레이드를 시켜 고급품의 풍윤전기를 건립한다.

 

두번째 목표는 황광위가 말한 2008년에 판매액 1200억위안을 달성하여 세계 500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 돌아보면, 황광위의 당시 전략배치는 하나는 성공하고, 하나는 실패했다." 이숙의 말이다. 소비수준과 궈메이자신의 능력한계로, 궈메이는 2,3선도시에서 대규모로 확장하는데 실패했다. 대다수가 손실을 보고, 최종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핵심도시에서 경쟁하는 방향으로 틀었다. 이렇게 하여, 용러(永樂), 쑤닝(蘇寧), 다중(大中), 산롄과의 조우전을 벌이는 것을 피하기 어려웠다.

 

비록, 상장은 궈메이에 자금의 단맛을 보게 해주었지만, 외부에서는 궈메이가 세계500강에 드는데 대하여 회의가 많았다. 그러나, 업계내부에서는 인수합병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하여는 먼저 다른 사람을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2005년, 용러는 밀접하게 다중과 접촉을 시작한다. 그리고 계속하여 합병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리하여, 황광위는 부득이 먼저 손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회상장으로 얻은 자금운영팀을 통해서,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 2006년 황광위는 홍콩주식시장에서 용러를 합병하는 깜짝놀랄 일을 벌인다.

 

용러를 합병한 것은 궈메이와 황광위에게 의미가 컸다. 이전에 궈메이 혹은 황광위는 상인의 천성을 가지고 밀어부쳤다. 아주 강했고, 도박성이 농후했다. 용러를 합병한 후에, 궈메이는 가전분야에서 진정한 직업화를 이룬다. 천샤오를 위주로 한 팀은 궈메이의 가전업무를 온화하고, 직업적이고, 이성적으로 관리사기 시작한다. 날로 성숙된다. 황광위는 관심을 인수합병 특히 부동산의 통합에 쏟았다. 황광위의 구상에 따르면, 가전연쇄점은 부동산과 연결되며, 부동산과 가전이 상호 확장의 동력이 되고, 공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부동산에 의지하여, 궈메이가전은 다른 경쟁상대방이 가지지 못한 원가우세를 점하게 되고, 가전영역에 의지하여, 궈메이부동산도 다른 부동산이 가지지 못한 장점을 지니게 된다.

 

용러를 인수한 후, 다중전기를 인수하는 것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가전영역의 '춘추오패"는 순식간에 "미소(美蘇, 궈메이와 쑤닝)전쟁"으로 바뀌었다.

 

"쑤닝의 본사가 있는 남경을 제외하면, 모든 핵심도시에서 궈메이는 쑤닝에 대한 우세를 점하게 된다. 그러나, 산동, 제남에서는 모두 산롄의 적수가 못되었다. 산롄을 인수한 것은 궈메이가전으로서는 끝내기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숙은 만일 산롄에 대한 인수를 순조롭게 끝냈다면, 궈메이는 쑤닝을 전면적으로 추월해서, 가전분야의 패주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계속하여 전략을 추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산롄을 궈메이가 통합한다면, 향후 쑤닝은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할 것이다.

 

몇 가지 원인으로 산롄을 인수하는 것이 아주 어렵게 변했다: 장지셩은 산동시장에 대하여 아주 깊이 이해하고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산롄의 가전이 가장 잘나갈 때였따. 장지셩은 전국확장의 기회를 포기하면서, 본토를 고수했다. 산롄가전의 연쇄점은 모든 도시, 심지어 현, 진에까지 미쳤다. 본부인 제남에는 궈메이, 쑤닝이 점포를 열었지만, 산롄은 여저니 70%의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산롄그룹, 장지셩은 산동의 정계상계에 관계가 깊다. 이 점은 바로 여섯번이나 부딪친 경매전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장지셩은 계속하여 통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궈메이를 난감하게 만들곤 했다.

 

상장회사인 산롄상사는 원래 정백문(鄭百文)에서 변화해온 것이다. 장지셩도 시장의 부침을 여러해 함께 한 자본시장의 노련한 사람이다. 이번 반격의 기소장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궈메이의 총수인 황광위가 바로 이 부분에서 문제가 터졌다는 점이다. 궈메이는 불끄기에 바쁘고, 수성하기에 바쁘고, 산롄과의 공성전을 신경쓸 겨를도 없고, 힘을 쏟을 여력도 없다.

 

수비하거나 버리거나 모두 패배이다.

 

산롄상사가 반기를 들고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궈메이는 진압할 힘이 없다. 장지셩이 계속 밀고 들어오는데, 수성하는 천샤오, 허양칭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저 2월 2일(2월 18일의 변론전)에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겠다고 하였다. 하루빨리 동사회를 접수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만 정식으로 지배권을 장악한 이래로, 이미 1년이나 되었지만, 궈메이는 산롄의 교란으로, 동사를 부임시키지 못해왔다. 현재의 이런 국면하에서 전면적으로 동사회를 장악하는 것이 좋은 선택인가?

 

산롄상사를 포기한다면? 궈메이는 이미 거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했고, 황광위는 바로 이로 인하여 증감회에서 "주가조작"의 죄명을 얻었다. 포기한다는 것은 "부인도 잃고 병사도 잃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외에 2009년 2월 18일에 개정되는 재판에도 적지 않은 골치거리를 덧붙일 수 있다. 만일 산롄이 승소한다면, 궈에이는 산롄에 5000만위안의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산롄은 추가적인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추가적인 금액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만일 산롄이 패소한다면, 궈메이는 계속 제1대주주의 지위를 유지하고, 동사회를 개조할 것이다. 다만, 현재 궈메이의 이런 상황하에서, 2월 2일의 주주총회에서, 궈메이가 성공적으로 개조시킬 수 있을지도 하나의 문제이다. 개조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산롄그룹은 그대로 손을 놓고 바라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라면, 황광위가 없이, 천샤오가 자본전략에서 얼마나 힘을 빌휘하고, 얼마나 의사결정과 집행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냐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