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경제/궈메이 황광위 사건

궈메이는 황광위 이후 누가 이끄는가?

중은우시 2008. 12. 1. 16:42

글: 후설련(侯雪蓮)

 

2008년 11월 27일 북경시 공안국 신문판공실은 처음으로 "궈메이집단 동사국 주석 황광위가 경제범죄혐의로 현재 경찰측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사건의 향후 추세는 아직 오리무중이지만 사람들은 황광위가 없는 궈메이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2008년 11월 19일, 궈메이 북경본사인 펑룬빌딩(豊潤大廈)는 "궈메이집단 22주년 경축식"이 화려하게 준비중이었고, 전국의 각 대형 가전업체에 보낸 초청장은 이미 다 뿌려진 상태였다. 궈메이집단의 부총재 겸 대변인인 허양칭은 한편으로 기자들의 전화를 받고 그들에게 "유사한 소문이 몇년전에도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답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초조하게 자기의 오너인 황광위와 연락했다. 그러나, 이틀간 그에게서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11월 21일부터, 국외 및 홍콩의 미디어들은 이미 "황광위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고, 소문은 이미 '전세계를 놀라게 하는'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총재인 천샤오(陳曉)를 위원장으로 하는, 7인결책(決策)위원회는 정식으로 긴급상황에 돌입해서, 매체, 공급상 및 보통직원에 대하여 통일된 입장을 표명하기로 하였고, 공급상의 지지를 획득하고, 각측에서 나타날지도 모르는 공황과 의문을 통제하기로 하였다.

 

11월 24일(월요일), 궈메이는 3/4분기까지의 재무제표를 예정보다 일찍 발표했다. 그리고 황광위에 대한 소문에 대하여도 반응을 보였다: "궈메이전기의 경영진은 관련상황을 확인중이며, 현재 궈메이전기는 여하한 부문으로부터도 본 소문과 관련된 법률문건을 받은 바가 없다."

 

궈메이는 자신은 "독립된 상장회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성숙한 경영관리체제를 갖추고 있어 경영관리는 일체 정상이라고 밝혔다. 그날 궈메이가 발표한 재무제표 뉴스원고에서는 천샤오의 직무가 이미 "총재"에서 "총재 겸 수석집행관(CEO)"로 바뀌어 있었다.

 

11월 28일, 천샤오는 궈메이전기의 동사회 대리주석에 올랐다고 선포하고, 그와 상무부총재 왕쥔저우(王俊洲), 부총재 웨이츄리(魏秋立)과 함께 결책위원회를 결성해서, 회사의 일상적인 경영과 중대한 경영결정을 책임지게 되었다; 부총재 리쥔타오(李俊濤), 부총재 모구이센(牟貴仙), 부총재 허양칭(何陽靑), 부총재 신커샤(辛克俠), 대리수석재무관 팡웨이(方巍) 및 상해대구역 총경리 황슈홍(黃秀虹), 화북대구역 총경리 쑨이딩(孫一丁), 서부대구역 총경리 장신린(張心林), 동북대구역 총경리 궈쥔(郭軍), 화남대구역 총경리 우보(吳波)로 집행위원회를 조직해서, 본부와 전국 각지부의 일상경영과 관리를 책임지기로 하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황광위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궈메이의 의사결정체제는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사회주석, 집단총재, 결책위원회. 동사회주석은 황광위이다. 집단총재는 천샤오이며, 결책위원회는 7명의 집단부총재급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궈메이에서, 자본운용체제는 내무운영체제와 분리되어 있었다. 황광위는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책임졌고, 총재 및 7명의 결책위원회는 그저 내부운영만을 책임졌었다. 현재 이 7명은 모두 궈메이의 결책위원회 및 집행위원회의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다만, 사실상 궈메이의 브랜드나 업무기풍은 명확히 황광위의 낙인이 찍혀 있다. 황광위의 기질은 궈메이와 이퀄(=)관계라고 할 수 있다: 패기, 유아독존, 중요한 순간에 손속이 맵다, 원한은 반드시 갚는다.

