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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후)

문혁기간 하룡(賀龍)의 딸이 하룡을 비판한 대자보

by 중은우시 2009. 1. 18.

 

동지여러분, 전우여러분, 현재 우리는 반당(反黨), 찬군(簒軍), 반혁명수정주의분자 하룡(賀龍)을 붙잡아냈다. 정말 속시원한 일이다. 나는 삼반분자 하룡과 단호하게 선을 그을 것이며, 단호하게 당과 모주석의 편에 서서, 하룡의 죄행을 철저히 청산하고, 죽기로 당중앙을 보위할 것을 맹세하고, 죽기로 모주석을 보위할 것을 맹세한다.

 

1. 나는 어떻게 박해를 받았는가: 나는 장정(長征) 18일전에 태어났다. 출생한 후 홍군장정을 따라 연안으로 갔고, 농민의 집에 맡겨졌다. 당시 하룡은 군벌부대내에 결의형제가 있었다. 국민당의 여단장 진광원(秦光遠), 단장 구옥병(瞿玉屛)이다. 그들은 돈과 권력을 얻을 욕심으로 하룡의 부대로 왔다. 그러나, 군사위원회는 하룡이 이 두명의 비적을 하룡의 부대에 꽂아두는데 동의하지 않고, 하룡에게 만일 진, 구 두사람을 혁명에 참가시키고 싶으면, 반드시 먼저 항일군사대학에서 개조를 받게 한 후 학교에서 분배해서 일을 맡기도록 하라고 했다. 하룡은 이러한 지시에 불만이었다. 그리하여 두 비적에게 말했다: "너희 둘은 돌아가라. 현재 공산당안에는 내가 너희들의 자리를 마련해줄 권한이 없다." "나는 사십여세이고 딸 하나만 있는데, 너희가 부양해달라." 그리하여, 나를 진, 구 두 비적이 데리고 백구(白區)로 보내어 교육,양육받게 했다. 이것은 비록 사소한 하나의 사례이지만, 이를 통하여 하룡의 반동적인 본질을 엿볼 수 있다: (갑) 하룡은 백구를 해방구보다 안전하다고 보았다, (을) 봉건적인 결의형제를 공산당보다 믿을만하다고 보았다.

 

나는 백구에 간 후에 먼저 진비적의 집에서 살았다. 진비적이 죽은 후에 구가집으로 가서 온집안 식구들을 돌보아야 했다. 나의 친어머니가 갖가지 곤란을 겪어가면서 나를 찾아내서 데려갔다. 그러나 나쁜 하룡 이 놈은 나를 강제로 데려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씨의 자손이다. 하씨집으로 데려가야 한다." 하룡의 집에 간 후에 계모인 설명(薛明, 하룡의 현재 처)은 나를 더욱 차별했다. 하룡, 설명의 두 사람은 내가 친어머니와 연락하는 것도 막았다. 그래서 나는 자살하려고 우물에 몸을 던지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나는 고발하려고도 생각했다. 하룡은 흉흉한 기세로 나에게 말했다: "네가 나를 고발하겠다고? 나는 공안부에도 등록되어 있고, 나는 총리 있는 데도 등록되어 있다, 나는 모주석 있는 곳에도 등록되어 있다. 나는 중공정치국위원이고, 나는 부총리이다, 나는 원수이다. 너같은 어린아이, 어린 당원이 나를 고발해서 어찌할 수는 없다. 네 이모와 네 어미가 모두 나를 고발해도, 나를 쓰러뜨릴 수 없다. 만일 고발한다면, 나도 그녀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이렇게 나를 위협했다. 이번 무산계급문화대혁명후에야 나는 비로소 하룡을 벗어나, 친어머니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주석은 바로 나의 구명은인이다. 친아버지, 친어머니도 모주석만큼 가깝지 않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소리친다: "모주석만세! 만만세!"

 

2. 악독하게 모택동사상을 공격하고, 미친듯이 모택동저작을 배워서 활용하는데 반대했다: 나와 삼반분자 하룡이 접촉한 십여년동안, 한번도 그가 모주석저작을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가 손에서 떼어놓지 않고,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는 책들은 <<칠검십삼협(七劍十三俠)>>, <<설당(說唐)>>, <<소오의(小五義)>>, <<사새화(佘賽花)>>, <<제공전(濟公傳)>>, <<서유기(西遊記)>>등등의 신괴소설(神怪小說)이었다. 하룡은 흑서 <<연산야화(燕山夜話)>>를 보배처럼 아꼈고, 신명처럼 받들었으며, 이 책을 서고에 놓고 감상했다. 그러나 혁명역사소설은 아무렇게나 바구니에 던져놓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더욱 나쁜 것은 하룡이 자신만 모주석저작을 공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배우려는 것까지 막았다는 것이다. 한번은 그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뭘 공부하고 있느냐?" 나는 말했다: "모주석저작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너는 선전부에서 일하니, 잘못을 너무 많이 범해서는 안된다. 특히 <<공산당원의 수양을 논함>>은 너와 같은 어린 당원이 잘 보고, 연구해야 한다. 너는 정치적 후각이 뛰어나지 못하니 무슨 큰 일은 할 수가 없다. 반드시 <<공산당원의 수양을 논함>>을 읽고 배워라."

