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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사상

중국에 유행하는 "성공"이라는 미혼약

by 중은우시 2009. 1. 16.

글: 부국용(傅國涌)

 

정치제도가 여전히 그모양 그꼴이고, 피라미드식 권력구조도 무슨 변동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최근들어 중국의 변화는 확실히 아주 크다. 가장 큰 변화중의 하나는 바로 "성공"이라는 미혼약에 중국인들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신의 평범한 생활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불로소득을 희망하고, 일거에 졸부가 되기를 갈망하고, 최소의 댓가 심지어 제로의 뎃가로 사람들이 선망하는 성공을 얻고자 갈망한다. 이런 심리상태는 전염병처럼 만연되어 있다. 사람들은 아침저녁을 다투고, 기다리는 참을 성이 없다. 어떻게 해야 그러한 성공에 도달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가장 단시간내에 가장 빠른 속도로 성공을 이룰 수 있는지는 모두 신경쓰지 않는다. 성공 그 자체가 목적이고, 성공은 바로 최대한의 점유이며, 성공은 바로 사람 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로 BMW에 호화주택이 있어야 하고, 바로 극도의 사치욕 소비욕을 만족시켜야 하며, 본능도 최대한도로 해방되어야 하며, 자신의 신체를 극한에 도전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서문경화(西門慶化)"되어야 한다. 서문경과 같은 생활을 즐겨야 한다. 바로 "쾌감을 느끼면 소리를 지르라"는 것이다.

 

성공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성공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거의 모든 눈길을 적극적으로 혹은 수동적으로 성공의 빛에 투사한다. 이는 하나의 광고의 시대이다. 대다수의 광고는 사람들에게 암시 혹은 명시하고 있다. 바로 이렇게. 그것은 사람들에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름길로 가서, 투기와 교묘한 수단으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바로 한 민족을 경박한 욕망의 바다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권력집단의 묵인, 종용 그리고 속으로 키득대는 와중에 일어나고 있다. 갈수록 많은 중국인들이 욕망의 바다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권력집단의 안전감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런 성공관에 따라 만들어진 사람은 아주 무섭다.

 

길림성 부녀연맹(婦聯)은 다섯 곳의 천명이상의 여대생들에게 앙케이트조사를 한 바 있다. 결과는 절반이상의 여대생들이 "방대관(傍大款, 미혼여성이 돈많은 남자에 빌붙어 사는 것)", "주말얼나이(週末二奶, 주말 첩노릇)"가 되는데 대하여 반대하지 않았다. 비록 그중 단지 1%만이 "기회가 되면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지만, 21.2%는 "아주 정상이고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답했으며, 33.7%는 "상관없다"고 답변했다. 이 비율을 다 합치면 61.47%에 달하는 여학생들은 "그때 그때 즐기면서 사는 생활"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것이다. 이를 보면, 위에서 본 '성공관'이 이미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돈있고 권력있는 사람들이 신속히 '서문경화'되는 것과 동시에, 우세한 자원을 장악하지 못한 보통사람이나 약자들 중에서도 '애완견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난한 것은 비웃어도 몸파는 것은 비웃지 않는 것이다(笑貧不笑娼). '애완견'이 되는 것도 일종의 성공적인 '애완견'이다. 성공, 성공, 얼마나 많은 죄악이 성공이라는 이름을 빌어 성행하는가?

 

이러한 성공은 일종의 엑스터시, 미혼약과 같다. 한번 삼키면 구름과 안개속에 들어간다. 생활은 환각속에서 살고 더 이상은 평범한 하루 세끼식의 생활은 참지를 못한다. 다시는 성실하게 노동하는 것을 믿지 않으며, 다시는 조용한 생활을 참지 못하고, 힘들게 노력하지도 않고, 평벙한 생활은 그들의 눈에 이미 실패의 대명사이다. 도덕의 최저선을 지키는 것은 우둔하고 무능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후흑학(厚黑學)>>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인생가이드라인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여대생들에게서,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시집을 잘 가는 것이 낫다"는 것 혹은 "주말얼나이"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신문자유가 없는 매체에, 매일 거의 모두 이런 왜곡돤 성공관이 범람하고 있다. 스타, 부호의 자잘한 일상사, 그리고 유행을 따르는 먹고, 마시고, 싸는 것이 모두 그들이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된다. 매일 매일 소식을 실으면서도 질리지도 않고, 신문면을 아끼지도 않는다.

 

인성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만일 사회가 항상 본능적이고, 육욕적이고, 생물적인 일면으로 이끌고 있고, 곳곳에서 인성중의 이런 면에 영합하고 있다면 , 인성은 그쪽 방향으로 경사될 것이다. 최소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에 항거할 정력이 없다. 특히 막 세상에 나온 젊은이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성공관은 대중매체, 인터넷, 상업광고를 통하여 계속 사회에 퍼져가고 있다. 인심을 유괴하는 것이 아주 성공적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상해에서 조사를 해본 적이 있는데, 젊은이들 중에서 농민이 되고싶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왜 그런가? 바로 노동자, 농민은 실패자로 보기 때문이다. 성공의 탐조등아래에 이들처럼 육체노동을 통해서 밥을 먹거나, 성실하게 생활하는 직업은 젊은이들이 모두 원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런 성공관이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형성되었다. 만능의 금전, 무한의 향수, 이런 것들을 가져올 수 있어야 비로소 성공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생활은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자신이 첫번째로 받아먹어야 한다. 그리고, 하늘에는 반드시 이러한  떡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무슨 노력, 무슨 근로, 무슨 성실은 빈부가 양극으로 극단적으로 분화된 시대에, 그리고 떳떳하지 못한 수단으로 먼저 졸부가 된 사례가 수두룩한 상황하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때, 우리가 만일 "방대관" "주말얼나이"를 반대하지 않은 여학생들을 한마디로 비난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더이상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녀들은 그저 이 시대에 성장한 보통살마이다. 그녀들의 관념은 하루하루의 현실생활속에서 형성된 것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아무 근거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회생활 자체는 바로 하나의 살아있는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보편적으로 물질화된 성공을 추구하고 있고, 세상의 가장 좋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극소수의 성공자들이 점유하고 있고, 실패자들이 서 있을 자리는 유사(流沙)처럼 계속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그런데도, 대다수의 여대생들이 최저선을 지키고, 유혹을 거절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