 

궈메이전기가 공고를 발표하기 전에 이미 긴급상황에 돌입했고, 천샤오를 위원장으로 하는 7일 결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집단상무부총재 왕쥔저우, 집단부총재 리쥔타오, 부총재 모귀이센, 대변인 허양칭, 궈메이 화북지구총경리 쑨이딩, 부총재 위츄리등이 공동으로 궈메이의 일상업무를 처리한다. 현재 이 7명은 모두 궈메이 결책위원회와 집행위원회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천샤오는 2006년 11월에 궈메이 총재를 맡았다. 궈메이전기의 지분은 7%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궈메이의 '낙하산'이라고 할 수 있다. 2년간의 사실은 황광위와 천샤오의 결합은 업계내에서 최고의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다. 황광위는 격정적이고 정력이 충만하며, 뭐든지 생각하고 뭐든지 한다.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방향이 일단 정해지면, 30%의 자신만 있으면 나는 감히 해버린다"고 한다. 상하이에서 온 천샤오는 외모가 선비같고, 뼛속은 아주 강하다. 모략에 뛰어나고, 계산에 밝고, 사장의 시야를 지니고 있으며, 집행도 절대 허투루 하지 않는다. '중영통태'를 만들 때, 웃으면서 광동의 원래 최대가전연쇄점인 동저(東澤)전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하여 업계는 그를 괄목상대하게 된다. 천샤오의 이상은 전국연쇄망이었고, 궈메이라는 플랫폼을 빌려, 쳔샤오는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상무부총재 왕쥔저우는 현재 궈메이의 제2인자이다. 천샤오를 도와서 궈메이의 재무, 인사 및 운영업무를 처리한다. 2001년에 궈메이전기에 들어온, 궈메이의 맹장이다. 그는 궈메이의 본부에서 멀리 떨어진 화남시장에서 풍운을 불러 일으켰다. 궈메이의 몇년동안의 '내무폭풍'에서 명령을 확실하게 집행함으로써 리쥔타오를 대체하여 궈메이의 제2인자가 되었다.

 

45세의 리쥔타오는 궈메이에서는 원로급인물이다. 1989년에 궈메이에 들어와서 이미 20년 가까이 되었다. 계속하여 마케팅을 담당했고, 현재는 구매판매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리쥔타오는 궈메이 연쇄점사업이 발전하는데 첨병이었고, 그가 솔선수범하여 베이징궈메이의 경험을 전국각지로 퍼트렸다. 텐진을 얻고, 상하이에서 싸우고, 화남을 개척하고 동북을 휩쓸었다. 그때마다 그의 모습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리쥔타오는 사람이 단순하고 솔직하며, 기업에 대하여 충성을 다한다. 국내의 여러 가전브랜드들의 마케팅책임자와의 교분도 얕지가 않다. "궈메이22주년경축식"은 이미 11월 28일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이기간은 마침 각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서로간의 안부를 묻는 기회가 되었다. 과거 며칠간 리쥔타오는 공급상들과의 교류와 의사소통을 주로 책임졌다.

 

왕쥔저우, 리쥔타오와 비교하자면, 쑨이딩, 모구이센은 궈메리 경영진에서 비교적 소장파에 속한다. 쑨이딩은 현재 궈메이 화북지구 총경리이다. 그가 관할하는 업무는 궈메이 전체 판매량의 30%를 차지한다. 일찌기 궈메리 연쇄점의 발전과 인수합병을 책임졌고, 헤이텐어(黑天鵝), 용러(永樂), 따중(大中)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쑨이딩은 협상팀의 주요구성원이었다.

 

대변인인 허양칭은 일찌기 샤화(廈華)집단의 판매책임자였다. 사람들과의 교류에 뛰어나고, 친화력이 강하다. 매체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기업선전에 있어서 그는 궈메이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궈메이의 대외창구로서, 각종 질문에 답하느라 압력이 클 것이다.

 

중국은행위법대출로부터 경제범죄가지, 황광위는 두번째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황광위의 개인이미지는 궈메이의 이미지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많은 사건들이 해결되지 아니한 상황하에서는 황광위가 경영진에서 물러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일지 모르겠다. 궈메이의 경영은 지금까지 황광위를 위주로 해왔다. 일종의 군주식의 관리이다. 혹은 가족식의 관리이다. 황광위가 물러나면, 천샤오를 대표로 한 직업경영진이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여 현대기업관리의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이고, 더욱 민주화될 것이다.

 

황광위사건이후, 많은 공급상들은 이미 궈메이의 태도가 온화한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느끼고 있다. 과거 몇년간 공장과 상인의 다툼은 아주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국내가전연쇄점이 계속 통합되면서, 공급업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발언권이 더욱 커진 가전연쇄점은 칼라티비기업들에게 각종 명목의 비용을 받아갔고, 그 금액은 날로 커져갔다.

 

시대는 새로운 공급관계를 요구한다. 황광위사건은 아마도 이러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궈메이가 순조롭게 이 난관을 돌파한다면, 궈메이에 있어서 이것은 불사조식의 부활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