 

1966년 내가 대련으로 병치료 하러 가기 전에, 하룡은 다시 나에게 뭘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나는 모택동선집 4권과 주석어록을 가져가서 한번 읽어보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하룡은 즉시 이렇게 강조하며 말했다: "너는 <<공산당원의 수양을 논함>>을 반드시 가져가라. 너와 같은 어린 당원은 유주석(劉主席)의 저작을 잘 학습해야 한다. 그걸 배우지 않으면 되겠느냐?" 그 말에 숨은 뜻은 나보고 모주석의 저작을 배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룡이 모주석의 저작을 활용하는데 반대한 야심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지 않았는가?

 

한번은 하룡이 나에게 말했다: "너의 문제는 손해보지 않으려는 것이고, 성격이 좋지 않은 것이다.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하룡이 당과 군을 찬탈하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하룡은 일관되게 모주석에 반대했고, 계속하여 시기를 기다렸고, 망녕되게 하늘을 바꾸려고 기도한 것이다(妄圖變天).

 

일관되게 모주석의 저작을 반대하고 적대시해온 삼반분자 하룡은 돌연 1966년 2월에 설명과 하가위(何家爲, 하룡판공실 부주임)에게 하룡판공실이 모주석저작을 학습하라는 지시를 초안하도록 했다. 그 안에는 분명 속셈이 있는 것이다! 첫째는 하룡은 문화대혁명이 곧 전국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알았다. 하룡은 딴 맘을 먹고 있으니 마음 속으로 께름칙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일관되게 모주석을 반대했다는 마각이 드러날까 겁을 먹었고, 황급히 붉은 깃발을 내건 것이다. 둘째는 하룡은 군위가 임표동지의 모주석저작을 만든 것을 치하한 것에 불만이었다. 하룡은 불만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잘 배울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도 하는 척해야 한다!" 이렇게 임표부주석에 반대했고, 임표동지와 다른 목소리를 냈고, 더욱 심한 것은 하룡이 하룡판공실의 학습지시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모주석저작을 학습하는 것은 교조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다." 모주석저작을 교조주의로 능멸한 것이니, 그 마음이 얼마나 악독한가! 하룡은 바로 모주석저작을 학습한다는 간판을 내걸고 모택동사상을 반대한 것이다.

 

3. 널리 당파를 결집하여, 정변음모를 꾸몄다: 19**년 하룡은 천진대비무(天津大比武)에 참석했다. 당시 팽진(彭眞), 나서경(羅瑞卿)이 함께 갔다. 하룡, 팽진의 두 사람은 수상구락부에 거주했다. 하룡은 윗층에, 팽진은 아랫층에 거주했다. 한번은 점심식사때, 나, 하, 팽 세 사림이 비무에 대하여 얘기했다. 나서경은 아주 득의만면하여 말했다: "우리는 군사상으로는 지나치게 강하다. 바로 정치가 두드러진다." 말이 떨어지자, 세 사람은 듣는 사람이 느끼할 정도로 크게 웃었다. 하, 팽, 나는 음모가 이루어졌고, 천하를 곧 손에 넣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득의만면하여 몸가짐이 흐트러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 멍청이들은 형세를 잘못 평가했다. 너무 일찍 좋아했던 것이다. 식사를 마친 후, 팽진은 나서경에게 말했다: "너는 북경으로 돌아가는가?" 나서경이 답했다: "나는 남아서 부대에 연설을 해야 겠다" 말을 마치고, 하룡을 향하여 말했다: "당신은 무슨 지시가 있는가?" 하룡은 속셈을 가지고 말했다: "모주석은 대비무에 대하여도 아주 지지하잖아." 하룡은 바로 나서경의 뒷배경이었다. 그들은 감히 천하의 금기를 깨고, 중국인민의 마음 속에 가장 붉고 가장 붉은 붉은 태양 모주석을 공격하려고 유언비어를 만들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악독한가?

 

나서경은 하령과 관계가 아주 밀접했다. 나서경은 자주 하룡의 집으로 왔다. 어떤 때는 나서경이 영화를 가지고 하룡의 집에 와서 틀면서, 함께 영화를 보았다. 서로 아주 재미있게 얘기했다. 서로간에 감정이 깊음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나서경은 하룡의 말을 하나하나 기록했는데, 마치 모주석이나 하부주석보다 더 높이 받드는 것같았다.

 

하적(賀賊)은 오함(吳晗)과도 교류가 많았다. 하룡은 자주 오함과 함께 마작을 하고, 브릿지를 하고, 낚시를 했으며, 오함은 하룡에게 아첨했다. 오함이 쓴 책은 하룡에게 보냈는데, 책에는 아주 공손하게, "경애하는 하원수, 총리, 동지, 지시를 바랍니다."라고 썼다. 하룡은 이에 대하여 당연히 아주 좋아했다. 그 뜻은 아주 분명했다. 바로 오함이라는 이 검은 문인으로 하여금 문예작품을 통하여 그의 당군을 찬탈하려는 음모에 여론을 조성하는 준비를 한 것이다.

 

문화혁명기간에 하룡은 하붕비(賀鵬飛, 하룡의 아들)등에게 말한 바 있다: "유소기의 반성은 핍박받아서 한 것이다. 모주석이 잘못했다!" 이는 대담하게 진세를 전개하여 미친듯이 공격하려 한 것이다. 하붕비를 한편으로 만들어 모주석에 반대하고, 당중앙에 반대하는데 끌어들이려 하였다. 하붕비는 농구를 좋아했다. 하룡은 아주 의미심장하게 하붕비에게 말했다: "나는 너희들의 지도자이다. 너의 어머니는 너희의 정치지도원이다" 이로써 볼  때, 하붕비 일당이 청화원에서 한 나쁜 짓의 뒷배경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하룡은 고심을 다하여 하붕비 일당을 배양하고 지지했다. 이는 바로 자기의 후대를 자기와 마찬가지로 자산계급의 계승자로 기르기 위한 것이다. 해방전에 우리의 재난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하룡은 망도변천하는데, 우리는 절대로 이를 허락할 수 없다.

 

4. 부화타락하여 인민의 피땀을 마음대로 썼다: 하룡은 대토비(大土匪)이다. 생활에서 자산계급 부화(腐化)의의 썩은 냄새가 충만했다. 평소에 하룡의 아침 기상벨이 울리면, 하씨집안의 업무인원들은 그 한 사람을 위하여 모두 바삐 움직인다. 공무원은 황급히 집으로 들어와서 그에게 옷을 이혀주고, 양말을 신겨주고, 신을 신겨준다; 의료인원은 달려와서 혈압을 재고; 취사원은 즉시 맛있는 아침밥을 준비한다, 매끼는 반드시 일정한 칼로리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북경의원 영양과의 사람이 하룡의 집에 와서 정밀하게 식물의 칼로리함량을 계산한다.

 

하룡은 매일, 두 세번은 산보를 한다. 자주 처, 비서, 간호사, 경호인원을 대동한다. 겨울에 집안에서 산보하면 추울까봐, 국가의 수천위안을 사용하여, 원래의 주랑에 유리를 붙였고, 산보전용으로 썼다. 여름에는 집이 너무 작다고 어떤 때는 체육관으로 가서 산보한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시끄러우므로, 하룡은 체육관의 사람은 모두 내보냈다.

 

이 씀씀이에 절제가 없는 하룡은 또한 원숭이를 데리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원숭이에게 바나나, 귤을 주었다. 한번은 동북에서 가치가 수천위안하는 경견(警犬)을 데리고 왔다. 개가 아프자 의사에게 보였고, 약을 먹였고, 페니실린을 주사했다. 심지어 병원에 입원까지 시켰다. 개가 먹는 밥이 사람보다 좋았다. 매끼 고기와 생선이 올라갔다. 당당한 부총리, 정치국위원이 원숭이와 개에게까지 온갖 관심과 사랑을 쏟았다. 이것은 서방 '자유'세계의 대자본가들이 매일 아무 할 일이 없어서 고양이를 가지고 놀고, 애완견을 가지고 노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하룡 이 토비두목은 나쁜 짓은 다 했다. 인민에게 하늘에까지 퍼질 죄행을 범했다. 이러한 부패한 수정주의분자는 우리가 타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주석은 우리에게 가르쳤다. "적들은 스스로 소멸하지 않는다. 중국의 반동파이건 미제국주의의 중국침략세력이든 모두 스스로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나지는 않는다." 삼반분자 하룡은 비록 끌려나왔지만, 적심(賊心)은 버리지 못했다. 하룡의 주구는 아직도 나의 모친에게 전화하여 위협하고 겁주고 있다. 우리는 물에 빠진 개를 실컷 두드려패는 정신으로, 끝까지 쫓아가서 맹령하게 두드려야 한다. 단호하게 하룡을 투도(鬪倒), 투취(鬪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